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불교와 미니멀리즘 |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추구하고 남들보다 더 많은 것을 소유하려는 마음이 있습니다. 덧없음을 느낀 사람들은 불필요한 것을 덜고 삶을 소중한 것으로만 채우길 원했습니다. 미니멀리즘minimalism. 단순함과 간결함을 추구하는 문화적 흐름이 떠올랐습니다. 2,600여 년 전, 부처님께서는 무엇을 가지고 살아가셨을까요. 부처님께서는 어떤 말씀을 하셨을까요. 월간 「불광」 9월호에서는 미니멀리즘을 재조명했습니다. 복잡한 일상을 가지치기하며 덜어내는 삶에 주목했습니다. 단순해질수록 명료해지고, 명료해질수록 삶의 행복에 가까워지는 방법들을 만났습니다. 필요한 만큼만 가지는 삶. 과하지 않는 마음. 간소하게 사는 이들. 미니멀리즘입니다. 01 불교 미니멀리스트는 어떻게 살았는가 유윤정 |
비워내서 충만한 삶, 나는 미니멀리스트
이들의 집은 간결하다. 이들은 짐 없이 산다. 필요한 최소한의 것으로 살아가는 삶의 형태인 ‘미니멀리즘minimalism’이 대세다. 단순하고 간결한 삶을 추구하는 탁진현 씨, 황규동 씨. 이들은 불필요한 것을 버리고 중요한 것만 남긴다. 걷어낼수록 자신이 드러난다. 비워낼수록 마음이 떠오른다. 덜어내면 또렷해진다. 비워서 충만함을 느끼는 미니멀리스트minimalist다.
| 탁진현 작가의 간소하게, 단순하게 살기
필요한 것만 남기기로 했다. 사계절 옷 25벌, 책 10권, 가방·신발·침구·약간의 소품들. 여행용 가방 두 개에 그의 물건이 전부 담긴다. 경차 하나로 이사를 다녔다. 미니멀라이프에 관심을 두는 사람을 대상으로 강연을 하고, 단순한 삶에 대한 영감과 노하우를 주는 콘텐츠를 제공하는 사이트 ‘심플라이프(simplelife.kr)’를 운영하고 있는 탁진현(37) 씨. 그의 방은 2평이다. 폭이 좁은 책상 하나, 장롱 한 짝, 빈 책장과 여행용 가방 두 개가 들어있는 방. 이 공간이면 충분하다고 느낀다. 필요한 것은 다 있다. 어느 때보다도 가벼운 마음이다.
“물건을 비우면서 마음이 홀가분해졌어요. 물건에도 과거의 물건과 현재의 물건, 미래의 물건이 있습니다. 예전엔 썼지만 지금은 쓰지 않는 것은 과거의 물건이죠. 과거의 물건을 비우면서 집착과 후회도 같이 덜어지더라고요. 물건을 비울수록 내가 과거에 집착했던 사람이구나, 하고 알게 됐습니다. 덜어낼수록 현재가 보입니다.”
그는 10년 경력의 신문 기자였다. 늘 시간에 쫓기고 긴장하는 삶 속에서 일, 건강, 사랑 등 인생에서 소중한 것들이 한번에 멀어졌다. 복잡하고 괴로웠다. 문득 방 안이 어지러운 머릿속 같았다. 수북하게 쌓인 40여 권의 취재 수첩과 7박스의 보도 자료와 서류들이 보였다. 언젠가 쓸 일이 있을 거라 생각하고 이사를 다닐 때마다 가지고 다녔지만, 수첩을 열어보니 본인의 글씨인데도 전혀 알아볼 수 없었다. ‘필요하지 않은 것을 집착 때문에 싸 들고 다녔구나.’ 주저 없이 서류박스를 버렸다.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이었다.
“물건을 비울수록 자유라는 감정을 느꼈습니다. 이제는 행복한 삶을 위해 간소한 삶을 유지합니다. 자유를 한 번 경험하고 나니, 다시는 물건이 내 발목을 잡지 않도록 살고 싶어졌어요. 이것이 없어지면 큰일 날 것 같은 불안 심리도 물건을 버리면 같이 버려집니다. 이렇게 간결한 삶을 산 지도 5년 정도 되었네요.”
물건에 집착하지 않게 되니 관심이 자연스레 나에게 돌아왔다. 건강과 경험에 집중하게 됐다. 회사를 그만둔 후 정토회 수련회 ‘깨달음의 장’을, 오대산 월정사 템플스테이를 갔다. 배우러 다녔다. 물건을 사지 않는 만큼 경험을 얻게 됐다. 삶이 바뀌었다. 물건을 바닥까지 비우고 나니 나를 다시 채우게 됐다.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심플라이프’라는 사이트를 만들었다. 비움의 경험을 많은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었다. 회향이었다.
