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 인사드리겠습니다.”
“인사요? 우리 안아볼게요.”
백담사 템플스테이 사무실에서 만난 백거 스님과의 첫 대화다. 스님은 나와 사진작가를 보더니 팔을 벌려 안았다. 갑작스러운 ‘안아주기’에 나는 주춤거렸고, 사진작가는 웃었다.
“처음 만나는 사람을 안으면 함께 적극적으로 안아주는 사람이 있고, 가만히 안기거나, 뻘쭘한 이가 있어요.”
작은 얼굴에 단단한 느낌이다. 역광의 얼굴에 눈동자가 먼저 보였다. 맑고 깊었다. 비구니스님들을 만나면 가끔씩 이런 눈동자를 본다. 백거 스님(48). 10년 전 백담사에 온 이후 스님이 이끌었던 템플스테이 프로그램이 입소문을 타면서 지금까지 7만 6천여 명이 참여했다. 2014년 템플스테이 최우수 운영사찰로 선정되었고, 2015년에는 여성가족부 청소년수련활동 인증기관으로 선정됐다. 그 중심에 백담사 템플스테이 수련원장 백거 스님이 있다. 1990년 12월 천안 제화사로 출가해 운문사 승가대학과 동국대를 졸업했다. 현재 동방불교대학원 대학교에서 호흡명상과 청소년을 주제로 박사 논문을 준비 중이다.
| 7만 6천여 명과 함께한 스님
- 템플스테이를 10년 정도 이어오셨습니다. 대중들과 교감이 많았겠습니다.
“제가 여기서 대중들과 함께 하면서 정말 우리 국민들이 치열하게 사는구나, 놀랐습니다. 사람들을 보면 애틋합니다. 대부분 열심히 사는 모습을 보면서 뭔가를 해주고, 안아주고 싶었습니다. 제가 해줄 수 있는 부분이 무엇인지 생각합니다.”
- 스님께서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요.
“제가 동네 아이들에게 ‘호흡명상’을 해주러갑니다. 명상 끝나고 어떤 아이에게 상담을 합니다. ‘○○야, 지금 너를 제일 힘들게 하는 것이 뭐지? 누가 너를 제일 힘들게 하지?’ 하고 물었더니, 그 아이가 이렇게 말합니다. ‘스님, 내 안에 있는 또 다른 나요.’ 이렇게 대답하는 겁니다. 이걸 듣고 돌아오는 길에 펑펑 울었습니다. 제가 중학교 때 만났던 나를 이 아이도 만난 겁니다. 기특하고 예쁘고 마음이 너무 아팠습니다. 그때 제가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너랑 가장 친하라고. 자기 자신과 가장 친하라고. 우리는 화가 나면 마음을 닫습니다. 근데 사실은 자기를 알아 달라는 겁니다. 우리는 누군가가 나에게 불편한 말을 하면, 내 몸의 세포가 닫히고 몸이 굳는다는 것을 알아차려야 합니다. ‘아, 나는 이런 말에 굉장히 민감하구나.’ 하고 알아야 합니다. 우리 누구는 못된 점을 하나씩 타고 납니다. 그것을 알아야 합니다.”
- 스님이 말씀하는 호흡명상은 어떤 것인가요?
“호흡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겁니다. 화가 났을 때 호흡으로 돌아가면 마음이 평정하게 됩니다. 자신의 호흡을 그냥 관찰합니다. 이것은 어디서나 할 수 있습니다. 평정을 찾게 되면 답을 빨리 찾게 됩니다. 나머지 것들은 자연스럽게 해결됩니다. 화를 낼 때, 맥박이 빨라지는데, 호흡만 하면 그것은 사라집니다. 습관화해야 합니다.”
스님은 2007년 9월부터 이곳 백담사 템플스테이를 맡았다. 이곳으로 오기 전 100년 된 낡은 토굴과 군법당에서 생활했다. 동국대를 졸업하고 선방에서 정진하던 중 눈의 망막에 출혈이 생겼다. 자칫 실명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 ‘왜 이런 어려움이 나에게 나타났을까.’ 깊이 묻고 물었다. 답이 나오지 않았다. 길을 나서 다다른 곳이 강원도 인제 산골 토굴이다. 2년 반의 시간을 오로지 홀로 있었다. 밤에는 전기 없이 지냈다. 밝음보다 어둠을 택했다. 눈으로 보는 것을 스스로 없앴다. 실명을 대비한 일이기도 하지만, 스스로를 들여다보는 일이다. 세상의 모든 것을 볼 필요는 없었다. 그때 몸으로 들어온 것은 ‘앞만 보고 달려온 나’다. 병이 있으면 약이 있는 법. 스스로에게 일어나는 미세한 감정을 다 본 것이다. 울고, 웃는다. 사색한다. 동네 사람들과 함께 재밌게 지냈다. 산에는 나물이 지천이다. 아침에 일어나면, 작대기 하나로 땅을 두드리며 경전을 암송했다. 인근 군법당에서 법회 요청이 왔다. 군인들이 자살하고 탈영하니 상담과 법회를 해달라는 것이다. 세상 밖으로 나가고 싶지 않다고 답했다. 토굴로 돌아와 아궁이에 불을 넣었다. 타닥타닥 나무 타는 소리가 들렸다. 그때 이런 물음이 스스로 일어났다.
