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스님 | 16,000원 | 2017-04-24| 문학, 에세이 | 304쪽
물 흐르고 꽃은 피네
저작·역자 | 금강 | 정가 | 16,000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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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일 | 2017-04-24 | 분야 | 문학, 에세이 |
책정보 | 304쪽|문학 에세이| ISBN_978-89-7479-343-2 (03810) |
책소개 위로
‘땅끝마을 아름다운 절’로 통하는 해남 미황사에는 금강 스님이 있다. 한반도 최남단에 자리한 절, 그 먼 거리를 마다 않고 사람들의 발길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데는 스님의 따듯한 가르침이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금강 스님 가르침의 고갱이를 모았다. 각자의 ‘땅끝’에서 절망하는 이들이 마음을 돌이켜 다시 첫 발을 내딛도록 한, 스님의 따듯하면서도 분명한 지혜의 모음집이다
저자소개 위로
열일곱 살에 대흥사 지운 스님을 은사로 출가하여 해인사, 중앙승가대학, 백양사 운문선원, 원광대학교대학원에서 공부하였다. 2000년부터 미황사 주지를 맡아 한문학당, 템플스테이, 참선수행-참사람의 향기, 괘불재 등 다양한 수행과 교육 문화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세상과 호흡하는 산중 사찰의 전형’을 만들었다. 일반인들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간화선 참선수행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20년 동안 꾸준하게 진행해오고 있다. 백양사에서 참사람수행결사(1997)를 맡아 IMF실직자 단기출가(1998)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한국문화연수원에서 참선입문과 심화과정(2009), 행복공장 홍천수련원에서 재가자를 위한 무문관(2013) 수행 지도를 하였다.
미황사 참사람의 향기(2003)는 2017년 2월에 100회를 돌파, 2천여 명의 사람들이 스님으로부터 직접 1:1 마음점검을 받았다. 우리나라는 물론 미국과 독일, 러시아, 브라질 등 전 세계인들이 마음 수행을 위해 미황사를 찾고 있다. 현재 미황사 주지, 조계종 교육아사리, ‘달라이 라마 방한추진회’ 상임대표를 맡고 있다.
스님은 말한다. ‘극락은 타인을 위한 마음으로 가득한 곳이다.’ 평소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다가 아픈 부위가 생겼을 때 그 아픈 곳에 마음이 닿듯, 타인의 상처와 나의 고통을 살피고 어루만진다면 이곳이 곧 극락이 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스님이 산문山門을 열고 세상과 소통하는 이유이다.
미황사 참사람의 향기(2003)는 2017년 2월에 100회를 돌파, 2천여 명의 사람들이 스님으로부터 직접 1:1 마음점검을 받았다. 우리나라는 물론 미국과 독일, 러시아, 브라질 등 전 세계인들이 마음 수행을 위해 미황사를 찾고 있다. 현재 미황사 주지, 조계종 교육아사리, ‘달라이 라마 방한추진회’ 상임대표를 맡고 있다.
스님은 말한다. ‘극락은 타인을 위한 마음으로 가득한 곳이다.’ 평소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다가 아픈 부위가 생겼을 때 그 아픈 곳에 마음이 닿듯, 타인의 상처와 나의 고통을 살피고 어루만진다면 이곳이 곧 극락이 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스님이 산문山門을 열고 세상과 소통하는 이유이다.
목차 위로
서문 | 고요히 앉으니 물 흐르고 꽃 피다
본래 마음 | 안개 뒤의 푸른 산을 보라
내려놓음 | 나뭇잎이 떨어져 내 발목을 덮다
무문관 | 문 없는 문, 빗장을 열고 나가는 힘
좌선 | 앉아 있음, 즐겁고 좋은 시간
스승 | 나의 그릇이 크면 스승도 크다
도량 | 구슬을 찾으려면 물결을 가라앉혀야 한다
발심 | 바다 한가운데에서 통나무를 붙들고 있는 간절한 마음
묵언 | 마음이 고요에 빠지지 않고, 밖으로 흩어지지 않는 법
나 | 내가 만들어낸 나라는 상을 떠나라
자비 | 세상을 이루는 단 하나의 법
비움 | 텅 비우니 만물이 있는 그대로 비치다
수행 | 사람으로 났으니 고삐 꼭 잡고 한바탕 일을 치르라
무심 | 흐르는 강물은 바다를 꿈꾸지 않는다
공양 | 마음은 아픈 곳에 있다
공동체 | 함께 깨닫고 함께 부처가 되다
선업 | 순간순간 몸과 말과 마음을 정성스럽게 하라
무아 | 비움으로써 쓰임새가 생기다
도반 | 좋은 벗은 생기지 않은 악도 사라지게 한다
대의단 | 생사의 끝, 벼랑까지 밀어붙여 보았는가
깨어있기 | 그냥 죽겠는가 눈을 뜨겠는가
공생 | 나를 보호해주는 크고 부드러운 손이 있다
벽 | 너 거기에서 어떻게 살아나오려는가
무상 | 향은 불에 타고 차는 끓는 물에서 우러나온다
깨달음 | 홀로 깨달음에 안주하지 마라
초심 | 우리 죽을 때까지 공부하자
* 금강 스님의 선물禪物 | ‘참사람의 향기’ 참가자 이야기
본래 마음 | 안개 뒤의 푸른 산을 보라
내려놓음 | 나뭇잎이 떨어져 내 발목을 덮다
무문관 | 문 없는 문, 빗장을 열고 나가는 힘
좌선 | 앉아 있음, 즐겁고 좋은 시간
스승 | 나의 그릇이 크면 스승도 크다
도량 | 구슬을 찾으려면 물결을 가라앉혀야 한다
발심 | 바다 한가운데에서 통나무를 붙들고 있는 간절한 마음
묵언 | 마음이 고요에 빠지지 않고, 밖으로 흩어지지 않는 법
나 | 내가 만들어낸 나라는 상을 떠나라
자비 | 세상을 이루는 단 하나의 법
비움 | 텅 비우니 만물이 있는 그대로 비치다
수행 | 사람으로 났으니 고삐 꼭 잡고 한바탕 일을 치르라
무심 | 흐르는 강물은 바다를 꿈꾸지 않는다
공양 | 마음은 아픈 곳에 있다
공동체 | 함께 깨닫고 함께 부처가 되다
선업 | 순간순간 몸과 말과 마음을 정성스럽게 하라
무아 | 비움으로써 쓰임새가 생기다
도반 | 좋은 벗은 생기지 않은 악도 사라지게 한다
대의단 | 생사의 끝, 벼랑까지 밀어붙여 보았는가
깨어있기 | 그냥 죽겠는가 눈을 뜨겠는가
공생 | 나를 보호해주는 크고 부드러운 손이 있다
벽 | 너 거기에서 어떻게 살아나오려는가
무상 | 향은 불에 타고 차는 끓는 물에서 우러나온다
깨달음 | 홀로 깨달음에 안주하지 마라
초심 | 우리 죽을 때까지 공부하자
* 금강 스님의 선물禪物 | ‘참사람의 향기’ 참가자 이야기
상세소개 위로
벽에서 뒤돌아서면 다시 시작이다
땅끝마을에서 보내온 미황사 금강 스님의 초대
땅끝마을에서 보내온 미황사 금강 스님의 초대
‘땅끝마을 아름다운 절’로 통하는 해남 미황사에는 금강 스님이 있다. 스님은 30여 년 전 퇴락한 미황사에 들어와 오늘날 성聖과 속俗을 망라한 수행 도량으로 우뚝 세운 장본인이다. 특히 2005년부터 13년째 진행해 온 일반인 수행 프로그램 ‘참사람의 향기’는 방송과 언론을 통해 널리 알려지며, 지난 2월 100회를 돌파했다. 이 프로그램의 특별한 점은 금강 스님과의 1:1 차담이다. 지금까지 금강 스님에게서 마음 점검을 받은 이가 모두 2천여 명에 이른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과, 한 사람씩 마주앉아 삶의 이야기를 진중하게 듣고 지혜를 나눈 수행자는 흔하지 않다. 한반도 최남단에 자리한 절, 그 먼 거리를 마다 않고 사람들의 발길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데는 스님의 이러한 따듯한 가르침이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그 가르침의 고갱이를 모았다. 각자의 ‘땅끝’에서 절망하는 이들이 마음을 돌이켜 다시 첫 발을 내딛도록 한, 스님의 따듯하면서도 분명한 지혜의 모음집이다.
