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2016년 3월의 읽을만한 책'
기다린다는 것
저작·역자 | 와시다 기요카즈,김경원 | 정가 | 13,000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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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일 | 2016-01-12 | 분야 | 기타 |
책정보 | 기다리지 않는 사회, 기다릴 수 없는 사회. 언젠가 잃어버린 기다림의 의미를 묻는다! |
책소개 위로
기다리지 않는 사회, 기다릴 수 없는 사회
언젠가 잃어버린 기다림의 의미를 묻는다!
요즘은 기다리는 일이 지나치게 어려워졌다. 약속 시간에 만나기로 한 상대가 당장 눈앞에 보이지 않으면 잠시 기다려보기보다 곧장 휴대전화로 메시지를 보내거나 전화를 건다. 전철역에서는 몇 분 뒤면 도착할 다음 전철을 기다리지 못해 자신의 몸을 종잇장처럼 만원 전철 안으로 구겨 넣는 진풍경이 매일같이 벌어진다. 조직 생활 역시 마찬가지다. 회사는 최단 시간에 성과를 내기 위해 하나부터 열까지 계획을 수립하고 목표를 향해 달려간다. 그 과정에서 포기도 빨라져서 도중에 아니다 싶으면 지체 없이 방향을 틀어버린다.
조금씩 기다리는 일이 우리 시야에서 사라지고 있다. <기다린다는 것>은 이렇듯 희미해져 가는 ‘기다림’의 행위를 철학적 관점에서 고찰한 책이다. 저자 와시다 기요카즈는 미야모토 무사시, 다자이 오사무의 일화를 비롯해 요양시설에서 치매 노인을 보살피는 과정, 문학작품에 묘사된 기다림의 양상을 두루 살핌으로써 기다림의 진정한 의미에 다가서고자 한다. 언어적 정의를 넘어 실제 삶에서 기다림이 어떤 모습으로 현상하고, 그것이 우리 삶에 어떤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지 밝히고자 한다.
언젠가 잃어버린 기다림의 의미를 묻는다!
요즘은 기다리는 일이 지나치게 어려워졌다. 약속 시간에 만나기로 한 상대가 당장 눈앞에 보이지 않으면 잠시 기다려보기보다 곧장 휴대전화로 메시지를 보내거나 전화를 건다. 전철역에서는 몇 분 뒤면 도착할 다음 전철을 기다리지 못해 자신의 몸을 종잇장처럼 만원 전철 안으로 구겨 넣는 진풍경이 매일같이 벌어진다. 조직 생활 역시 마찬가지다. 회사는 최단 시간에 성과를 내기 위해 하나부터 열까지 계획을 수립하고 목표를 향해 달려간다. 그 과정에서 포기도 빨라져서 도중에 아니다 싶으면 지체 없이 방향을 틀어버린다.
조금씩 기다리는 일이 우리 시야에서 사라지고 있다. <기다린다는 것>은 이렇듯 희미해져 가는 ‘기다림’의 행위를 철학적 관점에서 고찰한 책이다. 저자 와시다 기요카즈는 미야모토 무사시, 다자이 오사무의 일화를 비롯해 요양시설에서 치매 노인을 보살피는 과정, 문학작품에 묘사된 기다림의 양상을 두루 살핌으로써 기다림의 진정한 의미에 다가서고자 한다. 언어적 정의를 넘어 실제 삶에서 기다림이 어떤 모습으로 현상하고, 그것이 우리 삶에 어떤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지 밝히고자 한다.
저자소개 위로
와시다 기요카즈
1949년 교토 출생. 교토대학 대학원 문학연구과 박사과정 수료. 간사이대학 문학부 교수, 오사카대학 대학원 문학연구과 교수, 동 연구과장·문학부장 등을 거쳐 오사카대학 총장을 역임했다. 전공은 임상철학. 저서로 『감각이 그윽한 풍경』, 『상상의 레슨』, 『뒤죽박죽인 신체』, 『늙음의 공백』, 『죽지 않고 있는 이유』, 『약함의 힘』, 『듣기의 철학』, 『비명을 지르는 신체』, 『자신, 이 불가사의한 존재』, 『모드의 미궁』 등 다수가 있다.