‘네가 사람들을 정성으로 사랑해보았는가?’
‘네가 세상에 태어나서 아무 대가도 없이 세상을 위해 해본 것이 뭐가 있냐?’
갑작스러운 스스로의 질문에 스님은 답을 할 수가 없었다. 부끄러웠다. 그 길로 병사들의 법회를 맡았다. 2004년이었다. 그해부터 12년 동안 군법당에서 법회를 맡았다. 2007년 9월, 백담사 템플스테이를 처음 시작했다. 첫 템플스테이에 참석한 이는 단 1명. 그것도 천주교인이다. 첫 입재식이 스님을 포함해 주지스님, 총무스님, 스텝 2명, 총 5명. 1명의 템플스테이를 위해 5명이 준비한 것이다. ‘한 명이 천 명이고, 만 명이다. 한 명을 절대로 소홀히 대하지 말자.’ 이렇게 다짐했다. 5명, 10명 이렇게 참가자가 늘어났다. 백담사 템플스테이가 대중들에게 입소문이 났다.
| 내가 변한다는 것
“참가한 사람들은 웃고 있지만, 가슴이 시퍼렇습니다. 참가자들이 프로그램 끝난 후에 피가 한 바퀴 확 돌았다는 이야길 합니다. 그때 저는 백담사가 사람들의 마음을 안정시키고, 다시 무엇인가를 할 수 있게 해주는 공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내가 여기 있어야 할 이유, 내가 여기서 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백담사는 나에게 무엇을 바라는지, 주지스님은, 공양주는, 스텝은 나에게 어떤 것을 바랄까, 이런 것을 쭉 적어봤습니다. 중생이 행복하면 내가 행복하다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구나, 생각했습니다. 제가 토굴에서 스스로에게 물었던 것, 세상 사람들에게 해준 것이 무엇인가, 사람들을 마음을 다해 사랑했는가, 전 20대 때 그러하지 못했습니다. 이 핑계 저 핑계 대면서 나에게 이익된 것만 찾았습니다.”
- 나에게 이익된 것만 찾았다는 것은 어떤 뜻인가요?
“여기 따뜻한 물이 있습니다. 이 따뜻한 물로 나는 얼굴을 씻고, 발을 닦고 빨래도 했습니다. 근데, 저는 그 따뜻한 물을 떠 오는 일은 하지 않았습니다. 누군가가 그 따뜻한 물을 떠 온 것입니다.”
- 토굴 생활이 스님께는 영향을 크게 주었겠습니다.
“그렇죠. 그때 생활이 없었다면 지금 제가 여기에 있지 못할 겁니다.”
- 스님께서 템플스테이 참가자들을 대할 때 가장 중심으로 이야기를 나누는 내용은 무엇인가요.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자기 자신과 가장 친한 사람이 되자는 겁니다. 개인적으로도 그렇습니다. 눈이 아픈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였습니다. 결과적으로는 저를 돌아보게 했습니다.”
- 스님 스스로 어떤 성찰이 되었는가요?
“세상 모든 일은 내 일이니까 내 앞에 펼쳐지는 겁니다. 내가 겪지 않아도 될 일 같지만, 내 앞에서 나타납니다. 내 눈앞에 나타나는 모든 일은 내 일입니다. 살면서 불편함이 일어날 때마다 누군가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내가 어떻게 바뀌면 저 사람이 편할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하면, 마음이 너무 편하게 됩니다. 저 사람에 대해 내가 뭘 모를까, 내가 뭘 바꾸면 저 사람이 편할까, 이런 생각을 합니다. 그러면 달라집니다. 사람들이 불편할 때마다 내가 떠나면, 나는 늘 돌아다니게 됩니다. 내가 변하지 않고 상대가 변하길 바라면 문제가 풀리지 않습니다.”
- 보통 사람들은 나보다 상대가 변하길 바랍니다. ‘내가 변한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요.
