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자는 연결의 공덕으로 살아간다
| 하늘은 연결하는 사람을 돕는다
손병철 씨(61세)는 경북 봉화에서 태어났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서 부친 사업을 돕기 시작했다. 견과류 등을 소포장으로 만들어 광산 지역에 파는 것이었다. 고된 작업을 끝낸 광부들이 술안주로 사먹었다. 폐광이 진행되던 1988년 영월 전통시장에 조그만 슈퍼를 차렸다. 천대받는 떠돌이 장사치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욕심이 작용했다.
슈퍼 장사가 될 만 하면 건물주가 쫓아내는 일이 4번 반복되었다. 무리하게 빚을 내서 300평 땅을 샀지만 외환위기가 터져 높은 이자를 물게 되었다. 조립식 건물을 올렸더니 근처에 대형마트가 들어섰다. 인구 감소, 편의점 개업, 학교급식 실시가 이어지면서 빚더미에 올라앉았다. 담배대리점, 쌀 화환 체인으로 재기를 모색했다가 가입비만 날렸다. 파산을 신청했으나 필요한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했다. 손 씨는 뇌졸중, 부인은 우울증을 앓았고 한때 자살까지 생각했다.
2010년 트럭에 물건을 싣고 팔러 다니던 사람이 지병으로 그만두게 되었다. 트럭과 물건을 인수하고 이틀간 따라다니며 요령을 익혔다. 이후 매일 200㎞씩 1주일에 6일 시골길을 달리고 있다. 아침 7시 2.5톤 트럭을 몰고 제천에 가서 대리점 20곳을 돌며 물건을 산다. 그 동안에 부인은 식자재를 낱개 포장하는 등 준비를 한다. 10시쯤 집에 돌아와 아침을 먹고 부부가 함께 길을 나선다. 점심은 대부분 차 안에서 간단하게 때운다. 귀가 시간은 겨울이 저녁 7시, 여름은 9시 정도. 월·수·금요일에 15개, 화·목·토요일에는 다른 15개 마을을 들른다.
취급 품목은 약 300여 개. 노인 상대 장사라서 비싸게 팔지 못한다. 읍내 가게보다 비싸면 불만이 생기고 소문이 난다. 단골 공급처들로부터 조금 싸게 구입하는 것이 큰 힘이 된다. 핵심 밑천은 정에 굶주린 오지 노인들의 환대이다. 몸집 큰 할머니를 위해 서울 동대문시장에 가서 바지를 사다 주었다. 산 중턱에 사는 한 할머니는 트럭을 만나러 1㎞를 걸어 내려온다. 시간이 맞지 않으면 1시간 이상 기다리기도 한다. 공급대리점들과 시골 노인들을 이어주며 딱 먹고살 만큼 이윤을 남긴다.
KBS TV ‘세상 사는 이야기’에 만물트럭으로 소개되면서 입소문이 났고 이제까지 16차례 방송이 나갔다. 최근 1년 결산을 해보니 매상은 3억 6천만 원. 일부 매체가 연간 이익 수억 원, 빚을 다 갚고 빌딩을 몇 채 지었다고 보도했는데 사실이 아니다. 힘들게 돌아다녀 부채 8억 원 중 4억 원을 갚은 상태. 손 씨는 건강이 허락하는 한 장사를 계속하려 한다. 빚을 다 갚고 부부가 여행을 가는 것이 소원이다.
만물트럭은 강자에게 밀리며 쇠락하는 이 시대 약자들을 상징한다. 동시에 연결의 공덕으로 살아가는 약자의 저력을 보여준다. 강자가 독식하는 세상은 삭막하며 지속 불가능하다. 강자는 탐욕의 연결을 만들어 힘으로 지배한다. 약자는 강자와 맞부딪치면 잡아먹히고, 피해도 숨을 곳이 없다. 약자끼리 협력하고 강자를 순화시켜야 하는데 그것이 쉽지가 않다.