1949년 교토 출생. 교토대학 대학원 문학연구과 박사과정 수료. 간사이대학 문학부 교수, 오사카대학 대학원 문학연구과 교수, 동 연구과장·문학부장 등을 거쳐 오사카대학 총장을 역임했다. 전공은 임상철학. 저서로 『감각이 그윽한 풍경』, 『상상의 레슨』, 『뒤죽박죽인 신체』, 『늙음의 공백』, 『죽지 않고 있는 이유』, 『약함의 힘』, 『듣기의 철학』, 『비명을 지르는 신체』, 『자신, 이 불가사의한 존재』, 『모드의 미궁』 등 다수가 있다.
목차 위로
머리글
1 초조함
2 예감
3 징후
4 자기 붕괴
5 냉각
6 바로잡기
7 생략
8 대기
9 차단
10 교착
11 퇴각
12 방기
13 바람
14 폐쇄
15 산소 결핍
16 권태
17 공전
18 반복
19 열림
후기
역자 후기
1 초조함
2 예감
3 징후
4 자기 붕괴
5 냉각
6 바로잡기
7 생략
8 대기
9 차단
10 교착
11 퇴각
12 방기
13 바람
14 폐쇄
15 산소 결핍
16 권태
17 공전
18 반복
19 열림
후기
역자 후기
상세소개 위로
기다림은 미래를 향해
‘나’를 열어두는 일이다!
<기다린다는 것>의 첫 장은 휴대전화 이야기로 시작한다. 저자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휴대전화를 소지하게 되면서 기다리는 일이 힘들어졌다고 말한다. 시공간상의 거리를 뛰어넘어 언제든 소통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사람들을 더 이상 기다릴 수 없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편지를 쓴다. 최단의 시간을 계산해 마치 연인이 편지를 통째로 꿀꺽 삼키듯 읽어버리는 정경을 상상한다. 상상으로 인해 마음이 들뜨기도 하고 가라앉기도 한다. 가슴 설레는 상상은 시간과 더불어 부풀어 오른다. 겨우 설렘을 가라앉히고 잠자리에 든다 해도 날이 밝자마자 쏜살같이 우체통으로 달려간다. 우편배달 시간은 아직도 멀었건만, 어쩌면 지난밤 사이 답장을 직접 우체통에 넣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우리는 이런 시간의 감촉과 꽤 멀어졌다. 기다릴 수 없는 상태가 되기 전에 손가락이 먼저 움직인다. 더 이상 마음을 졸이며 상처받을 일이 없어졌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상대를 마음에 새기고 시간의 흐름 속에서 때가 차기를 기다리는 일, 무언가를 향해 자신을 부단히 열어두는 자세마저 잃어버린 것은 아닐까.
기다림은 시간의 공백을 메우는 일이다. 때론 기대와 희망이 부풀고, 때론 불안과 초조함에 떨면서 버텨내는 시간이다. 그 끝에 어떤 결말이 기다리고 있을지 기다리는 사람은 알지 못한다. 그래서 고통스럽지만, 그 불확정성으로부터 기다리는 사람은 한 줄기 가능성을 움켜쥐게 된다. 훗날 시간이 해결해주었다거나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다고 말할 수 있는 사건, 아무런 예고나 징조 없이 찾아올 미래를 맞이할 가능성을 말이다.
기다리는 사람과 기다리게 하는 사람,
둘 중 누가 더 괴로울까?
기다리게 하는 것은 상대를 제압하는 효과적인 수단이기도 하다. 기다리게 함으로써 타인을 불안정한 상태에 빠뜨리고, 타인의 마음이 바작바작 타들어 가게 만들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미야모토 무사시와 사사키 고지로의 간류지마 결투이다.