“경전에 좋다, 나쁘다를 간택하지 말라고 합니다. 글로 읽으면 그냥 좋은 말인데, 살면서 체득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모든 일을 좋다, 나쁘다 쉽게 판단합니다. 근데, 내 일이니까 내 눈앞에 나타나는 것이다, 라고 생각하면 경의 글귀가 딱 맞습니다. 모든 일을 온전히 경험해야 합니다. ‘뭐든지 와봐라, 내가 다 겪어줄 테니까. 뭐든 못 겪어주겠냐.’ 하고 경험해주는 겁니다. 있는 그대로. 그때부터는 어려운 일이 없습니다. ‘아, 또 하나 왔구나.’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나에게 필요한 것이 선물로 왔구나.’ 하는 것을 압니다. 사람들이 선물이 온 것을 잘 모르는데, 선물입니다. 전 그것을 알아요.(웃음) 그 경험이 감사하고, 고맙습니다. 20대 때는 그것을 잘 몰랐습니다. 학인 시절에는 경전 문구를 줄 긋고, 색칠하고, 포스트잇 붙이고 그랬죠. 경전이 시시했습니다. 지금은 경전에 그렇게 긴요한 이야기가 있는 줄 알게 되었습니다. 다시 보게 됩니다.”
- 사람들이 백담사 템플스테이에서 받은 자유로움을 일상에서 어떻게 지속할 수 있을까요.
“자신의 장애를 놓아주어야 진정 자유를 얻을 수 있습니다. 놓아준다는 것은 내가 그 장애에 걸리고 있다는 것을 빨리 인정하는 겁니다. 그래야 걸리는 것에서 내가 풀어집니다. 제가 우리 참가자들에게 권유하는 것은 일상생활에서 감사한 것을 적어보는 것입니다. 어떤 분은 백담사에서 나누어준 수첩 한 권 가득 적어오는 분도 있습니다. 일상에서 사소한 것에 감사하는 사람들은 다릅니다. 감사한 것이 얼마나 많아요. 백담사 햇살을 두 팔 벌려 만끽하는 것이죠. 손가락 사이를 지나가는 바람, 귓불을 스쳐 지나가는 바람, 이런 것을 만끽하는 겁니다. 돈도 안 들어요.(웃음) 일상에 대한 고마움을 이야기합니다.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놓아주고, 만끽하고, 감사하고.”
| 지금 현재 나의 에너지는 어떤 상태인가
- 내가 장애에 걸리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군요.
“장애 때문에 자유롭지 않을 때 나오는 행동이 있습니다. 장애 때문에 게임을 하고, 술을 먹고, 욕을 하고, 성질을 부리죠. 자신에게 친절하지 않으면 결국 자신을 해치는 일입니다. 부모라면 그것이 아이에게 고스란히 전달됩니다. 무서운 일입니다. 여기 오는 분들에게는 이런 말을 해줍니다. ‘그 행동들이 정말 나에게 친절한 행동인가, 나를 사랑하는 행동인가.’”
- 백담사 템플스테이 프로그램은 누가 만들고 있나요?
“제가 만듭니다. 저는 경전이 모두 프로그램으로 만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경전의 주요 내용을 끄집어내서 몸으로 체득할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예를 들면 ‘자비’를 프로그램으로 만들면 후배나 도반들에게 모니터링을 부탁합니다. 프로그램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감정’을 건드리는 겁니다.”
- 감정을 건드린다는 것은 무엇인가요?
“자기 내면을 찾아가야겠다는 그 부분을 건드려줍니다. 불성佛性에 가깝습니다. 여기 백담사가 한용운 스님이 머문 곳이죠. 한용운 스님의 시에서 나타난 ‘님’을 통해 감정을 건드려줍니다. 어린 시절부터 인연 되어 만났던 모든 것들이 ‘님’으로 남아 있습니다.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이 ‘님’은 본래부터 깨끗하고 불성이 있어, 영롱하고 보석 같은 것입니다. 나는 보석으로 태어난 것입니다. 그 보석은 강물 속에 있을 수 있고, 바위 속에 있을 수 있고, 쓰레기통에 묻혀 있고, 진흙 속에 있을 수 있지만, 깨끗이 닦으면 본래 보석으로 돌아갑니다.”
- 템플스테이가 사찰체험만으로는 사람들에게 감동을 지속시키지 못하기에, 사찰체험을 넘어서 사람들의 업식을 바꿔주는 프로그램으로 진화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습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제가 감정을 건드린다는 것이 그것입니다. 자신의 고뇌를 찾고, 참나를 찾고, 자신의 행복을 찾고, 그래서 삶이 풍요로워지는 것을 우리가 해줘야 합니다. 예를 들면 종을 치는 것도 체험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맥놀이 명상을 하면서, 번뇌를 살피고, 마음을 평화롭고 고요하게 하면서, 감정을 건드리는 겁니다. 템플스테이는 자신을 돌아보고, 내면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지금 현재 나의 에너지가 어떤 상태인지…. 자기를 보는 것이죠.”
- 스님께서는 템플스테이를 하면서 어떤 메시지를 주고자 하는가요.
