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작·역자 | 김삼웅 | 정가 | 18,000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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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일 | 2018-02-22 | 분야 | 한국사 |
책정보 |
304쪽|판형: 152×220mm |
한 점 삿됨 없이 자유롭게 살다 간
한국의 풍류 인물 20인 이야기
한국 역사에서 거침없는 당당한 태도로 한세상을 자유롭게 살다 간 풍류 인물 20인의 이야기이다. 그들의 삶과 정신세계를 통해 우리 고유의 풍류 사상의 맥을 짚어냈다.
풍류 사상이란 법이나 제도, 세간의 평가를 초탈하여 삿됨이 없이 살면서도 천하의 대도를 위해 몸을 던지고 자유로움을 추구하는 정신과 생활 태도를 말한다. 우리 민족의 정신사에서 매우 중요한 영역을 차지하고 있는 풍류 사상은 근대 이전까지 한민족 고유의 흥과 정취, 정신세계에서 지대한 의의를 지니고 있다. 이 책은 풍류 사상이 우리 민족의 역사를 살찌우는 데 어떤 역할을 했는지 보여준다.
현대사 인물 평전 작업에서 독보적 영역을 구축한 저자는 이 책에서 인물사 천착의 범위를 확장하여 지금은 자취가 희미해진 한국의 풍류 정신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저자는 자유로운 영혼으로 한 점 삿됨 없이 살다 간 풍류 인물들의 생애를 통해 21세기 우리의 속물화된 모습을 비춰보고자 이 책을 썼다고 한다.
김삼웅
독립운동사 및 친일반민족사 연구가로, 현재 신흥무관학교 기념사업회 공동 대표를 맡고 있다. 《대한매일신보》(현 《서울신문》) 주필을 거쳐 성균관대학교에서 정치문화론을 가르쳤으며, 4년여 동안 독립기념관장을 지냈다.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 위원, 제주4·3사건 희생자 진상규명 및 명예회복위원회 위원, 백암학술원 운영위원 등을 역임하고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 위원, 친일파재산 환수위원회 자문위원 등을 맡아 바른 역사 찾기에 부단히 노력해왔다.역사·언론 바로잡기와 민주화·통일 운동에 큰 관심을 두고 독립운동가와 민주화운동에 헌신한 인물을 중심으로 평전 작업에 매진하는 등 이 분야의 많은 저서를 집필했다.
주요 저서로는 『곡필로 본 해방 50년』, 『한국필화사』, 『금서』, 『위서』, 『백범 김구 평전』, 『을사늑약 1905 그 끝나지 않은 백 년』, 『단채 신채호 평전』, 『만해 한용운 평전』, 『안중근 평전』, 『이회영 평전』, 『노무현 평전』, 『김대중 평전』, 『안창호 평전』, 『빨치산대장 홍범도 평전』, 『박현채 평전』, 『김근태 평전』, 『독부 이승만 평전』, 『안두희, 그 죄를 어찌할까』, 『10대와 통하는 독립운동가 이야기』, 『몽양 여운형 평전』, 『우사 김규식 평전』, 『위당 정인보 평전』, 『김영삼 평전』, 『보재 이상설 평전』, 『의암 손병희 평전』, 『조소앙 평전』, 『백암 박은식 평전』, 『박정희 평전』, 『신영복 평전』 등이 있다.
서문
한국 풍류 사상의 맥락
새벽을 연 무애인(無碍人) 원효
불의의 시대에 의를 지킨 김시습
절개와 의기를 살린 문인 남효온
송도삼절의 고고한 선비 서경덕
태백북두와 같은 도학자 퇴계 이황
경(敬)과 의(義)의 선비 남명 조식
흙담집 민중의 벗 이지함
조선의 삼당시인(三唐詩人) 이달
호방하고 주체성이 강한 명문장가 임제
혁명을 꿈꾼 쾌남아 허균
유랑벽이 심한 괴짜 화가 칠칠이 최북
태양을 거부한 방랑 시인 김삿갓
지행일치의 독립운동가 이회영
파계가 두렵지 않은 진짜 승려 한용운
화초 ‧ 시조 ‧ 강호와 함께한 이병기
조선의 얼을 지킨 선비 정인보
저항과 씨알 정신의 야인(野人) 함석헌
법의(法衣) 속에 성의(聖衣) 입은 사도법관 김홍섭
벽을 넘어선 자유로운 영혼 문익환
생명사상의 새 길을 연 장일순
저자는 풍류, 풍류인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유교의 본질은 이욕을 버리고 인간 본성을 살리는 것, 불교의 본질은 아집에서 벗어나 불심을 찾는 것, 도교의 본질은 인간의 허위를 버리고 무위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풍류는 이와 같은 삼교를 접화군생(接化群生)한 인간의 가장 원초적이고 본질적인 사고라 할 수 있으며, 풍류인은 이에 따른 삶을 살고자 하는 사람이다.”