불교의 연기법은 강약의 구분과 대립을 초월한다. 하지만 강자·약자가 인연으로 생겨난다는 연기의 관점을 갖는 걸로는 미흡하다. 연기를 능동적으로 실천하는, 이어서 맺는 연결連結에 나서해야 한다. 결연, 결합, 결사, 결과, 결실 등에서 보듯이 결結은 실천과 성과를 지향한다. 불법에는 연결의 지혜가 빛나고 수행공동체 전통에는 성공경험이 녹아 있다. 연결을 바르게 보고 새롭게 바꾸어서 강자·약자의 고통을 치유해야겠다.
| 팔정도의 도道는 연결의 고통을 치유하는 길
강자가 먹고 약자가 먹힘은 필연이며 자연이다. 모두가 살려고 하고 또한 죽지 않으려 몸부림친다. 자연에서는 강자·약자가 각자 분수를 지켜 전체로 조화를 이룬다. 자신에게 불필요하면 상대에게 과도한 고통을 주지 않는다. 인간 강자는 탐욕·분노에 빠져 스스로 무덤을 판다. 약자는 대체로 어리석어 각자도생으로 힘겹게 살아간다.
숲속 나무의 뿌리들은 땅속 균사들과 함께 광대한 신경회로를 형성한다. 침입자가 있으면 경보를 전파해서 함께 독성분을 내뿜는다. 이에 비해 도시에 인위적으로 심긴 나무는 외롭고 병약하다. 도로·전선과 얽혀서 어찌할 바를 모른다. 요즘 세상은 도시 나무처럼 근원을 잃었고 공동체·자연과의 교감이 끊겼다. 엉키고 단절된 연결이 고통을 키우고 구조화시킨다.
연결은 마음의 작용이다. 혼자 토굴에서 수행해도 중생 행복을 염원하면 이미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관세음보살은 약자의 간절한 기도를 듣고 영험을 내려준다. 베토벤은 난청이 심해질 때 불멸의 여인을 마음에 두고 위대한 음악을 작곡했다. 마음이 작용해 여인·음악·후세가 연결되었다. 스마트폰 친구 맺기는 자칫 생각 없음과 패거리의 해악을 낳는다.
세속은 상相과 루漏가 있는 벽돌, 불법은 접착·해체가 자유로운 몰타르이다. 불법에 세속을 맺고 풀고 감쌀 수 있는 연결의 해답이 들어 있다. 의화동사意和同事·이화동균利和同均의 화和와 동同, 화쟁和諍의 화和와 쟁諍이 바로 그것이다. 정규직·비정규직·실업자의 차별은 잘못된 연결 방식에 기인한다. 사람 중심으로 연결의 틀을 흔들어야 본래 자리를 되찾는다. 깡통을 흔들면 그 안의 돌은 절로 뛰게 되어 있다.
연결은 양날의 칼이다. 선의로 하는 연결이 고통을 초래한다. 연결 방식을 바꾸면 고통을 치유할 수 있다. 킥스타터Kickstarter는 크라우드펀딩을 통해 착한 창업을 지원한다. 인터넷으로 소액투자를 모집해서 아이디어 사업화를 돕는다. 목표액과 마감일을 설정하고 호응이 별로이면 과정을 중단한다. 2009년 창업한 후 최근까지 33만 건 프로젝트를 수행해서 27억 달러를 모금했다. 삼성페이는 킥스타터가 키운 스타트업을 나중에 인수한 사례이다.
불법의 강자는 자신을 이기는 사람이다. 삼독에게 굴복해서 고통 받으면 약자이다. 중생은 강자·약자를 구분하고 군림하거나 복종한다. 보살은 강자·약자 고통에 연민을 느껴 치유에 노력한다. 불법에 개인·사회의 조화 원리가 나와 있는데도 실천하지 않는다. 고통 치유의 출발점이 삼독 제거라면, 그 실천은 바른 연결(正連結)이다. 팔정도의 도는 강자·약자 연결의 고통을 치유하는 길이다.
