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베트남 호찌민시에서 열린 제11차 샤카디타 세계 여성 불교인대회(이하 ‘샤카디타’)와 태국 방콕에서 열렸던 제12차 샤카디타에 참석했던 필자는 세계 각국에서 온 여성 불교인들의 열정과 그들이 제시하는 이슈의 다양함에 놀랐었다. 당시 한국 참가자들을 개별적으로 참가했기 때문에 주최 측의 일정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아 혼선도 있었고, 50여 개에 달하는 대회 발표문을 모두 번역할 수 없었기에 안타까움도 컸다. 참가국 가운데 대만은 2009년 ‘샤카디타 대만본부’를 결성하고 ‘번역위원회’를 구성해서 대회 중 발표되는 원고를 미리 번역 · 배포하는 등 매우 체계적이었기에 부러워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2013년 ‘샤카디타코리아’가 설립되고 번역팀까지 구성되어 이 책을 펴냈으니 참으로 감회가 새롭고, 이 책의 출판이 그 누구보다 반갑다.
《불교 페미니즘과 리더십》은 2011년부터 2016년까지 제12차, 13차, 14차 ‘샤카디타’에서 발표된 논문들 가운데 주제별로 선별하여 ‘샤카디타 코리아’ 번역팀에서 한 권으로 엮은 책이다. ‘샤카디타’는 원래 ‘붓다의 딸들’이라는 의미로, 1987년 인도에서 동서양의 재가 여성 불자와 비구니들에 의해 처음 조직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2년에 한 번씩 종파를 초월한 동서양의 천여 명이 넘는 여성 불교인들이 일주일 동안 여성 불교인의 역할이나 여성지도자의 발굴, 여성 불교인 활동을 통한 역량 강화 등을 위해 연대하고 교류해왔다. 한국은 1991년 2차 대회부터 지속적으로 참여하였고, 8차 대회를 서울에서 성공적으로 개최하면서 ‘샤카디타’의 주요 참가국으로서 역할을 하고 있다.
‘샤카디타’의 성격과 활동 그리고 역할은 불교 페미니즘이 바탕이 된다. 서구의 페미니즘이 여성 억압의 원인을 분석하고 그 대안을 모색하며 궁극적으로는 여성해방을 목표로 한다면, 불교 페미니즘은 불교 교리의 실천을 통해 여성해방을 달성하고자 한다. 즉, 붓다는 페미니스트이며, 불교 교리는 여성해방의 이데올로기인 것이다. 불교 페미니즘의 개념적 정의는 ‘여성이 억압받고 있는 현실에 대한 자각과 함께 이러한 억압이 사회적으로 구성되었기 때문에 변화 가능함을 인식하고, 불교 사상을 기반으로 여성해방은 물론 궁극적으로는 온 생명의 존귀함과 평등을 성취하기 위한 실천이론’이라고 할 수 있다. 1980년대 서구에서 시작된 불교 페미니즘은 성 평등, 인간 평등,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온 생명의 평등을 주창하지만, 특히 교단에 존재하는 여성 억압과 차별이 붓다의 가르침인 교리와 어떻게 대치되는가를 분석함과 동시에 사회의 가부장적 젠더 위계를 극복하기 위한 이론 틀을 제공하고자 한다.
‘샤카디타’가 동서양 여성 불교인들이 ‘여성’이라는 이름으로 함께 만나 불교 내 성차별 극복을 위해 목소리를 내기까지는, 지역을 넘어 전 지구적 여성들이 연대하고 소통하며 여성의 집단 세력화, 정치 권력화를 위해 노력해 온 세계여성운동의 영향이 크다. 서구에서 시작된 불교 페미니즘이 동양 불교국가로 유입되면서 여성 불교인들이 불교 내 전통이나 관습 등으로 전해오던 성차별적 상황을 자각하게 만들고 또 이의 극복을 위해 연대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특히 서구 불교 여성주의자들은 아시아권 불교의 성차별이 ‘붓다의 가르침을 벗어난 일탈된 불교’로 규정하고, 탈이분법적 인식론과 자기변혁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불교 내 젠더 권력구조를 해체하고자 시도하였다. 이들은 교단 내 성 평등뿐만 아니라 상좌불교 국가의 비구니 수계 문제를 공식 담론화하면서, 세계 여성 불교인의 전 지구적인 연대를 촉발시키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왜곡된 교리의 재해석, 가부장적인 교단의 법 · 제도의 개선, 뛰어난 여성 불자 발굴 등을 노력하면서 불교 여성주의가 동 · 서양의 접점에서 탄생한 것이 ‘샤카디타’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불교 페미니즘과 여성 리더십에 대한 논문 37편이 총 3부로 나누어져 있다. 