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종 원로 설악 무산 오현스님 원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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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종 원로 설악 무산 오현스님 원적
  • 유권준
  • 승인 2018.05.28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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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흥사에 빈소, 다비식은 30일 오전 10시 고성 건봉사에서

대한불교 조계종 원로이자 설악산 신흥사 조실 설악 무산 오현스님이 26일 오후 5시 11분 입적했다. 승납 60년, 세수 87세. 

스님은 1932년 경남 밀양에서 태어나 7살에 입산, 59년 성준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불교신문 주필과 중앙종회의원, 원로의원 등을 역임했다. 최근까지도 신흥사 조실로서 조계종 종립 기본선원 조실을 맡으며 후학 양성에 매진했다. 

1977년 설악산 신흥사 주지를 지낸 스님은 한편으로는 신흥사와 백담사, 낙산사 등 강원도 북부지역의 불교를 재건하고 전법교화하는데 힘썼다. 설악산의 교구본사였던 신흥사의 가풍을 만들고, 백담사 선원과 무문관을 잇따라 재건했다.

또 한편으로는 만해 스님의 사상을 실천하고 선양하기 위한 활동에 매진하며 문인들을 지원하는데 앞장섰다. 2002년 7월 재단법인 만해사상실천선양회를 설립했다. 만해상을 제정해 시상하고 만해의 문학적 업적을 기리고 문인들의 창작열을 북돋기 위한 만해축전을 주최해 지원했다. 의상만해연구원과 만해학회를 만들어 지원하는 한편, 만해스님 창간했던 불교 문예지 <유심>을 복간해 16년간 발간했다. 또 불교계의 건강한 학술풍토를 조성하기 위해 <불교평론>을 창간해 발행인으로서 지금까지 운영해오고 있다.

스님은 시인으로도 큰 족적을 남겼다. 1968년 <시조문학>을 통해 등단한 이후 <아득한 성자>, <마음 하나>, <절간 이야기> 등의 시집을 남겼으며 1992년 현대시조문학상, 1995년 남명문학상, 1996년 가람문학상, 2005년 한국문학상, 2007년 정지용문학상, 2008년 공초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스님은 이념에 따라 첨예하게 대립하는 이 시대에 거의 유일하게 진보와 보수 양진영을 넘나드는 무애한 수행자였다. 만해사상실천선양회와 만해축전을 운영하는데 있어 국내 대표적인 보수지인 조선일보와 함께 했다. 만해스님이 조선일보의 사주였던 방응모 회장과의 인연을 살폈다. 하지만, 운영에 있어서는 진보와 보수를 아우르는 큰 리더십을 발휘했다.  만해대상의 수상자로 김대중 전 대통령이나, 신영복, 황석영, 조정래 등 국내 대표적 진보지식인들이 선정하고 강원룡 목사, 함세웅 신부 등을 수상자로 선정해  종교간의 장벽도 뛰어 넘었다. 또 국제적으로는 넬슨 만델라 전 남아공대통령을 비롯해 달라이라마 등을 선정해 시상함으로써 세계 평화에까지 그 폭을 넓혔다.

스님은 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알게 모르게 끝없는 보시와 기부로 삶을 일관했다. 은사인 성준스님의 이름을 따 성준장학재단을 설립해 인제군 학생 수백명의 학비를 지원했다. 2013년에는 만해스님의 유지사업을 하기위해 200여억원을 들여 조성한 만해마을을 만해스님의 모교였던 동국대학교에 무상으로 기증했다. 노동운동을 하다 분신한 전태일 열사 관련 사업을 하는 전태일기념사업회에는 몰래 매달 후원금을 보냈다. 2011년에는 반값등록금 집회를 하다 기소돼 벌금형을 받은 대학생들의 벌금을 모두 기부해 벌금을 대납하기도 했다. 이같은 보시와 기부는 일부 언론을 통해 알려지기도 했지만, 항상 원칙은 알려지지 않게 그리고 아무도 모르게 였다.

스님은 임종게로 다음의 시를 남겼다.

天方地軸(천방지축) 氣高萬丈(기고만장)
虛張聲勢(허장성세)로 살다보니
온 몸에 털이 나고
이마에 뿔이 돋는구나
억!

빈소는 신흥사에 마련됐으며, 조계종 원로회의장으로 엄수된다. 영결식과 다비식은 30일 오전 10시 고성 건봉사 연화장에서  거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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