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만남은 누구에게나 있다. 떠올리면 그저 흐뭇하고, 감사하고, 다행이다 싶은 그런 사람과 만남은 누구에게나 있다. 그 아름다운 추억은 빛나는 보석처럼 소중히 간직되고, 그 강렬한 인상은 돌에 새겨진 문양처럼 평생 지워지지 않는다.
“그분이 아니었다면….”
운명의 지침을 돌려놓은 그런 기억을 떠올릴 때면, 기적처럼 다가왔던 한순간에 가슴 한편을 쓸어내리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게 된다.
붓다의 삶은 실로 만남의 연속이었다. 한 사람이라도 더 만나기 위해 붓다는 평생 걸음을 멈추지 않았고, 한 사람이라도 더 깨우치기 위해 붓다는 평생 입을 닫지 않았다. 그래서 경전은 그 수많은 사람들과 나눈 이야기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
그 수많은 사람들에게 붓다는 분명 지워지지 않는 ‘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붓다는 어떠했을까? 붓다에게도 그 수많은 사람 하나하나가 모두 지워지지 않는 ‘한 사람’이었을까? 물론 만 중생을 당신의 외아들처럼 여기셨던 분이니, 붓다에게 소중하지 않은 제자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굳이 꼽아보라고 붓다께 강권한다면, 붓다께서는 아마 그 ‘한 사람’을 ‘가섭’이라 칭하실 것이다. 이런 억지 주장을 가능케 하는 이야기가 『잡아함』 권41 제1,142경에 나온다.
세존 말년에 있었던 사건으로 추측되는 경전의 이야기를 조금 각색해 보면 다음과 같다.
언제가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머물고 계셨다.
그때 존자 마하가섭이 사위국의 어느 아란야의 좌선처에서 머물다가 낡은 누더기를 걸치고 부처님이 계신 곳으로 찾아왔다. 당시 세존께서는 수없이 많은 대중에게 에워싸여 설법하고 계셨다.
그때 여러 비구들이 멀리서 찾아온 마하가섭을 보았다. 마하가섭은 헝클어진 긴 머리카락에 수염도 깎지 않았고, 게다가 때가 꼬질꼬질한 낡은 누더기를 걸친 모습이었다. 비구들은 경멸의 눈빛으로 수군거렸다.
“저 사람은 누구야? 옷이 너무 초라하잖아! 차림새도 제대로 갖추지 않고 대강 걸치고 왔구먼.”
그때 세존께서 당신이 앉아 계시던 자리의 반을 비우면서 말씀하셨다.
“잘 왔구나! 가섭이여, 여기 앉아라.”
그 자리에 모여 있던 비구들은 다들 깜짝 놀랐다. 세존께 다가간 마하가섭은 공손히 합장하고 감격스러운 표정으로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당신은 저의 스승이시고, 저는 당신의 제자입니다.”
부처님은 환한 웃음을 보이며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그럼, 그럼. 나는 너의 스승이고, 너는 나의 제자지.”
붓다의 수많은 제자 가운데 가장 신비로운 인물은 마하가섭이다.
그는 붓다 말년에 혜성처럼 교단에 등장하여 장로로 대접받고, 부처님 사후에는 교단을 이끄는 수장이 되었던 인물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붓다에게는 아나율과 아난 등 수십 년 동안 곁을 떠나지 않았던 제자가 수없이 많았다. 그 많은 사람들을 뒤로하고 마하가섭이 교단의 중심이 되었던 까닭이 무엇일까? 아마 붓다가 그에게 평생 지워지지 않는 특별한 사람이고, 그 역시 붓다에게 평생 지워지지 않는 특별한 사람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의 특별한 만남을 알기 위해서는 라자가하에서 사리불과 목련을 제도하고 왕성한 교화활동을 막 시작하던 붓다의 젊은 시절로 돌아가야 한다. 『잡아함』 권41 제1,144경과 『별역잡아함』 제119경에서 마하가섭은 붓다와의 만남을 회상하며 아난에게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존자 마하가섭과 존자 아난이 왕사성 기사굴산에 머물고 있었는데, 세존께서 열반하신 지 오래지 않은 때였다.(중략) 존자 마하가섭이 아난에게 말하였다.
“출가한 뒤로 나에게 다른 스승은 있을 수 없었으니, 오직 여래 응공 등정각만이 나의 스승이셨다. 나는 부유한 집안의 자손이었다. 하지만 속세의 삶이 태어남 늙음 병듦 죽음 근심 슬픔 번민 괴로움으로 점철된 것을 생각하고는 평생 청정한 삶을 살다가 죽고 싶었다. 그래서 수염과 머리를 깎고, 비싼 옷감을 일부러 조각내 가사를 만들어 입고 집을 나섰다. 그리고 왕사성의 나라那羅 마을을 지나다가 다자탑多子塔 앞에서 ‘한 사람’을 만났다. 단정히 앉은 그의 모습은 황금의 산처럼 빛났고, 그의 얼굴에는 평온함이 가득하였다. 그 모습을 보고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저분이 바로 나의 스승이다. 저분이 세존이시고, 저분이 아라한이며, 저분이 등정각이시다.”