스님, 평범한 사람도 참선할 수 있나요?
글로 쉽게 풀어낸 선禪 이야기
스님, 평범한 사람도 참선할 수 있나요?
글로 쉽게 풀어낸 선禪 이야기
금강 스님은 예로부터 승가僧伽의 지혜가 밖으로 흘러나와 세상을 지키는 보루가 되었다고 말한다. 몸과 마음을 다스리는 수행법 또한 산중 스님보다 세상 사람들에게 더 필요하다고 여긴다. 금강 스님이 보통 사람들에게 참선參禪을 권유하는 이유이다. 불교의 ‘선禪’이란 무엇인가. 선은 우리의 본성과 본래 마음을 깨닫는 것, 스님은 이렇게 비유한다.
“미황사는 달마산이 병풍처럼 둘러싸여 있지만 구름 낀 날은 볼 수 없다. 처음 미황사에 온 사람에게 사진을 보여줘도 실감하지 못한다. 산이 안 보인다고 산이 없는 것은 아닌데, 구름에 가려져 있으면 그저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 판단할 뿐이다. 선은 구름 속의 푸른 산을 보는 것이다.”
우리 마음은 본래 깨끗하고 이미 고요하다. 그 마음을 구름과 같은 번뇌가 가리고 있다. 번뇌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눈, 귀, 코, 혀, 피부, 분별 의식에서 쏟아지는 욕심과 나와 내 것이라는 생각에서 오는 갖가지 감정들(기쁨・성냄・슬픔・즐거움・미움・두려움・사랑) 그리고 과거의 경험들이 무의식에 저장이 되고 그 경험들이 하나의 고정된 생각이 되어 현재 의식을 방해하는 구름이 된다. 그 번뇌를 가라앉히고 고요한 마음을 유지하여 고통에서 벗어나는 것이 바로 선이다. 선은 산속 스님들만의 수행법도 아니요, 참을성이 수반되는 고행도 아니며, 실체가 없는 그 무엇을 좇는 것도 아니다. 선은 자유와 행복으로 가는 길이다.
금강 스님은 이 길을 함께 걷는 조용한 안내자로, 길 위에서 만나는 여러 문제와 어려움을 풀어내는 방법을 이 책에서 제시하고 있다.
꽃은 언제 피는가!
‘고요한 깨어 있음’으로 삶의 경계마다 피어나는 꽃
꽃은 언제 피는가!
‘고요한 깨어 있음’으로 삶의 경계마다 피어나는 꽃
이 책 제목 《물 흐르고 꽃은 피네》는 ‘수류화개水流花開’, 추사 김정희가 초의 스님에게 써 준 편지의 한 구절이다. ‘물이 흐른다.’는 것은 매 순간 살아 있다는 의미이다. 과거의 아름다운 추억과 아픈 기억이 현재의 삶을 구속하거나 방해할 수 없다는 말이다. ‘꽃이 핀다.’는 것은 시련을 이겨낸 강인함과 꽃망울을 터트리기 위한 정성스러운 마음을 이야기한다. 사람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살든 그 속에서 물이 흐르고 꽃을 피워낼 수 있어야 한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흘러가는 동안 무심無心의 경지에 이르러 어느 순간 꽃이 활짝 피어난다. 마음이 고요해져야 지혜가 생겨나고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힘이 생긴다는 것을 스님은 강조한다. 단순히 조용한 것이 아니라 깨어 있는 고요함이어야 하며, 그 속에서 지혜가 생겨나 비로소 꽃을 피울 수 있는 것이다.
“보리수 아래 고요하게 앉아 있는 부처님을 생각한다. 매 순간 그렇게 고요할 수 있다면 좋겠다. 고요한 마음에서 지혜가 나오고, 함께하는 자비의 마음이 나온다. 번뇌와 망상이 있으면 안개 낀 산을 보듯이 자신과 사물을 또렷이 볼 수 없다. 지혜가 없으면 자기중심적 사고로 인하여 삶이 불만과 상처투성이가 되기 쉽다. 요즘 사람들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크다. 고요하게 앉아 있을 겨를 없이 바쁘기 때문이다. 현재를 과거와 비교하고 나와 타인을 비교하며 힘들어한다. 참사람은 누구인가. 몸과 말과 마음을 잘 사용하는 사람이다. 그러면 부처님과 같은 향기 나는 삶을 살 수 있다.” (_서문 중에서)
향, 하나에서 무한으로 가는 지혜
‘참사람의 향기’ 참가자들 이야기
“보리수 아래 고요하게 앉아 있는 부처님을 생각한다. 매 순간 그렇게 고요할 수 있다면 좋겠다. 고요한 마음에서 지혜가 나오고, 함께하는 자비의 마음이 나온다. 번뇌와 망상이 있으면 안개 낀 산을 보듯이 자신과 사물을 또렷이 볼 수 없다. 지혜가 없으면 자기중심적 사고로 인하여 삶이 불만과 상처투성이가 되기 쉽다. 요즘 사람들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크다. 고요하게 앉아 있을 겨를 없이 바쁘기 때문이다. 현재를 과거와 비교하고 나와 타인을 비교하며 힘들어한다. 참사람은 누구인가. 몸과 말과 마음을 잘 사용하는 사람이다. 그러면 부처님과 같은 향기 나는 삶을 살 수 있다.” (_서문 중에서)
향, 하나에서 무한으로 가는 지혜
‘참사람의 향기’ 참가자들 이야기
부록 〈금강 스님의 선물禪物〉에는 ‘참사람의 향기’ 참가자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선물禪物’은 중의적인 뜻이다. 누군가에게서 받은 따듯한 선물과 잡히지 않는 ‘선禪’을 지금 당장 적용 가능한 분명한 ‘물성物性’으로서의 의미이다. 7박 8일간의 일정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삶을 돌이키는 기회가 된다. 참가자들은 스스로 그 기회를 만들고 삶의 꽃을 피우기로 결심한 이들이다. 그래서 이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생생하다. 한편으로 묵언, 참선, 화두, 대의단, 의심, 깨달음 등 참선의 과정이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어떤 변화를 가져오는지 간접적으로 느껴볼 수 있다. 체험기의 일부를 소개한다.
“금강 스님이 면담 중에 “너 자신은 도대체 누구냐?”라고 물었는데 그때는 정확하게 답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 답을 구하기 위해 앞으로 내가 살아갈 방향을 아주 조금은 알 것 같았다. 8일 간 수행하는 동안 내 몸에 대해 감사했고, 앞으로 귀 하게 대하고 잘 데리고 살다가 자연으로, 우주로 돌려주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그동안 많은 잡념으로 시간을 허무하게 낭비했지만, 이제는 한 순간 한 순간이 특별하게 느껴진다. 웃음소리도 예쁘게 내려 애쓰고 눈길 닿는 데마다 눈보다 마음으로 먼저 살피게 된다.”
“금강 스님의 가르침으로 이해하기로는, 원래 온 세상이 나의 고향이고 도처가 내 집이며, 보따리 같은 것이 없어도 필요하면 언제고 살림도구가 나온다고 하시는 것 같았다. 순간 나도 모르게 눈물이 쏟아졌다. 얼른 화두를 챙겨 눈물을 수습했다.”