“승부는 한순간에 결정 났다. (…) 고지로는 기다렸다. 그러나 기다림에 지친 그는 차마 끝까지 기다릴 수 없었다. (…) 이것이 무사시의 전략이었다.”
무사시는 기다리게 함으로써 이겼다. 일부러 약속 시간에 늦음으로써 기다림에 지친 고지로가 스스로 무너지게 만든 것이다. 하지만 기다리게 하는 일이 생각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상대가 스스로 무너지기를 기다리는 것은 역시나 무언가를 기다리는 일이 되어 스스로도 무너질 가능성을 떠안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자는 기다리게 하는 쪽의 괴로움을 기다리는 쪽의 괴로움이라고 바꾸어 말해도 좋다고 말한다. 오히려 기다리는 사람의 신뢰에 끊임없이 부응해야 한다는 점에서는 기다리게 하는 사람의 괴로움이 더 크다고까지 말한다.
“열흘이 지났는지 닷새 정도였는지, 더 이상 견딜 재간이 없어진 단 가즈오는 다자이 오사무를 찾아 나섰다. (…) 그는 이부세와 태평하게 장기를 두고 있었다. (…) 이런 소동 가운데서도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하던 다자이 오사무가 단 가즈오에게 던진 한마디는 이런 것이었다. ‘기다리는 쪽이 괴로울까? 기다리게 하는 쪽이 괴로울까?”
누군가를 기다리기 위해서는 반드시 ‘기다리게 함–기다림을 당함’이라는 관계로 들어갈 수밖에 없다. 문제는 그 관계가 언제나 삐걱거림 속에 파탄과 회복을 반복한다는 점이다. 그 속에서 사람이 상처받는 일 없이, 포기하는 일 없이 기다릴 수 있는 방법은 스스로 기다리고 있음을 잊어버리는 길밖에 없다. 그런 방식 중 하나가 바로 끊임없이 사소한 일에 얽매이기다. 사실 그 광경은 우리에게 낯설지 않다. 아주 오랫동안 그런 삶을 지켜봐 왔다. 다름 아닌 어머니로부터…. 저자는 어쩌면 일상의 반복에 몸을 파묻는 것은 기다리는 사람이 어쩔 수 없이 선택한 지혜일지 모른다고 말한다.
기대와 망각 사이에
기다림은 존재한다!
기다림은 어딘가 애틋한 측면이 있다. 그것이 그리움이라는 정서와 이어질 땐 더욱 그렇다. 사실 모든 기다림에는 어느 정도의 기대나 바람이 내포되어 있다. 기다리는 사람은 그 기대와 바람만으로 무진장 둔중히 흘러가는 시간을 견뎌낸다. 상상만으로도 세상은 장밋빛으로 물든다.
하지만 또한 기다림은 초췌하고 격심한 소모다. 기다림은 늘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어긋남으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스스로 생각하기에 충분히 기다렸는데도 기다리는 사람이 오지 않으면, 그때부터의 시간은 오로지 고통의 연속이다. 온갖 상상이 머리를 어지럽히고, 사소한 소리나 움직임 하나에도 신경이 곤두선다. 상대를 미워하거나 자신을 상처 입히는 일도 벌어진다. 이때 기다리는 사람이 취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망각뿐이다. 저자가 책에서 예로든 가와세 나오미 감독의 영화 속 대사를 빌리면 “잊어도 되는 것, 잊으면 안 되는 것, 그리고 잊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을 겨우겨우 정리해야만 기다림은 가능해진다. 기다림의 보람 없음, 그것을 잊어버릴 때 사람은 비로소 기다릴 수 있는 것이다.
우연처럼 무언가 찾아올 수 있게
내 안에 공간을 만드는 일!
