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영화 ‘대부’로 알려진 이탈리아의 시칠리아 여행을 다녀왔다. 그 아름다운 풍광과 맛있는 음식들, 영화 속에서 본 잊을 수 없는 장면들에도 불구하고, 돌아와 생각하니 계속 잊히지 않는 것은 팔레르모의 ‘카타콤베’에서 본 시체 박물관이었다. 몇 백 년 전에 발굴된 공동묘지 속의 옷을 입은 채 그대로 박제된 시신들은 편안한 얼굴, 고통스런 얼굴, 고개를 숙이거나 뒤로 젖힌 얼굴 등 같은 표정이 하나도 없었다. 벽에 빼곡하게 붙어 있는 시신들을 구경하면서, 죽음이란 그저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곳에서 가장 유명한 시신은 신기하게도 얼굴색까지 죽은 당시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세 살짜리 영아의 시신이었다. 세월이 많이 지나면 죽음마저도 관광 상품이 된다는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가장 중요한 건 지금 이 순간 살아 있는 일이다. 텔레비전에서 탈북자들에게 몇 시간만 북한에 다녀올 수 있다면 무엇을 제일 하고 싶은가 물으니, 누군가 북한에 두고 온 동생과 밥 한 끼 먹고 싶다며 울먹였다. 며칠 있으면 동생의 기일이라 내게도 ‘밥 한 끼’라는 단어가 더 절실하게 느껴졌다. 동생이 세상 떠난 지 어느새 3년이 흘렀다. 동생이 몇 시간 동안만 살아 돌아온다면 나도 밥 한 끼 같이 먹는 게 소원일 것 같다. 입에서 살살 녹던 시칠리아의 파스타와 생선요리를 먹으며 동생의 얼굴이 떠올랐다. 왠지 옆에서 “누나 맛있어?” 할 것만 같다. 서로 맛있는 걸 더 먹겠다고 싸우던 철없는 어린 날이 생각난다. 무조건 뭐든지 다 줄 걸 그랬다. 고향을 떠나온 탈북자들의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들으며, 내 그리움도 함께 달랬다. 지금 이 순간, 밥 한 끼 같이 먹는 그 아무것도 아닌 일상이 실은 가장 소중하고 그리운 순간임을 깨닫는 것, 그게 바로 붓다의 마음이 아닐까?
황주리
작가는 평단과 미술시장에서 인정받는 몇 안 되는 화가이며, 유려한 문체로 『날씨가 너무 좋아요』, 『세월』, 『땅을 밟고 하는 사랑은 언제나 흙이 묻었다』 등의 산문집과 그림 소설 『그리고 사랑은』 등을 펴냈습니다. 기발한 상상력과 눈부신 색채로 가득 찬 그의 그림은 관람자에게 강렬한 기억을 남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