“기독교인인 나에게는 모든 게 어색하고 어려웠다. 둘째 날부터는 조금 나아져서 호흡법(수식관)을 하며 지나간 나의 시간들을 되짚어보았다. 행복한 기억들, 상처가 된 기억들……. 과거로의 여행은 셋째날 오전까지 이어졌다. 넷째 날부터 날마다 듣는 금강 스님의 강의가 조금씩 와 닿기 시작했다. 그날 저녁 좌선하면서 마음의 구름이 조금씩 거둬지는 듯했다. 그러다 여섯째 날, 우연히 방에 들어와 갇혔다가 방문을 열어주자 휘리릭 날아가는 새를 보고 나의 마음이 그 날아가는 새와도 같다고 생각하면서 작은 깨달음을 얻었다. 호텔리어로, 괴로워도 겉으로만 웃고 있었던 나, 이제는 비로소 안과 겉이 같이 웃을 수 있게 되었다.”
“공양 시간에 묵묵히 공양 드시는 분들의 모습을 한 분 한 분 살펴보면서 잘나고 못나고를 떠나 사람이란 존재에 대한 숙연함에 울컥했다. 또 묵언을 하다 보니 상대의 행동을 흠잡을 일도, 칭찬할 일도, 억지로 웃을 일도, 화낼 일도 없었다. 평소 아무렇지 않게 하는 습관들에도 참 많은 감정이 소모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를 찾고 싶어서 왔지만 그건 진심이 아니었던 것 같다. 나는 아직 내 자신(번뇌에 흔들리고 싶어 하지 않은 나)에 대해 깊이 알려 하지 않았고, 오히려 세상에서 상처를 많이 받았다고만 생각했다. 그 또한 망상임을 뒤늦게 알았다. 생각해 보니 나는 가진 것이 참 많고, 복된 사람이었다.”
“자하루에서 좌복에 앉아 화두를 드는데 문득 마룻바닥이 눈에 들어왔다. 같은 크기로 네모반듯하게 톱질해 끼워 맞추어 놓았지만 나무판마다 각각의 결이 있어 서로 같은 나무판은 하나도 없었다. 너도 너 있는 곳에서 너만의 결대로 살 수 있다고, 그동안 잘살아 왔다고 다독여주는 것 같았다. 큰 깨달음이었다. 그때 이후 어딜 가든 새들이, 바람이, 나무들이, 꽃들이, 노을이 나에게 그만하면 잘 살고 있다고 감싸주는 것만 같아 매 순간 벅차올랐다.”
* 금강 스님의 “좋은 때를 놓치지 않고 사는 법”
① 지루한 일상을 한결같이 사는 것이 곧 새롭게 사는 것
경전의 첫 구절은 늘 여시아문如是我聞,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로 시작한다. 여시如是는 ‘모든 현상의 있는 그대로의 참모습, 분별을 떠난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뜻한다. 경전에는 부처님이 가사를 입고 발우를 챙기고 밥을 빌리고 공양을 하고 발을 씻고 자리를 펴고 앉는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왜 그런가. 부처님의 모든 일상에 깃든 한결같은 ‘맑음’을 강조한 것이다. 부처님의 일상처럼 우리도 무엇을 하든 어디에 있든 여시, 항상 ‘맑음’이어야 한다. ‘참사람의 향기’는 7박 8일 일정이다. 새벽 4시에 일어나 예불하고 참선하고 밥 먹고 포행하고 숲에 청소하고 법문 듣고 참선하고 요가하고 잔다. 아침마다, “오늘의 스케줄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오늘은 어제와 같습니다.”라고 말하는데, 우리 삶이 그렇지 않은가. 매일 똑같은 삶을 어떻게 새롭게 살아내느냐가 모두가 가진 인생의 숙제이다. 그것은 곧 깨어 있음이다. 순간순간의 일상을 한결같이 사는 일이 곧 수행이다.
② 늘 몸과 마음의 균형을 유지하라
바쁜 현대인들은 목적을 이루기 위해 몸을 혹사한다. 그러나 몸과 마음은 하나이다. 몸이 무너지면 마음도 힘들다. 단순히 몸의 건강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나’에 대한 수행은 먼저 몸에 대한 자각에서 비롯된다. ‘참사람의 향기’ 참가자의 말이다. “좌선 시간에 다리가 너무 아파 집중하기 어려운 지경이었는데 ‘다리를 자르는 한이 있어도 일어나지 않을 테야.’라며 마음을 다잡았다. 그 순간 ‘아니 이게 내 소유인가? 내가 맘대로 다리를 자를 수 있나?’로 시작해 내 몸에 대한 자각이 일어났다. 그러면서 아, 나의 몸도 저 소나무처럼 이미 당연히 해야 할 바를 알고 한 순간도 쉼 없이 당당했음을 깨닫고 몸에 대한 감사가 가득 차올랐다. 이런 위대한 몸을 나는 나 좋을 대로 사용하고, 제대로 대접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어 뜨거운 눈물이 솟았다.” 몸과 정신이 균형을 이루어야 편안하며 바른 공부를 할 수 있다. 몸을 혹사하거나 방치하지 말고, 이 몸을 통해 어떤 좋은 삶을 살 것인가를 궁리해야 한다.
③ 고요함은 몸의 반복, 마음의 반복을 통해 지킨다
스님이 되기 위한 교육 과정에는 ‘습의’라고 하여 앉는 법과 차수, 절, 예불, 옷 입는 법, 발우공양 하는 법 등을 배우고 또 배운다. 금강 스님은 그 시절 지루하리만치 반복하던 배움이 지금껏 수행자로 걸어올 수 있는 바탕이 되었다고 고백한다. 몇 생을 수행자로 거듭해서 태어난 달라이 라마 또한 여든의 노구에도 불구하고 새벽 2시에 일어나 명상하는 습관을 평생 이어오고 있다. 몸의 습관은 곧 마음의 습관으로 이어진다. 매일 아침 108배 하는 습관이나 10분간의 좌선 등 마음을 고요하게 가라앉히는 습관을 들이면 하루를 그 마음으로 살게 된다. 바쁜 일상 속에서 순간순간이 감정과 상황에 끌려가지 않게 되는 것이다.
④ 지금 잘 하고 있는가? 일상에서 드는 화두
참선에서 화두를 드는 것은 깨어 있기 위한 방법이다. 화두는 ‘나’에서 벗어나게 한다. 화두는 감정의 동요가 일어나기 전, 번뇌와 명상이 생기기 전의 자리로 돌아가 자신과 문답하며 무아의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다. ‘나’라는 시선에서 벗어나 분별없이 평등하게 바라보면 비로소 모든 것에 자유로워진다. 삶이 괴롭고 힘들 때 현대인들은 이를 극복하기 위해 부정적인 방법을 쓴다. 타인을 괴롭히거나 술에 의지하거나 어떤 것에 과도하게 집착한다. 이 부정적인 행동으로 인해 결국 불행해진다. 평소 ‘나는 누구인가’ ‘이것은 무엇인가’와 같은 질문을 던지며 화두 수행을 하면 매 순간 일상에서 부딪치는 크고 작은 고민과 갈등을 감정으로 마주하지 않고 지긋이 바라보게 된다. 그럼으로써 미운 친구가, 거북한 상사가, 얄궂은 가족이 부처님으로 환치되는 경이로움을 맛보기에 이른다.
⑤ 사물을 볼 때 자비심의 마음으로 보라
우리는 보통 나의 것, 내 것을 생각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생각해보라. 진정 나의 것이라고 생각한 그것이 진정 나의 것인가. ‘나’를 벗어난 무아無我를 체험하면 세상을 자비심으로 바라보게 된다.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을 무아의 마음으로 바라보면, 그 사람 덕분에 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밉고 싫은 마음이 고마운 마음으로 변하는 것이다. 세상에 홀로 존재하는 것은 없다. 나와 사물과 세상은 모두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연기적 관계를 깨달으면 모든 것에 마음이 활짝 열린다.