오랜 세월 마음속에 그리던 성자를 만난 나는 그분께 다가가 지극한 마음으로 합장 예배하고 조용히 말씀드렸다.
“당신은 저의 스승이시고, 저는 당신의 제자입니다.”
가볍게 눈을 뜬 그분은 한참이나 나를 바라 보다가 미소 지으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맞다. 나는 너의 스승이고, 너는 나의 제자다.”
“저는 까삘라 수마나데위의 아들, 가섭 종족의 삡빨리입니다.”
“가섭이여, 그대의 마음은 진실하고 깨끗하구나. 만약 알지 못하면서 안다고 말하고, 보지 못했으면서 보았다고 말하고, 아라한이 아니면서 아라한이라 말하고, 등정각이 아니면서 등정각이라 말하는 자가 그대처럼 진실한 마음을 가진 사람의 예배를 받는다면 그의 몸은 일곱 조각으로 부서질 것이다. 가섭이여, 나는 지금 알았기 때문에 안다고 말하고, 보았기 때문에 본다고 말하며, 진실로 아라한이기 때문에 아라한이라고 말하고, 진실로 등정각이기 때문에 등정각이라고 말한다.”
그분께서는 “5온蘊이 생기고 사라짐과 6촉입처觸入處가 쌓이고 사라짐을 바르게 관찰하고, 4염처念處를 바르게 생각하고, 7각분覺分을 닦고, 8해탈解脫을 닦아 몸으로 증득해야 한다. 자신의 몸에 대한 집착을 단 한 번도 끊어본 적이 없음을 항상 상기하고, 스승과 큰 덕을 갖춘 청정한 수행자들에게 항상 부끄러워해야 한다.”고 말씀해 주셨다.
스승께서는 그렇게 나에게 진리의 길을 일러주고 기쁨을 주시고는 곧 자리에서 일어나 떠나가셨다. 나는 스승을 떠나보낼 수 없었다. 그래서 그 뒤를 따라 그분이 머물던 숲으로 따라 들어갔다. 스승의 발걸음이 숲속 어느 나무 아래에 멈추었을 때, 나는 얼른 가사를 네 겹으로 접어 자리를 깔고 스승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이곳에 앉으십시오.”
나의 마음을 아셨는지, 스승께서는 미소를 보이며 기꺼이 그 자리에 앉아주셨다. 그리고 손으로 가사자락을 매만지며 말씀하셨다.
“천이 참 곱고 부드럽구나.”
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부디 그 옷을 받아주소서.”
그러자 스승께서는 장난기 가득한 웃음을 보이며 내게 말씀하셨다.
“그대가 내 누더기를 받아준다면 내가 그대의 가사를 받으리라.”
스승께서는 당신의 누더기를 내게 주셨고, 차근차근 진리의 길로 인도하셨다. 그렇게 스승과 함께 8일 동안 숲에 머물며 나는 모든 법을 배웠고, 9일 만에 번뇌를 초월하여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는 경지에 이르렀다.
그랬다. 가섭에게 붓다는 운명의 지침을 돌려놓은 특별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가섭은 많은 이들의 눈총을 아랑곳하지 않고 그 낡은 누더기를 평생 걸쳤으며, 수십 년 만에 만난 붓다의 발아래 기꺼이 머리를 숙이면서 “당신은 나의 스승이십니다.”라고 감격에 겨웠던 것이다.
그랬다. 붓다에게 가섭은 옷을 바꿔 입을 만큼 격이 없는 특별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붓다는 초라한 행색으로 수십 년 만에 찾아온 사람을 “그대는 나의 제자다.”며 두 팔을 벌려 환영하고, 에워싼 수많은 이들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은 채 선뜻 자리의 반을 내어주었던 것이다.
세월의 강물에 휩쓸려가지 않는 이런 특별한 순간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평생에 단 한 번, 단 한 사람쯤은 말이다.
성재헌
동국대학교 불교학과를 졸업하고 해군 군종법사를 역임하였으며, 동국대학교 역경원에서 근무하였다. 현재 동국역경위원, 한국불교전서번역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조계종 간행 『부처님의 생애』, 『청소년 불교입문』 집필위원으로 참여하였고, 저서로 『커피와 달마』, 『붓다를 만난 사람들』, 『육바라밀』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