캠퍼스에 찾아온 불교 바람 |
한국대학생불교연합회의 변화가 조금씩 일어나고 있습니다. 지난 십여 년 간 이어진 하향 곡선이 아닙니다. 종교인구가 줄어들고, 불자 수가 감소한다는 이야기가 여기저기 들리고 있는 때입니다. 청년층의 종교 회피는 더욱 두드러진 모습입니다. 이제 종교의 시대가 저물었다고 수군거렸습니다. 그런데 봄소식이 들려옵니다. 각 대학 불교학생회에 신입회원들이 적지 않게 들어왔다고 합니다. 많은 곳은 20여 명이 넘게 불교학생회 문을 두드렸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미 사라진 불교학생회를 다시 재건하는 소식도 들려왔습니다. 한두 곳이 아닙니다. 이 봄꽃 같은 일들이 지방 곳곳에서 날아왔습니다. 2018년 봄날, 한국대학생불자들의 새로운 변화를 만나봤습니다. 01 고려대 서강대 불교연합법회 |
병 속의 어린 새,
하늘을 날다
“병 속에 갇힌 어린 새를 병을 깨지 않고 꺼내보세요.” 한양대학교 불교학생회 동아리 방. 지도법사인 본공 스님(불광사 주지)이 화두를 던진다. 스무 명 안팎의 불교학생회 회원들이 가부좌를 한 채 일념으로 정진을 시작한다. 일순간 동아리 방이 고요해진다. 호흡과 함께 스님이 건넨 화두를 풀기 위한 의식의 집중만이 느껴질 뿐이다. 작은 불단에서 부처님이 미소를 지으며 이들을 내려다보고 있다. 화요일 저녁 6시가 조금 넘은 시각. 바깥은 황사 바람으로 뿌옇게 흐린 저녁. ‘붓다 라운지’로 불리는 불교학생회 동아리 방에서 젊은 불자들을 만났다. 봄날의 벚꽃만큼이나 화사한 얼굴들이었다.
| 병 속의 새를 꺼내는 방법?
“물리학에서 말하는 끈 이론(string theory)이 떠올랐는데요. 끈을 이용해 병 속의 새를 꺼내는 방법이 있지 않을까 생각해봤습니다.”
“새에게는 병 속이 자신의 세계일 텐데, 굳이 새를 꺼낼 필요가 있을까요?”
참선이 끝나고, 화두에 대한 나름의 답을 이야기하는 시간. 각자의 전공을 살린 다양한 의견들을 말해보지만 본공 스님은 고개를 젓는다. 답이 아니라는 말이다.
화두의 답을 찾진 못했지만, 불교학생회 회원들에겐 본공 스님을 만나고 참선을 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시간이다.
“군 생활을 할 때 처음으로 불교를 알게 됐어요. 종교 단체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 불교 동아리 가입을 망설였었는데, 본공 스님을 뵙게 되면서 마음이 열리고 급했던 성격도 안정이 되었습니다.”(한양대학교 불교학생회 회장 고동빈, 기계공학과 4학년)
불교학생회 동아리방이 위치한 한양플라자 건물에는 신나고 재미있는 동아리들이 청춘들을 유혹하고 있다. 그 가운데 불교학생회의 문을 두드린 이들에겐 공통의 이유가 하나 있다. 바로 마음의 평화를 바란다는 것. 그만큼 요즘 대학생들이 스트레스가 많다는 반증일까.
“미래가 불안하게 느껴져요. 학점에도 신경 써야 하고, 취업도 걱정되고요.”(허민영, 외식산업과 2학년)
불안한 마음을 치유하기 위해 불교학생회에 들어온 것은 지혜로운 선택이 아닐 수 없다. 선지식과 도반을 만나고, 인생의 해답까지 얻을 수 있으니 말이다.
35명 정도가 활동 중인 한양대학교 불교학생회는 매주 화요일 저녁 6시, 지도법사인 본공 스님과 함께 정기법회를 열고 있다. 매주 스무 명 이상이 참여한다고 하니 출석률이 높은 편이다. 불자가 아닌 학생들에게도 동아리 방의 문을 열고 환영하는 분위기다. 고동빈 학생이 회장을 맡게 되면서 변화된 부분이기도 하다(고동빈 학생은 현재 3학기 째 회장을 맡고 있다). 종교가 불교는 아니더라도 불교철학이나 명상에 관심이 많은 학생들에게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 위함이다. 1학년 새내기인 융합전자공학부 서동민 씨도 불교철학이 궁금해 불교학생회에 가입했다고 한다.
