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 프리스틀랜드 지음 ,이유영 옮김 | 19,800원 | 2016-06-30
왜 상인이 지배하는가
저작·역자 | 데이비드 프리스틀랜드,이유영 | 정가 | 19,800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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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일 | 2016-06-30 | 분야 | 인문 |
책정보 | 권력의 역사를 이해하는 새로운 시선 |
책소개 위로
자본이 지배하는 오늘을 탄생시킨 권력 투쟁의 세계사
“세계가 당면한 난관을 해명함에 있어 단언컨대 가장 큰 지적 자극을 주는 책.” 〈가디언〉
『왜 상인이 지배하는가』는 막강한 힘을 지닌 ‘상인형 자본주의 체제’가 어떻게 오늘과 같은 지위를 누리게 되었는지를 중심으로 역사를 재구성한다. 지금의 위기가 어떤 뿌리에서 뻗어 나왔는지를 파악하기 위해서다. 옥스퍼드에서 근대사를 가르치는 저자는 ‘카스트’라는 고대의 틀을 소환해 역사의 동력을 이해하는 전혀 새로운 관점을 제안한다.
오늘의 역사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상인, 군인, 현인이라는 세 카스트의 역할과 가치를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상업적이며 경쟁적인 동기를 앞세운 상인, 귀족적이며 군국주의적 동기를 앞세운 군인(전사), 그리고 관료제적 또는 사제적 성향의 현인. 세 집단은 서로 대립하거나 협력하면서 노동자 집단을 억누르거나 구슬리며 권력을 쟁취하고 지배 질서를 형성해 왔다.
고대부터 근현대, 동양과 서양, 경제 이론부터 문학 작품까지 다양한 범주를 넘나들며 역사의 주요 장면들을 새롭게 포착함으로써 저자는 주요 카스트가 어떻게 합종연횡하며 권력의 부침과 순환을 만들어 왔는지를 명쾌하게 설명한다.
『왜 상인이 지배하는가』는 한 집단이 배타적으로 독주할 때 권력의 수레바퀴는 반드시 다시 돌아가기 시작함을 보여준다. 권력의 지각변동은 이미 시작되었다. 다음은 어떤 카스트가 왕좌에 오를지 또는 노동자를 포함한 각 카스트가 권력을 나누는 평화의 시대가 도래할지, 자연스럽게 추론으로 이끄는 것이 이 책이 주는 선물이자 과제이다.
“세계가 당면한 난관을 해명함에 있어 단언컨대 가장 큰 지적 자극을 주는 책.” 〈가디언〉
『왜 상인이 지배하는가』는 막강한 힘을 지닌 ‘상인형 자본주의 체제’가 어떻게 오늘과 같은 지위를 누리게 되었는지를 중심으로 역사를 재구성한다. 지금의 위기가 어떤 뿌리에서 뻗어 나왔는지를 파악하기 위해서다. 옥스퍼드에서 근대사를 가르치는 저자는 ‘카스트’라는 고대의 틀을 소환해 역사의 동력을 이해하는 전혀 새로운 관점을 제안한다.
오늘의 역사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상인, 군인, 현인이라는 세 카스트의 역할과 가치를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상업적이며 경쟁적인 동기를 앞세운 상인, 귀족적이며 군국주의적 동기를 앞세운 군인(전사), 그리고 관료제적 또는 사제적 성향의 현인. 세 집단은 서로 대립하거나 협력하면서 노동자 집단을 억누르거나 구슬리며 권력을 쟁취하고 지배 질서를 형성해 왔다.
고대부터 근현대, 동양과 서양, 경제 이론부터 문학 작품까지 다양한 범주를 넘나들며 역사의 주요 장면들을 새롭게 포착함으로써 저자는 주요 카스트가 어떻게 합종연횡하며 권력의 부침과 순환을 만들어 왔는지를 명쾌하게 설명한다.
『왜 상인이 지배하는가』는 한 집단이 배타적으로 독주할 때 권력의 수레바퀴는 반드시 다시 돌아가기 시작함을 보여준다. 권력의 지각변동은 이미 시작되었다. 다음은 어떤 카스트가 왕좌에 오를지 또는 노동자를 포함한 각 카스트가 권력을 나누는 평화의 시대가 도래할지, 자연스럽게 추론으로 이끄는 것이 이 책이 주는 선물이자 과제이다.
저자소개 위로
데이비드 프리스틀랜드 David Priestland
옥스퍼드 대학과 모스크바 국립대학에서 공부했고, 현재는 옥스퍼드 대학 사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주로 근대사를 가르치고 있다. 공산주의를 다룬 책 『스탈린주의와 동원의 정치학Stalinism and the Politics of Mobilization』과 『붉은 깃발Red Flag』을 썼다. 특히 세계 공산주의 역사를 다룬 『붉은 깃발』은 출간과 함께 각계의 찬사와 호평을 받으며 8개 언어로 번역 출간되었다. 《가디언》 《파이낸셜타임스》 《BBC 히스토리 매거진》 등 영국의 주요 매체에도 정치와 역사에 관한 글을 활발히 싣고 있다.
www.davidpriestland.co.uk
옥스퍼드 대학과 모스크바 국립대학에서 공부했고, 현재는 옥스퍼드 대학 사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주로 근대사를 가르치고 있다. 공산주의를 다룬 책 『스탈린주의와 동원의 정치학Stalinism and the Politics of Mobilization』과 『붉은 깃발Red Flag』을 썼다. 특히 세계 공산주의 역사를 다룬 『붉은 깃발』은 출간과 함께 각계의 찬사와 호평을 받으며 8개 언어로 번역 출간되었다. 《가디언》 《파이낸셜타임스》 《BBC 히스토리 매거진》 등 영국의 주요 매체에도 정치와 역사에 관한 글을 활발히 싣고 있다.
www.davidpriestland.co.uk
목차 위로
프롤로그 : 상인, 군인, 현인의 권력투쟁사
그릇된 선택들 / 이 책에서 말하는 카스트란 무엇인가· / 역사를 이끄는 기관차 / 상아탑에서 펼쳐지는 카스트 투쟁 / 이 책의 내용
1장 카스트 투쟁
― 상인, 오랜 속박에서 벗어나다
씨족에서 카스트 체제로의 이행
전사 길들이기
현인과 손잡기
전복하는 현인, 성자
노동하는 자, 반기를 들다
헤르메스의 후예들
오라녀혁명, 서막이 오르다
2장 철의 주먹과 벨벳 장갑
― 누가 전쟁의 과실을 누리는가
한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
독일의 민간인 공직자, 일본의 실업가, 미국의 기업가
노동자와 현인, 사회주의 깃발 아래로
전사의 귀환과 제1차 세계대전
신들의 황혼
3장 오만과 파국
― 제1상인시대는 어떻게 저물었나
만국의 상인이여, 단결하라!
내부 붕괴와 대공황
구제에 이르는 세 갈래 길
히틀러의 전사들
스탈린의 관점
호전적 사회민주주의와 뉴딜
4장 ‘똘똘이’들의 시대
― 테크노크라트와 노동자 연대의 짧은 성쇠
브레턴우즈의 예언자
냉전 시대의 주방 전쟁
반둥의 전우들
마르크스와 코카콜라의 아이들
테크노크라트 체제의 몰락
금융 패권과 함께 부활한 신자유주의
플라워 파워의 승리, 영광은 상인에게로
5장 다보스맨의 독주
― 상인 패권은 무엇을 소환하는가
논쟁 없는 합의
3인의 시장주의자
상업은행과 흡혈 문어
새로운 낭만주의자들과의 동맹
중국의 상인형 관료 집단
불안정한 인도
오류를 드러낸 제3의 길
올리가르히와 모라토리엄, 그리고 푸틴
이슬람의 칼
2008년의 붕괴와 놀라운 회복탄력성
상인을 위한 세계 질서
에필로그 : 권력의 균형점
새로운‘마의 산’은 어디인가 / 무엇을 할 것인가
부록: 카스트와 권력의 학술적 토대
오늘날의 카스트
더 읽을 거리
감사의 말
도판 목록
주(註)
찾아보기
그릇된 선택들 / 이 책에서 말하는 카스트란 무엇인가· / 역사를 이끄는 기관차 / 상아탑에서 펼쳐지는 카스트 투쟁 / 이 책의 내용
1장 카스트 투쟁
― 상인, 오랜 속박에서 벗어나다
씨족에서 카스트 체제로의 이행
전사 길들이기
현인과 손잡기
전복하는 현인, 성자
노동하는 자, 반기를 들다
헤르메스의 후예들
오라녀혁명, 서막이 오르다
2장 철의 주먹과 벨벳 장갑
― 누가 전쟁의 과실을 누리는가
한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
독일의 민간인 공직자, 일본의 실업가, 미국의 기업가
노동자와 현인, 사회주의 깃발 아래로
전사의 귀환과 제1차 세계대전
신들의 황혼
3장 오만과 파국
― 제1상인시대는 어떻게 저물었나
만국의 상인이여, 단결하라!