⑥ 매 순간을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라
참선은 곧 깨어 있음이다. 일상에 대입하면 ‘지금’에 집중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매일 새벽 금강 스님은 대웅전에서 좌선한다. 대웅전은 수천 년 동안 이어온 수행자의 기운이 스며 있는 곳이다. 한겨울 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것은 오늘 이 순간이 아니면 언제 이 자리에 또 앉을 수 있을까, 하는 마음 때문이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 만나는 사람, 바라보는 풍경 나아가 사람으로 태어난 이 삶까지 나에게는 단 한 번의 기회이다. 일기일회一機一會의 마음으로 바라본다면 모든 것이 새롭고, 잘해 보고 싶은 의지가 생겨난다. 그 마음이라면 언제 어떤 일이든, 어느 사람이건, 나에게 다가오는 모든 것들을 당당하게 맞을 수 있다. 인생에서 좋은 때는 없다. 지금 이 순간을 온전하게 살아내는 것, 그것이 바로 가장 좋은 때이자 좋은 삶이다.
“금강 스님이 면담 중에 “너 자신은 도대체 누구냐?”라고 물었는데 그때는 정확하게 답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 답을 구하기 위해 앞으로 내가 살아갈 방향을 아주 조금은 알 것 같았다. 8일 간 수행하는 동안 내 몸에 대해 감사했고, 앞으로 귀 하게 대하고 잘 데리고 살다가 자연으로, 우주로 돌려주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그동안 많은 잡념으로 시간을 허무하게 낭비했지만, 이제는 한 순간 한 순간이 특별하게 느껴진다. 웃음소리도 예쁘게 내려 애쓰고 눈길 닿는 데마다 눈보다 마음으로 먼저 살피게 된다.”
“금강 스님의 가르침으로 이해하기로는, 원래 온 세상이 나의 고향이고 도처가 내 집이며, 보따리 같은 것이 없어도 필요하면 언제고 살림도구가 나온다고 하시는 것 같았다. 순간 나도 모르게 눈물이 쏟아졌다. 얼른 화두를 챙겨 눈물을 수습했다.”
“기독교인인 나에게는 모든 게 어색하고 어려웠다. 둘째 날부터는 조금 나아져서 호흡법(수식관)을 하며 지나간 나의 시간들을 되짚어보았다. 행복한 기억들, 상처가 된 기억들……. 과거로의 여행은 셋째날 오전까지 이어졌다. 넷째 날부터 날마다 듣는 금강 스님의 강의가 조금씩 와 닿기 시작했다. 그날 저녁 좌선하면서 마음의 구름이 조금씩 거둬지는 듯했다. 그러다 여섯째 날, 우연히 방에 들어와 갇혔다가 방문을 열어주자 휘리릭 날아가는 새를 보고 나의 마음이 그 날아가는 새와도 같다고 생각하면서 작은 깨달음을 얻었다. 호텔리어로, 괴로워도 겉으로만 웃고 있었던 나, 이제는 비로소 안과 겉이 같이 웃을 수 있게 되었다.”
“공양 시간에 묵묵히 공양 드시는 분들의 모습을 한 분 한 분 살펴보면서 잘나고 못나고를 떠나 사람이란 존재에 대한 숙연함에 울컥했다. 또 묵언을 하다 보니 상대의 행동을 흠잡을 일도, 칭찬할 일도, 억지로 웃을 일도, 화낼 일도 없었다. 평소 아무렇지 않게 하는 습관들에도 참 많은 감정이 소모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를 찾고 싶어서 왔지만 그건 진심이 아니었던 것 같다. 나는 아직 내 자신(번뇌에 흔들리고 싶어 하지 않은 나)에 대해 깊이 알려 하지 않았고, 오히려 세상에서 상처를 많이 받았다고만 생각했다. 그 또한 망상임을 뒤늦게 알았다. 생각해 보니 나는 가진 것이 참 많고, 복된 사람이었다.”
“자하루에서 좌복에 앉아 화두를 드는데 문득 마룻바닥이 눈에 들어왔다. 같은 크기로 네모반듯하게 톱질해 끼워 맞추어 놓았지만 나무판마다 각각의 결이 있어 서로 같은 나무판은 하나도 없었다. 너도 너 있는 곳에서 너만의 결대로 살 수 있다고, 그동안 잘살아 왔다고 다독여주는 것 같았다. 큰 깨달음이었다. 그때 이후 어딜 가든 새들이, 바람이, 나무들이, 꽃들이, 노을이 나에게 그만하면 잘 살고 있다고 감싸주는 것만 같아 매 순간 벅차올랐다.”
* 금강 스님의 “좋은 때를 놓치지 않고 사는 법”
① 지루한 일상을 한결같이 사는 것이 곧 새롭게 사는 것
경전의 첫 구절은 늘 여시아문如是我聞,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로 시작한다. 여시如是는 ‘모든 현상의 있는 그대로의 참모습, 분별을 떠난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뜻한다. 경전에는 부처님이 가사를 입고 발우를 챙기고 밥을 빌리고 공양을 하고 발을 씻고 자리를 펴고 앉는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왜 그런가. 부처님의 모든 일상에 깃든 한결같은 ‘맑음’을 강조한 것이다. 부처님의 일상처럼 우리도 무엇을 하든 어디에 있든 여시, 항상 ‘맑음’이어야 한다. ‘참사람의 향기’는 7박 8일 일정이다. 새벽 4시에 일어나 예불하고 참선하고 밥 먹고 포행하고 숲에 청소하고 법문 듣고 참선하고 요가하고 잔다. 아침마다, “오늘의 스케줄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오늘은 어제와 같습니다.”라고 말하는데, 우리 삶이 그렇지 않은가. 매일 똑같은 삶을 어떻게 새롭게 살아내느냐가 모두가 가진 인생의 숙제이다. 그것은 곧 깨어 있음이다. 순간순간의 일상을 한결같이 사는 일이 곧 수행이다.
② 늘 몸과 마음의 균형을 유지하라
바쁜 현대인들은 목적을 이루기 위해 몸을 혹사한다. 그러나 몸과 마음은 하나이다. 몸이 무너지면 마음도 힘들다. 단순히 몸의 건강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나’에 대한 수행은 먼저 몸에 대한 자각에서 비롯된다. ‘참사람의 향기’ 참가자의 말이다. “좌선 시간에 다리가 너무 아파 집중하기 어려운 지경이었는데 ‘다리를 자르는 한이 있어도 일어나지 않을 테야.’라며 마음을 다잡았다. 그 순간 ‘아니 이게 내 소유인가? 내가 맘대로 다리를 자를 수 있나?’로 시작해 내 몸에 대한 자각이 일어났다. 그러면서 아, 나의 몸도 저 소나무처럼 이미 당연히 해야 할 바를 알고 한 순간도 쉼 없이 당당했음을 깨닫고 몸에 대한 감사가 가득 차올랐다. 이런 위대한 몸을 나는 나 좋을 대로 사용하고, 제대로 대접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어 뜨거운 눈물이 솟았다.” 몸과 정신이 균형을 이루어야 편안하며 바른 공부를 할 수 있다. 몸을 혹사하거나 방치하지 말고, 이 몸을 통해 어떤 좋은 삶을 살 것인가를 궁리해야 한다.
③ 고요함은 몸의 반복, 마음의 반복을 통해 지킨다
스님이 되기 위한 교육 과정에는 ‘습의’라고 하여 앉는 법과 차수, 절, 예불, 옷 입는 법, 발우공양 하는 법 등을 배우고 또 배운다. 금강 스님은 그 시절 지루하리만치 반복하던 배움이 지금껏 수행자로 걸어올 수 있는 바탕이 되었다고 고백한다. 몇 생을 수행자로 거듭해서 태어난 달라이 라마 또한 여든의 노구에도 불구하고 새벽 2시에 일어나 명상하는 습관을 평생 이어오고 있다. 몸의 습관은 곧 마음의 습관으로 이어진다. 매일 아침 108배 하는 습관이나 10분간의 좌선 등 마음을 고요하게 가라앉히는 습관을 들이면 하루를 그 마음으로 살게 된다. 바쁜 일상 속에서 순간순간이 감정과 상황에 끌려가지 않게 되는 것이다.