“직장 생활 10년 동안 오직 집을 늘리는 데 집착했었습니다. 그러다 힘든 일을 겪어보니 인생에서 무엇이 중요한지 알게 됐어요. 행복은 집이 결정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전의 제 방은 지금보다 훨씬 넓었지만, 좁다고 생각했었어요. 지금은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이 집에서 제 방이 2평입니다. 좁다는 생각이 안 들어요. 이제는 행복의 주체가 집이 아니라, 물건이 아니라, 나로 바뀌었습니다.”
자연스레 의·식·주, 모든 삶이 간결해졌다. 음식도 점검하게 됐다. 가공 식품이나 패스트푸드, 화학조미료, 방부제를 부엌에서 치웠다. 식사도 가볍게 먹는다. 일회용품도 비웠다. 휴지 대신 손수건을 사용한다. 종이컵 대신 텀블러를 쓴다. 면 생리대를 사용한다. 휴지를 안 쓰면서 비염이 좋아졌다. 일회용 생리대를 안 쓰면서 생리통이 사라졌다. 거창한 마음으로 한 것은 아니었다. 나를 위해서 비웠던 것인데 가족에게, 사회에게, 환경에게, 다시 나에게 연결됐다. 이렇게 간소한 삶을 살기 위해 덜어내는 과정에서 ‘알아차림’이 특히 도움 됐다.
“스님들도 고요한 마음을 위해 가진 것 다 버리고 평생 수행하시죠. 홀가분한 마음을 위해 마음을 비우는 연습이 계속 필요하더라고요. 제가 물건을 남기는 기준은 현재입니다. 현재 집중하는 것 외에는 덜어낸다는 기준이 있어요. 내 삶, 마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생각이 현재에 있지 않고, 과거와 미래를 생각하며 괴로워하고 있으면 그때마다 알아차림 합니다. ‘생각이 과거, 미래에 있구나.’ 물건도, 마음도 현재 쓰는 것만 남겨두도록 노력합니다.”
그는 “심플 라이프를 보통 소비, 경제, 인테리어 측면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는데, 물건은 수단일 뿐 궁극적인 목적은 마음이다.”라고 했다. 삶의 전반적인 부분에서 불필요한 것을 덜어내고 가장 가치 있고 소중한 것만 남기는 것. 마음속 집착, 열등감 등 부정적인 감정을 비우고 감사함, 사랑 등 긍정적인 감정으로 채워 행복해지는 것이 목적이다. 그런 의미에서 불필요한 말도 하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한다. 말을 많이 하면 실수가 따르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 물었다. 간소하게 살기, 단순하게 살기를 시작해보기에 좋은 조언이었다.
“20대 때 마음을 다스릴 때마다 법정 스님의 책을 읽었습니다. 그때는 스님의 삶이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고 생각했었어요. 그저 동경의 삶일 뿐이었죠. 그런데 물건을 한참 비우고 나서야 법정 스님 말씀하시는 무소유가 물건의 무소유가 아니라, 나에게 불필요한 것들은 갖지 말자는 의미가 아닐까 라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그 이야기를 전하고 싶어요. 단순히 물건을 덜어내는 것이 아니라 물건이든, 음식이든, 일이든, 관계든, 삶에서 불필요한 것들을 덜어내고 나에게 가장 소중한 것을 남기면 좋겠습니다.”
| 황규동 작곡가의 정갈한 집
흙먼지 하나 없는 깨끗한 현관에 정갈하게 놓여있는 신발 한 켤레. 신을 벗고 들어간 집은 마치 어제 이사 온 집 같다. “5년째 같은 집에서 살고 있다.”고 했지만 거실에 있는 가구라고는 2인 소파, 무릎 높이의 탁자와 2단 서랍장, 식탁이 전부다. 부엌도 마찬가지다. 조리대에는 전자레인지도, 전기밥솥도 없다. 식기건조대에도 그릇 하나 없다. 소란스레 인사를 나누니 아무것도 걸리지 않은 벽에서 말소리가 되돌아온다. 작곡가 황규동(47) 씨의 집이다.