내부 붕괴와 대공황
구제에 이르는 세 갈래 길
히틀러의 전사들
스탈린의 관점
호전적 사회민주주의와 뉴딜
4장 ‘똘똘이’들의 시대
― 테크노크라트와 노동자 연대의 짧은 성쇠
브레턴우즈의 예언자
냉전 시대의 주방 전쟁
반둥의 전우들
마르크스와 코카콜라의 아이들
테크노크라트 체제의 몰락
금융 패권과 함께 부활한 신자유주의
플라워 파워의 승리, 영광은 상인에게로
5장 다보스맨의 독주
― 상인 패권은 무엇을 소환하는가
논쟁 없는 합의
3인의 시장주의자
상업은행과 흡혈 문어
새로운 낭만주의자들과의 동맹
중국의 상인형 관료 집단
불안정한 인도
오류를 드러낸 제3의 길
올리가르히와 모라토리엄, 그리고 푸틴
이슬람의 칼
2008년의 붕괴와 놀라운 회복탄력성
상인을 위한 세계 질서
에필로그 : 권력의 균형점
새로운‘마의 산’은 어디인가 / 무엇을 할 것인가
부록: 카스트와 권력의 학술적 토대
오늘날의 카스트
더 읽을 거리
감사의 말
도판 목록
주(註)
찾아보기
상세소개 위로
상인 지배의 황혼,
다시금 권력의 지각 변동이 시작된다
명실상부 ‘상인의 가치’가 지배하는 시대이다. 상인 집단은 평화와 풍요의 확산, 혁신과 효율의 증대를 추구하지만, 한편으로는 단기간에 최대의 이윤을 올리려는 욕구와 배타성도 두드러진다. 지난 30년간 마땅한 견제 세력 없는 상인 집단의 패권이 지속되면서 경쟁, 유연성, 이윤을 맹신하고 다른 여러 가치를 희생시키는 질서가 확고히 자리 잡았다. 극심한 부의 격차, 불평등, 불안정이 그 부작용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로 상인 지배 체제의 맹점은 극명히 드러났지만, 아직까지도 제대로 된 처방과 해결책은 보이지 않는다.
영국 국민투표에서 ‘브렉시트’가 가결된 후 전 세계에 후폭풍이 거세다. 정확히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는 미지수지만, 한 시대를 이끌어 온 미국-EU 패권과 신자유주의 세계 질서가 무너지기 시작했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하다. 미국 대선 지형을 뒤흔들고 있는 ‘아웃사이더’ 트럼프와 샌더스, 아베 총리가 이끄는 일본에서 보이는 군국주의 부활의 조짐… 이 모두는 2008년 금융 위기와 더불어 세계 질서의 격변을 예고하고 있다.
발 딛고 선 지축 자체가 흔들리는 시대에는 풍경을 보는 새로운 시선이 필요하다. 『왜 상인이 지배하는가』는 오늘날 막강한 힘을 지닌 ‘상인형 자본주의 체제’가 어떻게 지금의 지위를 누리게 되었는지를 중심으로 역사를 재구성한다. 지금의 위기가 어떤 뿌리에서 뻗어 나왔는지를 살펴보기 위해서다. 저자는 여러 시대 속 각 지역에 흩어져 있는 역사의 조각들을 자신만의 관점으로 연결함으로써 지금 세계가 전형적인 격변의 징후로 가득 차 있음을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카스트, 권력의 역사를 이해하는 새로운 관점
옥스퍼드에서 근대사를 가르치는 저자 데이비드 프리스틀랜드는 옥스퍼드와 모스크바국립대학에서 사회주의 역사를 전공해 19~20세기 역사에 관해 누구보다 풍부한 이해를 갖추고 있다고 평가받는다. 그는 『왜 상인이 지배하는가』에서 ‘카스트’라는 고대의 틀을 소환해 역사의 동력을 이해하는 전혀 새로운 관점을 제안한다.
고대인들은 사회를 직군(職群)의 총합으로 보았고, 각각의 직권은 고유한 에토스(ethos)를 조성한다고 믿었다. 중세 인도에서는 이미 ‘카스트(caste)’라는 단어로 직군 체계를 명명하고 있었다. ‘카스트’는 사회 집단들을 경제적 이득을 추구하는 자기 이익에 충실한 조직으로서뿐 아니라 사상 체계와 생활양식의 총화로 볼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한다. (…) 군대, 상업 조직, 관료제 등과 같이 권력 행사에 있어 높은 성과를 달성하는 네트워크들이 존재한다. 바로 이런 조직들이 특정 직업과 경제 구조가 변해도 지역과 역사를 불문하고 살아남는다. 이들이 바로 ‘카스트들’인 셈이다. (14, 19쪽)
저자는 오늘의 역사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상인, 군인(전사), 현인이라는 세 카스트의 역할과 가치를 파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상업적이며 경쟁적인 동기를 앞세운 상인 집단, 귀족적이며 군국주의적 동기를 앞세운 군인(전사) 집단, 그리고 관료제적 또는 사제적 성향의 현인 집단이 바로 그것이다. 세 카스트는 서로 대립하거나 협력하면서 (평등을 지향하며 장인적 가치를 표방하는) 노동자 집단을 억누르거나 구슬리며 권력을 쟁취하고 지배 질서를 형성해 왔다.
오늘날 상인 집단은 은행업과 교역 같은 비즈니스의 영역들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그렇지만 이들의 영향력은 복잡한 산업조직에서는 그리 강하지 않다. 이런 조직에서는 오히려 현인-테크노크라트 집단이 경영관리자로서 상인 집단보다 큰 영향력을 발휘한다. 이런 이유 때문에 ‘자본주의’라는 용어가 항상 분석에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다. 더욱이 자본주의는 다양한 형태를 띠고 있다. 일부는 투자은행처럼 상인 집단이 지배력을 행사하지만, 다른 체제에서는 대기업 집단처럼 현인-테크노크라트들의 영향력이 압도적이다. (19쪽)
이 책은 고대부터 근현대, 동양과 서양, 경제 이론부터 문학 작품까지 다양한 범주를 넘나들며 역사의 주요 장면들을 새롭게 포착하고, 이들 세 카스트가 어떻게 합종연횡하며 권력의 부침과 순환을 만들어 왔는지를 명쾌하게 설명하고 있다.
상인, 군인, 현인이 각축하는 흥미진진한 ‘왕좌의 게임’
예를 들어, 영국이 감격적인 첫 상인 시대를 구가했던 18~19세기의 단면을 대니얼 디포와 애덤 스미스의 입장을 대비시키며 다음과 같이 묘파한다.
영국 소설가 대니얼 디포가 1719년에 발표한 소설 『로빈슨 크루소』는 평화를 내세우는 상인의 식민주의를 우화로써 드러내고 있다. 무인도에 표착한 크루소는 상인의 습속―뛰어난 감각과 재기 넘기는 기술, 힘겨운 노역을 두루 동원해 절망적인 환경을 일종의 천국으로 변모시킨다. ‘야만인’들에게도 친절한 태도를 유지하며 개종을 위해 힘쓰지만, 식인종들이 들어와 기독교인을 해치려 하자 무모할 정도의 폭력으로 그들을 해치운다. 디포는 영국인들이 본질적으로 평화를 사랑하고 상인다운 면모를 지녔음을 강조하지만, 전 세계에 평화적 상업 체제를 퍼뜨리는 과업을 위해 동원되는 폭력은 정당하다고 간주했다.
처음 세계적 패권을 쥐기 시작한 상인 집단은 자신들의 가치와 방식에 맞서는 세력을 맞닥뜨렸고, 대응에 있어 강경책과 유화책으로 나뉘었다. 경쟁 세력이 심각한 위협을 가하면 강경하고 호전적으로 맞서며, 필요할 경우 강한 무력을 지닌 귀족 집단과 손잡았다. 그러나 평소에는 온건파가 득세했다. 이들은 안락과 넘치는 소비를 약속하며 반대자를 포섭하는 방식을 선호했다.
크루소(디포)가 대변하는 상인-전사 동맹은 전 세계에 상인의 영향력을 전파하는 과정에서 핵심 역할을 했다. 유럽의 초기 제국들은 상인들이 ‘왕의 특허장을 받은 회사들’을 통해 건설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회사들은 상업 조직이지만 자체 군대를 보유했다. 가장 성공적인 케이스가 영국 동인도회사다.
온건파를 옹호한 대표적 인물은 애덤 스미스다. 18세기 세속적 현인 집단을 대변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그가 쓴 『국부론』은 상업 사회를 가장 설득력 있게 정당화하는 책이다. 그는 물물교환을 고결하게 여겼다. 낯선 이에게 공감을 얻어내어 폭력을 사용하지 않고도 목적을 달성하기 때문이다. 또한 물물교환을 통해 노동 분업과 전문화가 진작되어 국가 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고 봤다. 상호 경쟁과 상업으로 서로 연결되는 사회는 가부장적 사회보다 경제적 평등성이 떨어질 수는 있지만 보다 자유롭고 부유하며 평화로울 거라고 여겼다.
그는 이렇게 적었다. “상인과 제조업자는 인류의 지배자가 아닐 뿐만 아니라, 그렇게 되어서도 안 된다.” 디포도 이점에서는 뜻을 같이했다. 다만 디포는 전사 집단과 동맹을 통한 상인 카스트의 지배를 옹호했지만, 스미스에게는 그것이 상인 집단의 에토스를 촉진하는 이상적 방향이 아니었다. 스미스는 (자신과 같은) 계몽된 현인 행정관들이 통치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영국 상인 집단은 이처럼 강경책과 유화책 사이에서 끊임없는 줄타기를 벌였고, 분명 영국은 다른 국가들보다 비교적 평화적으로 농경 기반에서 상인 체제로 카스트 질서를 이행해 갔다. 성공 요인 중 하나는 ‘상인 집단의 단독 지배를 추구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 상인 집단이 시장 체제를 강요하면서 촉발된 일련의 위기가 있었지만, 카스트 간 타협을 통해 놀랄 만큼 성공적인 경제 체제가 유지되었고, 영국은 비록 일시적이나마 전 세계의 모델이 될 만한 사례를 선보였다.
그러나 19세기 말이 되자 전사 집단이 다시 지배자의 위치로 돌아왔다. 강경파 상인과 손잡은 전사 집단이 전 세계적으로 득세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귀환한 전사 집단은 현인-테크노크라트 집단의 지지도 등에 업었다. 대규모 군대까지 갖추고 이전보다 강력해진 전사 집단은 전무후무한 파괴적 과업에 나섰다. 세계 대전의 발발이다. (97~111쪽 재구성)
길게 인용했지만, 각 카스트와 그들의 고유한 에토스(관습, 기질)가 권력의 역사를 어떻게 바꾸는지 잘 보여준다. 저자가 엮어 내는 권력 투쟁사를 따라가 보면, 대개 카스트들은 동맹을 통해 힘을 키우고 서로를 견제해 왔지만 특정 집단이 패권을 잡을 때 그리고 그 실력 행사가 도를 지나치면 결국 격변의 시점이 찾아왔음이 명백히 드러난다. 이러한 격변의 결과물은 경제 위기, 전쟁, 또는 혁명이었고, 그 뒤에는 다시 새로운 집단이 권력을 획득했다.