“우리는 늘 길에 있습니다. 그 길에서 마음의 고통을 많이 겪습니다. 그 고통은 그냥 지나가지 않습니다. 자기 몸에 남아 있습니다. 여기서 그 고통을 걸러내 주는 일, 자신의 마음을 정화하는일, 그것입니다.”
- 마음의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템플스테이는 아주 유익하지만, 한편으로 늘 유쾌하고 별스런 걱정 없이 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아마, 그런 분들은 자기만의 치유 방법이 있을 겁니다. 아니면 가면을 쓰고 있던지. 저 역시 저만의 치유 방법이 있습니다. 음악을 듣고, 물을 주고, 산책하고. 아주 간단하죠.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합니다. 또 저는 여기 있으면서 저만의 아지트가 있습니다. 저만 가는 공간에서 호흡하고 명상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옵니다. 자기만의 것들을 자기가 만들어 가면 됩니다. 그리고 일상으로 돌아와 평화롭게 지내면 됩니다.”
| 좋아, 좋아, 좋아
- 어떻게 하면 자기만의 치유법을 찾을 수 있을까요.
“자기만의 수행법이 필요합니다. 저는 알아차림과 호흡명상을 합니다. 알아차림은 저에게 큰 효과를 내게 해줍니다. 습관을 바꾸게 하고 현재 마음 상태를 알게 해줍니다. 예를 들면 예전에 저는 다른 사람 펜을 자꾸 제 주머니에 넣는 습관이 있었습니다. 이것을 즉각 빨리 알아차려야 합니다. 알아차림의 힘이 세지면 습관도 즉각 바꿀 수 있습니다. 어느 날 제가 반찬을 먹는데 제가 먹고 싶은 반찬만 먹는 겁니다. 그때 저는 욕심을 먹고 있는 저를 봤습니다. 방에 들어와 눈물이 났습니다. 출가해서 남들에게 대접만 받고 내 욕심만 채운 겁니다. 그래서 ‘내가 다시는 너에게 욕심을 주나 봐라.’ 하고 결심했죠. 사람들이 저에게 화내지 않는다고 하는데, 저도 화가 납니다. 화나고 짜증내는 것은 건강한 모습입니다. 다만 화를 부리지 않을 뿐입니다. 그게 제 모습입니다.”
- 화는 나지만, 다만 화를 부리지 않는다.
“그렇죠. 건강하니까 화를 내는 겁니다. 화를 내는 것 자체는 건강한 것입니다. 화내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닙니다. ‘아, 나는 이럴 때 화가 나고, 짜증이 나오네. 원망하는 모습이 나오네.’ 이것을 보는 겁니다. 대신 다른 사람들에게 화나 짜증을 부리는 않는 것입니다. 저는 화를 내지 말라고 사람들에게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 스님께서는 어떤 때에 에너지를 얻고 계신가요?
“잠에서 깨는 것과 잠들기 전이 중요합니다. 잠들기 전에 좋은 글과 생각을 해야 합니다. 저는 잠들기 전에 좋은 생각을 하고 호흡하며 잠듭니다. 아침에 일어나도 똑같이 좋은 호흡을 마십니다. 머리에서 발끝까지 에너지를 읽습니다. 스캐너처럼 몸을 읽습니다. 어떤 날은 제 에너지가 별로인 날이 있습니다. 이때는 사람들과 만나고 대화할 때 조심합니다. 또 호흡명상을 하면서 보냅니다. 호흡명상은 지금 가장 현재에 사는 겁니다.”
- 스님께서 생각하시는 2017년 5월 현재 대중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경제적인 고통입니다. 그것 때문에 많이 힘들어합니다. 왜 그런지는 좀 더 연구해봐야 하겠고, 불교계가 그 고통을 위해 공동체와 나눔 활동을 해야 하는데, (불교계의) 숙제입니다.”
- 경제적인 어려움을 호소할 때 스님은 어떤 답을 해주시는가요.
“감사죠. 비교하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는 손가락 열 개 중에 한 개라도 다치면 아주 괴로워합니다. 세상에 만 가지 천 가지 좋은 일이 있는데, 한 가지만 바라보고 괴로워합니다. 얼마나 좋은 일이 많은데요. 자기에게 있는 좋은 것, 행복한 것을 적어보세요. 아주 많습니다.”
스님은 우리에게 스마트폰을 보여주며 웃었다. “여기 ‘좋아, 좋아, 좋아’ 보이죠.(웃음) 이렇게 카톡이 옵니다. 잘 하고 있어요, 하고 보내주고. 저도 ‘좋아, 좋아, 좋아’ 하고 보내줍니다.(웃음)” 템플스테이 참가자들이 스님께 보내준 메시지다. “너무 좋지 않아요?” 스님의 얼굴에 에너지가 넘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