조고각하照顧脚下, 발밑을 살피고는 걸음을 내디뎌야 한다. 땅을 딛고 일어선 다음에는 걷기 시작해야 한다. 약자들이 원願을 갖고 걸어야 연결이 만들어지고 동행이 늘어나서 세상이 바뀐다. 간디의 소금 행진에 하층민들이 참여했기 때문에 인도 독립이 앞당겨졌다. 수행자는 눈밭에 새 길 내는 사람, 후학이 따르니 바르게 나아가야 한다. 재가자는 험한 오르막을 오르는 사람, 끌어가고 밀어주며 함께 길을 닦아야 한다.
| 불교는 수승화강水昇火降의 연결로 세상을 정화
탐욕과 분노의 불길이 거세게 타오르고 있다. 개인은 화병을 앓고 사회는 분노가 들끓으며 국가끼리 불 폭탄을 터뜨린다. 물불을 가리지 않아 평정·지혜의 감로수가 고갈되었다. 자비와 행원의 환희심이 기운을 북돋우지 못한다. 수승화강水昇火降, 물이 위로 불은 아래로 흘러야 개인에게 이롭고 세상이 조화롭다. 컵에 탕수湯水를 붓고 냉수를 섞으면 몸에 좋은 음양탕이 된다.
수승화강 연결이 순조로워야 마음이 적적성성하고 몸도 건강하다. 집착이 지나쳐 화기火氣가 머리로 몰리고 무기無氣에 빠져 몸이 처진다. 불법에 물과 불을 순환시키는 이치와 방편이 들어 있다. 수행은 들뜸을 가라앉히고 처짐에서 벗어나게 하며, 보살행은 고착을 풀고 흩어짐을 정렬시킨다. 다만 수행자는 상기上氣를, 재가자는 무기無氣를 조심해야겠다.
기업의 이익극대화는 불기운이 과한 것이다. 주위를 태우며 세력을 키우다가 자신마저 소멸시킨다. 돈벌이는 불의 상승, 수행과 보살행은 수승화강이다. 출가자는 전법으로 감로수를 뿌려 기업 열기를 식혀야 한다. 기업의 가치·조화 추구는 물의 확산과 상승을 촉진하는 것이다. 기업은 보시를 통해 불길에서 벗어나고 자신의 온기를 사회와 공유해야 한다.
사회 양극화는 불이 위로 쏠리고 물은 아래에 고인 탓이다. 강자들이 패거리로 기득권을 고수하니 난공불락 불의 요새이다.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판다고, 약자가 물을 지키고 흐름을 일으켜 강자를 감화시켜야 한다. 상선약수上善若水, 물은 지극히 착하니 약자가 먼저 자비를 베풀고 강자의 불심을 깨우쳐야겠다. 부드러운 파동이 단단한 입자를 깨트린다. 깨져서 미세해진 입자들이 융합하면 핵에너지를 분출한다.
연결의 최상승은 결사結社. 뜻을 모으고 함께 실천해서 성취하는 길이다. 금년은 봉암사 결사 70주년. 선각자들의 각오와 실천이 한국불교를 벼랑 끝에서 구해냈다. 결사의 맥이 희미해지고 당시 구축했던 연결의 틀이 현실과 엇박자를 내는 중이다. 멀리는 부처님 당시, 가깝게는 봉암사 결사 시점의 초심을 되살려야겠다. 개혁의 시작은 지금 마음과 그 첫 마음을 연결하는 것이다. 사부대중 사이, 그리고 불교와 세속 간의 엉킨 매듭을 풀고 끊어진 부분을 새로 이어야겠다.
이언오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KAIST에서 경영학 박사를 받았다. 삼성경제연구소 전무와 부산발전연구원장을 지냈으며, 지금은 바른경영연구소를 이끌고 있다. 대학 때부터 불교를 공부하였으며, 불교와 경영을 오랫동안 연구하면서, 불교와 경영의 접목을 모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