하위 카스트에서 세계의 지배자로…
상인은 어떻게 패권을 차지할 수 있었나?
상인 집단이 패권을 쟁취하는 과정을 기둥으로 저자는 역사를 다음과 같이 재구성한다.
1장 ‘카스트 투쟁’에서는 고대 및 중세 농경사회를 지배했던 카스트들을 간략하게 살핀다. 그리고 오랫동안 미천한 신분으로 제약받던 상인이 수백 년에 걸쳐 어떻게 그 속박을 뚫고 부상했는지를 보여 준다.
2장 ‘철의 주먹과 벨벳 장갑’에서는, 19세기에 이르러 영향력이 커졌지만 여전히 귀족 출신 지배 엘리트들의 말단 동업자에 지나지 않았던 상인 집단의 모습을 살핀다. 하지만 19세기 중엽에 이르러 독일과 일본 같은 신흥 강대국이 부상한다. 현인-테크노크라트와 상인 집단의 도움으로 중공업 기반 경제체제를 이룩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인 집단이 융성하기 위한 조건, 즉 ‘평화로운 세계’는 전사 집단의 독주 탓에 파탄에 이른다.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다. 전쟁을 일으킨 귀족-전사 집단은 대중의 신뢰를 잃었고, 제국들도 힘을 잃었다. 덕분에 오히려 상인을 위한 독무대가 마련된다.
3장 ‘오만과 파국’, 1920년대 미국이 압도적 패권국으로 부상하며 (토착 귀족이 부재한 미국에서 힘이 셌던) 상인 집단이 지배력을 확장해 나간다. 그러나 그 치세는 짧았다. 상인의 시장 근본주의, 노동자와 관료제 등에 배타저인 태도 때문에 사회 안정을 구축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자산 거품과 부채, 사회적 불평등도 몰락에 기여했다. 1918년 1차 세계대전이 귀족 지배 체제를 무너뜨린 시발점이 되었듯, 1929년 대공황이 터지고 상인 집단은 사회적 신뢰를 잃었다.
1929년 대공황에 뒤이은 상인 집단에 대한 사회적 반발은 좌파와 우파 간의 맹렬한 내전을 야기했고, (…) 당신의 갈등 국면에서 전사와 가부장주의적 귀족 집단이 새로이 포퓰리스트적 면모를 가다듬어 그럴싸한 외피를 쓰고 돌아왔다. 나치는 모든 시민을 제국주의 전사로 탈바꿈시켜 사회적 위계질서를 지켜내려 했다. 공산주의자들은 부르주아적 삶의 양태를 사회 전반에 걸쳐 파괴했고, 상인 집단을 가부장주의적이고 호전적인 관료 집단과 집산주의적 노동자들의 불안정한 연합체로 대체했다. (32쪽)
대공황이 야기한 혼란은 결국 2차 세계 대전으로 이어졌고, 권력의 축은 다시 이동한다.
4장, 세계가 극우와 극좌로 나뉘어 겨루는 사이, 스칸디나비아 반도와 미국에서는 비교적 지속 가능하고 포용적이며 균형 잡힌 모델이 출현했다. 바로 사회민주주의다. 이 모델은 전사 집단의 역할을 축소하고 노동자와 상인 집단의 역할은 키우려 했다. 체제의 궁극적인 관리 감독 기능은 현인-테크노크라트 집단이 맡고, 자유민주주의 제도가 체제 전반을 지탱하는 방식이었다. 이와 같은 ‘현인’적 모델이 2차 대전 이후의 세계를 장악한다. 이른바 ‘똘똘이’들의 시대다.
사회민주주의 체제가 승자로 등극하는 듯했지만, 상인 집단이 반격을 개시한다. 현인 체제가 냉전이라는 버팀목에 과도하게 의지하면서 전사 집단이 다시금 고개를 들고 무력 갈등을 야기한 탓. 이는 현인 세력의 힘을 약화시켰다. 대표적인 예가 베트남전쟁이다. 또한 경직된 현인-노동자 동맹 체제는 1970년대 발생한 여러 차례의 경제 위기와 후기 산업사회로의 이행 과제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했다.
5장, 이를 틈타 1960년대 냉전 질서에 반기를 들었던 학생운동 집단을 끌어들인 상인 집단은 1970년대에 들어서며 다시금 과거의 패권을 되찾기 시작한다.(이때 친시장 현인 집단이 이론을 뒷받침함으로써 상인 집단의 패권 장악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냉전 시대를 거치며 전사와 현인 집단은 물론 공산권 붕괴로 노동자 집단마저 사회적 신뢰를 상실한 처지였다. 견제할 만한 적수들이 사라지고(또는 포섭되고), 상인 집단의 단일 패권 시대를 위한 최적의 환경이 조성된 것. 바야흐로 상인의 가치가 전 세계를 집어삼키는 다보스맨의 독주가 시작된다.
논쟁 없는 합의 체제
‘다보스 맨’의 독주는 무엇을 소환하는가?
1970년대 이후 세계는 다보스 포럼에서 합의된 ‘탈규제 시정이야말로 바람직한 미래상’이라는 관점을 별다른 논쟁 없이 받아들였다. ‘다보스맨’들은 현인의 관리 감독을 받는 자본주의 양태였던 브레턴우즈 체제를 보다 상인의 비전에 맞는 질서로 변모시켜 나갔다.
상인 집단의 공세에 맞설 카스트들의 힘은 미미했다. 중국에서 거대한 노동력이 공급되는 바람에 서구 세계에서 노동조합은 힘을 잃었다. 무엇보다 상인 친화적 경제학 분파가 대세를 잡기 시작했다. 시장의 효율성을 맹신하는 이른바 ‘합리적 시장 가설’이 경제학자들의 굳은 신뢰를 얻으며 시장근본주의가 종교처럼 행세하기 시작했다.
오늘 우리는 상인이 지배하는 세계의 현실을 목도하고 있다. 최대 희생자는 노동조합이라는 노동자의 성채와, 정부와 공공부문이라는 현인 집단의 거점이었다. 탈규제 정책과 대량 실업으로 노동조합은 힘을 잃었고, 금융권은 대출을 거부하고 통화 공격을 감행하는 방식으로 정부를 길들였다. 이는 복지 지출의 대량 삭감, 보건과 교육 등 공공부문의 영리화로 이어졌다. 30년간 족쇄 풀린 상인 집단이 독주한 결과 부의 불평등, 사회 불안이 정점에 치닫고 있다.
『왜 상인이 지배하는가』를 통해 저자는 한 집단이 배타적으로 독주할 때 권력의 수레바퀴는 반드시 다시 돌아가기 시작함을 보여준다. 권력의 지각변동은 이미 시작되었다. 다음은 어떤 카스트가 왕좌에 오를지 또는 노동자를 포함한 각 카스트가 권력을 나누는 평화의 시대가 도래할지, 자연스럽게 추론으로 이끄는 것이 이 책이 주는 선물이자 과제이다.
다시금 권력의 지각 변동이 시작된다
명실상부 ‘상인의 가치’가 지배하는 시대이다. 상인 집단은 평화와 풍요의 확산, 혁신과 효율의 증대를 추구하지만, 한편으로는 단기간에 최대의 이윤을 올리려는 욕구와 배타성도 두드러진다. 지난 30년간 마땅한 견제 세력 없는 상인 집단의 패권이 지속되면서 경쟁, 유연성, 이윤을 맹신하고 다른 여러 가치를 희생시키는 질서가 확고히 자리 잡았다. 극심한 부의 격차, 불평등, 불안정이 그 부작용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로 상인 지배 체제의 맹점은 극명히 드러났지만, 아직까지도 제대로 된 처방과 해결책은 보이지 않는다.
영국 국민투표에서 ‘브렉시트’가 가결된 후 전 세계에 후폭풍이 거세다. 정확히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는 미지수지만, 한 시대를 이끌어 온 미국-EU 패권과 신자유주의 세계 질서가 무너지기 시작했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하다. 미국 대선 지형을 뒤흔들고 있는 ‘아웃사이더’ 트럼프와 샌더스, 아베 총리가 이끄는 일본에서 보이는 군국주의 부활의 조짐… 이 모두는 2008년 금융 위기와 더불어 세계 질서의 격변을 예고하고 있다.
발 딛고 선 지축 자체가 흔들리는 시대에는 풍경을 보는 새로운 시선이 필요하다. 『왜 상인이 지배하는가』는 오늘날 막강한 힘을 지닌 ‘상인형 자본주의 체제’가 어떻게 지금의 지위를 누리게 되었는지를 중심으로 역사를 재구성한다. 지금의 위기가 어떤 뿌리에서 뻗어 나왔는지를 살펴보기 위해서다. 저자는 여러 시대 속 각 지역에 흩어져 있는 역사의 조각들을 자신만의 관점으로 연결함으로써 지금 세계가 전형적인 격변의 징후로 가득 차 있음을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카스트, 권력의 역사를 이해하는 새로운 관점
옥스퍼드에서 근대사를 가르치는 저자 데이비드 프리스틀랜드는 옥스퍼드와 모스크바국립대학에서 사회주의 역사를 전공해 19~20세기 역사에 관해 누구보다 풍부한 이해를 갖추고 있다고 평가받는다. 그는 『왜 상인이 지배하는가』에서 ‘카스트’라는 고대의 틀을 소환해 역사의 동력을 이해하는 전혀 새로운 관점을 제안한다.
