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과 함께 한 식물 그리고 동물] 빈랑과 올빼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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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과 함께 한 식물 그리고 동물] 빈랑과 올빼미
  • 심재관
  • 승인 2018.05.30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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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성효과 있는 열매 빈랑과 지혜의 조언자 상징하는 올빼미
인도네시아의 빈랑수

빈랑檳榔
과거 불교나 힌두교가 지나갔던 거의 모든 국가에서 금기시된 것이 있다. 술이다. 지금도 남아시아와 동남아시아의 많은 지역에서 음주문화는 크게 환영받지 못한다. 젊은 친구들이 집으로 돌아가 부모의 얼굴을 마주할 시간이 되면 자신이 술 먹은 것을 몹시 걱정한다. 뺨을 맞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지금도 그러한데 옛날은 오죽했을까. 만약 술을 즐기지 않았다면, 옛날에 담배와 커피 같은 기호 식품이 들어오기 전에 이들은 무슨 재미로 살았을까. 이들에게도 축제와 잔치가 있었을 것이고, 연인과 부부가 맞이하는 은밀한 밤 시간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옛사람들에게도 그런 시간에 약간의 흥분과 도취의 물질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그것이 바로 빈랑이다. 옛 인도의 연애시 가운데 하나인 『아마루샤타카Amarus`ataka』의 일부는 그 분위기를 이렇게 전한다.  

베텔Betel 즙이 묻었네, 침향(Aguru)의 얼룩과 캄포Camphor향도 뿌려졌었지.
그리고 래커(Lac)로 염색한 발자국도 있었어.
여기에 파도같이 일렁이는 이불 주름, 그 여자 머리에서 떨어져 시든 꽃들도 있었어. 
침실의 이불이 말한다네, 여인이 즐겼던 사랑의 온갖 기교를. 

봄밤의 침실을 가득 채운 침향과 캄포의 향기를 떠올려보시라. 침향은 최음효과가 있다고 하지 않던가. 연인들은 자신들의 몸에 이 향가루를 바르고 있었을 것이다. 이 두 향은 현재 한국에서도 한방 재료로 소개되어 있다. 그렇지만 베텔 즙은 무엇일까. 연인들의 사랑을 떠올리면서 시인은 바닥에 묻어있을 이 붉은 즙을 가장 먼저 떠올렸을 것이고, 베텔을 씹고 있었던 모습을 상상했을 것이다. 여기서 베텔은 실제로 빈랑을 가리키는 말로 쓰인 것이다. 물론 두 식물은 완전히 다른 것이다. 베텔은 후추과의 덩굴식물인데 보통 이 잎에 썰어 말린 빈랑 조각을 싸서 함께 씹는다. 빈랑은 야자수과의 빈랑나무(Areca catechu L.)에 달린 열매다. 말하자면 베텔잎은 그냥 포장용이고 진짜 내용물은 빈랑인 셈이다. 이 경우에 ‘베텔을 씹는다’고 하면 실제로 빈랑의 효과를 보기 위해 씹는 것이기 때문에 빈랑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 안에 라임을 비롯한 약간의 다른 향신료나 감미료가 첨가될 수도 있다. 이것이 지금 인도의 길거리에서 판매되고 있는 ‘빤paan’이다. 담배가 들어온 이후로는 빤 안에 담뱃잎도 썰어서 아주 약간 함께 넣기도 하지만, 빤의 본질적인 재료는 바로 베텔과 빈랑이다. 당연히 지역에 따라 빈랑조각만을 씹기도 한다. 대만이나 중국의 일부에서는 말리지 않거나 익지 않은 빈랑을 씹기도 한다. 빈랑을 씹으면 약간의 각성효과와 함께 몸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으며 소화능력이나 스태미나를 향상시키는 효과를 느끼게 된다. 그렇지만 이것을 씹으면 입안에 가득 핏빛과 같은 침이 고이면서 이것을 빈랑의 잔여물과 함께 뺏으면 마치 피를 뱉은 것 같이 보일 수 있다. 

한국에서는 낯선 모습이지만, 이것이 옛 인도인을 포함해 아시아인들이 즐기던 대표적인 기호식품이었다. 사람들을 대접할 때뿐만 아니라 신에게 공양할 때도 베텔잎과 빈랑을 이용했다. 특히, 불교 탄트라 의식 속에서 베텔과 빈랑이 사용되기도 하는데, 이것은 후대 힌두교의 강력한 영향 때문이다. 일상 사회생활 속에서도 이것은 단순한 기호식품을 넘어서 인간관계를 조절하거나 사회관계를 돈독히 해주는 하나의 수단이 된다. 결혼식이나 입학식 등과 같은 날에 이것을 하객이나 선생님에게 선물하기도 한다. 잔칫날이나 전통적인 축제 때, 하객을 대접하기 위한 일반적인 준비용품이었다.  