보살핌의 현장에서는 기다리는 일이 더욱 복잡해진다. 기다리는 사람과 기다리게 하는 사람의 관계가 친구나 가족처럼 통상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나 치매 노인의 간호에서는 더욱 그러한데, 이런 간호사들이 사용하는 보살핌 수법 중 하나가 패칭 케어(patching care)다. 일상적인 행위들이 조각처럼 짜여서 알게 모르게 보살핌이 이뤄지도록 하는 방식이다.
“직원은 아무렇지 않게 신문을 펼쳐놓고 그 안에 끼워놓은 전단지 광고를 누군가에게 건네거나 한다. 슈퍼의 광고사진을 보고 좋아하는 음식 이야기가 나오거나 하면 자리의 공기가 평온하게 누그러지기 시작한다. 여기에서 일어난 일을 통해 말할 수 있는 것은, 분위기를 바꾼 원인을 누구 한 사람의 행위로 환원시킬 수 없다는 것이다.”
재촉하거나 쫓아가는 일 없이 자연스럽게 분위기가 잡힐 때까지 기다린다는 점에서 이 또한 기다리는 일의 일종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어딘가 우연에 기대는 측면이 있다. 누구도 자신을 내세우거나, 억지로 통제하려는 시도 없이 그저 시간의 힘이라고 부를 만한 혹은 자리의 힘이라고 부를 만한 것에 모든 것을 맡기기 때문이다.
저자는 책에서, 이처럼 기다림에는 우연의 작용을 기대하는 일이 포함되어 있다고 말한다. 그것을 먼저 가두어놓아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기다림이 미래에 찾아올지도 모를 무언가를 기다리는 일이라면, 우연처럼 무언가 내 안에 들어올 수 있도록 항시 내 안에 공간을 비워두어야 한다고 말한다.
‘나’를 열어두는 일이다!
<기다린다는 것>의 첫 장은 휴대전화 이야기로 시작한다. 저자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휴대전화를 소지하게 되면서 기다리는 일이 힘들어졌다고 말한다. 시공간상의 거리를 뛰어넘어 언제든 소통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사람들을 더 이상 기다릴 수 없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편지를 쓴다. 최단의 시간을 계산해 마치 연인이 편지를 통째로 꿀꺽 삼키듯 읽어버리는 정경을 상상한다. 상상으로 인해 마음이 들뜨기도 하고 가라앉기도 한다. 가슴 설레는 상상은 시간과 더불어 부풀어 오른다. 겨우 설렘을 가라앉히고 잠자리에 든다 해도 날이 밝자마자 쏜살같이 우체통으로 달려간다. 우편배달 시간은 아직도 멀었건만, 어쩌면 지난밤 사이 답장을 직접 우체통에 넣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우리는 이런 시간의 감촉과 꽤 멀어졌다. 기다릴 수 없는 상태가 되기 전에 손가락이 먼저 움직인다. 더 이상 마음을 졸이며 상처받을 일이 없어졌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상대를 마음에 새기고 시간의 흐름 속에서 때가 차기를 기다리는 일, 무언가를 향해 자신을 부단히 열어두는 자세마저 잃어버린 것은 아닐까.
기다림은 시간의 공백을 메우는 일이다. 때론 기대와 희망이 부풀고, 때론 불안과 초조함에 떨면서 버텨내는 시간이다. 그 끝에 어떤 결말이 기다리고 있을지 기다리는 사람은 알지 못한다. 그래서 고통스럽지만, 그 불확정성으로부터 기다리는 사람은 한 줄기 가능성을 움켜쥐게 된다. 훗날 시간이 해결해주었다거나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다고 말할 수 있는 사건, 아무런 예고나 징조 없이 찾아올 미래를 맞이할 가능성을 말이다.
기다리는 사람과 기다리게 하는 사람,
둘 중 누가 더 괴로울까?
기다리게 하는 것은 상대를 제압하는 효과적인 수단이기도 하다. 기다리게 함으로써 타인을 불안정한 상태에 빠뜨리고, 타인의 마음이 바작바작 타들어 가게 만들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미야모토 무사시와 사사키 고지로의 간류지마 결투이다.