고대인들은 사회를 직군(職群)의 총합으로 보았고, 각각의 직권은 고유한 에토스(ethos)를 조성한다고 믿었다. 중세 인도에서는 이미 ‘카스트(caste)’라는 단어로 직군 체계를 명명하고 있었다. ‘카스트’는 사회 집단들을 경제적 이득을 추구하는 자기 이익에 충실한 조직으로서뿐 아니라 사상 체계와 생활양식의 총화로 볼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한다. (…) 군대, 상업 조직, 관료제 등과 같이 권력 행사에 있어 높은 성과를 달성하는 네트워크들이 존재한다. 바로 이런 조직들이 특정 직업과 경제 구조가 변해도 지역과 역사를 불문하고 살아남는다. 이들이 바로 ‘카스트들’인 셈이다. (14, 19쪽)
저자는 오늘의 역사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상인, 군인(전사), 현인이라는 세 카스트의 역할과 가치를 파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상업적이며 경쟁적인 동기를 앞세운 상인 집단, 귀족적이며 군국주의적 동기를 앞세운 군인(전사) 집단, 그리고 관료제적 또는 사제적 성향의 현인 집단이 바로 그것이다. 세 카스트는 서로 대립하거나 협력하면서 (평등을 지향하며 장인적 가치를 표방하는) 노동자 집단을 억누르거나 구슬리며 권력을 쟁취하고 지배 질서를 형성해 왔다.
오늘날 상인 집단은 은행업과 교역 같은 비즈니스의 영역들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그렇지만 이들의 영향력은 복잡한 산업조직에서는 그리 강하지 않다. 이런 조직에서는 오히려 현인-테크노크라트 집단이 경영관리자로서 상인 집단보다 큰 영향력을 발휘한다. 이런 이유 때문에 ‘자본주의’라는 용어가 항상 분석에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다. 더욱이 자본주의는 다양한 형태를 띠고 있다. 일부는 투자은행처럼 상인 집단이 지배력을 행사하지만, 다른 체제에서는 대기업 집단처럼 현인-테크노크라트들의 영향력이 압도적이다. (19쪽)
이 책은 고대부터 근현대, 동양과 서양, 경제 이론부터 문학 작품까지 다양한 범주를 넘나들며 역사의 주요 장면들을 새롭게 포착하고, 이들 세 카스트가 어떻게 합종연횡하며 권력의 부침과 순환을 만들어 왔는지를 명쾌하게 설명하고 있다.
상인, 군인, 현인이 각축하는 흥미진진한 ‘왕좌의 게임’
예를 들어, 영국이 감격적인 첫 상인 시대를 구가했던 18~19세기의 단면을 대니얼 디포와 애덤 스미스의 입장을 대비시키며 다음과 같이 묘파한다.
영국 소설가 대니얼 디포가 1719년에 발표한 소설 『로빈슨 크루소』는 평화를 내세우는 상인의 식민주의를 우화로써 드러내고 있다. 무인도에 표착한 크루소는 상인의 습속―뛰어난 감각과 재기 넘기는 기술, 힘겨운 노역을 두루 동원해 절망적인 환경을 일종의 천국으로 변모시킨다. ‘야만인’들에게도 친절한 태도를 유지하며 개종을 위해 힘쓰지만, 식인종들이 들어와 기독교인을 해치려 하자 무모할 정도의 폭력으로 그들을 해치운다. 디포는 영국인들이 본질적으로 평화를 사랑하고 상인다운 면모를 지녔음을 강조하지만, 전 세계에 평화적 상업 체제를 퍼뜨리는 과업을 위해 동원되는 폭력은 정당하다고 간주했다.
처음 세계적 패권을 쥐기 시작한 상인 집단은 자신들의 가치와 방식에 맞서는 세력을 맞닥뜨렸고, 대응에 있어 강경책과 유화책으로 나뉘었다. 경쟁 세력이 심각한 위협을 가하면 강경하고 호전적으로 맞서며, 필요할 경우 강한 무력을 지닌 귀족 집단과 손잡았다. 그러나 평소에는 온건파가 득세했다. 이들은 안락과 넘치는 소비를 약속하며 반대자를 포섭하는 방식을 선호했다.
크루소(디포)가 대변하는 상인-전사 동맹은 전 세계에 상인의 영향력을 전파하는 과정에서 핵심 역할을 했다. 유럽의 초기 제국들은 상인들이 ‘왕의 특허장을 받은 회사들’을 통해 건설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회사들은 상업 조직이지만 자체 군대를 보유했다. 가장 성공적인 케이스가 영국 동인도회사다.
온건파를 옹호한 대표적 인물은 애덤 스미스다. 18세기 세속적 현인 집단을 대변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그가 쓴 『국부론』은 상업 사회를 가장 설득력 있게 정당화하는 책이다. 그는 물물교환을 고결하게 여겼다. 낯선 이에게 공감을 얻어내어 폭력을 사용하지 않고도 목적을 달성하기 때문이다. 또한 물물교환을 통해 노동 분업과 전문화가 진작되어 국가 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고 봤다. 상호 경쟁과 상업으로 서로 연결되는 사회는 가부장적 사회보다 경제적 평등성이 떨어질 수는 있지만 보다 자유롭고 부유하며 평화로울 거라고 여겼다.
그는 이렇게 적었다. “상인과 제조업자는 인류의 지배자가 아닐 뿐만 아니라, 그렇게 되어서도 안 된다.” 디포도 이점에서는 뜻을 같이했다. 다만 디포는 전사 집단과 동맹을 통한 상인 카스트의 지배를 옹호했지만, 스미스에게는 그것이 상인 집단의 에토스를 촉진하는 이상적 방향이 아니었다. 스미스는 (자신과 같은) 계몽된 현인 행정관들이 통치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영국 상인 집단은 이처럼 강경책과 유화책 사이에서 끊임없는 줄타기를 벌였고, 분명 영국은 다른 국가들보다 비교적 평화적으로 농경 기반에서 상인 체제로 카스트 질서를 이행해 갔다. 성공 요인 중 하나는 ‘상인 집단의 단독 지배를 추구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 상인 집단이 시장 체제를 강요하면서 촉발된 일련의 위기가 있었지만, 카스트 간 타협을 통해 놀랄 만큼 성공적인 경제 체제가 유지되었고, 영국은 비록 일시적이나마 전 세계의 모델이 될 만한 사례를 선보였다.
그러나 19세기 말이 되자 전사 집단이 다시 지배자의 위치로 돌아왔다. 강경파 상인과 손잡은 전사 집단이 전 세계적으로 득세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귀환한 전사 집단은 현인-테크노크라트 집단의 지지도 등에 업었다. 대규모 군대까지 갖추고 이전보다 강력해진 전사 집단은 전무후무한 파괴적 과업에 나섰다. 세계 대전의 발발이다. (97~111쪽 재구성)
길게 인용했지만, 각 카스트와 그들의 고유한 에토스(관습, 기질)가 권력의 역사를 어떻게 바꾸는지 잘 보여준다. 저자가 엮어 내는 권력 투쟁사를 따라가 보면, 대개 카스트들은 동맹을 통해 힘을 키우고 서로를 견제해 왔지만 특정 집단이 패권을 잡을 때 그리고 그 실력 행사가 도를 지나치면 결국 격변의 시점이 찾아왔음이 명백히 드러난다. 이러한 격변의 결과물은 경제 위기, 전쟁, 또는 혁명이었고, 그 뒤에는 다시 새로운 집단이 권력을 획득했다.
하위 카스트에서 세계의 지배자로…
상인은 어떻게 패권을 차지할 수 있었나?
상인 집단이 패권을 쟁취하는 과정을 기둥으로 저자는 역사를 다음과 같이 재구성한다.
1장 ‘카스트 투쟁’에서는 고대 및 중세 농경사회를 지배했던 카스트들을 간략하게 살핀다. 그리고 오랫동안 미천한 신분으로 제약받던 상인이 수백 년에 걸쳐 어떻게 그 속박을 뚫고 부상했는지를 보여 준다.
2장 ‘철의 주먹과 벨벳 장갑’에서는, 19세기에 이르러 영향력이 커졌지만 여전히 귀족 출신 지배 엘리트들의 말단 동업자에 지나지 않았던 상인 집단의 모습을 살핀다. 하지만 19세기 중엽에 이르러 독일과 일본 같은 신흥 강대국이 부상한다. 현인-테크노크라트와 상인 집단의 도움으로 중공업 기반 경제체제를 이룩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인 집단이 융성하기 위한 조건, 즉 ‘평화로운 세계’는 전사 집단의 독주 탓에 파탄에 이른다.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다. 전쟁을 일으킨 귀족-전사 집단은 대중의 신뢰를 잃었고, 제국들도 힘을 잃었다. 덕분에 오히려 상인을 위한 독무대가 마련된다.
3장 ‘오만과 파국’, 1920년대 미국이 압도적 패권국으로 부상하며 (토착 귀족이 부재한 미국에서 힘이 셌던) 상인 집단이 지배력을 확장해 나간다. 그러나 그 치세는 짧았다. 상인의 시장 근본주의, 노동자와 관료제 등에 배타저인 태도 때문에 사회 안정을 구축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자산 거품과 부채, 사회적 불평등도 몰락에 기여했다. 1918년 1차 세계대전이 귀족 지배 체제를 무너뜨린 시발점이 되었듯, 1929년 대공황이 터지고 상인 집단은 사회적 신뢰를 잃었다.
1929년 대공황에 뒤이은 상인 집단에 대한 사회적 반발은 좌파와 우파 간의 맹렬한 내전을 야기했고, (…) 당신의 갈등 국면에서 전사와 가부장주의적 귀족 집단이 새로이 포퓰리스트적 면모를 가다듬어 그럴싸한 외피를 쓰고 돌아왔다. 나치는 모든 시민을 제국주의 전사로 탈바꿈시켜 사회적 위계질서를 지켜내려 했다. 공산주의자들은 부르주아적 삶의 양태를 사회 전반에 걸쳐 파괴했고, 상인 집단을 가부장주의적이고 호전적인 관료 집단과 집산주의적 노동자들의 불안정한 연합체로 대체했다. (32쪽)
대공황이 야기한 혼란은 결국 2차 세계 대전으로 이어졌고, 권력의 축은 다시 이동한다.
