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두, 마음을 사르는 칼]소리 없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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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두, 마음을 사르는 칼]소리 없는 소리
  • 박재현
  • 승인 2018.05.04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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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 이은영

공연을 마친 아쟁 연주자 윤서경은 소리를 겨우 쥐어 짜낸다고 말했다. 쥐어 짜낸다는 표현은 귓가에 남아 앵앵거리는 아쟁 소리와 절묘하게 맞아떨어져 더 소름 끼쳤다. 활줄이 현을 긁어내는 소리는 날카롭게 파고들고 예리하게 스치는데, 그 소리가 거북스럽지 않은 것은 삶의 무늬가 그렇기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얼핏 들었다. 현대인의 귀는 서양음악의 음역에 길들어 창작 국악은 전통 음역만 고집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전통의 8줄로는 도저히 감당이 안 돼 아쟁의 현絃은 10줄 혹은 12줄로 개량되었다. 그래도 모자란 부분은 연주자가 쥐어짜 냈다. 윤서경은 ‘얼굴 없는 연주자’로 알려진 아쟁의 명인 윤윤석(1939~2006)의 아들이다.

해금도 아쟁이나 비슷한 악기다. 소리도 엇비슷해서 앵앵거리거나 깽깽거린다. 해금은 활줄이 현을 여유롭게 긁어내면서 소리를 낸다. 해금 소리는 활줄이 아니라 연주자의 왼손 손가락이 잡아내는데, 손가락이 바로 음을 잡아내기 때문인지 쥐어짜는 듯한 소리가 아쟁보다 덜하다. 나는 해금과 아쟁을 서로 비추어 말할만한 깜냥이 안 된다. 겨우 두 줄에 불과한 현을 가지고 종횡무진으로 음역을 감당해내는 게 그저 신기할 따름이다. 달랑 두 줄을 가지고 어떻게 그 모든 소리를 다 감당해낼 수 있는지 빤히 보고 있으면서도 믿어지지 않는다.

불어서 소리 내는 것들은 하늘을 닮아서 가뿐히 솟구쳐 올라 흩어진다. 두드려서 소리 내는 것들은 땅을 닮아서 무겁게 깔려 깊이 가라앉거나 튀어 오른다. 줄을 갈아 소리 내는 것들은 사람을 닮아 구차하고 찐득하다. 그것들은 흩어지지도 가라앉지도 못하고 사람 주위를 앵앵거리며 빙빙 돈다. 그래서 함께 소리를 낼 때, 줄을 갈아 소리 내는 것들은 가까이 두고 불어서 소리 내거나 두드려 소리 내는 것들은 멀찍이 둔다. 붓다는 이런 소리의 이치에 말을 담았다.

부처님이 한 사미에게 물었다.
“너는 속가에 있을 적에 무슨 일을 했느냐?”
사미가 대답했다.
“거문고를 즐겨 탔습니다.”
“거문고 줄이 느슨하면 어떻더냐(絃緩如何)?”
“소리가 나지 않습니다(不鳴).”
“줄이 너무 팽팽하면 어떻더냐(絃急如何)?”
“소리가 끊어집니다(聲絶矣).”
“느슨함과 팽팽함이 잘 들어맞으면 
어떻더냐(緩急得中如何)?”
“맑은소리가 고루 퍼집니다(淸音普矣).”
부처님이 말했다.
“도를 배우는 것도 그러하니라.”

『선문염송』 제28칙에 실려 있는 「탄금彈琴」이라는 제목의 공안이다. 이 공안을 처음 봤을 때, 세상에 이렇게 한심한 공안도 있을까 싶었다. 뭔가 거창한 대화가 오가는 것 같고 심오한 의미를 전달하는 것 같지만 별것 없어 보인다. 부처님이 거문고에 비유해서 중도中道 법문을 펼치셨다는 세인들의 설명을 보면 더 그렇다. 과하거나 모자란 것보다 적당한 게 낫다는 얘기를 하려고 이렇게 말을 빙빙 돌린 것일까. 이 공안을 읽고 나서, 그래 뭐든지 과하거나 모자라면 안 되겠구나 하는 교훈을 얻으면 되는 것일까. 

탄금 이야기는 선불교 이전에 『잡아함경』에서부터 나온다. 다른 종류의 아함경은 물론이고 『사십이장경』과 『출요경』 등에도 나온다. 어디를 살펴봐도 중도中道 법문이라는 것 이외에 별다른 해석을 가할 구석이 없어 보인다. 그래도 이처럼 경전에 나오는 교학의 내용이 그대로 선전禪典에 나타나면 일단 머뭇거리며 조심하게 된다. 불립문자不立文字와 교외별전敎外別傳을 중히 여기는 선에서 교학의 교훈적인 내용을 그대로 가져다 썼을 리 없기 때문이다. 격외도리를 지향하는 선이 그리 호락호락했을 리 없다.

