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힘과 돈의 조직이 득세하고 지역공동체가 쇠퇴
오영남 씨(68세)는 홍성군 홍동면에서 태어났다. 부친이 한국전쟁 때 사망해 조부모 밑에서 어렵게 자랐다. 10대에 일을 시작해 첫해 어른 일당의 3분의 1을 받았고, 4년차에야 같아졌다. 당시 삼촌이 자신을 사촌과 차별했는데 일을 열심히 했더니 동등하게 대해주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생각이 긍정적으로 바뀌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에 가서 카센터, 식당 등 다양한 일을 경험했다.
1971년 결혼을 하고 귀향을 했다. 만삭의 부인이 남의 농약을 쳐주다가 몸에 이상이 생기는 걸 느꼈다. 유기농에 관심이 생겨 산에서 낙엽을 긁어모아 퇴비를 만들어 사용했다. 몸이 힘들고 소득은 별로였지만 점차 소출이 늘어나면서 주위가 따라왔다. 일본에서 오리농법을 배워 도입하기도 했다. 당시 새마을운동과 통일벼 보급을 추진하던 정부가 유기농에 비협조적이었다.
이후 농활을 왔던 대학생들을 지도했고 귀농하는 이들의 정착을 도왔다. 청송감호소에 수감되어 있던 무기수를 사회에 복귀시키기도 했다. 그의 교도소 특강에 자극 받은 사람이 출소 보증을 부탁해온 것이 인연이 되었다. 농사일을 가르치려 했지만 적성이 맞지 않다며 그만 두었다. 지금은 소식이 끊겼는데 법무부 연락이 없어서 잘 살고 있는 걸로 보인다.
그는 여전히 축산, 건설 등 작은 사업들을 계속 벌이고 있다. 본인은 먹고살 만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일을 만들어주기 위해서이다. 나이 많다고 능력 없다고 일을 하지 않으면 죄를 짓는 것이라 본다. 돈에 대한 원칙은 ‘먼저 쓰고 다음에 벌자.’이다. 돈을 벌고 쓰면 인색해지는데, 거꾸로 살면 욕심이 안 생겨 편하다고 한다. 아침마다 새 해를 맞이하는 것에 항상 감사 기도를 드린다.
1958년 설립된 풀무대안학교가 지역공동체의 뿌리이다. 풀무는 불을 피울 때 바람을 일으키는 도구. ‘농촌에 새바람을 일으키자’, ‘사람을 풀무질해서 육성하자’는 뜻을 담았다. 오영남 씨와 같은 선각자들이 공동체 주역으로서 농촌운동과 유기농법 확산을 이끌어왔다. 현재 40여 개 생산·소비조합이 활동하고 있으며 연간 3만여 명이 방문해서 생각과 경험을 배워간다.
도시화·산업화로 인해 수많은 지역공동체들이 붕괴되었다. 전통사회의 좋은 관행들이 사라지면서 세상은 삭막하고 위험하고 고통스러워졌다. 돈과 힘의 조직이 득세한 탓에 과거로 되돌아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새로운 공동체의 씨앗을 심고 키워내는 수밖에 없다. 간디는 “진정한 인도는 몇몇 도시가 아니라 70만 개 마을 속에 세워져야 한다.”고 말했다. 공동체들이 제 역할을 해야 삶에 중심이 생기고 살아가는 모습이 조화롭다.
불교가 개인의 수행과 보살행에 머물렀다면 오래전 명맥이 끊겼을 것이다. 부처님이 공동체 원형을 만들고 제자·신자들이 계승해서 오늘에 이르렀다. 중생은 무리 지은 생명들, 어리석어 무리를 잘못 짓는 탓에 고통이 증폭된다. 바르게 무리 짓는 공동체는 고통을 치유한다. 불교공동체는 함께 수행·보살행하며 타고 가는 큰 수레이다.
| 공동체, 함께 수행·보살행하며 타고 가는 큰 수레
과거 지역공동체들이 현장에서 삼독을 제어했다. 현자가 청빈·자비·지혜로 모범을 보이면 구성원들이 자연스럽게 따랐다. 두레로 공동생산을 했고 향약회의로 공론을 형성했다. 물질 풍요, 기술발전, 이동 일상화에 따라 이들 공동체가 쇠락을 했다. 대신 조직이 탐욕·분노를 조장해서 고통을 키우고 있다. 삼독이라는 고통의 인因에 조직이라는 고통 증폭의 연緣이 더해졌다.
불법은 삼독 제거 인을 심고 공동체 연을 만들라고 가르친다. 삼독이 근본·개인 문제라면 공동체는 현실·사회의 과제이다. 불법은 근본과 현실, 개인과 사회의 고통을 두루 치유한다. 상즉상입, 현상의 본질과 작용이 무애·융합하는 이치이다. 공동체는 공共의 동체同體, 정신·물질·경계가 한 몸으로 함께 한다. 정신은 지혜롭고 물질에 자비로우며 경계를 열어 껴안는다. 바로 동체의 대지大智·대비大悲·대승大乘이다.
동체대지, 수행으로 지혜의 한 몸이 된다. 면벽수행은 벽을 마주해 나 홀로 깨달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다. 벽은 지혜를 비추는 거울, 실천으로 열린 창문이어야 한다. 수행은 지혜의 쟁론과 실천의 시행착오를 거쳐 나아가는 정진이다. 공동체는 지혜롭게 정론을 모으며 실천하면서 정도를 재확인한다. 지도자가 독단하거나 다수가 횡포 부리지 않는다. 지도자는 수행·실천에 솔선하고 구성원들은 구상·결정·진행·피드백에 동참한다.