4장, 세계가 극우와 극좌로 나뉘어 겨루는 사이, 스칸디나비아 반도와 미국에서는 비교적 지속 가능하고 포용적이며 균형 잡힌 모델이 출현했다. 바로 사회민주주의다. 이 모델은 전사 집단의 역할을 축소하고 노동자와 상인 집단의 역할은 키우려 했다. 체제의 궁극적인 관리 감독 기능은 현인-테크노크라트 집단이 맡고, 자유민주주의 제도가 체제 전반을 지탱하는 방식이었다. 이와 같은 ‘현인’적 모델이 2차 대전 이후의 세계를 장악한다. 이른바 ‘똘똘이’들의 시대다.
사회민주주의 체제가 승자로 등극하는 듯했지만, 상인 집단이 반격을 개시한다. 현인 체제가 냉전이라는 버팀목에 과도하게 의지하면서 전사 집단이 다시금 고개를 들고 무력 갈등을 야기한 탓. 이는 현인 세력의 힘을 약화시켰다. 대표적인 예가 베트남전쟁이다. 또한 경직된 현인-노동자 동맹 체제는 1970년대 발생한 여러 차례의 경제 위기와 후기 산업사회로의 이행 과제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했다.
5장, 이를 틈타 1960년대 냉전 질서에 반기를 들었던 학생운동 집단을 끌어들인 상인 집단은 1970년대에 들어서며 다시금 과거의 패권을 되찾기 시작한다.(이때 친시장 현인 집단이 이론을 뒷받침함으로써 상인 집단의 패권 장악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냉전 시대를 거치며 전사와 현인 집단은 물론 공산권 붕괴로 노동자 집단마저 사회적 신뢰를 상실한 처지였다. 견제할 만한 적수들이 사라지고(또는 포섭되고), 상인 집단의 단일 패권 시대를 위한 최적의 환경이 조성된 것. 바야흐로 상인의 가치가 전 세계를 집어삼키는 다보스맨의 독주가 시작된다.
논쟁 없는 합의 체제
‘다보스 맨’의 독주는 무엇을 소환하는가?
1970년대 이후 세계는 다보스 포럼에서 합의된 ‘탈규제 시정이야말로 바람직한 미래상’이라는 관점을 별다른 논쟁 없이 받아들였다. ‘다보스맨’들은 현인의 관리 감독을 받는 자본주의 양태였던 브레턴우즈 체제를 보다 상인의 비전에 맞는 질서로 변모시켜 나갔다.
상인 집단의 공세에 맞설 카스트들의 힘은 미미했다. 중국에서 거대한 노동력이 공급되는 바람에 서구 세계에서 노동조합은 힘을 잃었다. 무엇보다 상인 친화적 경제학 분파가 대세를 잡기 시작했다. 시장의 효율성을 맹신하는 이른바 ‘합리적 시장 가설’이 경제학자들의 굳은 신뢰를 얻으며 시장근본주의가 종교처럼 행세하기 시작했다.
오늘 우리는 상인이 지배하는 세계의 현실을 목도하고 있다. 최대 희생자는 노동조합이라는 노동자의 성채와, 정부와 공공부문이라는 현인 집단의 거점이었다. 탈규제 정책과 대량 실업으로 노동조합은 힘을 잃었고, 금융권은 대출을 거부하고 통화 공격을 감행하는 방식으로 정부를 길들였다. 이는 복지 지출의 대량 삭감, 보건과 교육 등 공공부문의 영리화로 이어졌다. 30년간 족쇄 풀린 상인 집단이 독주한 결과 부의 불평등, 사회 불안이 정점에 치닫고 있다.
『왜 상인이 지배하는가』를 통해 저자는 한 집단이 배타적으로 독주할 때 권력의 수레바퀴는 반드시 다시 돌아가기 시작함을 보여준다. 권력의 지각변동은 이미 시작되었다. 다음은 어떤 카스트가 왕좌에 오를지 또는 노동자를 포함한 각 카스트가 권력을 나누는 평화의 시대가 도래할지, 자연스럽게 추론으로 이끄는 것이 이 책이 주는 선물이자 과제이다.
책속으로 위로
기원전 2300년경에 이르러 전사 유목민과 농경 기반 도시 문화 세력이 사상 최초로 힘을 합해 새로운 형태의 국가를 형성했다. ‘공물 수취’에 기반한 ‘농경사회형 제국’이 등장한 것이다. (…) 전사-지주 지배 엘리트들이 통치하는 농경사회형 제국은 이후 4,000년 넘도록 전 세계의 많은 부분을 차지했다. ―43쪽
농경사회형 제국의 출현은 전사 집단의 권력을 길들이는 점진적 과정이 시작됐음을 알리는 사건이었다. (…) 전사 집단의 우두머리들은 자신들이 이끌던 ‘형제 전우들’만 배려하던 과거를 버리고 소작농들에게는 ‘아버지’가 되고 황제에게는 ‘아들’ 역할을 수행할 것을 요구받았다. (…) 당시 왕들은 성직자인 선전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 전사 집단들이 궁벽한 시골을 배회하던 폭력적이고 충동적인 영웅으로부터 ‘정중한’ 귀족과 ‘남성적 배려가 돋보이는’ 기사로 탈바꿈하는 과정을 촉진했다. ―46~49쪽
현인 집단은 자신들의 도덕적 권위와 천국과 교통할 수 있다는 능력을 불평등한 사회질서를 옹호하는 데 동원했다. 전사 집단도, 아니면 최소한 그들의 우두머리인 왕들은 현인 집단과 손잡으면 나름 얻을 게 있음을 깨달았다. 왕들은 자신의 권력을 전사 세력과 공유해야 했지만, 사제로부터 기름이 부어진 가부장적 지위를 확보하면 전사 집단과 별개로 더 강한 개인적 권위를 휘두를 수 있었다. ―55쪽, 1장 카스트 투쟁
과거제도가 모든 직급에 걸쳐 중국의 엘리트들을 ‘현인화’한 것은 분명하다. 다시 말해, 과거 제도를 통해 공자의 사상과 유교적 기풍이 행정과 정부, 권력 구조 전반의 문화에 깊이 스며든 것이다. 그 결과 가운데 하나는 중국이 과거를 통한 현인화에 걸맞게 전쟁보다는 공공사업과 기근 구호 및 복지에 큰 관심을 쏟게 됐다는 점이다. (…) 초기 유교 사회에 등장한 권력의 네 구조에서는 전사 집단이 빠져 있었다. 맨 위에 현인 관리, 즉 선비가 자리했고, 그 아래 농부와 장인이 자리했으며, 맨 아래는 상인이 차지했다. 11세기에 군인에게도 자리가 주어졌지만 여덟 계급 중 밑에서 두 번째로, 부랑자의 바로 위 서열에 불과했다. ―58쪽, 1장 카스트 투쟁
귀족 집단의 세습주의와 후견인 챙겨주기 관습이 아니라 현인 집단의 전문적 식견이 국가 행정의 핵심으로 침투하기 시작한 시기는 17세기 후반에서 18세기경이었다. 이러한 이행은 전쟁의 압박 속에서 진행되었고, 그나마 몇몇 나라에 국한되었다. 프로이센에서는 잦은 전쟁에 따른 비용을 감당하려면 어쩔 수 없이 채택해야 하는 변화의 방향이라고 여러 왕들이 판단한 후에야 비로소 가능했다. 특히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2세는 전문 관리들이 운영하는 영역을 왕가의 영역에서 분리했고, 전자의 위상을 가장 높게 설정했다. (…) 1794년에 이르자 관리들은 더 이상 ‘왕의 충복’에 머물지 않고 ‘나라의 전문 관리’라고 불렸다. ―60쪽, 1장 카스트 투쟁
19세기 말에 영국의 경쟁 국가들이 성공을 거둔 이유는 이들이 현인 집단과 그들의 가치를 국가 경제체제에 부분적으로라도 접목시켰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흥 강대국들이 현인 집단과 융합하는 과정은 국가들마다 달랐다. 독일과 일본의 전사 집단과 정치가들은 토지가 아니라 생산업이 부를 창출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토지 소유에 전념하는 귀족 집단과 거리를 두는 대신 현인-테크노크라트 및 기업가 집단과 손잡고 국민국가 건설과 경제·군사 부문의 통합을 지향했다. 국제적 경쟁이 격화된 시대 상황을 맞은 이들은 중화학공업 기반을 다지기 위해 좌고우면하지 않고 국가 주도형 프로젝트들을 개시했다. 이때 여러 카스트 간의 협업을 독려하기 위해 강력한 국수주의적 이데올로기들이 동원되곤 했다. ―123쪽, 2장 철의 주먹과 벨벳 장갑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차르 치하의 러시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그리고 오스만 제국처럼 토지에 기반한 농경사회형 제국들이 패퇴하고 자유주의적·상업주의적 기풍이 두드러졌던 미국과 영국 그리고 프랑스가 승전국으로 부상했다. 결국 전쟁을 치른 끝에 구체제를 유지했던 귀족적 가치가 설득력을 잃었다. 나아가 이들이 지탱했던 제국의 원칙도 함께 무너졌다. 1919년 베르사유 조약에서 승전국 측이 영국과 프랑스 그리고 일본의 제국 체제를 와해시키기를 거부하자 민족주의 운동이 세계를 강타했다. (…) 유럽 군국주의 수뇌부는 이런 상황에서 발할라가 불타 없어지듯 소멸했고, 이들과 함께 수뇌부를 구성했던 귀족 집단은 방종과 둔감함 그리고 실패의 상징이 되었다. ―158쪽, 2장 철의 주먹과 벨벳 장갑
상인 집단은 여러 나라에서 영향력을 확대할 기회를 잡고 있었다. 정도의 차이는 있었지만 여러 국가의 정부들이 전시 체제에 운용한 통제 경제를 폐지하면서 일어난 일이다. 물론 전사 정치 세력이 완전히 패배한 것은 아니었다. 특히 서유럽 국가들은 저항적인 노동계급의 불만을 누그러뜨려야 했기 때문에 제1차 세계대전 발발 전의 자유시장 체제를 급히 복원하기를 꺼렸다. (…) 그러나 이러한 시대적 난제들을 걱정할 필요가 없었던 미국의 전사 집단은 1920년 이후 상인 집단이 미국에서 전쟁 이전의 지위를 회복하는 데 기여했다. 미국은 세계 최고의 부국으로 올라섰고, 주요 자본 수출국의 지위에서도 영국을 대체했다. 이에 따라 미국은 역사상 최초로 순수한 상인 집단의 규범을 유럽과 전 세계에 퍼뜨리려고 시도했다. ―158쪽, 2장 철의 주먹과 벨벳 장갑