저자는 한국의 대표적인 풍류 인물 20인을 선정하는 데 나름의 원칙을 세웠다. 아무리 풍류 정신으로 풍류적인 삶을 살았다 해도 대의와 정도를 벗어난 인물은 배제했다. ‘중국 정신’이 깊게 배어 있거나 입신출세와 보신주의적 처신, 친일 행적이나 군사독재에 협력한 인물 역시 배제했다.
이 책에서는 자유와 철학과 시문과 신념을 갖고 화이부동(和而不同)의 자세로 역사에 위대한 족적을 남긴 걸출한 인물 20인을 골랐다. 퇴계 이황처럼 조선시대 최고의 관직에 올랐으면서도 학문에서의 주체성이 분명하고 소박한 일상생활을 영위한 인물부터, 생육신의 한 사람으로 불의가 횡행하는 시대에 의를 실천한 김시습, 서얼 출신이라는 제도의 얽매임 때문에 스스로 일탈의 삶을 택한 시인 이달, 자신이 창조해낸 소설 속 주인공 홍길동 못지않게 쾌남아로서 일생을 살아간 허균, 권세가의 그림 요구에 자기의 눈을 찔러 외눈박이 화가가 된 칠칠이 최북, 일제 치하 독립운동의 간난신고 속에서도 풍류를 잊지 않았던 이회영, 법의(法衣) 속에 성의(聖衣) 입은 사도법관으로 법조계의 전설적인 인물 김홍섭, 목사이기 이전에 문인이었고 견결한 통일운동가이기 이전에 멋을 아는 인물이었던 문익환, 반독재 투쟁의 와중에도 생명사상의 새 길을 모색한 장일순에 이르기까지 시대의 고금을 넘나드는 인물들이다.
이들은 꿈꾸는 족속,
현실에선 패배했지만 불멸의 이름을 얻었다
“이들은 유별난 꿈과 정열의 소유자이고, 출중한 능력을 가진 자이며, 무엇과도 바꾸기 어려운 낭만과 정서를 간직한 사람이다. 세속의 금줄(禁制)을 벗어던진 탈선자이고, 고린내 나는 상투 속의 권위에 단발령을 내리는 자이고, 사대주의적 학문에 찌든 먹통들을 깨부수는 의병이고, 곡필과 궤변으로 이름을 날리는 논객을 무찌르는 촌철(寸鐵)의 게릴라 대장이다.”
이들은 주로 중앙에서 변방으로, 주류에서 사이드로, 그러나 역사와 시대와 미래를 넘나드는 초인으로 살다 간 자유로운 영혼들이다. 이들의 불꽃 같은 삶과 좌절의 잿더미에 남은 불씨는 우리에게 여유와 온기를 안겨준다.
단재 신채호는 우리가 잃어버린 가장 소중한 가치가 풍류 정신이라고 개탄했다고 한다. 현대인에게 풍류라면 마치 멋 부리고 술 잘 마시고 돈 잘 쓰고 바람기 있는 사람으로 인식될 만큼 그 본질과 정신이 함께 훼손되었다. 가족도 돌보지 않은 채 음주나 즐기며 주유천하를 일삼는 사람이 풍류객의 본령은 아니다. 풍류객이란, 직무에 충실하면서도 세속적 탐욕에 빠지지 않고 정신적으로 자유로우며 화이부동하는 자세, 나름의 신념과 철학을 갖고 세상의 악과 싸우며 사는 사람이다. 저자는 말한다.
“『노자(老子)』에 유수부쟁선(流水不爭先)이란 말이 있다. 흐르는 물은 결코 선두를 다투지 않는다는 것, 치열한 경쟁 체제와 약육강식 구조 속에서 조금 느리더라도 인간 본연의 삶을 찾고 정도를 걸으며 당당하게 사는 것, 이것이 현대인의 풍류 정신이 아닐까 싶다.”