논문 발표자들은 동 · 서양, 인종, 국가, 연령, 수계 여부 등 다양하게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그만큼 여성 불교인과 관련한 이슈들을 다층적인 관점으로 이해할 수 있고, 다양한 영역에서의 여성 불교인들의 활동상을 접할 수 있다. 또한 평소에 만나기 어려운 여성 출가자나 서구의 불교 페미니스트들뿐만 아니라, 초발심으로 조심스럽게 자비행을 펼쳐 나가는 제3세계 여성 불교인들의 목소리도 만날 수 있다. 교단과 사회의 여성 문제를 여성의 관점으로 보고, 여성의 목소리로 말하고, 여성적 글쓰기를 통해 여성 리더를 양성하는 것은 불교 페미니즘의 실천 과정이라고 할 수 있으니, 이 책은 제목에서 제시하는 것처럼 불교 페미니즘과 여성 리더십을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
이 책의 내용을 조금 더 자세하게 살펴보면, 제1부에서는 ‘세계의 비구니 승가’에 관한 논문들이 중심으로 세계 곳곳의 출가 여성들의 활동을 나라별로 소개하고 있다. 특히 인도, 네팔, 부탄, 티베트 등 비구니 승단이 사라진 상좌부 불교국가 출가 여성들은 비구니 승단의 재구축을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다. 상좌불교 교단은 비구니가 되기 위해서 비구 · 비구니 이부승 수계를 받아야 하는데, 비구니계를 줄 비구니 승단이 없다는 이유로 이들은 비구니계를 받지 못한다. 머리를 깎고 출가해서 수행하지만, 이들은 수행녀에 불과하기 때문에 승가 내에서 비구보다 훨씬 낮은 위치에 놓인다. 하지만 동 · 서양 여성 불교인들과의 만남을 통해 성 평등 의식이 확장되면서 비구니 수계 문제를 매회 샤카디타에서 주요 이슈로 제기한다. 이들의 발표 논문을 보면 제목에서부터 비구니 수계의 장벽, 장애, 고충, 비가시화, 잊힌 승가 등으로 안타까운 현실을 토로하고 있는데, 여성 수행자는 성 차별과 신분 차별, 인종 차별이라는 삼중의 굴레 속에서 여전히 고통을 겪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독립된 비구니 승가의 전통과 오랜 역사를 이어온 한국 승가는 상좌부 비구니 수계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해왔다. 1993년에는 태국의 수행녀(매치)들에게, 1996년에는 스리랑카의 수행녀(다사실라마따)에게 비구니계를 주었지만, 정작 그 나라 비구 승단은 정식 수계를 받은 비구니로 인정하지 않거나 심한 경우에는 교단을 거역했다는 이유로 처벌하기도 했다. 비구니 승가의 부재는 비구 중심의 가부장적 법과 제도로 성 차별을 심화시키고, 부정적인 여성관으로 열등한 여성관을 내면화하게 만들고, 비구니 리더십의 성장을 방해한다. 그 결과 비구니는 교단 내에서도 주변인이자 비주류로 남게 되고, 재가 여성불자의 영적 지도자 역할에도 한계를 보이기도 한다.
제2부에서는 ‘붓다의 딸을 위한 여성 리더십’ 관련 논문들을 담고 있는데, 이는 불교 페미니즘의 관점에서 여성의 의식 고양을 목적으로 한다. 기성종교와 마찬가지로 불교에서 뛰어난 지도자는 대부분 비구/남성이고, 비구니/여성은 승단을 지원하고 신도를 길러내는 보조자 역할을 강요당했다. 그럼에도, 경전에는 뛰어난 여성 불교인들이 전해오는데, 특히 출가 여성 가운데 아라한의 경지에 오른 비구니 담마딘나는 붓다로부터 ‘법을 설함에 있어 비구니 가운데 가장 뛰어난 이’로, 비구니 소마는 여성도 깨달음에 오를 수 있음을 악마 마라와의 대화에서 보여주었다. 또한 재가 여성 지도자도 전해오는데, 경전에는 선정 제일, 환자 돌보는 님 가운데 제일, 믿음 제일 등 붓다가 직접 칭송한 ‘재가 여성 십대제자’도 있다. 하지만 ‘여성불성불론’이나 ‘변성성불론’ 등 열등하고 부정한 여성관의 유지 · 전승으로 여성들 스스로 부정적인 여성관을 내면화하면서 희생과 봉사를 미덕으로 여겼다. 이는 뛰어난 여성들을 불교사에서 삭제하거나 왜곡했기 때문이므로, 불교사에서 차별받거나 배제된 뛰어난 여성들을 발굴하고 널리 알려서 여성 불교인의 자긍심을 높여야 한다.