나치주의가 표방한 반엘리트주의는 노동계급으로부터 많은 지지를 얻었다. 나치는 상인과 현인의 가치관에 경멸을 표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1920년대 후반에 이르자 히틀러는 특히 전문직에 종사하는 중산층과 상인들의 지지세를 확보하려 했다. 왜냐하면 이 집단들이 자신들의 사회적·민족적 지위가 위기에 처했다고 판단하여 사회적·경제적 위계질서 유지를 위해 전사 집단에 관심을 두었기 때문이다. 권력을 얻을 가능성이 커지자 히틀러는 나치와 강경 상인 집단의 가치가 유사하다고 강조하며 이들을 동원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였다. ―215쪽, 3장 오만과 파국
상인 집단은 히틀러가 1933년에 총리직을 차지한 뒤 민주주의 파괴, 정적 투옥, 그리고 그들에게는 최악이라고 할 재무장을 위한 경제 통제를 지행하자 당혹스러워했지만, 나치가 시행한 강경 상인 집단 성향의 조치들은 환영했다. 이 조치들은 노동조합 파괴, 공산주의자 체포 및 임금 동결 등을 포함했다. 게다가 상인 집단은 나치의 보호주의적 경제체제로부터 괜찮은 수익을 거둘 수 있다는 점도 금세 깨달았다. 히틀러가 약속했듯이, 새로 출범한 나치 정권은 좌파의 도전을 일소하고 중산층의 힘을 복원하는 데 전념할 태세가 되어 있는 듯했다. ―207쪽, 3장 오만과 파국
서구에서는 나치나 소련, 중국 등과는 다른 사회민주주의 성향의 사회주의 운동이 1930년대의 위기에 가장 성공적으로 대응하고 있었다. 사회민주주의는 상인 집단과 화평을 유지하는 한편 현인 및 노동자 집단이 그들을 확고히 통제하도록 했다. 이렇듯 사회민주주의는 자본주의의 힘을 적극 활용하여 사회 각 계급을 풍요롭게 했고 자유민주주의 기반 또한 강하게 다졌다. 가장 순수한 형태의 사회민주주의는 스웨덴에서 출현했지만, 당대의 호전적인 분위기에서 전사적 사회민주주의가 엉뚱한 곳에서 강력한 힘을 다지며 자리를 넓히고 잇었다. 바로 미국에서 말이다. ―219쪽, 3장 오만과 파국
20세기를 ‘자유주의’와 ‘전체주의’의 투쟁으로 규정하는 일반적 행태는 일방적인 관점이다. 물론 ‘전체주의 진영’으로 불리는 나치주의와 스탈린주의는 중요한 특징 몇 가지를 공유했다. 대표적으로 전사 집단의 힘이 두드러졌고, 국가 폭력을 활용했으며, 이데올로기 주창자 및 동원자로서 현인-사제 집단의 중요성을 인지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그렇지만 이 둘은 상인 집단과 노동자 세력의 위치와 같은 여러 측면에서 다른 점이 많다. 그러므로 이들을 단순히 ‘전체주의적’이라고 분류하면, 이들이 자유주의에 대해 공통적으로 지녔던 증오심을 지나치게 부각시키는 반면 당대에 훨씬 중요하다고 여겨졌던 다른 특징들을 한데 묶어서 외면하는 결과를 낳는다.
이처럼 단순하고 극단적인 분석틀은 자유주의와 사회민주주의의 유사성을 과장하는 한편, 특히 노동자에 대한 고용주의 권력을 강조했던 자유주의와 나치주의의 공통적 특징을 간과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경제 계획과 복지국가라는 공통적 요소를 지니고 있는 사회민주주의와 스탈린주의의 유사성도 놓칠 수 있다. ―200쪽, 3장 오만과 파국
브레턴우즈 총회 결과는 케인스가 보기에 미국의 상인 및 전사 집단에게 지나치게 의지한 면이 있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현대 세계에서 현인 집단의 영향력이 정점을 찍은 사례로 볼 수도 있다. 브레턴우즈에 모여든 당대를 주름 잡던 지식인들이 속세로부터 유리된 채 장엄한 워싱턴 산을 바라보며 장차 상인 집단을 속박하는 데 쓰일 족쇄를 벼렸던 것이다. 이제 시장이 아닌 정부가 환율을 정하게 될 터였다. 게다가 1920년대 세계경제에 격심한 불안정성을 초래했던, 아무 제약 없이 국경을 넘나들며 진행되는 과거의 자본 투자 행위의 자유는 더 이상 불가능했다. 브레턴우즈의 설계자들은 민간 은행가들에게 정부에 대한 통제력을 안겨줄 생각이 없었다.
즉, 이들은 정부 지출이 탐탁지 않을 때 투자 자본을 빼버리는 이른바 ‘자본 태업(capital strike)’을 일삼을 권리를 허락하지 않으려 했다. 궁극적으로 업계가 이러한 제약 조건을 감내할 것이라는 쪽으로 베팅한 셈이다. 기존의 위험한 단기성 투기가 아닌 장기적으로 안정성이 보강된 투자 행위를 통해 업계가 더 큰 수익을 거둘 수 있으리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241쪽, 4장 똘똘이들의 시대
제3세계 마르크스주의 세력이 서구의 젊은 동조자들의 마음은 끈 이유는, 그들이 현인-테크노크라트 지배 질서에 저항했기 때문이었다. 1960년대 서구 학생운동 진영도 현인-테크노크라트 지배 질서를 적으로 간주했기 때문이다. 카스트로가 뉴욕을 방문했을 때 학생들과 학계가 보인 호의적 반응을 통해 장차 제1세계 반권위주의 학생 진영과 제3세계 신흥 게릴라 세대의 연대가 강고해질 것이란 점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275쪽, 4장 똘똘이들의 시대
학생들의 봉기는 1968년에 절정에 이르렀다. 1968년은 전쟁 이후의 국내외 질서, 그리고 경제적 질서와 사회적 질서가 단단히 착근하기 시작한 시점이기도 하다. 격동하는 시대상의 한가운데 1960년대 급진파가 혐오하던 모든 것들의 상징적 인물이 있었다. 바로 로버트 맥나마라였다. 1960년대 중엽만 하더라도 맥나마라는 큐브릭의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처럼 행동했다. 애초부터 베트남전을 지지했던 맥나마라는 특유의 전형적인 현인-테크노크라트적 열정과 자기 확신을 지니고 국방장관 업무를 수행했다. 그는 포드 자동차 생산 라인을 돌리듯이 전투를 치렀다. ―279쪽, 4장 똘똘이들의 시대
제1세계와 제3세계를 휩쓴 1968년의 봉기는 브레턴우즈 체제라는 전후 질서에 내재한 사회적 단층선을 잔인할 정도로 드러냈고, 그 체제를 떠받들고 있던 전사와 현인 집단의 실상도 고스란히 노출했다. 낮은 실업률로 힘을 얻은 노동자 집단은 더 많은 것을 요구하고 나섰고, 세계 질서에서 소외되었던 남반구의 빈국들도 들고일어났다. (…) 1968년 위기의 직접적인 희생자는 브레턴우즈 체제의 경제체제였다. 금본위제가 감당 못할 수준으로 막대한 지출을 일삼았던 미국 정부는 1968년 3월 금본위제 유지에 대한 의지를 누그러뜨렸고, 1971년 닉슨 대통령은 금본위제를 포기했다. ―281쪽, 4장 똘똘이들의 시대
미국의 전사 집단은 브레턴우즈 체제 대신 제약 없는 재정 적자와 인플레이션을 용인하는 대안적 정책을 추구했는데, 이는 결국 국제경제의 혼돈상과 사회적 갈등을 초래했다. (…) 독일 같은 조정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현인-테크노크라트 집단이 어느 정도 영향력을 보유했기 때문에 사회적 긴장을 협상으로 관리할 수 있었다. 그러나 고용주와 노조 사이에서 국가가 주도적으로 협상하는 전통을 찾아보기 힘든 영국과 미국에서는 노사관계가 급속히 악화되었다. 이를 반영하듯, 1970년 미국이 파업 때문에 상실한 일인당 근로일 수는 선진국권에서 최고를 기록했다. 또한 1970년대 독일의 연평균 물가상승률이 5.4퍼센트였을 때 영국의 연평균 물가상승률은 12퍼센트를 상회했다. ―283~284쪽, 4장 똘똘이들의 시대
이 세력은 상인 집단의 유연성과 경쟁적 본능, 최대 이윤을 추구하는 성향이 인류 모두에게 번영을 안겨다 줄 거라고 확신했다. 자본가들의 이윤 추구를 허용하는 것만이 자본을 해방시켜 세계 어느 곳이든 생산성 있는 새로운 산업으로 흘러들게 하는 방책이라고 봤다. 따라서 이윤 추구를 막아서는 장벽은 모조리 제거해야 했다. 이 관점이 현실 세계에서 의미한 것은, 자본가 집단과 그들의 대리인인 은행권에 더 많은 힘을 실어줘야 한다는 것이었다. ―315쪽, 5장 다보스맨의 독주
