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리의 비밀-사리는 어떻게 나오는가?]
큰스님이 열반하실 때면 속세의 중생들은 사리를 기다립니다. 고승이 열반하셔서 안타깝기는 하지만, 과연 사리가 나올 것인가? 또 나오면 몇 개나 나오나? 하는 속물적인(?) 궁금증을 숨길 수는 없나 봅니다. 제자들은 제자대로 우리 스님이 사리가 안 나오면 어떡하나 하고 근심이 태산같습니다. 어쨌든 다비가 끝나서 사리를 수습하면 비로소 제자들은 가슴을 쓸어 내리고, 속세 중생들은 이번에는 사리 갯수를 가지고 어느 스님이 더 훌륭했다 하고 고승를 평가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예로부터 불가에서는, 사리 갯수로 수행을 평가하지는 말라는 말씀으로 어리석은 중생들을 깨우쳐 줍니다.
사리는 범어 Sarira의 음역으로 신골, 유골, 영골 등으로 번역하는데, 한량없는 삼학(戒定慧)과 육바라밀의 수행 공덕으로 생긴다고 합니다. 경봉 큰스님은 생전에 누가 사리에 대해 물으면, "사리는 사리에 대한 원력을 세우고 삼학을 부지런히 닦으면 저절로 생기는 것이지만, 수행자가 본분사에 바쁜데 언제 사리에 대한 원력을 세울 수 있나. 그리고 이 세상 자체가 부처님의 진신 사리인 걸 아나 모르나? "라고 말씀하셨다 합니다(경봉 큰스님의 사리에 대한 소식은 일체 전해지지 않습니다).
사리는 불교의 고승들에게만 나오는 것은 아닙니다. 기독교의 수녀나 수사에게도 나오며, 심지어 일반인들에게도 금빛 영롱한 사리들이 나오기도 한다고 합니다. 이렇게 사리가 나오면 평소에는 거들떠 보지도 않던 그 분들을 그제서야 우리는 다시 한 번 되돌아 보기도 합니다.
비록 사리가 삼학과 육바라밀을 닦으면 저절로 형성된다고는 하지만, 사리는 그 중에서도 몸의 정기가 뭉쳐야 나옵니다. 우리 몸과 마음의 정기가 한 곳으로 집중되어 응집이 될 때 생기는 것입니다. 따라서 아무리 행이 훌륭해도 이렇게 정기를 한 곳으로 모으는 수행을 하지 않으면 사리 생기기가 쉽지 않습니다.
자비행이 깊은 고승들에게서 사리가 잘 안 나오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기인합니다. 자비행은 마음을 모으는 수행이라기보다, 내 마음을 비롯한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중생에게 나눠 주는 것입니다. 나의 지혜, 나의 깨달음, 나의 수행을 내가 가지지 않고 가엾고 가진 것 없는 중생들에게 일체를 나눠 주는 것이 자비행이라, 내 마음을 모을 시간이 없습니다. 따라서 사리도 형성되기가 어렵습니다. 이런 이유로 사리는 자비의 실천보다는 주로 혼자 토굴에서 용맹정진하는 분들이 많이 나오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사리는 그 분이 나름대로 진실한 삶을 살아갔다는 증거는 될지 몰라도, 가장 바람직한 삶을 살았다, 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우리의 삶은, 나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중요하고, 나의 진실한 삶이 남한테도 반드시 진실한 것은 아니니까요.
그러므로 사리를 가지고 법력이나 수행을 평가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경봉큰스님의 말씀처럼 생명 그 자체, 그리고 이 법계 자체가 그대로 부처님의 진신 사리임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마마하반야바라밀
이 종린 合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