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살 은유는 투명한 일회용 컵에 쌀을 담았다. 조그만 손으로 꼼지락꼼지락 색종이를 오려 컵을 꾸미고, 색종이에 발원도 적었다. 서울 은평구 수국사 어린이법회에서 매월 진행하는 공양미 공양 시간. 어린이들이 조막손으로 공양미를 올린다. 8살 은유가 올린 공양미에는 어떤 발원이 담겼을까? 서울 은평구 수국사 어린이법회를 찾았다.
| 지유 스님과 함께 하는 수국사 어린이법회
“스님! 스님! 이것 보세요. 스님 오시기 전에 만들었어요.”
서울 수국사(주지 호산 스님) 일주문 밖부터 아이들 목소리가 까르르 들려왔다. 일요일 오전 10시. 어린이법회가 열리는 문화센터 2층 법당에는 아이들이 공을 발로 차며 뛰어놀고 있었다. 어린이법회는 매주 일요일 10시 30분에 시작하지만, 10시만 되면 도량이 들썩인다. 비가 오지 않았으면 절 마당에서 뛰어놀았을 거란다. 서너 명 아이들은 법당에 엎드려 그림을 그렸고, 12살 채연이는 체조선수처럼 유연하게 손 짚고 옆 돌기를 했다. 6살부터 6학년까지. 열 명 남짓 모인 아이들은 큰소리로 웃고 떠들었다. 그것도 잠시다. 지도법사 지유 스님이 법당에 들어오자 아이들은 “스님! 스님!” 하고는 스님을 향해 직진했다. 스님을 중심으로 모여든 아이들은 한 주 동안 있었던 일들을 종달새처럼 이야기했다.
“아이들에게 법회가 휴식의 자리가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공부는 집, 학교에서도 많이 하니까요. 저희는 그저 아이들이 건강히 뛰어다니며 이 도량에서 부처님 법으로 인연 짓는 걸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아이들이 언제나 즐거운 마음으로 자유롭게 보내다 갈 수 있기를 바란다는 지유 스님은 아이들이 마음껏 놀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구상한다고 했다. 매주 번갈아가며 공양미 공양부터 실내프로그램, 체험학습, 사찰답사까지 새롭게 운영한다.
“자, 법회 시작하겠습니다.” 스님이 목탁을 내리자, 아이들은 언제 떠들었냐는 듯 가지런히 자리를 찾아 섰다. 작고 통통한 손으로 합장하며 삼귀의, 사홍서원을 하고, 보현행원을 노래하는 아이들이다. 맑고 또랑또랑한 노랫소리는 뒤로 갈수록 점점 더 커졌다.
| 부처님 우리 가족 행복하게 해주세요
“자, 오늘은(10월 1일) 부처님께 공양미를 올리는 날이에요. 컵 하나씩 들고, 옆에 계신 포교사님들께 쌀 담는 것을 도와달라고 합시다.”
스님이 컵이 담긴 상자를 들고 오자 아이들은 익숙하게, 일회용 투명 컵을 자기 앞으로 가져왔다. 매월 첫째 주 일요일은 부처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발원문을 쓰고 공양미를 올리는 날이기 때문이다. 공양미 공양은 3년 전 지유 스님이 처음 도입한 프로그램이다. 아이들은 스님이 준비해 온 쌀을 컵에 가득 담고, 색종이를 오려 컵을 꾸미고 발원을 적었다.
“이 도량에 올 수 있는 것은 부처님께, 스님들께, 부모님께 감사한 일이니, 감사한 마음을 담아서 공양을 올려보자고 한 게 시작이었어요. 이제는 집에서 쌀을 가져오는 친구도 있습니다. 부모님 것, 자기 것 두 봉지를 가져오기도 해요. 발원문을 적는데 아이들은 솔직합니다. ‘할머니 나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 가족 건강하게 해주세요.’ 하는 친구도 있고, ‘오빠가 나 꿀밤 때리지 않게 해주세요.’ 하는 발원도 있어요.(웃음)”
스님의 말처럼 아이들은 이렇게 소원을 썼다. ‘우리 가족 건강하고 행복하게 해주세요.’ ‘엄마한테 안 혼나게 해주세요.’ 이런 발원도 있었다. ‘변비 안 걸리게 해주세요.’ ‘부처님께. 제가 제발 자전거를 잘 타게 해주세요.’ 12살 소현이는 “저는 체하지 말라고 빌었어요. 예전에는 공부 잘하게 해달라고 했는데 잘 들어주셨어요. 이번에도 부처님께서 들어주실 거 같아요.” 하고 싱긋 웃었다.
“미래를 이끌어갈 아이들이 법당에 들어왔습니다. 아이들을 위해서 박수도 한 번 칠까요?”
사중에서도 아이들의 공양을 큰 의미로 받아들인다. 아이들이 대웅전에 공양미를 올리러 가면 주지스님이 법문을 마치고 아이들을 앞으로 불러내어 법회의 주인공으로 만들어 준다. 어른들의 박수를 받으며 아이들이 어른법회에서도 중요한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치켜세워 주는 것이다. 때때로는 아이들에게 합창단 보살님의 반주에 맞춰 노래를 불러달라고 부탁하기도 하는데, 그때마다 아이들은 흥이 나서 노래를 부르고 내려온다고 했다.
“절에 나오면 정말 재미있어요. 주말에 집에 있으면 빈둥빈둥하는데, 시간 가는 줄도 모르겠어요. 스님 밥도 진짜 맛있어요. 체험활동 하면서 같이 수영간 것도 너무 좋아요. 중간고사 잘 보게 해달라고 소원지에 썼는데 부처님이 잘 들어 주실 거 같아요. 오늘 할머니가 쌀 싸주셨거든요.”(김채연, 12)
배가 고플 시간이 되자, 아이들은 스님께 “스님, 오늘 밥 뭐 나와요?” 하고 점심 메뉴를 물었다. 사찰음식 교육도 함께 하는 지유 스님이 항상 포교사들과 함께 점심을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스님은 사찰에서 마련한 점심공양도 있지만, 아이들 입맛에 맞는 건강한 음식을 만들어주고 싶어서 매번 식사를 준비한다. 오늘 점심은 신청 메뉴인 치즈스틱과 스파게티. “신난다!” “선생님! 배고파요!!” 하며 계단을 뛰어 내려간 아이들은 공양게로 식사를 시작해 맛있게 먹고, 자신이 먹은 그릇을 설거지했다.
“때로는 아이들과 함께 사찰음식을 만들기도 합니다. 이 친구들이 맛있게 잘 먹을 때 제가 더 고마워요. 다른 사찰 가서 공양할 때는 귓속말로 ‘스님이 해준 밥이 더 맛있어요.’ 하기도 합니다. 그 마음이 정말 예쁘죠.”
학부모들도 아이들이 밝아지고 명랑해졌다고 했다. 정오까지 자던 아이들이 이제는 절에 가려고 일찍 일어나서 자전거를 타고 집을 나선다는 것이다.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도량을 뛰어다니면서 불교를 배웠다. 공양을 마치고 아쉽지만 집에 돌아갈 시간, 두 살 많은 언니 은채와 손을 꼭 잡고 다니던 8살 은유에게 무슨 소원을 썼는지 물었다.
“어, 있잖아요. 저는요, ‘부처님, 우리 가족 행복하게 해주세요.’ 하고 빌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