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이슨 페리는 영국의 국보” - 《보그》
“현대 남성성이라는 우스운 집을 안내하는 위트 넘치는 가이드다.” - 《뉴욕 타임스》
“그레이슨이 왕이 된다면 영국은 얼마나 반짝거릴까!” - 케이틀린 모란(페미니스트 저술가)
영국 최고 권위의 현대미술상인 터너 상 수상,
‘영국 문화에 강력한 영향력을 끼치는 100인’에 선정된 아티스트이자
드레스 입는 남자인 그레이슨 페리 .
현대 남성을 샅샅이 해부하다.
어쩌다 남자들은 이렇게 되었을까
요즘 뉴스를 보면 남자들을 위한 특별 구역이 마련된 것 같은 인상을 받는다. 그곳을 채우는 건 성폭력 이력이 드러나 줄줄이 추락하는 남자들. 그 모습을 보며 한편으로는 정당한 분노가 일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런 의문들이 꼬리를 문다. ‘어쩌다 남자들은 이렇게 되었을까? 왜 이렇게 성에 목을 맬까? 이토록 하나같이 폭력적인 건 왜일까…’
남자가 들려주는 남자 이야기
여기 어떤 아저씨가 있다. 1960년생이니 올해 58세. 도자기와 태피스트리 작업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아티스트로서, 영국 최고의 현대미술상인 터너 상을 수상했고 예술로 영국의 명예를 드높인 공로를 인정받아 대영제국훈장까지 받았다. 결혼해서 딸을 두었고 평소에는 테스토스테론을 뿜으며 달리는 자전거 라이더지만, 여성의 드레스를 입고 화려하게 치장하고서 여기저기 모습을 드러내는 크로스드레서이기도 하다. 바로 그레이슨 페리다.
어릴 적, 계부가 집에 들어온 뒤로 계속된 폭력에 시달린 그는 갖고 놀던 테디 베어 인형 ‘앨런 미즐스’에게 이상적인 남성상을 투사한다. 동시에 상상 속의 도피처로 여성 옷 탐닉에 빠진다. 현실 속의 남성 권력인 계부와 부드럽고 애정 넘치는 환상 속의 앨런 미즐스 사이, 남자다운 방식(육체적 힘, 폭력, 강인함)으로 계부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와 여성의 옷을 향한 사랑 사이라는 경계에 서서, 그레이슨 페리는 ‘남자’와 ‘남성성’을 내부자로서 경험하고 외부자의 시선으로 관찰하게 된다.
그는 이 책 《남자는 불편해》에서 열두 살 때부터 쉰일곱 살까지 45년 동안 남자로 살아오면서 경험한 것들, 그리고 남자를 관찰해서 알게 된 것들을 시종일관 시니컬하면서도 유쾌하고 진지한 어조로 들려준다.
남자가 자꾸 덜커덕거리는 이유? 너무 올드하기 때문
그레이슨 페리는 이 책에서 자기만의 두 가지 용어를 선보인다. 바로 ‘디폴트 맨’과 ‘올드스쿨 맨’이다.
디폴트 맨이란 ‘남자는 이래야만 해.’라고 사회적으로 정해진 기준으로서의 남성성이다. 디폴트 맨은 남성 개개인의 내면에 근엄하게 앉아 있는 ‘보스’로서 끊임없이 통제하고 명령을 내린다. ‘울지 마라. 감정을 드러내지 마라. (특히 육체적으로) 강해져서 힘으로 상대를 제압해라. 독립한 삶을 살아야 한다. 돈과 명예는 목숨과도 바꿀 수 없다.’ 같은 밧줄로 남자를 꽁꽁 묶는다. 또한 ‘여자에게 지면 안 되고, 여자와는 친구를 할 수 없으며, 여자는 남자를 위로해주는 존재’라는 룰을 지키도록 압박하는데, 그 결과 남성의 시선은 여성을 ‘섹스 파트너 혹은 엄마’로만 바라보도록 왜곡된다.
올드스쿨 맨은 “옛날이 좋았어. 요새는 남자다움을 도통 발산할 수 없잖아.” 같은 내뱉으면서 향수에 젖어 과거로의 회귀를 꿈꾸는 현실 속의 남자다. 그는 변화에 저항한다(기득권을 누리며 살고 있는데 굳이 바꿀 필요가 없지 않은가). 또 그는 야생 혹은 전쟁에서의 생존 기술이 현대에도 여전히 필요하다고 믿는다. 사실 현대 도시인에게 정말로 필요한 기술은 좋은 집을 값싸게 구하는 방법이나, 대기하지 않고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는 비법 같은 것인데 말이다. 하지만 올드스쿨 맨은 그런 건 남자가 할 일이 아니라고 잘라버린다.
