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초발심자경문』은 출가자의 초심을 굳혀주는 경책
스님들은 출가 후에 입문서로 『초발심자경문』을 배운다. 계율을 지키고 도반과 잘 지내며 수행으로 깨달음에 이르라는 것이 주된 내용. 초등학교 도덕교과서처럼 당연하고 평범한 이야기 위주이다. 출가가 극적이고 강렬한 사건이어서 자경문은 결심을 굳혀주는 경책으로 충분하다. 자경문은 문자로 된 통과의례, 출가하는 초심이 결국 핵심이다. 불립문자이며 마음이 근본이다.
자경문만 숙지·실천해도 평생 중노릇 잘 한다고 한다. 출가 일념이 강한 까닭에 여기에 무언가를 덧붙이면 사족이다. 지침이 느슨해야 알아서 움직이며, 엄격하면 오히려 장애를 준다. 중이 싫으면 절을 떠나면 되는 것이다. 초심보다 더 강하게 회심하기는 쉽지 않다. 앞뒤가 막혔으니 깨달아서 벗어나는 수밖에 없다. 그래서 자경문은 스스로 경계하고 정진할 것을 강조할 뿐이다.
불교는 부처님의 출가 초심에서 비롯되었다. 부처님의 초심은 정진과 깨달음으로 이어졌고 열반 시점까지 한결같았다. 이후 수행자들의 발심, 재가자들의 신심이 모여들고 연결되고 퍼져나갔다. 예불문은 이를 서건동진西乾東震 급아해동及我海東으로 표현했다. 자경문은 수행·전법의 절정기인 고려 말에 만들어졌다. 강산이 수십 번 바뀌는 동안 교재로 계속 사용됐다. 유구한 전통이 놀랍기도 하지만, 그만큼 갇히고 고였음을 부인할 수 없다.
자경문은 출가자와 산중생활을 위한 한문 교재이다. 내용은 뛰어나지만 표현이 난해하고 현대사회와의 괴리가 크다. 한 예로 세속 사람을 멀리하고 번거로운 일에 관여하지 말라고 한다. 물론 자경문으로 인해 불교가 출가자 중심으로 고립·정체된 것은 아니다. 변화의 필요를 못 느꼈기에 이제껏 자경문을 유지했다고 해야겠다. 첫 입문서가 출가자의 생각·행동을 상당 부분 규정한다. 자경문을 고수하는 한, 불교의 변화와 대사회 소통을 기대하기 어렵다.
자경문은 출가자 입문교재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억지로 출가를 권유하지 않고 학습 이후를 챙기지 않는다. 출가 이전, 깨달음 이후, 보살행, 승가 바깥 등에 대한 고민이 부족하다. 불법을 향한 초심은 출가자의 전유물이 아니다. 미래지향적 그리고 승속일여 관점에서 초심을 일으키고 퍼뜨려야 한다. 초심의 원래 취지에 부합하는, 사회가 요구하는 새로운 자경문을 찬술해야 한다. 세속은 작심삼일에서 보듯이 쉽게 마음 내고 가볍게 포기한다. 초심을 일으키고 지키는 일에 관심이 없으며 또한 게으르다. 한때 인구에 회자되던 ‘처음처럼’은 소주 브랜드로만 기억된다. 처음부터 마음 고쳐먹고 다르게 살아보겠다는 의지가 약했었다. 세속인들의 초심을 불법 광명의 초점에 맞추어야 한다. 불법 광명의 초점을 통과하면 세속인들의 초심이 구체적이 되고 두루 미치고 에너지가 증폭된다.
| 기업하는 마음을 바르게 일으켜서 지켜나가야
삼성 창업자 이병철 회장은 28세에 사업을 시작해 49년간 기업가 외길을 걸었다. 부처님이 출가한 나이, 교화를 펼친 기간과 비슷하다. 이 회장은 잠들어 있는 자녀들을 보고 가장으로서 책임을 느껴 창업을 결심했다. 이후 식민지, 전쟁, 정변政變, 불황을 이겨냈고 진출하는 업종마다 정상을 차지했다. 이 회장의 초심이 강렬했고 소중하게 지켰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는 평소 꼼꼼했지만 필요할 때는 과감하게 결단을 내렸다. 위기가 닥치면 장고 끝에 신사업에 도전해 기필코 성공시켰다. 유교 소양이 바탕이 되어 세상 읽고 사람 다루는 지혜가 뛰어났다. 불상과 도자기 앞에서 사색했으며 보보시도량(步步是道場, 걸음마다 수행처)을 언급하곤 했다. 일생을 기업에 정진했던 수행자라 할 만하다. 부정적 이미지도 일부 남겼지만, 기업하는 초심이 뛰어났던 인물로 기억될 것이다.
삼성은 지금 내우외환의 어려움에 직면해있다. 1위 기업과 최고 부자는 질시·갈등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잠든 자녀들에게 자극받아 일으켰던 자비의 초심을 되살려야 한다. 자녀에게 하듯이 구성원, 소비자, 생명체를 행복하게 해주는 일이다. 소승에서 대승으로 전환하라는 시대요구에 부응해야 한다. 기업이념인 사업보국(事業報國, 사업을 통한 국가에의 은혜 갚음)을 제대로 실천하는 것이다.
기업가는 어떤 마음으로 사업을 시작할지 깊이 고민해야 한다. 돈을 목적으로 보고 집착하면 사업 자체가 고통이 된다. 인텔 사장은 편집광만이 살아남는다고 역설했다. 편집은 강한 집착이며 왜에 대한 고민이 없다. 기업가는 사업을 왜 하며, 기업이 무엇인가를 놓고 일종의 화두를 들어야 한다. 자신부터 바르게 초심을 내야 종업원, 투자자와 고객을 감동시킬 수 있다.