이들은 체제보다 반체제, 정통보다 이단, 합리보다 파격, 안일보다 고뇌, 안주보다 방랑, 관습보다 탈속이 주특기다. 신념을 위해 제 목숨을 하찮게 여기고, 권력의 유혹에는 허유(許由)나 소부(巢父)처럼 귀를 씻으며, 결단코 재물이나 체면에 급급하지 않는다. 고루한 인습이나 관습에 얽매이지 않고 예속의 끈을 잘라버리며 정해진 틀이나 규격에 끼워 넣으려고 하는 획일주의를 거부한다. 거부할 뿐만 아니라 틀을 바꾸고자 한다. 이들은 유별난 꿈과 정열의 소유자이고 출중한 능력을 가진 자이며 무엇과도 바꾸기 어려운 낭만과 정서를 간직한 사람이다. 세속의 금줄(禁制)을 벗어던진 탈선자이고, 고린내 나는 상투 속의 권위에 단발령을 내리는 자이고, 사대주의적 학문에 찌든 먹통들을 깨부수는 의병이고, 곡필과 궤변으로 이름을 날리는 논객을 무찌르는 촌철(寸鐵)의 게릴라 대장이다. _19쪽
사육신이 처형되었을 때의 일이다. 세조가 볼 때, 단종 복위를 꾀했던 사육신은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대역 죄인이었다. 결국 그들은 처참하게 처형당하고, 삼족이 모두 죽임을 당하는 끔찍한 화를 입었다. 그들의 시신은 갈기갈기 찢겨진 채 노량진 남쪽 새남터에 버려졌다. 갈까마귀가 하늘을 날아오르고 들쥐가 시신을 뜯어 먹는 것 외에 그곳은 사람의 그림자도 얼씬거릴 수 없었다. 후환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버려진 충신들의 시신을 주워 모아서 하나씩 등에 지고 강을 건너는 사람이 있었다. 서릿발 치는 무도의 난세에 그런 일을 할 사람이 누구이겠는가. 바로 김시습이었다. 그는 이렇게 혼자서 사육신을 장사지냈다. _46쪽
어떤 권세가가 최북의 그림을 얻고자 그의 누옥을 찾아왔다. 이자는 자신의 권력을 믿고 반강제로 그림을 그리도록 독촉했으나 응하지 않자 협박으로 나왔다. 자존심이 강한 화가는 결코 비굴하지 않았다. “남이 나를 손대기 전에 내가 나를 손대야겠다.”, “사람이 나를 배반하는 것이 아니라 내 눈이 나를 배반하는구나.” 하며 손가락으로 눈 하나를 찔러 멀게 해버렸다. “밖으로 향할 수 없는 분노가 안으로 되돌려진 것이다.” (최기숙, 『문 밖을 나서니 갈 곳이 없구나』) 이후 그는 외눈박이 화가로 살았다. _164쪽
가혹한 운명이었을까. 공교롭게도 백일장의 시제(詩題)가 김병연의 생애를 송두리째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그가 가차 없이 매도한 김익순이 바로 자신의 친할아버지였던 것이다. 그는 이 사실을 집에 돌아와 어머니에게서 듣고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 그리하여 하늘을 쳐다볼 수 없는 천형의 죄인으로 스스로를 단죄하고 방랑의 길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김병연은 천륜을 어긴 불효막심한 죄인으로 자처하면서 처자식을 남겨둔 채 집을 나섰다. 조상을 욕한 후손이니 상주보다 더 큰 죄인으로서 하늘을 바로 볼 수 없다며 삿갓을 쓰고 출가하기에 이른 것이다. _177쪽
난은 예부터 고고한 군자의 상징임과 더불어 불의한 세상에 한과 울분을 쏟아내는 예술적 표현이자 상징을 함께한다. 파락호(집안의 재산을 몽땅 털어먹은 난봉꾼) 시절 석파 이하응의 석파란, 명성 황후 친정 조카 민영익이 망명 시절에 그린 땅에 뿌리를 내리지 않는다는 노근초(露根草), 추사 김정희의 제주 유배 시절에 그린 풍란, 그리고 우당의 톈진과 베이징 시절 난이 대표적으로 꼽힌다. 흔히 난초를 그린다고 하지 않고 ‘친다’고 하는 것은 분노·저항·달관의 특성을 보인다. ‘떡메로 내리친다’처럼 격렬한 동작을 나타내는 말이다. 난초를 그리면서 솟구치는 분노와 저항을 분수처럼 밖으로 쏟아내는 행위 ― 망명객, 유배객이 국화나 매화 대신 난을 택한 데에는 ‘치는’ 데 의미가 있다. 우당이 특히 그러했다. _199쪽
문익환의 생애가 평범한 삶에서 비범한 생으로 바뀐 것은 1975년 8월 광복군 출신으로 《사상계》를 발행하던 친구 장준하가 유신 치하에서 의문사를 당한 것을 지켜보면서였다. 장준하는 군사독재 정권과 치열하게 싸우다 ‘실족사’를 가장, 암살되었다. 이제부터는 장준하의 못다 한 몫까지 대변하겠다는 신념에서 57세라는 늦깎이로 반독재 민주화 운동에 참여한 것이다. _27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