“승부는 한순간에 결정 났다. (…) 고지로는 기다렸다. 그러나 기다림에 지친 그는 차마 끝까지 기다릴 수 없었다. (…) 이것이 무사시의 전략이었다.”
무사시는 기다리게 함으로써 이겼다. 일부러 약속 시간에 늦음으로써 기다림에 지친 고지로가 스스로 무너지게 만든 것이다. 하지만 기다리게 하는 일이 생각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상대가 스스로 무너지기를 기다리는 것은 역시나 무언가를 기다리는 일이 되어 스스로도 무너질 가능성을 떠안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자는 기다리게 하는 쪽의 괴로움을 기다리는 쪽의 괴로움이라고 바꾸어 말해도 좋다고 말한다. 오히려 기다리는 사람의 신뢰에 끊임없이 부응해야 한다는 점에서는 기다리게 하는 사람의 괴로움이 더 크다고까지 말한다.
“열흘이 지났는지 닷새 정도였는지, 더 이상 견딜 재간이 없어진 단 가즈오는 다자이 오사무를 찾아 나섰다. (…) 그는 이부세와 태평하게 장기를 두고 있었다. (…) 이런 소동 가운데서도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하던 다자이 오사무가 단 가즈오에게 던진 한마디는 이런 것이었다. ‘기다리는 쪽이 괴로울까? 기다리게 하는 쪽이 괴로울까?”
누군가를 기다리기 위해서는 반드시 ‘기다리게 함–기다림을 당함’이라는 관계로 들어갈 수밖에 없다. 문제는 그 관계가 언제나 삐걱거림 속에 파탄과 회복을 반복한다는 점이다. 그 속에서 사람이 상처받는 일 없이, 포기하는 일 없이 기다릴 수 있는 방법은 스스로 기다리고 있음을 잊어버리는 길밖에 없다. 그런 방식 중 하나가 바로 끊임없이 사소한 일에 얽매이기다. 사실 그 광경은 우리에게 낯설지 않다. 아주 오랫동안 그런 삶을 지켜봐 왔다. 다름 아닌 어머니로부터…. 저자는 어쩌면 일상의 반복에 몸을 파묻는 것은 기다리는 사람이 어쩔 수 없이 선택한 지혜일지 모른다고 말한다.
기대와 망각 사이에
기다림은 존재한다!
기다림은 어딘가 애틋한 측면이 있다. 그것이 그리움이라는 정서와 이어질 땐 더욱 그렇다. 사실 모든 기다림에는 어느 정도의 기대나 바람이 내포되어 있다. 기다리는 사람은 그 기대와 바람만으로 무진장 둔중히 흘러가는 시간을 견뎌낸다. 상상만으로도 세상은 장밋빛으로 물든다.
하지만 또한 기다림은 초췌하고 격심한 소모다. 기다림은 늘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어긋남으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스스로 생각하기에 충분히 기다렸는데도 기다리는 사람이 오지 않으면, 그때부터의 시간은 오로지 고통의 연속이다. 온갖 상상이 머리를 어지럽히고, 사소한 소리나 움직임 하나에도 신경이 곤두선다. 상대를 미워하거나 자신을 상처 입히는 일도 벌어진다. 이때 기다리는 사람이 취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망각뿐이다. 저자가 책에서 예로든 가와세 나오미 감독의 영화 속 대사를 빌리면 “잊어도 되는 것, 잊으면 안 되는 것, 그리고 잊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을 겨우겨우 정리해야만 기다림은 가능해진다. 기다림의 보람 없음, 그것을 잊어버릴 때 사람은 비로소 기다릴 수 있는 것이다.
우연처럼 무언가 찾아올 수 있게
내 안에 공간을 만드는 일!