탄금을 선의 문맥에서 어떻게 봐야 할지 단서를 찾기는 쉽지 않다. 『선문염송』의 해설서인 『염송설화』를 살펴봐도 별다른 게 없다. 양극단에 빠지지 말고 중도를 지키라는 설명에서 별로 벗어나지 않는다. 원문에 ‘득중得中’이라는 두 글자까지 엄연히 있으니 더욱 다른 생각을 하기 어렵다. 그나마 겨우 비벼볼 만한 구석은 이 공안을 설명하고 있는 지비자知非子의 송頌이다.

느슨하면 소리 나지 않고 팽팽하면 소리가 조급하며
(緩卽無聲急卽促)
종자기가 죽자 백아가 통곡했다지만
(子期云亡伯牙哭)
어찌 줄 없는 한 곡조를 연주하여
(爭似無絃彈一曲)
궁상각치 모든 소리에 미치는 것만 하리오
(宮商角徵諸音足)

지비자는 현에서 이루어지는 소리의 이치를 부인하지 않는다. 느슨하지도 팽팽하지도 않은 현에서 울려 나오는 소리는 백아와 종자기의 지음知音처럼 세상에 없는 소리임을 인정한다. 그러면서도 줄 없는 한 곡조를 가져와 선禪의 자리를 엿보여주고 있다. 줄 없는 한 곡조는 소리 없는 곡조이고 모든 소리에 미치는 곡조이다. 소리 없음과 모든 소리에 미침이 서로 모순되어 보이지만 지극히 사실적인 관계다. 소리가 있다면 그것은 정해진 소리일 것이고, 정해진 소리는 다른 소리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줄 없는 한 곡조는 현을 알맞게 조절해서 도달하게 되는 소리의 지극함이 아니라, 소리 내지 않아 마침내 도달할 수 있는 지극함이다. 소리는 줄 위에서 긁어내거나 쥐어짜 내는 것인지라 소리는 줄의 운명을 끝내 벗어나지 못한다. 또 줄은 세상 속에 있는 것이라 세상의 기운을 따라 당겨지거나 늘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악공은 매번 조율하여 중의 자리를 고쳐 찾아내야 한다.

중의 자리는 본래 없는 자리다. 중의 자리는 본래 없는 자리이기 때문에 오음五音에 모두 미칠 수 있다. 중은 영원히 고쳐 찾아내야 하는 자리다. 「탄금」 공안은 너무 바짝 당기지도 느슨하게 하지도 말고 적당히 해야 한다는 얘기만 하려는 건 아니다. 그것은 움직이지 않는 영원한 가운데 자리를 도모하는 마음을 뒤엎어버린다. 중을 찾으라는 것이 『아함경』 등에 나오는 교훈이라면, 중을 고집하지 말라는 게 「탄금」 공안이 전하려는 뜻이 아닐까 싶다.
동양에서 소리의 이치를 적어 놓은 책 『악경樂經』은 오래전에 사라졌고 그 일부만 『예기禮記』의 한 편으로 겨우 남았다. 옛 악공들은 소리를 어차피 글 속에 담아둘 수는 없다고 여겼을 테고, 그들은 악기로 소리의 지극함을 이루어내는데 전력했을 것이다. 그래서 “오직 악만이 거짓될 수 없다(惟樂者 不可以爲僞)”는 말은 세상의 모든 허위와 가식을 가로질러 내지르는 악공들의 절규처럼 들린다. 소리가 가지런해야 비로소 세상이 가지런해질 수 있다고 그들은 믿었을 것이다.

악樂은 예禮나 법法보다 앞선 세상의 기준이고 질서였다. 소리는 가지런해야 해야 하고 그 가지런함이 바로 하늘과 세상의 이치라는 사실을 옛사람들은 돌에 새겨 지켜내려고 했다. 비바람과 세월을 너끈히 견뎌내기에 돌만 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ㄱ자 모양의 돌 16개를 두 단으로 매단 편경은 소리를 머금은 돌이다. 악기 중에 제작하기 가장 어렵고 이것을 훼손하면 곤장 100대와 유배 3년에 처했다고 『경국대전』에는 전한다. 또 『대전통편』에는 전쟁이 나면 편경을 가장 먼저 숨기라고 적혀있다.

국립국악원 박물관에 걸려 있는 편경을 두드리면 가을 하늘 같은 투명한 소리가 울려 퍼져 나간다. 쇠를 두드리는 소리보다는 부드럽고 축축하며 나무나 가죽을 두드리는 소리보다는 가볍고 말라 있다. 편경의 옥돌은 야물되 소리를 튕겨내지 않고 부드럽되 소리를 빨아들이지 않는다. 편경 앞에 설 때마다 나는, 돌에라도 새겨 넣어 소리의 지극함을 지켜내려는 간절함과 그 지극한 자리는 본래 없는 자리라는 절박함 사이에서 늘 곤혹스럽다.          

                                                                                                                                                                     

박재현
서울대학교 철학박사. 저술로 한국 근대불교의 타자들』, 깨달음의 신화』, 만해, 그날들』 등이 있고, 「한국불교의 간화선 전통과 정통성 형성에 관한 연구」 외에 다수의 논문이 있다. 현재 부산 동명대학교 불교문화콘텐츠학과에서 겨우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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