초심을 유지하는 것이 평상심이다. 신영복 선생은 “산다는 것은 수많은 처음을 만들어가는 것”이라 했다. 초심을 지켜야 개인이 행복하고 기업도 무난하게 돌아간다. 성과를 파도로 여기고 큰 바다의 근본을 다지는 데 힘써야 한다. 회사가 잘 될 때 조심하고 어렵다고 해서 위축되지 말아야 한다. 경영은 연기緣起의 산물이어서 돈오는 불가능하며 점수를 하더라도 실적 개선은 별개이다. 적자·부도 등 고통을 통해 깨달음을 얻는 것을 수행으로 삼아야 한다.
초심의 공유와 혁신이 중요하다. 창업자의 초심이 신입사원 교육으로 전수되어 종업원 행동에 드러난다. 보이지 않게 작용하는 이것을 기업문화라 부른다. 기업문화를 신입사원의 초심과 융합시키면서 계속 진화토록 해야 한다. 기업문화가 건전해야 위기상황에서 분규를 막고 단합의 길을 찾는다. 때때로 조직을 흔들거나 사람을 교체·해고하는 충격 요법으로 초심을 되살리는 것이 필요하다. 기업은 지혜·자비의 보편적 가치를 추구하되 특색 있는 문화로 차별화해야 한다. 비가 대지에 내리면 다양한 꽃이 피어나는 것과 같다.
기업가가 받는 고통과 스트레스는 자리에 따르는 업보이다. 하루하루 버티는 그 자리는 이생의 지옥이다. 기업 세계는 악행이 기본, 징악이 작동하면 그나마 다행, 권선은 예외적이다. 기업가를 지장보살로 보면 어떨까. 일부러 지옥에 들어가고 모든 중생을 구제할 때까지 성불을 미루는 사람. 그래야 기업가의 삶이 의미를 갖고 경영을 보는 관점이 긍정적이 된다. 기업가가 지장보살의 초심을 내면 고통에 부대끼는 악업중생들과 함께 피안으로 나아갈 수 있다.
마지막 남은 오지 중 하나인 라다크에까지 물질문명이 침투하고 있다. 초기에 현지인이 상품을 잘 구매하지 않자, 상인들은 욕망을 자극하는 술책을 썼다. 고립되어 소비를 몰랐던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고 훈습으로 중독을 시켰다. 선의를 표방하는 구글의 마음검색 기술도 이익 추구와 소비 조장에 이용될 가능성이 높다. 기업가가 바른 마음을 내야 주위를 물질 중독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다. 기업가 초심의 작은 작용이 세상을 지옥 혹은 불국토로 만드는 큰 차이를 만든다.
| 초심들을 자극하고 연결시켜 의미 있는 변화를 생성
불교는 지금 출가에 치중하다가 막다른 길에 갇혔다. 깨달음이 근본이지만 그 실천을 통한 세속 구제에 적극 나서야 한다. 초심이 본질이고 출가는 형식이 아닐까. 출가자는 세속의 텃밭에서 피어나는 꽃. 재가자는 교단을 지탱하는 토양, 재가자의 신심은 영양분이다. 재가불교가 융성해야 출가자가 끊이질 않고 수행도 환희심이 난다. 대도大道는 무문無門, 출가자·재가자가 함께 무문관에 이르는 길은 넓고 막힘이 없어야 한다.
널리 읽히는 불교입문서를 간행하자. 일본 메이지 유신의 정신을 이끌었던 한 권의 책, 후쿠자와 유키치의 『학문을 권함』은 그 당시 300만 부가 팔렸다. 일본이 대외침략으로 지었던 악업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책 한 권이 촉발시킨 초심의 힘을 높이 평가해야겠다. 『불법을 권함』 책을 펴내 역사를 만들어갈 이가 어디 없는가. 책은 법 보시, 세상을 바꾸는 것은 진정한 보살행이다.
세속인이 불법에 초심을 내도록 사부대중이 힘을 모아야겠다. 법회 참석, 선방 동참, 단기 출가를 일상으로 만들어야 한다. 동남아처럼 출가체험을 제도화·의무화하기는 어렵겠지만, 전문가와 프로그램에 대한 투자를 늘려야 한다. 출가를 흉내 내는 템플스테이 이전에 몸으로 부딪치며 하심하는 행자학교를 운영해보자. 회사원들이 텃밭 가꾸고 밥 짓고 청소하면서 행자의 마음을 닦도록 해야 한다.
마라톤 대회의 출발선은 대단히 흥분되는 장면이다. 카운트다운 열기가 고조되다가 신호가 울리면 한마음으로 첫걸음을 내딛는다. 아마추어 대회일수록 기록보다 완주, 아니 참가 자체를 중시한다. 자경문은 불법을 주제로 하는 마라톤 대회의 참가증이다. 깨달음을 기록으로 보면 욕심이 따라붙는다. 일생을 정진하며 완주하는데 큰 의미가 있다. 초심은 미래를 창조하는 출발선이자 그 순간 완성되는 결승선이다. 초보자는 행동이 서툰 사람, 초심자는 소중한 마음을 먹은 가능성의 사람이다. 초보와 초심, 마음으로 보면 그 차이가 드러난다. 불교는 부처님 초심에서 출발해서 먼 길을 걸어왔다. 이제 세속과 함께 다시 그 초심을 일으켜야 한다.
이언오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KAIST에서 경영학 박사를 받았다. 삼성경제연구소 전무와 부산발전연구원장을 지냈으며, 지금은 바른경영연구소를 이끌고 있다. 대학 때부터 불교를 공부하였으며, 불교와 경영을 오랫동안 연구하면서, 불교와 경영의 접목을 모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