보살핌의 현장에서는 기다리는 일이 더욱 복잡해진다. 기다리는 사람과 기다리게 하는 사람의 관계가 친구나 가족처럼 통상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나 치매 노인의 간호에서는 더욱 그러한데, 이런 간호사들이 사용하는 보살핌 수법 중 하나가 패칭 케어(patching care)다. 일상적인 행위들이 조각처럼 짜여서 알게 모르게 보살핌이 이뤄지도록 하는 방식이다.
“직원은 아무렇지 않게 신문을 펼쳐놓고 그 안에 끼워놓은 전단지 광고를 누군가에게 건네거나 한다. 슈퍼의 광고사진을 보고 좋아하는 음식 이야기가 나오거나 하면 자리의 공기가 평온하게 누그러지기 시작한다. 여기에서 일어난 일을 통해 말할 수 있는 것은, 분위기를 바꾼 원인을 누구 한 사람의 행위로 환원시킬 수 없다는 것이다.”
재촉하거나 쫓아가는 일 없이 자연스럽게 분위기가 잡힐 때까지 기다린다는 점에서 이 또한 기다리는 일의 일종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어딘가 우연에 기대는 측면이 있다. 누구도 자신을 내세우거나, 억지로 통제하려는 시도 없이 그저 시간의 힘이라고 부를 만한 혹은 자리의 힘이라고 부를 만한 것에 모든 것을 맡기기 때문이다.
저자는 책에서, 이처럼 기다림에는 우연의 작용을 기대하는 일이 포함되어 있다고 말한다. 그것을 먼저 가두어놓아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기다림이 미래에 찾아올지도 모를 무언가를 기다리는 일이라면, 우연처럼 무언가 내 안에 들어올 수 있도록 항시 내 안에 공간을 비워두어야 한다고 말한다.
책속으로 위로
뜻대로 되지 않는, 우연에 의해 조롱당하는, 자신을 초월하는, 자신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그저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함부로 움직일 수 없고 단지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는…. 그런 사태와 마주치고 말았지만, 그럼에도 새롭게 기대나 바람이나 기도를 담아 몇 번이고 되풀이되는 단념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것. 아마도 그곳에 ‘기다림’은 성립한다. - 20쪽
저항심에 부글부글 끓어오른 믹 재거는 무엇이든 거꾸로 하려고 했다. 장소는 서해안을 택했다. 평소 이들의 공연은 티켓 값이 지나치게 비싸기로 악평이 자자했지만, 이날만큼은 아낌없이 무료입장으로 정했다. 경비로는 난폭하기로 소문난 헬스 앤젤스를 고용했다. (중략) 끝끝내 사망자가 나올 무렵, 믹 재거를 비롯한 롤링스톤스 멤버들은 트레일러 속에서 카나페를 먹으며 마리화나를 피우고 샴페인을 마셨다. 마지막 무대가 펼쳐질 시간이 벌써 한 시간 반이나 지나 있었다. - 47쪽
미야모토 무사시도 이 포령이 알려놓은 시각에 시모노세키 해상 운송업자의 저택에 드러누워 있었다. 마침내 자리를 털고 일어난 그는 주인에게 낡은 노를 하나 갖다 달라고 부탁했다. 사사키 고지로가 허리에 차는 3척 1촌 2분의 긴 칼보다 더 나은 나무칼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그로부터 2시간을 들여 무사시는 노를 4척 1촌 8분으로 깎아냈다. 그러고 나서야 나룻배를 타고 섬으로 향했다. 사사키 고지로는 진시 상각보다 반각 전(오전 7시)에 이미 섬에 당도해 있었다. 반면 무사시가 도착한 것은 사시(巳時) 하각(오전 11시)이었다. - 51쪽