이와 같은 디폴트 맨과 올드스쿨 맨의 세계에서 남자들은 성장한다. 많은 남자들이 세상의 변화에 뒤처진 채 자꾸 마찰을 일으키는 건, 그런 환경 속에서 너무 고정되고 올드한 선택지들을 내면화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기억하자. 지금은 문명화되었고 평화를 누리는 시기다. 전쟁터에서나 통용될 것들은 제발 선택 리스트에서 삭제하자.
남자의 적은 남자
일부 과격하고 급진적인 ‘여성’ 페미니스트들이 자기들을 공격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남성이 적지 않다. 그들은 페미니스트들이 남성의 현실에 대해 ‘무지’하거나 ‘눈을 감고’ 있다고 비난하며, 남자들이 오히려 ‘역차별’을 당하고 있다고 반격한다.
그런데 여자가 정말 남자의 적일까? 조금만 돌이켜봐도 남자의 진짜 적은 남자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사회가 소수의 특권층 남성에게 유리하도록 짜여 있기 때문이다. 대다수 남성들은 자신들에게 불리하도록 되어 있는 사회 구조를 빤히 알면서도 “식탁에 떨어지는 빵 부스러기를 생각하면서 참아내고” 있다. 그렇게 참는 것이 여성보다 더 유리한 위치를 타고난(페니스를 갖고 있는) 자신에게 더 많은 이득을 준다는 걸 남자들은 거의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그리고 “모든 폭력 범죄의 90퍼센트를 남성이 저지른다.” 사회가 지금처럼 위험하게 된 것은 남자의 탓이 더 크다는 뜻이다. 사실 남자들도 인적 드문 골목에서 다른 남자와 마주치면 흠칫 두려움을 느끼고 경계 태세를 취하지 않는가!
영국식 시니컬한 비판 + 남자를 향한 어쩔 수 없는 연민
많은 남자들은 모르지만 모든 여자는 아는 사실이 있다. 바로 남자와 함께 사는 것은 불편하다는 것. 그런데 사실 남자로 사는 것도 불편하다. 디폴트 맨의 규율과 올드스쿨 맨의 퇴행적 발걸음은 여성뿐 아니라 남성도 못살게 군다.
그레이슨 페리는 시종일관 남자들의 올드한 면면을 영국식 시니컬함으로 비판한다. 하지만 그의 비판에는 남자를 향한 따스한 연민이 깔려 있다. 남자로 산다는 것의 힘겨움을 그 자신이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남성성의 늪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그는 “적응능력이야말로 남성성의 미래를 여는 열쇠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남자들에게 절절하게 제안한다. 제발 새 시대에 맞는 남성으로 적응해서 함께 행복하게 살자고.
“언제나 옳아야 하고 책임지는 역할을 해야 하는 데서 오는, 심장병을 유발하는 스트레스를 떨쳐낼 수 있다는 것, 사람들이 더 평등해지고 그래서 그들 자신에게 별로 간섭하지 않는 세상에서 살아가게 된다는 것, 의상 선택의 폭이 훨씬 더 넓어진다는 것, 심지어 비난이 남들 차지가 된다는 고소한 통쾌함까지 (중략) 이제 더는 디폴트 맨이 아닌 그들이 얻게 될 진정한 혜택은, 그가 누구인지 더 잘 드러나고 감정을 더 잘 인식하고 더 잘 주고받게 되면서 더 좋은 인간관계를 누리게 된다는 점이다. 그것이야말로 진짜 행복이 아니겠는가!”
하지만 그레이슨 페리는 남자들과 남성성에 관해 이야기를 나눌 때 종종 “물고기들을 상대로 물에 관해 이야기하느라 애먹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고 말한다. 남자들이 남자의 세계가 아닌 다른 대안적 세계에 대해서는 상상조차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 남자들을 위해서 그는 책의 마지막에 남자의 미래를 위한 선언문을 실었다. 남자들이여, 지금 당장 자신의 권리들을 당당히 주장하자!
남자의 권리
취약할 권리
약할 권리
틀릴 권리
직관적일 권리
모를 권리
불확실할 권리
유연할 권리
이 모두에 대해 부끄러워하지 않을 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