당연히 옛날 인도의 승려들 사이에서도 이는 자연스럽게 유통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 흔적들은 훨씬 후대에 나타나기 시작하는데, 『자은전慈恩傳』이나 『현장법사행장玄奘法師行狀』에 묘사된 것처럼 사원 내에서 베텔잎과 빈랑이 유통되었던 것을 알 수 있다. 현장은 인도 날란다Nālandā 승원에 머물면서 계현戒賢으로부터 유식철학을 수학하게 되는데, 이 때 기숙하고 있던 방으로 매일 섬보라贍步羅를 120매, 그리고 빈랑자檳榔子를 20개씩 공급받았다고 전하고 있다. 섬보라는 베텔잎의 산스크리트어 명칭인 탐불라tāmbūla를 그대로 음사한 말이니 승려들은 베텔잎에 빈랑을 싸서 씹었던 것이다. 보통 베텔잎 한두 장에 빈랑자 한 알을 세 네 조각으로 나누어 이용하면 충분하니 딱 적당한 분량이다. 그런데 개인이 매일 빈랑자 20개씩을 공급받았다면 실은 엄청나게 많은 양이라 볼 수 있다. 구강암에 걸린 승려들이 많이 생기지 않았을까 염려될 정도의 양이다. 글쎄, 굳이 담배로 환산해본다면, 3갑 정도가 아닐까. 

만일 자은전에 묘사된 섬보라(베텔잎)와 빈랑의 양이 실제 경험의 기술이라면, 당시 재가자들뿐만 아니라 승가에서도 방대한 양의 빈랑이 유통되고 있었던 것을 짐작할 수 있다. 한 때 날란다에는 1만여 명의 승려들이 수학하고 있었지 않았던가. 아쉬운 것은 이 빈랑의 소비문화를 고대 인도불교 속에서 찾아보기 힘들다는 데 있다. 니까야에도 거의 그 흔적이 나타나지 않는데, 이는 비교적 후대에 동남아로부터 남아시아로 전파된 문화가 아닐까 추측되기도 한다. 

21세기에 조사된 바에 따르면 이 빈랑 열매를 소비하는 인구는 지금도 거의 6억 명에 이르고 있는데, 남아시아와 동남아시아의 대부분 지역에서 여전히 담배나 술보다 더 일상적인 기호식품으로 자리잡고 있다. 이 지역의 스님들도 가끔 길가에서 빈랑을 사는 것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을 것이다. 

뭄바이 체트라파티 쉬바지 역사 驛舍를 장식하고 있는 올빼미.

올빼미
올빼미는 흔히 서양철학사에서 지혜를 상징하는 동물로 그려지곤 한다. 이 새가 늘 함께 했던 여신이 지혜의 여신 미네르바였기 때문이다. 흥미롭게도 올빼미의 이러한 상징성은 인도의 불교적 전통 속에서 그대로 나타난다. 올빼미는 날짐승 가운데 가장 지혜로운 동물의 하나로 그려진다. 여기에 아마도 까마귀도 그 한 자리를 놓고 다툴 수 있을 것이다. 오비디우스에 따르면 본래 미네르바를 상징하던 새는 까마귀였으나 그의 비밀을 누설한 죄로 올빼미가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된 것이다. 서양과 같이 인도에서도 올빼미와 까마귀의 경쟁은 빈번하게 그려진다. 고대인들에게 이 두 날짐승은 영리한 동물로 그려졌던 것이 분명하다. 자타카에 따르면, 날짐승들끼리 자신들의 왕을 결정하기로 했는데, 까마귀와 올빼미 가운데 올빼미를 왕으로 선택하자 까마귀가 이를 시기해 올빼미와 싸움이 벌어진 이야기가 있다. 이런 종류의 우화도 꾀 많은 새 가운데 까마귀와 올빼미를 떠올렸을 것이다. 