누군가를 기다리기 위해서는 ‘기다리게 함–기다림을 당함’이 성립하는 관계의 일환으로서 자신도 그 관계 안에 들어가지 않으면 안 된다. 기다림을 당하는 사람은 기다리게 하는 사람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기다리게 함–기다림을 당함’이라는 관계는 그리 손쉽게 균형이 잡히지 않는다. 누군가와 누군가 사이에 기다림을 둘러싼 관계가 깨끗하게 마무리되는 일은 없다. 타자와의 관계는 실로 온갖 ‘기다림을 당하는 일’로 찢겨지고 상처 나는 것이 통상적이다. 기다림에 ‘수취인 불명의 딱지’가 붙어서 돌아오는 일 역시 통상적이다. - 65쪽
버려지거나 내팽개쳐진 상태에 놓인다는 것은 상대의 의식 밖으로 벗어나 있다는 뜻이다. 그 사람의 안중에는 더 이상 내가 없다. ‘나’라는 사람은 털끝 하나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 사실이 ‘나’를 짓밟는다. 그 사람과의 관계가 내게 있어 관계 중의 하나, 즉 ‘one of them’이라면 거꾸로 내 쪽에서 먼저 인연을 끊겠다고 마음속으로 되뇌는 것도 가능하다. 그러나 그 사람과의 관계가 ‘나’라는 존재에 결정적이라면, 내 존재는 그 사람의 손에 의해 기각당한다. 그 사람은 기각했다는 의식조차 없는데도 …. - 70쪽
친밀한 사이라면 좀 더 원활하게 이야기를 꺼낼 수 있을까? 천만에! 오히려 반대다. 생각이 꽉 막혀 있을 때는 ‘말해봤자 알아줄 리 없어’라는 생각을 떨쳐내지 못해 입을 꾹 다물고 만다. ‘음, 음’ 하고 고개를 주억거리면, 이번에는 ‘뭘 안다고 쉽게 이해하는 척하지’ 하는 반발이 앞선다. 이야기하는 쪽이 완고해지면 들어주는 쪽도 이야기를 듣는 동안 ‘마음은 알겠지만 알고 싶지 않다’는 식으로 고집이 생긴다. 가족 관계라면 ‘빨리 있는 그대로 털어놓으라’고 재촉하는 말을 듣는다. 그런 사태가 벌어지면 당장 대갚음이 돌아온다. ‘차라리 말하지 말걸…’ 하는 후회가. - 87쪽
데리다가 엠마누엘 레비나스(Emmanuel Levinas, 1906~1995)의 뒤를 잇듯 말한 바를 인용하면, “타자를 부르는 일은 응답에서 출발해야 비로소 부르는 일이 된다. 응답은 부름보다 앞서며 부름보다 먼저 (불러준 것을 받아들이려고) 찾아온다.”고 할 수 있다. 타자를 부르는 일보다 선행하는 응답으로서의 기다림을 우리는 지금 문제 삼고 있다. ‘타자가 대답하는 예[oui]’에 선행하는 ‘타자를 향한 예[oui]’를 말이다. - 167쪽
럭키에게 지시를 내려주는 포조와 같은 자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그리고 거기에 전면적으로 종속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은 ‘고도’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부재하는 고도에게 언제까지나 ‘부재’라는 최후의 통고를 내릴 수 없다. 종속이라는 형식을 쫓아내지 못하고, 그렇다고 방기할 수도 없는 이상 거울 같은 2인조와 만나더라도 가능한 것은 변함없이 시간을 죽이는 일뿐이다. -197쪽