④ 지금 잘 하고 있는가? 일상에서 드는 화두
참선에서 화두를 드는 것은 깨어 있기 위한 방법이다. 화두는 ‘나’에서 벗어나게 한다. 화두는 감정의 동요가 일어나기 전, 번뇌와 명상이 생기기 전의 자리로 돌아가 자신과 문답하며 무아의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다. ‘나’라는 시선에서 벗어나 분별없이 평등하게 바라보면 비로소 모든 것에 자유로워진다. 삶이 괴롭고 힘들 때 현대인들은 이를 극복하기 위해 부정적인 방법을 쓴다. 타인을 괴롭히거나 술에 의지하거나 어떤 것에 과도하게 집착한다. 이 부정적인 행동으로 인해 결국 불행해진다. 평소 ‘나는 누구인가’ ‘이것은 무엇인가’와 같은 질문을 던지며 화두 수행을 하면 매 순간 일상에서 부딪치는 크고 작은 고민과 갈등을 감정으로 마주하지 않고 지긋이 바라보게 된다. 그럼으로써 미운 친구가, 거북한 상사가, 얄궂은 가족이 부처님으로 환치되는 경이로움을 맛보기에 이른다.
⑤ 사물을 볼 때 자비심의 마음으로 보라
우리는 보통 나의 것, 내 것을 생각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생각해보라. 진정 나의 것이라고 생각한 그것이 진정 나의 것인가. ‘나’를 벗어난 무아無我를 체험하면 세상을 자비심으로 바라보게 된다.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을 무아의 마음으로 바라보면, 그 사람 덕분에 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밉고 싫은 마음이 고마운 마음으로 변하는 것이다. 세상에 홀로 존재하는 것은 없다. 나와 사물과 세상은 모두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연기적 관계를 깨달으면 모든 것에 마음이 활짝 열린다.
⑥ 매 순간을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라
참선은 곧 깨어 있음이다. 일상에 대입하면 ‘지금’에 집중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매일 새벽 금강 스님은 대웅전에서 좌선한다. 대웅전은 수천 년 동안 이어온 수행자의 기운이 스며 있는 곳이다. 한겨울 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것은 오늘 이 순간이 아니면 언제 이 자리에 또 앉을 수 있을까, 하는 마음 때문이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 만나는 사람, 바라보는 풍경 나아가 사람으로 태어난 이 삶까지 나에게는 단 한 번의 기회이다. 일기일회一機一會의 마음으로 바라본다면 모든 것이 새롭고, 잘해 보고 싶은 의지가 생겨난다. 그 마음이라면 언제 어떤 일이든, 어느 사람이건, 나에게 다가오는 모든 것들을 당당하게 맞을 수 있다. 인생에서 좋은 때는 없다. 지금 이 순간을 온전하게 살아내는 것, 그것이 바로 가장 좋은 때이자 좋은 삶이다.
책속으로 위로
자기 자신의 본래 마음에 기준을 두고 그에 대한 믿음을 강조하고 있다. 과거의 경험이나 자신의 추측, 상상하는 생각을 과감히 버리는 무아적 관점, 그리고 현재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모든 것은 홀로 있을 수 없다는 연기緣起적 통찰이 살아있어야 지혜가 나온다. 그런 지혜의 마음을 늘 살아있게 쓰는 것이 행복하고 평화롭고 자유자재한 삶으로 가꾸는 것이다. 결국 모든 대상의 본질을 본다는 것은 밝은 눈으로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는 데 있다. (13쪽)
선禪은 이처럼 자신을 신뢰하게 하고, 가장 근본 마음의 상태로 되돌려주는 기능을 한다. 어느 곳에서 어떠한 대상을 만나도 비교하는 마음과 추측, 상상하는 마음을 내려놓고, 현재적 관점을 갖게 해준다. 그리하여 행동은 밝아지고 사고는 자유로워진다. (15쪽)
종색 선사는 “선정禪定을 닦는 수행은 누구에게나 가장 절실하고 중요한 일이다.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고 조용히 좌선하여 사유하지 않는다면, 자신의 일상생활에서 매사에 지금, 여기의 자기 자신을 상실하여 정신없이 멍청하게 살게 된다.”고 경고하고 있다. 지금 우리의 모습은 어떠한가. 자기 인생이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남들보다 조금 더 빨리 가려고 앞만 보고 달려가고 있지 않는가. (63쪽)
묵언 수행은 단지 말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마음속에 수없이 떠오르는 질문을 스스로 듣는 기회가 된다. 묵언은 여럿이 함께 수행을 하는 이익과 홀로 깊어지는 이익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좋은 수행의 도구이다. (84쪽)
매일 새벽, 선방보다 대웅전에서 좌선하기를 고집하는데 함께 하는 대중스님들 중엔 더러 불만이 있나 봅니다. 너무 춥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나는 잠자코 있습니다. ‘세상에 이보다 좋은 자리가 또 있을까? 또 오늘 이 순간이 아니면 언제 또 이 자리에 앉아 볼 수 있을까.’ 그런 마음 때문입니다. (90쪽)
마당으로 들어서 하늘을 보는데 숲속에서와는 달리 별빛이 흐립니다. 몇 해 전 숭례문이 화재로 모두 타버린 후 방화 시설을 보완했습니다. 마당 곳곳에 방범등을 켜놓으니 깜깜한 산속 절집이 대낮처럼 환합니다.……사람의 마음도 답답함 속에서 오히려 비약하는 길이 있지 않을까요. 우리는 불빛을 너무 많이 켜놓고 사는지도 모릅니다. 하고 싶은 일도 많고, 해야 할 일도 많습니다. 그렇게 수많은 불을 켜놓으나 기실 그것은 내가 지금 어디에 서 있는지 진정한 내 삶의 의미는 무엇인지 모르고 미망 속에 두서없이 켜놓은 것들은 아닌가 싶습니다. (96쪽)
선 수행의 목적은 자기 자신을 알기 위함이다. 자신이 만들어놓은 ‘나’라는 상을 떠날 때 비로소 진정한 나를 만나고, 지혜의 길이 열리고, 활발발 대자유인의 보살행이 나온다는 옛 스님들의 말씀을 새긴다. (110쪽)
어려서는 나의 아픔과 답답함을 어머니의 손이 다독거려 주었다. 그러나 어른이 되어서는 나를 다독거려주고 받아줄 따뜻한 손은 없다. 자신의 본래 성품에 ‘잘하고자 하는 마음’과 ‘돕고자 하는 마음’이 있으니 그것에 의지하여 살아야 한다. 그것은 다름 아닌 자비심이다. 그 자비심이 바로 관세음보살이다. 관세음보살을 입으로 부르며, 자신이 가진 자비심을 일으켜 자신을 다독거리는 것이야말로, 무엇보다 믿을 수 있는 손이다. (119쪽)
물은 지나온 것들을 생각하지 않는다. 만약 물이 과거 지나왔던 아름다운 꽃밭만 생각한다면 현재 만나는 것들에 대한 불만스러운 마음으로 흘러갈 것이다. 물은 다가올 것들을 미리 생각하지 않는다. ‘폭포를 만나면 어떡하지’ 하면서 공포스러운 마음으로 흘러가지 않는다. 깊은 웅덩이를 만날 것이라는 두려움을 안고 주저하며 흐르지 않는다. 물은 늘 새롭게 흐른다. 아름다운 꽃과 새들을 만나고, 신나게 미끄럼도 타고 날카로운 돌무더기도 부드럽게 감싸며 흐른다. 그렇게 모였다 흩어지기를 반복하며 흐를 뿐이다. 또 물은 바다로 간다는 기대를 하지 않는다. 그래서 물에게는 온갖 가능성이 있다. 논밭으로 흘러든 물은 기름진 양식이 되기도 하고, 여름날 햇볕을 받아 수증기로 증발하여 다시 산으로 올라가거나 또는 빗방울로 더 빨리 바다에 도착하기도 한다. 가능성을 열어둔다면 무엇을 만나도 어떤 상황에서도 기쁠 것이며 좋은 기회가 된다. (137쪽)
달마산 산기슭의 푸른 소나무를 가리키며 물었습니다.