동체대비, 보살행으로 자비의 한 몸이 된다. 물질 흐름이 막히고 쏠리면 과잉·결핍의 고통을 낳는다. 공동체는 물질을 순환시켜서 탐욕과 분노를 잠재운다. 출가자가 세속 정신을 교화하고 재가자는 물질로 보답하는 식이다. 출가자는 고통 치유의 보살행을 하고 재가자는 수행 삼아 보시를 한다. 부자는 자비심으로 물질을 보시하고 빈자는 이를 칭송해야 한다. 물질이 핵융합하면 엄청난 에너지를 발생시킨다. 작은 물질 보시가 고통을 녹이는 큰 정신에너지가 될 수 있다.
동체대승, 경계를 넘어 수행·보살행을 실천한다. 나와 너, 우리와 그들의 경계는 사람들의 고통에 둔감토록 만든다. 경계의 한쪽은 불안하며 다른 쪽은 분노한다. 공동체는 경계 안팎 사람들의 고통에 공감하고 치유에 힘쓰도록 한다. 비정규직과 최저임금 논란은 조직인·경계인·외부인의 차별에 기인한다. 조직 경계가 어디인지, 공동 목적은 무엇인지, 보상은 공정한지에 대해 의문을 던져야 한다. 불교가 제시하는 해답은 불국토를 향해 함께 타고 가는 큰 수레이다.
과거에 조직이 공동체를 쇠퇴시켰다면 미래에는 조직간 투쟁이 치열해질 것이다. 공동체와 약한 조직이 살아남아야 조화와 평화가 유지된다. 땅이 모래, 흙, 돌멩이로 어우러져 만물을 키우듯이. 강한 조직은 자제하거나 공동체 방식을 도입하지 않으려 든다. 공동체와 약한 조직이 연대하고 상대 장점을 배우는 것이 요구된다. 불교가 앞장서 세속 공동체와 약한 조직들을 이끌어가야겠다. 정신·물질·경계의 상즉상입을 가르치고 실천을 독려해야 한다.
| 불교가 공동체 씨앗을 심고 숲으로 키워내야
공동체 구성원들은 스스로 생각·행동하고 상대를 배려해서 전체로 조화를 이룬다. 자등명 법등명, 주인공으로 법답게 살아 자신의 영역에 작은 불국토를 구현한다. 공동체 복원은 현대 조직의 병폐를 해결토록 하는 불교적 처방이다. 한 마음 작은 행동이 변화를 촉발한다. 불교는 생각과 행동으로 공동체의 씨앗을 심어야겠다. 생각과 행동이 한결같아서 공동체들을 숲으로 키워내야 한다.
기업은 정신이 왜곡되어 물질만을 쫓는다. 공동체에서 멀어져 내부는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외부와는 적대적이다. 명상으로 구성원들을 지혜와 자비에 눈뜨도록 해야 한다. 위기에 처해서는 마인드셋을 바꾸어 물질 흐름을 변화시켜야 탈출이 가능하다. 불교는 기업의 정신에 관심을 갖고 경계를 넘어 감화 행동에 나서야 한다. 기업은 이해에 민감해서 실질적 도움을 주면 빠르게 반응한다.
물질 결핍이 지역공동체 쇠락의 중요한 원인이다. 물질이 안정되어야 정신을 돌볼 여력이 생겨 미덕이 회복된다. 단위 사찰의 활성화는 지역사회의 생업과 직결되어 있다. 사찰이 일방적으로 보시를 받는 입장에서 물질 흐름을 만들어내는 주체로 역할을 바꿀 필요가 있다. 사찰이 공동 생산·판매의 매개체로서 지역민의 물적 역량을 결집시키면 된다. 해남 미황사, 108 산사순례 등 성공사례들이 이미 존재한다.
나에서부터 경계의 재정립이 시작된다. 아파트 주민들은 콘크리트에 갇혀 이웃과 단절되어 지낸다. 아파트 단지는 나의 좁고 닫힌 경계를 넘어설 수 있는 대승의 현장이다. 주위와 함께 자녀교육, 노인봉양, 문화향유, 생활경제, 정치토론 등에서 공동체 활동을 펼쳐야 한다. 주민들의 지혜 모으기는 수행, 물자 재활용과 불우이웃 돕기는 보살행이다. 저잣거리에서 신행을 실천하니 출가·재가 경계가 무애하다.
문경 세계명상마을이 조만간 첫 삽을 뜰 예정이다. 명칭에 세계를 향한 공동체의 포부를 담았다. 틱낫한 스님은 “공동체 안에 조화와 행복이 없는데, 밖에서 모임을 연다면 불량품을 파는 것”이라 말했다. 정신·물질·경계의 상즉상입이 미흡한 한국불교에 대한 경책이다. 마을은 마음의 울타리. 한국불교의 마음수련 역량이 활짝 열려 세계를 껴안는 울타리로 발전하기를 기대한다. 난세중생의 고통이 극으로 치닫는 지금, 세계명상마을이 미래 불교공동체의 시발지가 되어야겠다. 고통 치유에서 존재 의미를 찾는 불교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일이다. 불교는 공동체 원리를 내보이고 새로운 공동체들을 만들어 퍼뜨리는 책임을 다해야 한다.
이언오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KAIST에서 경영학 박사를 받았다. 삼성경제연구소 전무와 부산발전연구원장을 지냈으며, 지금은 바른경영연구소를 이끌고 있다. 대학 때부터 불교를 공부하였으며, 불교와 경영을 오랫동안 연구하면서, 불교와 경영의 접목을 모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