여기서 한 가지 사실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현인-테크노크라트는 언제든 현인-사제로 돌변할 수 있다는 점이다. 현인-테크노크라트들은 자신들만의 고유한 수단을 동원하여 정교하고 내적 완결성을 지닌 교리들을 개발할 수 있는 이들이다. 이들은 중세 성직자들이 지녔던 교조적 확신 속에서 이러한 과업에 임하는데, 일단 교리를 완성하고 나면 거의 흔들리지 않을 정도로 입장이 확고해진다. (…) 친시장 현인 집단이 상인 집단의 패권 장악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317쪽, 5장 다보스맨의 독주
농경사회형 제국의 출현은 전사 집단의 권력을 길들이는 점진적 과정이 시작됐음을 알리는 사건이었다. (…) 전사 집단의 우두머리들은 자신들이 이끌던 ‘형제 전우들’만 배려하던 과거를 버리고 소작농들에게는 ‘아버지’가 되고 황제에게는 ‘아들’ 역할을 수행할 것을 요구받았다. (…) 당시 왕들은 성직자인 선전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 전사 집단들이 궁벽한 시골을 배회하던 폭력적이고 충동적인 영웅으로부터 ‘정중한’ 귀족과 ‘남성적 배려가 돋보이는’ 기사로 탈바꿈하는 과정을 촉진했다. ―46~49쪽
현인 집단은 자신들의 도덕적 권위와 천국과 교통할 수 있다는 능력을 불평등한 사회질서를 옹호하는 데 동원했다. 전사 집단도, 아니면 최소한 그들의 우두머리인 왕들은 현인 집단과 손잡으면 나름 얻을 게 있음을 깨달았다. 왕들은 자신의 권력을 전사 세력과 공유해야 했지만, 사제로부터 기름이 부어진 가부장적 지위를 확보하면 전사 집단과 별개로 더 강한 개인적 권위를 휘두를 수 있었다. ―55쪽, 1장 카스트 투쟁
과거제도가 모든 직급에 걸쳐 중국의 엘리트들을 ‘현인화’한 것은 분명하다. 다시 말해, 과거 제도를 통해 공자의 사상과 유교적 기풍이 행정과 정부, 권력 구조 전반의 문화에 깊이 스며든 것이다. 그 결과 가운데 하나는 중국이 과거를 통한 현인화에 걸맞게 전쟁보다는 공공사업과 기근 구호 및 복지에 큰 관심을 쏟게 됐다는 점이다. (…) 초기 유교 사회에 등장한 권력의 네 구조에서는 전사 집단이 빠져 있었다. 맨 위에 현인 관리, 즉 선비가 자리했고, 그 아래 농부와 장인이 자리했으며, 맨 아래는 상인이 차지했다. 11세기에 군인에게도 자리가 주어졌지만 여덟 계급 중 밑에서 두 번째로, 부랑자의 바로 위 서열에 불과했다. ―58쪽, 1장 카스트 투쟁
귀족 집단의 세습주의와 후견인 챙겨주기 관습이 아니라 현인 집단의 전문적 식견이 국가 행정의 핵심으로 침투하기 시작한 시기는 17세기 후반에서 18세기경이었다. 이러한 이행은 전쟁의 압박 속에서 진행되었고, 그나마 몇몇 나라에 국한되었다. 프로이센에서는 잦은 전쟁에 따른 비용을 감당하려면 어쩔 수 없이 채택해야 하는 변화의 방향이라고 여러 왕들이 판단한 후에야 비로소 가능했다. 특히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2세는 전문 관리들이 운영하는 영역을 왕가의 영역에서 분리했고, 전자의 위상을 가장 높게 설정했다. (…) 1794년에 이르자 관리들은 더 이상 ‘왕의 충복’에 머물지 않고 ‘나라의 전문 관리’라고 불렸다. ―60쪽, 1장 카스트 투쟁
19세기 말에 영국의 경쟁 국가들이 성공을 거둔 이유는 이들이 현인 집단과 그들의 가치를 국가 경제체제에 부분적으로라도 접목시켰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흥 강대국들이 현인 집단과 융합하는 과정은 국가들마다 달랐다. 독일과 일본의 전사 집단과 정치가들은 토지가 아니라 생산업이 부를 창출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토지 소유에 전념하는 귀족 집단과 거리를 두는 대신 현인-테크노크라트 및 기업가 집단과 손잡고 국민국가 건설과 경제·군사 부문의 통합을 지향했다. 국제적 경쟁이 격화된 시대 상황을 맞은 이들은 중화학공업 기반을 다지기 위해 좌고우면하지 않고 국가 주도형 프로젝트들을 개시했다. 이때 여러 카스트 간의 협업을 독려하기 위해 강력한 국수주의적 이데올로기들이 동원되곤 했다. ―123쪽, 2장 철의 주먹과 벨벳 장갑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차르 치하의 러시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그리고 오스만 제국처럼 토지에 기반한 농경사회형 제국들이 패퇴하고 자유주의적·상업주의적 기풍이 두드러졌던 미국과 영국 그리고 프랑스가 승전국으로 부상했다. 결국 전쟁을 치른 끝에 구체제를 유지했던 귀족적 가치가 설득력을 잃었다. 나아가 이들이 지탱했던 제국의 원칙도 함께 무너졌다. 1919년 베르사유 조약에서 승전국 측이 영국과 프랑스 그리고 일본의 제국 체제를 와해시키기를 거부하자 민족주의 운동이 세계를 강타했다. (…) 유럽 군국주의 수뇌부는 이런 상황에서 발할라가 불타 없어지듯 소멸했고, 이들과 함께 수뇌부를 구성했던 귀족 집단은 방종과 둔감함 그리고 실패의 상징이 되었다. ―158쪽, 2장 철의 주먹과 벨벳 장갑
상인 집단은 여러 나라에서 영향력을 확대할 기회를 잡고 있었다. 정도의 차이는 있었지만 여러 국가의 정부들이 전시 체제에 운용한 통제 경제를 폐지하면서 일어난 일이다. 물론 전사 정치 세력이 완전히 패배한 것은 아니었다. 특히 서유럽 국가들은 저항적인 노동계급의 불만을 누그러뜨려야 했기 때문에 제1차 세계대전 발발 전의 자유시장 체제를 급히 복원하기를 꺼렸다. (…) 그러나 이러한 시대적 난제들을 걱정할 필요가 없었던 미국의 전사 집단은 1920년 이후 상인 집단이 미국에서 전쟁 이전의 지위를 회복하는 데 기여했다. 미국은 세계 최고의 부국으로 올라섰고, 주요 자본 수출국의 지위에서도 영국을 대체했다. 이에 따라 미국은 역사상 최초로 순수한 상인 집단의 규범을 유럽과 전 세계에 퍼뜨리려고 시도했다. ―158쪽, 2장 철의 주먹과 벨벳 장갑
나치주의가 표방한 반엘리트주의는 노동계급으로부터 많은 지지를 얻었다. 나치는 상인과 현인의 가치관에 경멸을 표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1920년대 후반에 이르자 히틀러는 특히 전문직에 종사하는 중산층과 상인들의 지지세를 확보하려 했다. 왜냐하면 이 집단들이 자신들의 사회적·민족적 지위가 위기에 처했다고 판단하여 사회적·경제적 위계질서 유지를 위해 전사 집단에 관심을 두었기 때문이다. 권력을 얻을 가능성이 커지자 히틀러는 나치와 강경 상인 집단의 가치가 유사하다고 강조하며 이들을 동원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였다. ―215쪽, 3장 오만과 파국
상인 집단은 히틀러가 1933년에 총리직을 차지한 뒤 민주주의 파괴, 정적 투옥, 그리고 그들에게는 최악이라고 할 재무장을 위한 경제 통제를 지행하자 당혹스러워했지만, 나치가 시행한 강경 상인 집단 성향의 조치들은 환영했다. 이 조치들은 노동조합 파괴, 공산주의자 체포 및 임금 동결 등을 포함했다. 게다가 상인 집단은 나치의 보호주의적 경제체제로부터 괜찮은 수익을 거둘 수 있다는 점도 금세 깨달았다. 히틀러가 약속했듯이, 새로 출범한 나치 정권은 좌파의 도전을 일소하고 중산층의 힘을 복원하는 데 전념할 태세가 되어 있는 듯했다. ―207쪽, 3장 오만과 파국
서구에서는 나치나 소련, 중국 등과는 다른 사회민주주의 성향의 사회주의 운동이 1930년대의 위기에 가장 성공적으로 대응하고 있었다. 사회민주주의는 상인 집단과 화평을 유지하는 한편 현인 및 노동자 집단이 그들을 확고히 통제하도록 했다. 이렇듯 사회민주주의는 자본주의의 힘을 적극 활용하여 사회 각 계급을 풍요롭게 했고 자유민주주의 기반 또한 강하게 다졌다. 가장 순수한 형태의 사회민주주의는 스웨덴에서 출현했지만, 당대의 호전적인 분위기에서 전사적 사회민주주의가 엉뚱한 곳에서 강력한 힘을 다지며 자리를 넓히고 잇었다. 바로 미국에서 말이다. ―219쪽, 3장 오만과 파국
20세기를 ‘자유주의’와 ‘전체주의’의 투쟁으로 규정하는 일반적 행태는 일방적인 관점이다. 물론 ‘전체주의 진영’으로 불리는 나치주의와 스탈린주의는 중요한 특징 몇 가지를 공유했다. 대표적으로 전사 집단의 힘이 두드러졌고, 국가 폭력을 활용했으며, 이데올로기 주창자 및 동원자로서 현인-사제 집단의 중요성을 인지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그렇지만 이 둘은 상인 집단과 노동자 세력의 위치와 같은 여러 측면에서 다른 점이 많다. 그러므로 이들을 단순히 ‘전체주의적’이라고 분류하면, 이들이 자유주의에 대해 공통적으로 지녔던 증오심을 지나치게 부각시키는 반면 당대에 훨씬 중요하다고 여겨졌던 다른 특징들을 한데 묶어서 외면하는 결과를 낳는다.