제3부에서는 ‘현대사회의 문제와 자비의 고요한 실천’이라는 주제와 관련된 글들이다. 세계 각지에서 여성 불교인들은 환자, 죄수, 성적 소수자는 물론 동물 보호 등을 실천하며 붓다의 길을 묵묵하게 걸어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들의 활동은 각국의 문화 차이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주기도 하고, 그들이 역할모델이 되어 각자에게 실천 과제를 안기기도 한다. 가부장제하 여성의 일은 주변적, 비가시적, 가치 없는 일로 치부했지만, 여성들은 묵묵히 생명을 만들고 키우며 상호 공존의 연기적 삶을 실천해왔다. 여성들의 역할을 인정하고 그 업적을 생명 존중과 살림으로 그 가치를 정당하게 자리매김할 때, 여성 개인의 인식은 더욱 확장되고 향상될 수 있으며 가부장제하 성 역할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성 평등이 실천되는 사회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2,600여 년 전, 여성의 지위가 매우 열등했던 인도에서 붓다는 여성도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고 주창하며 비구니 승단을 만들었고, 뛰어난 재가 여성들을 칭송하며 북돋워 주었다. 하지만 붓다 사후 교단은 성별 위계질서와 권력관계로 점철된 가부장주의에 오염된 법과 제도, 계율과 관습 등으로 여성들을 억압하고 있음을 불교 여성주의자들은 밝혔다. 그러므로 교단 내 견고한 가부장적 요소의 해체 작업을 통해 교리와 계율 등에 광범위하게 숨겨져 있던 성 편향성을 여성의 목소리로 밝혀내는 것이 여성 불교인들의 과제이다.
이 책이 동서양의 여성 불교인의 문제들을 드러내면서 이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을 잘 보여주었지만, 아쉬운 점이 몇 가지 있다. 이 책은 발표 논문을 모은 책이지만 불교 페미니즘이나 리더십에 대한 개념 정의가 분명하게 제시되어 있지 않다. 불교 페미니즘이라는 용어는 일반 여성 불교인들에게 익숙하지 않은 용어인데, 불교에서 불교 페미니즘이 갖는 함의나 오늘날 여성 불교인에게 왜 리더십이 필요한지 등에 대한 언급이 책의 서문에서라도 제시되었다면 독자들이 이 책을 이해하는 데 훨씬 도움이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또한 이 책은 세 번의 ‘샤카디타’에서 발표된 논문들을 선별해서 엮었는데, 백여 편이 훨씬 넘는 많은 발표 논문 가운데 여성 불교인 내부의 차이를 인정하거나 이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에 관한 고민의 글이 보이지 않는다. ‘샤카디타’의 공식 언어가 영어이기 때문에 비영어권 참가자는 상대적으로 소극적이었던 반면, 서구 여성 불교인들은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이로 인해 일부 동양 여성 불교인들은 서구 여성 불교인이 중심이 된 ‘샤카디타’가 마치 남성들처럼 특권을 가진 지배문화에 속해 있다며 불만을 표출하기도 했다. 계급 · 인종 · 문화 등으로 분화되면서 오늘날 여성들은 ‘여성 일반’으로 단일 범주화할 수 없고, 여성의 경험을 일반적 경험으로 치환할 수 없기 때문에 ‘하나의 페미니즘(a feminism)’은 성립될 수 없다. 그러므로 불교 페미니즘은 세계 불교 여성의 연대를 위해 여성 불교인 내부의 차이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를 적극적으로 고민해야 한다.
지구화라는 작금의 현실은 여성 불교인 연대의 틀 속에서 제1세계와 제3세계 여성으로 분리되거나 인종 · 계급 · 국가 등의 요인으로 다양성이 표출되기도 하고, 여성 내부의 차이에 근거해서 새로운 타자들이 구성되기도 한다. 하지만 해체와 동시에 새롭게 구성되는 여성 내부의 차이의 재현방식에 관심을 기울이고 세계 불교 여성들의 연대를 굳건하게 유지해야 한다. 이를 위한 고민들이 차후에 ‘샤카디타’에서 공식적으로 논의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
옥복연
종교와 젠더연구소 소장. 미국 남코네티컷주립대 여성학 석사, 서울대학교 여성학협동과정 박사. 서울대 여성연구소 선임연구원, 국민대 강사 등 역임. 주요 논문으로 〈한국불교 조계종단 종법의 성차별성에 관한 여성주의적 연구〉 〈경전에 나타난 여성혐오적 교리의 재해석〉 등이 있고, 공저로 《붓다의 길을 걷는 여성》 《불교와 섹슈얼리티》 등이 있다.
* 출처 : 불교평론 http://www.budreview.com/news/articleView.html?idxno=17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