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광통신]‘자비로운 분노’는 가능한가?
상태바
[불광통신]‘자비로운 분노’는 가능한가?
  • 김성동
  • 승인 2017.09.05 09:3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지난 8월 12일 해남 일지암에서 열린 중관학당 하계캠프에서 선업善業과 인욕忍辱의 주제가 나오자, 한 참석자가 중관학당 대표인 신상환 박사에게 물었다. “불교는 ‘의로운 분노’를 인정하지 않는가요?” 불의 앞에서도 참아야 하느냐는 의문을 던진 것이다. 신 박사의 답변은 짧고 강했다. “분노는 무조건 나쁜 것이다.” 신 박사가 강의 중에 보여준 ‘정의로운’ 언어들 때문에 내심 ‘정의로운 분노’의 가능성을 기대했지만, 단호한 답변이 돌아온 셈이다. 신 박사는 이와 관련해 달라이 라마 존자와의 일화를 들려준다. 2001년 9.11테러 직후 미군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다. 이때 달라이 라마 존자는 미군의 군사 행동을 경의 비유로 설명했다. 티베트 불교경전인 『대방편경』에 나오는 대비大悲 선장 이야기다.

●    “붓다는 여러 전생 중 한 생에 어느 배의 선장이었는데, 그 배에는 선원이 500명이나 있었다. 선장은 선원 중 한 사람이 나머지 499명을 죽이고 그들이 가진 것을 빼앗으려고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선장은 그러지 말라고 그 선원을 세 차례나 설득했다. 하지만 그 선원은 고집을 꺾지 않았다. 선장은 이렇게 생각했다. ‘만약 내가 저 선원을 죽이지 않으면 다른 499명이 죽게 될 것이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그를 죽이면 나는 499명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또한 그가 499명을 죽이는 죄를 범하는 것을 막기 위해 한 사람을 죽인 죄에 따른 악업의 결과를 그대로 받게 된다. 만약 내가 음모를 꾸미는 저 사람을 죽이지 않는다면, 나는 499명의 죽음에 간접적으로 책임이 있다.’ 그래서 선장은 무기를 들고 그 선원을 죽인다.”
●    그때 신 박사는 달라이 라마 존자께 반문했다. “그 예는 잘못됐다. 그 경을 언급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대전제이다. 그 대전제는 ‘그 선장이 보살이라면’이다. 그 선장이 보살이라면 나머지 499명의 대중을 살리기 위해 그 살인자를 죽일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이 보살인가. 우리는 보살도를 행하는 사람들이지, 보살의 지위에 있는 사람이 아니다. 그러면 이 경의 예는 우리에게 맞는가? 아니다. 우린 그 보살의 지위에 오른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신 박사는 달라이 라마 존자의 답변을 듣지 못했지만, 달라이 라마 존자의 비유는 잘못됐다고 말한다. 

●    최근 불교계에서 자주 등장하는 단어가 ‘자비로운 분노’다. 사회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교단 지도부의 퇴행과 일부 출가자들의 파계 행위에 따른 반발 작용인 셈이다. 계율을 어기며, 공동체 질서를 훼손하는 일이 자주 발생하니, 이를 보다 못한 불자들이 불교의 저항성을 이렇게 표현한 것이다. 충분히 이해되고, 공감될 이야기지만, 우리의 관점은 늘 불교다. 때문에 ‘자비로운 분노’가 불교의 언어인가는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왜냐면 분노는 부처님께서 늘 경계했기 때문이다. 삼독의 두 번째가 분노다. 신 박사는 사회적 정의의 실천의 근거를 분노가 아니라, 자비와 연민에 두어야 한다고 했다. 행태는 같을 수 있지만, 행위자의 마음 상태는 반대라고 했다. ‘자비로운 분노’는 가능하지 않으며, 분노 앞에 수식어가 붙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    그렇다면 불교인은 사회 정의를 어떻게 실천해야 하는가. 분노 없는 정의의 실현은 어떤 얼개일까. 신 박사의 말이다. “사회 정의는 대승불교의 입장에서 보면 조건을 긍정적으로 바꾸는 것이다. 남이 조건이고, 남이 봤을 때는 내가 곧 조건이다. 연기, 상호 관계성 속에서 봤을 때 서로의 조건을 상승시킬 필요가 있다. 그 바탕에 깔리는 것이 자비와 연민이다. ‘자비로운 분노’의 함정은 그 자체가 삼독에 들어간다는 것이다.” 부처님은 파계를 일삼는 비구들에게 단호한 입장을 취한다. “사문이 아니면서 사문인 척하는 자들, 나쁜 의도를 가진 자들, 나쁜 행동을 하고 나쁜 영역에 있는 자들을 쓰레기처럼 내던져 버리라.”(『숫따니빠따』 「정의로운 삶의 경」. 일아 스님 역) 자비와 연민의 마음을 잃지 않는 불자의 행동을 생각한다.                      

 


인기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최신 불교 뉴스, 월간불광, 신간, 유튜브, 붓다빅퀘스천 강연 소식이 주 1회 메일카카오톡으로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많이 구독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