“전혀 불편하지 않아요. 오히려 자유로움을 느낍니다. 지금 가지고 있는 것들 중에서도 더 줄이고 싶은 마음이 생겨요. 정말 필요한 물건, 항상 사용하는 물건만 가지고 싶습니다. 쓰지 않는 것, 쓸 것 같은 것은 갖고 싶지 않아요. 저에게 더 집중하는 삶을 살기 위해 간결하게 삽니다.”
처음부터 간소한 삶을 살던 것은 아니었다. 작곡가의 방에는 악기가 가득했다. 유명 디자이너의 옷부터 인터넷 쇼핑까지 옷장 속도 빼곡했다. 일도 가득 차 넘치는 생활이었다. 삶이 복잡했다. 우연히 책 한 권을 알게 됐다. 사사키 후미오의 『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 단순하고 간결한 삶에 대한 동경이 일어났다. ‘꼭 있어야 할 것만 남기자.’ 옷부터 정리하기 시작했다. 1년 반 전의 일이다. 수많은 옷, TV, 전자레인지, 책장, 큰 소파 등등. 내게 필요하지 않은 물건은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눴다.
“나에게 불필요한 물건을 정리하다 보니 정신적으로도 홀가분해졌습니다. 운동하면 기분 좋아지고, 기분 좋아지면 컨디션도 좋아지듯, 단순하게 비우는 행위지만 가득 찬 방에서 하나씩 빠져나가기 시작하면 기분이 좋아져요. 또 물건을 정리하다 보면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원하지 않는지 알 수 있게 됩니다. 더욱 나에게 집중하게 됩니다.”
집중도 몰입도 훨씬 잘 됐다. “물건이 하나 사라지면 그 물건을 관리하는 데 드는 에너지도 덜 들어요. 물건을 비우면 마음에도 공간이 생깁니다. 잡념이 많으면 음악을 만들 때 영감을 떠올리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데, 비어있으면 예쁜 꽃만 봐도 아름다움이 물씬 느껴집니다.”
옷이나 가전을 줄이는 것부터 시작한 일이었지만 이제는 삶의 방식까지 변화됐다. 식습관도 바뀌었다. 건강한 재료로, 조미료 등을 뺀 음식을 한 그릇에 간소히 차려 먹는다. 건강을 위해 생・채식 등에도 관심을 갖게 됐다. 생활 방식에서도 불필요하다고 느낀 것들은 과감하게 비웠다. 합성 세제를 쓰지 않는다. 샴푸도 쓰지 않고 물로만 머리를 감는다. 세탁도 천연 세제열매를 쓴다. 스킨·로션도 치웠다. 불편하면 다시 사용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치웠지만, 불편하지 않았다. 오히려 해방감이 느껴졌다.
“소유하던 삶에서 비워내는 삶을 살면서 오히려 미래에 대한 불안이 사라졌습니다. 훨씬 자유로워요. 물건이 가득했을 땐 이 집이 좁다고 생각했었어요. ‘더 큰 집으로 이사해야 하나,’ 했었는데, 지금은 넓다는 생각이 들어요. 집이 좁은 게 아니라 물건이 많은 거였죠. 작은 집으로 가게 된다 하더라도, ‘내 몸 하나 뉠 곳 없을까’ 하면서 두려움이 사라집니다. 또 ‘남들은 저걸 가지고 있는데,’ 하는 상대적 박탈감도 사라집니다.”
나에게는 필요하지 않은 물건이기 때문이다. 더불어 그는 비워내고 자신에게 집중하면서 행복감도, 자존감도 더 높아졌다고 했다. 그의 요즘 관심사는 ‘일상생활을 지키는 것’이 되었다. 불필요한 것들을 버리니 일상 속 행복이 확연히 드러났다. 운동하기, 좋은 먹거리 먹기, 청소하기, 일기 쓰기 등등. 일상의 모든 것이 행복의 요소였다. 일상생활을 잘 지켜내고 싶다는 그의 말에서 어지러운 물건 없는 간소한 집에서, 단순하고 소박하게, 본질적 가치에 더 집중해서 살아가겠다는 의지가 보였다.
“법정 스님께서도 항상 예불 드리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셨죠. 일상을 지키기 위해 돌아가시기 전 병실 침상 위에서도 예불 드리는 모습 보면서 크게 감동 받았습니다. 하루라도 거르면 일상이 무너진다고 하신 것처럼, 저도 일상을 잘 지키고 싶어요. 간소하게 살수록 더욱 일상생활을 잘 지키게 됩니다. 그 안에서 행복을 느끼죠. 특별히 대단한 어떤 사람이 되지 않아도 자존감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나에게 집중하고 행복해지니 더 자존감이 생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