“저희 가족들은 모두 기독교이고, 저도 모태신앙이 기독교였어요. 그럼에도 제가 불교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강요를 안 하는 분위기 때문이었어요. 불교를 믿느냐 안 믿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부처님의 가르침을 많은 학생들이 접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고동빈)
한양대학교 불교학생회의 활동은 매주 화요일 정기법회 뿐만 아니라 1박2일 여름 템플스테이, 3.1절 만해 한용운 스님 묘소 참배, 연등제 참가, 송년법회 등 다양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특히 3.1절 만해 한용운 스님 묘소 참배 행사는 1972년 한양대 불교학생회 창립 이후, 동문들과 그 가족들까지 참여하는 전통 있는 행사로 자리매김 해왔다.
“한양대 불교학생회 선배님들을 네이버 밴드 ‘선지식동문회’에서 만나고 있어요. 한번은 만해 한용운 스님 묘소 참배를 갔는데, 70학번 선배님과 인사를 나누기도 했어요. 70학번이면 부모님보다도 연세가 많은 선배님이신데, 그때부터 불교학생회가 이어져오고 있다고 생각하니 뭔가 뿌듯하고 책임감도 더 커지는 것 같습니다.” (고동빈)
| 마음의 힘을 키우는 스님의 말씀
법문을 하던 본공 스님이 갑자기 손을 들어 보인다.
“이게 뭡니까?”
학생들이 대답한다.
“손바닥이요.”
“여러분이 볼 때는 손바닥이지만, 내 눈에는 손등이 보이죠.”
당연히 손바닥이라고만 생각했던 학생들이 스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누군가에게는 손등으로 보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던 까닭이다. 자신만의 프레임대로, 정답처럼 세상을 바라보았던 어리석음이 깨지는 순간이다.
“평균적인 것을 사람들은 정상적인 것이라 착각합니다. 그건 관념일 뿐이에요. 평균이라고 하는 것은 없어요.”
요즘의 대학생들뿐만 아니라 현대인들이 현재를 불안하게 살아가는 것은 평균을 정상적인 것으로 착각해 실체 없는 평균을 좇아가려는 이유 때문인지도 모른다.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하고 결혼해 아이를 낳고…. 사회가 규정해놓은 삶을 따르는 것이 왠지 공허하게 느껴져요. 나의 길을 찾고 싶은데, 아직은 그 길을 잘 모르겠고….”(허민영, 외식산업과 2학년)
그런 현실 속에서 매주 정기법회에 참여해 스님의 가르침을 듣는 것은 마음의 힘을 키우는 데 많은 도움이 된다고 한다.
“무소유라고 하는 것을 무조건 물질적인 것을 버리고 갖지 않는 것이라 생각했었어요. 그런데 정신적인 무소유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배웠습니다.”(서동민, 융합전자공학부 1학년)
“재수를 하면서 짜증과 화가 많아졌는데, 대학에 들어와서도 사라지지 않았어요. 불교학생회에서 예불에 참여하고 명상을 하면서 많이 좋아지고 있습니다.”(박용민, 융합전자공학부 1학년)
조금 있으면 중간고사가 시작된다고 한다. 1학년 새내기 회원들에겐 대학생활의 첫 시험이다. 불교학생회 회원들은 도서관 대신 법당인 동아리방을 찾는다고 한다. 불상 앞에서 공부를 하면 집중도 잘 되고 공부가 더 잘 되는 것 같단다. 공부를 하다 잠시 쉴 때는 명상을 하며 긴장을 풀 수도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은 공부방이 어디 또 있을까.
“병 속의 새를 병을 깨지 않고 꺼내는 방법, 그 답을 꼭 찾고 싶어요.”(고동빈)
진실로 화두를 참구하고자 하는 이는 대신심大信心, 대분심大憤心, 대의심大疑心이 있어야 한다고 한다. 미래 세대의 희망이 될 대학생 불자들의 눈빛에서 화두 참구에 대한 강한 의지가 느껴졌다. 아직은 병 속에 갇혀있는 어린 새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병도, 새도, 갇혀있다는 생각조차도 모두 사라지는 어느 순간 자유로운 새가 되어 허공을 날아갈 날이 오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