이처럼 단순하고 극단적인 분석틀은 자유주의와 사회민주주의의 유사성을 과장하는 한편, 특히 노동자에 대한 고용주의 권력을 강조했던 자유주의와 나치주의의 공통적 특징을 간과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경제 계획과 복지국가라는 공통적 요소를 지니고 있는 사회민주주의와 스탈린주의의 유사성도 놓칠 수 있다. ―200쪽, 3장 오만과 파국
브레턴우즈 총회 결과는 케인스가 보기에 미국의 상인 및 전사 집단에게 지나치게 의지한 면이 있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현대 세계에서 현인 집단의 영향력이 정점을 찍은 사례로 볼 수도 있다. 브레턴우즈에 모여든 당대를 주름 잡던 지식인들이 속세로부터 유리된 채 장엄한 워싱턴 산을 바라보며 장차 상인 집단을 속박하는 데 쓰일 족쇄를 벼렸던 것이다. 이제 시장이 아닌 정부가 환율을 정하게 될 터였다. 게다가 1920년대 세계경제에 격심한 불안정성을 초래했던, 아무 제약 없이 국경을 넘나들며 진행되는 과거의 자본 투자 행위의 자유는 더 이상 불가능했다. 브레턴우즈의 설계자들은 민간 은행가들에게 정부에 대한 통제력을 안겨줄 생각이 없었다.
즉, 이들은 정부 지출이 탐탁지 않을 때 투자 자본을 빼버리는 이른바 ‘자본 태업(capital strike)’을 일삼을 권리를 허락하지 않으려 했다. 궁극적으로 업계가 이러한 제약 조건을 감내할 것이라는 쪽으로 베팅한 셈이다. 기존의 위험한 단기성 투기가 아닌 장기적으로 안정성이 보강된 투자 행위를 통해 업계가 더 큰 수익을 거둘 수 있으리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241쪽, 4장 똘똘이들의 시대
제3세계 마르크스주의 세력이 서구의 젊은 동조자들의 마음은 끈 이유는, 그들이 현인-테크노크라트 지배 질서에 저항했기 때문이었다. 1960년대 서구 학생운동 진영도 현인-테크노크라트 지배 질서를 적으로 간주했기 때문이다. 카스트로가 뉴욕을 방문했을 때 학생들과 학계가 보인 호의적 반응을 통해 장차 제1세계 반권위주의 학생 진영과 제3세계 신흥 게릴라 세대의 연대가 강고해질 것이란 점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275쪽, 4장 똘똘이들의 시대
학생들의 봉기는 1968년에 절정에 이르렀다. 1968년은 전쟁 이후의 국내외 질서, 그리고 경제적 질서와 사회적 질서가 단단히 착근하기 시작한 시점이기도 하다. 격동하는 시대상의 한가운데 1960년대 급진파가 혐오하던 모든 것들의 상징적 인물이 있었다. 바로 로버트 맥나마라였다. 1960년대 중엽만 하더라도 맥나마라는 큐브릭의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처럼 행동했다. 애초부터 베트남전을 지지했던 맥나마라는 특유의 전형적인 현인-테크노크라트적 열정과 자기 확신을 지니고 국방장관 업무를 수행했다. 그는 포드 자동차 생산 라인을 돌리듯이 전투를 치렀다. ―279쪽, 4장 똘똘이들의 시대
제1세계와 제3세계를 휩쓴 1968년의 봉기는 브레턴우즈 체제라는 전후 질서에 내재한 사회적 단층선을 잔인할 정도로 드러냈고, 그 체제를 떠받들고 있던 전사와 현인 집단의 실상도 고스란히 노출했다. 낮은 실업률로 힘을 얻은 노동자 집단은 더 많은 것을 요구하고 나섰고, 세계 질서에서 소외되었던 남반구의 빈국들도 들고일어났다. (…) 1968년 위기의 직접적인 희생자는 브레턴우즈 체제의 경제체제였다. 금본위제가 감당 못할 수준으로 막대한 지출을 일삼았던 미국 정부는 1968년 3월 금본위제 유지에 대한 의지를 누그러뜨렸고, 1971년 닉슨 대통령은 금본위제를 포기했다. ―281쪽, 4장 똘똘이들의 시대
미국의 전사 집단은 브레턴우즈 체제 대신 제약 없는 재정 적자와 인플레이션을 용인하는 대안적 정책을 추구했는데, 이는 결국 국제경제의 혼돈상과 사회적 갈등을 초래했다. (…) 독일 같은 조정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현인-테크노크라트 집단이 어느 정도 영향력을 보유했기 때문에 사회적 긴장을 협상으로 관리할 수 있었다. 그러나 고용주와 노조 사이에서 국가가 주도적으로 협상하는 전통을 찾아보기 힘든 영국과 미국에서는 노사관계가 급속히 악화되었다. 이를 반영하듯, 1970년 미국이 파업 때문에 상실한 일인당 근로일 수는 선진국권에서 최고를 기록했다. 또한 1970년대 독일의 연평균 물가상승률이 5.4퍼센트였을 때 영국의 연평균 물가상승률은 12퍼센트를 상회했다. ―283~284쪽, 4장 똘똘이들의 시대
이 세력은 상인 집단의 유연성과 경쟁적 본능, 최대 이윤을 추구하는 성향이 인류 모두에게 번영을 안겨다 줄 거라고 확신했다. 자본가들의 이윤 추구를 허용하는 것만이 자본을 해방시켜 세계 어느 곳이든 생산성 있는 새로운 산업으로 흘러들게 하는 방책이라고 봤다. 따라서 이윤 추구를 막아서는 장벽은 모조리 제거해야 했다. 이 관점이 현실 세계에서 의미한 것은, 자본가 집단과 그들의 대리인인 은행권에 더 많은 힘을 실어줘야 한다는 것이었다. ―315쪽, 5장 다보스맨의 독주
여기서 한 가지 사실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현인-테크노크라트는 언제든 현인-사제로 돌변할 수 있다는 점이다. 현인-테크노크라트들은 자신들만의 고유한 수단을 동원하여 정교하고 내적 완결성을 지닌 교리들을 개발할 수 있는 이들이다. 이들은 중세 성직자들이 지녔던 교조적 확신 속에서 이러한 과업에 임하는데, 일단 교리를 완성하고 나면 거의 흔들리지 않을 정도로 입장이 확고해진다. (…) 친시장 현인 집단이 상인 집단의 패권 장악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317쪽, 5장 다보스맨의 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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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합뉴스 ] 상인·군인·현인의 합종연횡으로 본 인류 역사 2016-07-06
[ 뉴시스 ] 상인, 군인, 현인의 권력 지각변동…'왜 상인이 지배하는가' 2016-07-07
[ 한국경제 ] 상인·군인·관료 권력 투쟁이 역사를 바꿨다 2016-07-07
[ 부산일보 ] [이 주의 새 책] 왜 상인이 지배하는가 外 2016-07-07
[ 헤럴드경제 ] [리더스카페] 현대판 신분제로 본 권력의 이동 2016-07-07
[ 전남일보 ] 상인ㆍ군인ㆍ현인의 합종연횡으로 본 인류 역사 2016-07-08
[ 경향신문 ] [새책] 왜 상인이 지배하는가 外 2016-07-08
[ 서울신문 ] [당신의 책] 2016-07-08
[ 한국일보 ] [새 책] 왜 상인이 지배하는가 外 2016-07-08
[ 내일신문 ] 권력의 지각변동 2016-07-08
[ 문화일보 ] ‘상인’이 장악한 세상, 누가 이를 제어할까? 2016-07-08
[ 국제신문 ] [왜 상인이 지배하는가] 상인·군인·관료 투쟁이 역사를 끌어왔다 2016-07-08
[ 매일경제 ] 상인은 어떻게 이데올로기의 주인이 됐나 2016-07-08
[ 광주일보 ] 탈규제 시장이 자본의 패권을 불렀다 2016-07-08
[ 헤럴드경제 ] 상인들은 어떻게 ‘왕좌’를 차지했나 2016-07-08
[ 동아일보 ] [책의 향기/150자 서평]왜 상인이 지배하는가 外 2016-07-09
[ 중앙일보 ] [책 속으로] 계속되는 상인 계급의 권력 독주…불평등·양극화는 필연적인 걸까 2016-07-10
[ SBS뉴스 ] '상인·군인·현인'의 권력 쟁탈사…새로운 관점 2016-07-11
[ 대전일보 ] 권력의 톱니바퀴는 누가 돌리나 2016-07-15
[ MBC뉴스 ] [신간] "상인집단의 권력 독주" '왜 상인이 지배하는가' 外 2016-07-18
[ 매경이코노미 ] [서평] 왜 상인이 지배하는가 | 상인 집단이 독주하는 세계는 위험하다 2016-07-18
[ 주간경향 ] [신간]왜 상인이 지배하는가 外 2016-07-19
[ 매경CityLife ] 역사를 이끈 상인들의 힘 <왜 상인이 지배하는가> 2016-07-21
[ 법보신문 ] [새책] ‘왜 상인이 지배하는가’ 外 2016-08-16
[ 뉴시스 ] 상인, 군인, 현인의 권력 지각변동…'왜 상인이 지배하는가' 2016-07-07
[ 한국경제 ] 상인·군인·관료 권력 투쟁이 역사를 바꿨다 2016-07-07
[ 부산일보 ] [이 주의 새 책] 왜 상인이 지배하는가 外 2016-07-07
[ 헤럴드경제 ] [리더스카페] 현대판 신분제로 본 권력의 이동 2016-07-07
[ 전남일보 ] 상인ㆍ군인ㆍ현인의 합종연횡으로 본 인류 역사 2016-07-08
[ 경향신문 ] [새책] 왜 상인이 지배하는가 外 2016-07-08
[ 서울신문 ] [당신의 책] 2016-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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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일신문 ] 권력의 지각변동 2016-07-08
[ 문화일보 ] ‘상인’이 장악한 세상, 누가 이를 제어할까? 2016-07-08
[ 국제신문 ] [왜 상인이 지배하는가] 상인·군인·관료 투쟁이 역사를 끌어왔다 2016-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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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아일보 ] [책의 향기/150자 서평]왜 상인이 지배하는가 外 2016-07-09
[ 중앙일보 ] [책 속으로] 계속되는 상인 계급의 권력 독주…불평등·양극화는 필연적인 걸까 2016-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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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간경향 ] [신간]왜 상인이 지배하는가 外 2016-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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