“여기 모이신 분들은 저 소나무가 어떻게 보이십니까”
화가가 답했습니다.
“오래오래 두고 그림으로 그리면 좋겠습니다.”
이번엔 목수가 말했습니다.
“집 대들보로 쓰면 딱 맞겠습니다.”
소나무를 보는 화가와 목수의 선善은 이렇듯 다릅니다. 자신의 경험과 지식에 맞춰 보는 것입니다. 어쩌면 그들은 서로의 생각을 이해하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화가와 목수뿐일까요? 그 모임의 사람들이 각기 바라보는 소나무까지, 모두 40그루의 소나무가 그 자리에 있는 셈입니다. 자기만의 시각을 고집한 탓에 소나무의 본래면목, 혹은 소나무의 다른 가능성을 닫아버리는 이것을 ‘어리석음’이라 합니다. (182쪽)
미황사에서 어떤 감동을 받았느냐고 물으면 저마다 다른 답변이 돌아옵니다. 누구는 새들의 노랫소리가 가슴을 울렸다 하고, 어떤 이는 부도전가는 길이 좋았다 하고, 또는 달마산 꼭대기에서 환희심을 느꼈다고 합니다. 내가 산꼭대기에 데려다 준 것도 아니고 새소리를 들려준 것도 아닙니다. 그때의 햇살과 바람, 나무와 새들, 한 공간에서 함께 어울렸던 사람들이 아름다운 경험을 만들어준 셈입니다. 내 마음이 열려 있으니 사방 곳곳에서 위안을 받고 기쁨을 느끼는 것이지요. (183쪽)
먹는 습관은 우리 일상에 고스란히 반영됩니다. 편식하는 사람은 자기가 좋아하는 음식만 골라먹듯이 일상에서도 좋아하는 일만 하고 사람에 대한 호불호가 분명합니다. 싫어하는 음식이 나오면 짜증이 나듯 싫어하는 유형의 사람이 다가오면 거북하고 싫은 티를 냅니다. 원하지 않는 일 앞에서 내켜하지 않는 마음이 먼저 일어나고 결국 그 일을 그르치기도 합니다. 밥 먹는 일은 숨 쉬는 것과 마찬가지로 태어나서 지금까지 쉼 없이 이어온 행동입니다. 밥 먹는 습관이 바뀐다면 살아가는 방식도 바뀝니다. 큰 것을 바꾸려 하지 말고 작은 것을 바꾸면 됩니다. (187쪽)
동체대비는 무엇인가. 한 몸으로 슬퍼한다는 뜻. 부처님은 중생에게 자비를 베푸는 것이 중생이 불쌍해서가 아니라 부처님과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너도 부처, 나도 부처, 너와 나는 다르지 않으므로 남에게 베푼 자비는 곧 나에게 베푼 것. 다시 말하면 자비에는 그 어떤 조건도 따라서는 안 되며, 베푼다는 말도 의미가 없는 것이다. (238쪽)
티베트 스님들은 아주 의미 있는 때에 모래 만다라를 만든다. 다섯 명의 스님이 둘러앉아 바닥을 캔버스 삼아 입자가 아주 고운 색 모래로 그림을 그린다. 보통 7일 동안 온갖 정성을 쏟는다. 그림을 그리는 동안에는 호흡이 조금만 흐트러져서도 안 된다. 집중하며 그림을 그리는 과정 자체가 바로 완벽한 삼매의 수행이다. 그러고 나서 모래 만다라가 완성되면 많은 사람들을 모아놓고, 축원을 하고는 곧바로 만다라를 지워버린다. 채 몇 분 안 되는 시간이다. 잔뜩 기대하며 지켜본 사람들은 허망하다. 그 허망함이 바로 무상無常이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아무리 훌륭하고 아름다운 것이라도 언젠가는 변화되고 허물어지고 사라진다. 그러나 허망할 것도 없다. 완성된 만다라는 이미 바라보았던 이들의 가슴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모래 만다라를 완성하는 그 긴 과정이 삼매이고, 그 행위 안에 수행이 깃들어 있었기에 모래 만다라는 그저 허상이라는 것. 그 깨침을 위한 그림이 만다라다. (254쪽)
향을 피우면, 향의 몸은 연기로 변하고 연기는 곧 흩어져 향기로 변하여 온 방에 가득해진다. 눈에 보이는 세계에서 눈에 보이지 않은 세계로 변화하였을 뿐 향의 본질은 오히려 수천 수만으로 확대된 것이다. 자신의 몸이 없어지는 무상을 받아들여야, 지혜로 가는 새로운 시작을 알 수 있다. (258쪽)
본래의 모습을 버려야 향도 차도 비약적인 새로운 만남이 이루어지듯 매일매일 놓고 떠남을 잘해야 오늘을 살아있는 행복으로 만들 수 있다. 차를 마실 때 순수한 색과 향과 맛을 우려내듯이 머물지 않는 성품에서 자유로움을 찾고, 번뇌와 망상이 없는 성품에서 평화로움을 찾고, 고정된 생각이 없는 곳에서 행복을 찾는다. (260쪽)
여러분은 지난해 법회가 시작된 후 달마다 마음을 내 저의 이야기를 들으러 오십니다. 오늘 이 자리의 만남은 여러분과 제가 한 마음을 냈기 때문입니다. 만남은 둘의 마음이 마주하고 깊어져야 가능해집니다. 하지만 마음은 늘 변할 수 있습니다. 그 마음을 유지하려면, 첫 법회 때 가져온 그 마음이 계속 일어나야 합니다. 한 번 마음 냈다고 계속 이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첫 마음을 매번 다시 일으켜야 합니다. 오늘 아침, 여러분이 그 마음을 일으켰기에 오늘 우리는 이 자리에 함께 있는 것입니다. 오늘은 초심初心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겠습니다. 처음 마음, 선심초심禪心初心. 선심은 바로 첫 마음에 있습니다. 첫 마음을 잃지 않는 것이 바로 깨달음을 얻는 길입니다.” (274쪽)
“너 어디서 왔느냐”
“예, 저 전라도 해남에서 왔습니다.”
“뭣 때문에 왔느냐”
“예, 행자 생활하러 왔습니다.”
그러자 스님은 내 손을 덥석 잡았다. 엷은 미소를 띄우며 이어지는 말씀.
“야, 너 정말 잘 왔다. 우리 죽을 때까지 공부하자. 이 생에 태어났다 생각지 말고 공부하다 죽자.”
