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아 시기에 부르는 이름을 태명이라고 합니다. 제 딸에게도 태명이 있는데 '오고'라고 합니다. '아가야'라고 부르는 것이 너무 상투적인 듯하여 입을 모아 '아가'를 하니까 '오고'가 된 거지요. 내친 김에 한자로도 이름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오고(悟故)'라고 말입니다. 점점 더 속도를 강조하는 시대에 가끔은 한 호흡 길게 가다듬으며 예를 깨닫고자 하는 노력도 필요하지 않겠나 싶어 이름에 주문을 좀 걸었던 겁니다. 짓는 김에 영문자로도 만들어 놨습니다. ‘Ohgo’라구요. 한자와 영자를 합해서 생각할 때는, 'Oh! Go!'할 바엔 연어가 그랬던 것처럼 본연의 것을 찾아가는 회귀여행을 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뜬금없이 딸의 이름을 꺼낸 것은 ‘오(悟)’와 ‘고(故)’를 설명하고자 함입니다. ‘깨닫다’는 뜻의 ‘오(悟)’와 ‘옛날, 까닭’이란 뜻의 ‘고(故)’는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있습니다. ‘계집에 대하여’를 이야기 할 때처럼, ‘오(悟)’와 ‘고(故)’라는 글자를 파자하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두 글자는 중요한 대비를 이루고 있는데, 이들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위주로 보면 이렇습니다.
우선 수가 있습니다. 바로 오(五)와 십(十)인데요. 이 오(五)와 십(十)은 수의 이치를 다루는 수리오행(數理五行) 이론에서는 토(土)에 해당합니다. 아시는 분들껜 당연한 말이겠지만, 오행은 목화토금수(木火土金水)라는 다섯 기운을 일컫는데, 이중 목화금수의 흐름이 원활하게 이뤄질 수 있는 바탕이 되는 기운이 바로 토(土)입니다. 비유하자면, 목화금수란 네 자식의 어머니가 토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러한 토의 기운을 수리적으로 볼 때는 오(五)와 십(十)이 됩니다. 더 자세한 설명이 필요하겠으나, 오늘은 우선 오와 십에 대해서 간략하게만 언급하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오(五)는 천지간에 일어나는 모든 교류를 뜻합니다. 십(十)은 전우주로 모두 열려있는 기운입니다. 우주 자체라고 할 수도 있겠죠. 이러한 토(土)의 대표적인 성격을 보여주는 수 중 오(五)는 오(悟)에, 십(十)은 고(故)에 담겨있게 됩니다.
또한 두 글자 모두 '口'가 있습니다. 제가 모든 한자를 살펴보진 않았습니다만, 대체로 아래쪽에 '口'가 있는 것은 바로 위에 있는 글자를 과정삼아 만들어낸 가장 적절한 결과를 뜻하게 됩니다. 예컨대, 선(善)은 동서남북 혹은 목화금수 하나의 방면으로만 고집하는 것들을 하나로 모아모아 만들어진 결과라는 뜻이 됩니다. 즉, ‘선하다’는 것은 남녀노소 누가 봐도 '그건 그렇지', 부귀빈천 누가 봐도 '그건 그렇지', 정치 경제 과학 종교 어떤 종사자들이 봐도 '그건 그렇지' 라는 뜻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이를 오(吾)와 고(古)에도 적용할 수 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오(吾)는 천지간에 일어나는 모든 교류로 만들어진 적절한 결과물을 뜻합니다. 그것이 바로 '나'라는 거죠. 또한 고(古)는 전우주로 모두 열려있는 기운으로 만들어진 적절한 결과물을 뜻합니다. 그것이 바로 '예'라 하겠습니다.
여기서 고(古)는 좀더 부연설명이 필요합니다. 고(古)를 단순히 옛날로만 보는 건 뭔가 부족합니다.‘과거 현재 미래에 걸쳐 한 순간도 빠짐없이 우주에 열려진 기운’이 십(十)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고(古)는 '예전에도 그러했고 지금도 그러하고 앞으로도 그러할 고'자로 봐야 합니다. 이런 면에서는 우리말로 좋은 단어가 개인적으로는 '얼'이라고 생각합니다. 즉 '얼 고'로 볼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이제 오(悟)와 고(故)를 설명해도 될 것 같습니다.
오(悟)가 표현하고자 했던 깨달음은 바로 ‘천지간에 일어나는 모든 교류로 만들어진 적절한 결과물을 바로 선 마음이 만나는 것’입니다. 오(五)는 하도와 낙서라는 수리의 이치를 담은 글 혹은 그림에서는 동서남북의 ‘중앙’에 위치하고 있는데, 이 점을 감안하면 ‘세상의 중심으로서의 나를 바른 마음이 만난다’는 뜻이 됩니다. 선가의 고승들께서 도를 깨달았을 때 내어 준 말씀인 오도송(悟道訟)은 대체로 이 느낌을 표현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고(故)는 ‘전우주로 모두 열려있는 기운으로 만들어진 적절한 결과물이 지어낸 무늬’를 뜻합니다. 천망(天網), 천기(天機) 등으로 일컫는 것들이 알고 보면 고(故)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다보니 죽은 사람에 대한 극존칭으로 고(故)를 쓰기도 합니다. '故 OOO'라고 하는 건 육신과 혼백은 각자의 길로 다 갔어도, 예전에도 그러했듯이,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죽 있을 것 같은 사람이란 뜻이겠죠.
과거와 다른 새로운 어떤 것을 추구하는 것이 모더니즘이라고 하겠는데, 이와 대비되는 개념으로 ‘온고(蘊故)’가 있습니다. 지금까지 설명한 고(故)의 뜻을 염두에 둘 때, ‘온고(蘊故)’는 ‘과거에도 그러하고 지금도 그러하며 앞으로도 그럴 것을 간직하는 일’입니다.
그러다보니, 모더니즘에서의 즐거움은 과거에 없는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데서 나오는 것과 달리, 온고에서의 즐거움은 과거에도 이미 있었고, 지금도 그러하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라고 여겨지는 바를 간직하고 있는 데서 나옵니다. 나아가 모더니즘은 남과 다른 나만의 생각이라고 여길 때 기뻐하지만, 온고는 나만의 생각이 아니며 우리 모두가 함께 하고 있다는 공유의 장을 발견하면서 기뻐합니다. 이것은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 건강한 삶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하겠는데, 그 내용은 다름 아닌 토기가 내어준 무늬가 순조롭게 이뤄지도록 하는 것과 바로 선 마음으로 토기를 만나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