그러나 올빼미를 바라보는 힌두 전통의 관점과 불교는 완전히 상반되어 나타난다. 힌두 전통에서 올빼미는 단지 지혜로운 동물이 아니라, 부정不淨하고 불완전하며 불길한 동물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다. 일차적으로 올빼미는 동물을 먹고 산다는 점에서 ‘부정한’ 동물이다. 고대 힌두인들에게 죽은 시체를 뜯어 먹는 폭력적인 날짐승을 달갑게 보았을 리 없다. 다른 동물을 잡아먹고 피를 보이는 모습은 강한 동물로 보일 수 있지만 부정한 동물로 취급되었다. 이러한 부정함을 더 부풀리게 된 것에는 올빼미의 또 다른 특징과 관련이 있다. 올빼미가 낮에 활동을 못한다는 것은, 고대 힌두교 관점에서 앞을 보지 못하는 ‘불구’의 동물이며, 이는 생래적으로 육체적 단점을 가진 동물로 인식된다. 따라서 이와 같이 부정하고 폭력적인 동물은 탄트라 계통의 여신에 배속된다. 힌두 전통에서 올빼미가 죽음의 여신 차문다Cāmun.d.ā가 타고 다니는 동물로 그려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러한 모습은 밀교적 전통이 비교적 잘 남아있는 벵골지역이나 오릿사 등지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올빼미의 모습은 불교 전통 속에서 완전히 달리 나타난다. 불교문헌 속에 등장하는 올빼미는 관찰을 통해 지혜를 익혀가며 때로는 현자의 모습으로 타인을 계도하는 존재로 그려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동물이 부처님의 전생으로 등장하는 것은 전혀 낯선 일이 아니다. 심지어 어떤 『자타카』 가운데 올빼미는 석가모니의 전생으로 나타나는데, 마치 중생의 마음을 치유했던 석가의 모습을 보여준다. 여기서 올빼미는 상처 입은 어떤 코끼리를 치유하는 존재로 그려진다. 

어느 히말라야의 숲 속에 어리고 매력적인 흰 코끼리가 있었다. 숲 속을 지나가던 왕실의 코끼리 조련사들은 이 놀라운 코끼리를 발견하고 왕에게 바치기로 결심한다. 이들은 즉시 흰 코끼리를 생포해 궁으로 돌아온 다음, 코끼리의 야성을 길들이기 위해 온갖 고통과 훈련을 계속했다. 그러나 어린 흰 코끼리는 사람들이 몸을 찌르는 창이나 가죽 채찍질을 견디다 못해 어느 날 우리를 부수고 탈출하게 된다. 그리고 재빠르게 히말라야의 깊고 깊은 숲 속까지 도망쳐 버렸다. 아주 깊은 숲 속으로 들어갔기 때문에 도무지 사람이 들어올 수 없는 곳이었음에도 이 어린 흰 코끼리는 조그만 바람 소리나 다른 동물의 울음소리에도 겁을 먹었다. 그리고는 마침내 그렇게 놀랄 때마다 스스로를 나무나 바위에 부딪치며 학대하거나 숲을 파괴하는 동물로 점차 변해가고 있었다. 코끼리가 병들어 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 흰 코끼리 위에 올빼미가 나타났다. 그 때도 코끼리는 겁을 먹고 도망갈 기세였지만, 천천히 코끼리의 마음을 잠재운다. ‘주변에는 바람도 없고, 사람도 없고, 다른 동물도 없어. 그리고 네가 여기서는 가장 큰 동물이지. 누구도 너를 이길 수 있는 존재는 없는 거야. 너의 공포가 너를 집어삼키는 중이라고. 그러니 이제 네가 너의 공포를 조절해 봐.’ 흰 코끼리는 매일 조금씩 올빼미의 조언에 따라 변하기 시작했고 마침내 인간의 공포로부터, 자신이 만들어 낸 공포로부터 완전히 벗어날 수 있었다. 이때의 지혜로운 올빼미가 바로 지금의 스승, 석가모니의 모습이었다.                  

  
심재관
동국대학교에서 고대 인도의 의례와 신화에 대한 연구로 석·박사를 마쳤으며, 산스크리트어와 고대 인도의 뿌라나 문헌 연구에 주력하고 있다. 필사본과 금석문 연구를 포함해 인도 건축과 미술에도 관심을 확장하고 있으며, 2006년부터 오스트리아, 파키스탄의 대학과 국제 필사본 연구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 인도 뿌네의 반다르카 동양학연구소 회원이기도 하다. 저서 및 역서로는 『탈식민시대 우리의 불교학』, 『세계의 창조 신화』, 『세계의 영웅 신화』, 『힌두 사원』, 『인도 사본학 개론』 등이 있다. 금강대학교 HK 연구교수, 상지대학교 연구교수로 재직했으며, 현재 상지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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