그 말을 듣는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275쪽)
내가 어떤 일을 계획하거나, 소임을 옮겨 갈 때면 스님의 그 말씀이 불쑥불쑥 떠올랐다. 나라고 게으른 마음이 왜 없겠는가. 게으른 마음과 욕심내는 마음과 성내는 마음이 올라올 때 그 말을 생각하면, ‘그래, 다시 공부하자’, ‘처음으로 돌아가자.’는 결심이 새롭게 떠올랐다. 그 결심이 하루하루 이어져 지금까지 수행하며 살고 있다. (276쪽)
가장 큰 고통은 일상의 삶이다. 겉으로는 평온해 보이지만 하루하루 살얼음판이다. 수시로 수많은 것들을 선택해야 하는 갈등이 괴롭고, 말 한마디 행동 하나 잘못할까 몸을 사리고, 늘 후회와 불안으로 하루하루 겨우 달래면서 살아간다. 그야말로 삶은 고苦의 연속이다. (278쪽)
어떻게 해야 그런 관점들을 내려놓고, 석가모니 부처님이 발견한 본래 부처의 마음자리를 드러낼 것인가. 바로 ‘초심’에 답이 있다. 옛 선사들은 바로 그 자리를 생각하기 이전 자리, 말하기 이전 자리라고 한다. 그것은 지혜의 자리이자 깨달음의 자리이며 부처의 자리이다. 우리 본래 자성이다. 그 마음을 언제 내는가? 바로 지금 이 순간. 그 마음이 바로 초심이다. 첫 마음, 어떤 대상을 볼 때 바로 내 생각이 일어나기 전, 바로 그 마음으로 보라는 것이다. 눈으로 ‘예쁘다’ ‘추하다’ 가늠하기 전, 아무 생각 없이 있는 그대로를 보는 것이다. 그 마음을 놓치면, 내 경험과 학습된 상식들로 보고 판단한다. 첫 마음을 믿지 못하고 그동안의 경험, 어디서 들었던 것, 배웠던 것들로 바라보고 추측한다. 그런 상식과 경험이 더 잘 보게 할 것 같지만 오히려 더 흐리게 보게 한다. (279쪽)
몸을 쉬는 법은 누구나 잘 안다. 그런데 마음 쉴 줄은 모른다. 마음도 쉬어야 한다. 몸은 잠들면 쉬어지는데, 마음은 어떻게 쉬는가? 마음의 쉼은 늘 순수한 본래 마음 상태로 회복하는 것이다. 바로 초심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우리 본래 마음으로 돌아가, 이 순간을 보는 것이 마음을 쉬는 것이다. 곧 그것이 좌선이다. (282쪽)
선禪은 이처럼 자신을 신뢰하게 하고, 가장 근본 마음의 상태로 되돌려주는 기능을 한다. 어느 곳에서 어떠한 대상을 만나도 비교하는 마음과 추측, 상상하는 마음을 내려놓고, 현재적 관점을 갖게 해준다. 그리하여 행동은 밝아지고 사고는 자유로워진다. (15쪽)
종색 선사는 “선정禪定을 닦는 수행은 누구에게나 가장 절실하고 중요한 일이다.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고 조용히 좌선하여 사유하지 않는다면, 자신의 일상생활에서 매사에 지금, 여기의 자기 자신을 상실하여 정신없이 멍청하게 살게 된다.”고 경고하고 있다. 지금 우리의 모습은 어떠한가. 자기 인생이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남들보다 조금 더 빨리 가려고 앞만 보고 달려가고 있지 않는가. (63쪽)
묵언 수행은 단지 말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마음속에 수없이 떠오르는 질문을 스스로 듣는 기회가 된다. 묵언은 여럿이 함께 수행을 하는 이익과 홀로 깊어지는 이익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좋은 수행의 도구이다. (84쪽)
매일 새벽, 선방보다 대웅전에서 좌선하기를 고집하는데 함께 하는 대중스님들 중엔 더러 불만이 있나 봅니다. 너무 춥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나는 잠자코 있습니다. ‘세상에 이보다 좋은 자리가 또 있을까? 또 오늘 이 순간이 아니면 언제 또 이 자리에 앉아 볼 수 있을까.’ 그런 마음 때문입니다. (90쪽)
마당으로 들어서 하늘을 보는데 숲속에서와는 달리 별빛이 흐립니다. 몇 해 전 숭례문이 화재로 모두 타버린 후 방화 시설을 보완했습니다. 마당 곳곳에 방범등을 켜놓으니 깜깜한 산속 절집이 대낮처럼 환합니다.……사람의 마음도 답답함 속에서 오히려 비약하는 길이 있지 않을까요. 우리는 불빛을 너무 많이 켜놓고 사는지도 모릅니다. 하고 싶은 일도 많고, 해야 할 일도 많습니다. 그렇게 수많은 불을 켜놓으나 기실 그것은 내가 지금 어디에 서 있는지 진정한 내 삶의 의미는 무엇인지 모르고 미망 속에 두서없이 켜놓은 것들은 아닌가 싶습니다. (96쪽)
선 수행의 목적은 자기 자신을 알기 위함이다. 자신이 만들어놓은 ‘나’라는 상을 떠날 때 비로소 진정한 나를 만나고, 지혜의 길이 열리고, 활발발 대자유인의 보살행이 나온다는 옛 스님들의 말씀을 새긴다. (110쪽)
어려서는 나의 아픔과 답답함을 어머니의 손이 다독거려 주었다. 그러나 어른이 되어서는 나를 다독거려주고 받아줄 따뜻한 손은 없다. 자신의 본래 성품에 ‘잘하고자 하는 마음’과 ‘돕고자 하는 마음’이 있으니 그것에 의지하여 살아야 한다. 그것은 다름 아닌 자비심이다. 그 자비심이 바로 관세음보살이다. 관세음보살을 입으로 부르며, 자신이 가진 자비심을 일으켜 자신을 다독거리는 것이야말로, 무엇보다 믿을 수 있는 손이다. (119쪽)
물은 지나온 것들을 생각하지 않는다. 만약 물이 과거 지나왔던 아름다운 꽃밭만 생각한다면 현재 만나는 것들에 대한 불만스러운 마음으로 흘러갈 것이다. 물은 다가올 것들을 미리 생각하지 않는다. ‘폭포를 만나면 어떡하지’ 하면서 공포스러운 마음으로 흘러가지 않는다. 깊은 웅덩이를 만날 것이라는 두려움을 안고 주저하며 흐르지 않는다. 물은 늘 새롭게 흐른다. 아름다운 꽃과 새들을 만나고, 신나게 미끄럼도 타고 날카로운 돌무더기도 부드럽게 감싸며 흐른다. 그렇게 모였다 흩어지기를 반복하며 흐를 뿐이다. 또 물은 바다로 간다는 기대를 하지 않는다. 그래서 물에게는 온갖 가능성이 있다. 논밭으로 흘러든 물은 기름진 양식이 되기도 하고, 여름날 햇볕을 받아 수증기로 증발하여 다시 산으로 올라가거나 또는 빗방울로 더 빨리 바다에 도착하기도 한다. 가능성을 열어둔다면 무엇을 만나도 어떤 상황에서도 기쁠 것이며 좋은 기회가 된다. (137쪽)
달마산 산기슭의 푸른 소나무를 가리키며 물었습니다.
“여기 모이신 분들은 저 소나무가 어떻게 보이십니까”
화가가 답했습니다.
“오래오래 두고 그림으로 그리면 좋겠습니다.”
이번엔 목수가 말했습니다.
“집 대들보로 쓰면 딱 맞겠습니다.”
소나무를 보는 화가와 목수의 선善은 이렇듯 다릅니다. 자신의 경험과 지식에 맞춰 보는 것입니다. 어쩌면 그들은 서로의 생각을 이해하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화가와 목수뿐일까요? 그 모임의 사람들이 각기 바라보는 소나무까지, 모두 40그루의 소나무가 그 자리에 있는 셈입니다. 자기만의 시각을 고집한 탓에 소나무의 본래면목, 혹은 소나무의 다른 가능성을 닫아버리는 이것을 ‘어리석음’이라 합니다. (182쪽)
미황사에서 어떤 감동을 받았느냐고 물으면 저마다 다른 답변이 돌아옵니다. 누구는 새들의 노랫소리가 가슴을 울렸다 하고, 어떤 이는 부도전가는 길이 좋았다 하고, 또는 달마산 꼭대기에서 환희심을 느꼈다고 합니다. 내가 산꼭대기에 데려다 준 것도 아니고 새소리를 들려준 것도 아닙니다. 그때의 햇살과 바람, 나무와 새들, 한 공간에서 함께 어울렸던 사람들이 아름다운 경험을 만들어준 셈입니다. 내 마음이 열려 있으니 사방 곳곳에서 위안을 받고 기쁨을 느끼는 것이지요. (183쪽)
먹는 습관은 우리 일상에 고스란히 반영됩니다. 편식하는 사람은 자기가 좋아하는 음식만 골라먹듯이 일상에서도 좋아하는 일만 하고 사람에 대한 호불호가 분명합니다. 싫어하는 음식이 나오면 짜증이 나듯 싫어하는 유형의 사람이 다가오면 거북하고 싫은 티를 냅니다. 원하지 않는 일 앞에서 내켜하지 않는 마음이 먼저 일어나고 결국 그 일을 그르치기도 합니다. 밥 먹는 일은 숨 쉬는 것과 마찬가지로 태어나서 지금까지 쉼 없이 이어온 행동입니다. 밥 먹는 습관이 바뀐다면 살아가는 방식도 바뀝니다. 큰 것을 바꾸려 하지 말고 작은 것을 바꾸면 됩니다. (187쪽)
동체대비는 무엇인가. 한 몸으로 슬퍼한다는 뜻. 부처님은 중생에게 자비를 베푸는 것이 중생이 불쌍해서가 아니라 부처님과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너도 부처, 나도 부처, 너와 나는 다르지 않으므로 남에게 베푼 자비는 곧 나에게 베푼 것. 다시 말하면 자비에는 그 어떤 조건도 따라서는 안 되며, 베푼다는 말도 의미가 없는 것이다. (238쪽)
티베트 스님들은 아주 의미 있는 때에 모래 만다라를 만든다. 다섯 명의 스님이 둘러앉아 바닥을 캔버스 삼아 입자가 아주 고운 색 모래로 그림을 그린다. 보통 7일 동안 온갖 정성을 쏟는다. 그림을 그리는 동안에는 호흡이 조금만 흐트러져서도 안 된다. 집중하며 그림을 그리는 과정 자체가 바로 완벽한 삼매의 수행이다. 그러고 나서 모래 만다라가 완성되면 많은 사람들을 모아놓고, 축원을 하고는 곧바로 만다라를 지워버린다. 채 몇 분 안 되는 시간이다. 잔뜩 기대하며 지켜본 사람들은 허망하다. 그 허망함이 바로 무상無常이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아무리 훌륭하고 아름다운 것이라도 언젠가는 변화되고 허물어지고 사라진다. 그러나 허망할 것도 없다. 완성된 만다라는 이미 바라보았던 이들의 가슴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모래 만다라를 완성하는 그 긴 과정이 삼매이고, 그 행위 안에 수행이 깃들어 있었기에 모래 만다라는 그저 허상이라는 것. 그 깨침을 위한 그림이 만다라다. (254쪽)
향을 피우면, 향의 몸은 연기로 변하고 연기는 곧 흩어져 향기로 변하여 온 방에 가득해진다. 눈에 보이는 세계에서 눈에 보이지 않은 세계로 변화하였을 뿐 향의 본질은 오히려 수천 수만으로 확대된 것이다. 자신의 몸이 없어지는 무상을 받아들여야, 지혜로 가는 새로운 시작을 알 수 있다. (258쪽)
본래의 모습을 버려야 향도 차도 비약적인 새로운 만남이 이루어지듯 매일매일 놓고 떠남을 잘해야 오늘을 살아있는 행복으로 만들 수 있다. 차를 마실 때 순수한 색과 향과 맛을 우려내듯이 머물지 않는 성품에서 자유로움을 찾고, 번뇌와 망상이 없는 성품에서 평화로움을 찾고, 고정된 생각이 없는 곳에서 행복을 찾는다. (260쪽)
여러분은 지난해 법회가 시작된 후 달마다 마음을 내 저의 이야기를 들으러 오십니다. 오늘 이 자리의 만남은 여러분과 제가 한 마음을 냈기 때문입니다. 만남은 둘의 마음이 마주하고 깊어져야 가능해집니다. 하지만 마음은 늘 변할 수 있습니다. 그 마음을 유지하려면, 첫 법회 때 가져온 그 마음이 계속 일어나야 합니다. 한 번 마음 냈다고 계속 이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첫 마음을 매번 다시 일으켜야 합니다. 오늘 아침, 여러분이 그 마음을 일으켰기에 오늘 우리는 이 자리에 함께 있는 것입니다. 오늘은 초심初心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겠습니다. 처음 마음, 선심초심禪心初心. 선심은 바로 첫 마음에 있습니다. 첫 마음을 잃지 않는 것이 바로 깨달음을 얻는 길입니다.” (274쪽)
“너 어디서 왔느냐”
“예, 저 전라도 해남에서 왔습니다.”
“뭣 때문에 왔느냐”
“예, 행자 생활하러 왔습니다.”
그러자 스님은 내 손을 덥석 잡았다. 엷은 미소를 띄우며 이어지는 말씀.
“야, 너 정말 잘 왔다. 우리 죽을 때까지 공부하자. 이 생에 태어났다 생각지 말고 공부하다 죽자.”
그 말을 듣는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275쪽)
내가 어떤 일을 계획하거나, 소임을 옮겨 갈 때면 스님의 그 말씀이 불쑥불쑥 떠올랐다. 나라고 게으른 마음이 왜 없겠는가. 게으른 마음과 욕심내는 마음과 성내는 마음이 올라올 때 그 말을 생각하면, ‘그래, 다시 공부하자’, ‘처음으로 돌아가자.’는 결심이 새롭게 떠올랐다. 그 결심이 하루하루 이어져 지금까지 수행하며 살고 있다. (276쪽)
가장 큰 고통은 일상의 삶이다. 겉으로는 평온해 보이지만 하루하루 살얼음판이다. 수시로 수많은 것들을 선택해야 하는 갈등이 괴롭고, 말 한마디 행동 하나 잘못할까 몸을 사리고, 늘 후회와 불안으로 하루하루 겨우 달래면서 살아간다. 그야말로 삶은 고苦의 연속이다. (278쪽)
어떻게 해야 그런 관점들을 내려놓고, 석가모니 부처님이 발견한 본래 부처의 마음자리를 드러낼 것인가. 바로 ‘초심’에 답이 있다. 옛 선사들은 바로 그 자리를 생각하기 이전 자리, 말하기 이전 자리라고 한다. 그것은 지혜의 자리이자 깨달음의 자리이며 부처의 자리이다. 우리 본래 자성이다. 그 마음을 언제 내는가? 바로 지금 이 순간. 그 마음이 바로 초심이다. 첫 마음, 어떤 대상을 볼 때 바로 내 생각이 일어나기 전, 바로 그 마음으로 보라는 것이다. 눈으로 ‘예쁘다’ ‘추하다’ 가늠하기 전, 아무 생각 없이 있는 그대로를 보는 것이다. 그 마음을 놓치면, 내 경험과 학습된 상식들로 보고 판단한다. 첫 마음을 믿지 못하고 그동안의 경험, 어디서 들었던 것, 배웠던 것들로 바라보고 추측한다. 그런 상식과 경험이 더 잘 보게 할 것 같지만 오히려 더 흐리게 보게 한다. (279쪽)
몸을 쉬는 법은 누구나 잘 안다. 그런데 마음 쉴 줄은 모른다. 마음도 쉬어야 한다. 몸은 잠들면 쉬어지는데, 마음은 어떻게 쉬는가? 마음의 쉼은 늘 순수한 본래 마음 상태로 회복하는 것이다. 바로 초심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우리 본래 마음으로 돌아가, 이 순간을 보는 것이 마음을 쉬는 것이다. 곧 그것이 좌선이다. (28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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