지긋이 기다리는 열림이 의식을 연다. 무언가 나에게 작용을 걸어주는 장을 연다. 기다리고 맞이해준다는 이 열림이 ‘내’ 존재의 시원을 열어주는 작용이라는 것을 깨달을 때, 사람은 이미 고도를 기다릴 필요가 없다. 기다리는 고도는 기다릴 것도 없이 이미 여기에 있기 때문이다. 아까 인용한 『떠들썩한 천지』에는 이런 말도 있다. “때를 기른다. 깊은 상처도 원숙한 주름으로 바꾸는 때라는 것 을….” 여기에서 나는 ‘기른다’는 타동사가 아니라 ‘자란다’는 자동사로 같은 일을 표기하고 싶어진다. 때가 미끄러지는 일도, 때를 쫓아가는 일도 없이 때가 자란다. ‘기른다’고 하기보다는 ‘아아, 자랐구나’ 하는 감각이다. 자녀 양육이나 교육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이야기할 수 있다. 물론 이런 일은 그것을 뒷받침하는 무수한 보이지 않는 행위의 쌓임 속에서 일어난다는 것을 되풀이할 것까지도 없다. - 2013~214쪽
저항심에 부글부글 끓어오른 믹 재거는 무엇이든 거꾸로 하려고 했다. 장소는 서해안을 택했다. 평소 이들의 공연은 티켓 값이 지나치게 비싸기로 악평이 자자했지만, 이날만큼은 아낌없이 무료입장으로 정했다. 경비로는 난폭하기로 소문난 헬스 앤젤스를 고용했다. (중략) 끝끝내 사망자가 나올 무렵, 믹 재거를 비롯한 롤링스톤스 멤버들은 트레일러 속에서 카나페를 먹으며 마리화나를 피우고 샴페인을 마셨다. 마지막 무대가 펼쳐질 시간이 벌써 한 시간 반이나 지나 있었다. - 47쪽
미야모토 무사시도 이 포령이 알려놓은 시각에 시모노세키 해상 운송업자의 저택에 드러누워 있었다. 마침내 자리를 털고 일어난 그는 주인에게 낡은 노를 하나 갖다 달라고 부탁했다. 사사키 고지로가 허리에 차는 3척 1촌 2분의 긴 칼보다 더 나은 나무칼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그로부터 2시간을 들여 무사시는 노를 4척 1촌 8분으로 깎아냈다. 그러고 나서야 나룻배를 타고 섬으로 향했다. 사사키 고지로는 진시 상각보다 반각 전(오전 7시)에 이미 섬에 당도해 있었다. 반면 무사시가 도착한 것은 사시(巳時) 하각(오전 11시)이었다. - 51쪽
누군가를 기다리기 위해서는 ‘기다리게 함–기다림을 당함’이 성립하는 관계의 일환으로서 자신도 그 관계 안에 들어가지 않으면 안 된다. 기다림을 당하는 사람은 기다리게 하는 사람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기다리게 함–기다림을 당함’이라는 관계는 그리 손쉽게 균형이 잡히지 않는다. 누군가와 누군가 사이에 기다림을 둘러싼 관계가 깨끗하게 마무리되는 일은 없다. 타자와의 관계는 실로 온갖 ‘기다림을 당하는 일’로 찢겨지고 상처 나는 것이 통상적이다. 기다림에 ‘수취인 불명의 딱지’가 붙어서 돌아오는 일 역시 통상적이다. - 65쪽
버려지거나 내팽개쳐진 상태에 놓인다는 것은 상대의 의식 밖으로 벗어나 있다는 뜻이다. 그 사람의 안중에는 더 이상 내가 없다. ‘나’라는 사람은 털끝 하나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 사실이 ‘나’를 짓밟는다. 그 사람과의 관계가 내게 있어 관계 중의 하나, 즉 ‘one of them’이라면 거꾸로 내 쪽에서 먼저 인연을 끊겠다고 마음속으로 되뇌는 것도 가능하다. 그러나 그 사람과의 관계가 ‘나’라는 존재에 결정적이라면, 내 존재는 그 사람의 손에 의해 기각당한다. 그 사람은 기각했다는 의식조차 없는데도 …. - 70쪽
친밀한 사이라면 좀 더 원활하게 이야기를 꺼낼 수 있을까? 천만에! 오히려 반대다. 생각이 꽉 막혀 있을 때는 ‘말해봤자 알아줄 리 없어’라는 생각을 떨쳐내지 못해 입을 꾹 다물고 만다. ‘음, 음’ 하고 고개를 주억거리면, 이번에는 ‘뭘 안다고 쉽게 이해하는 척하지’ 하는 반발이 앞선다. 이야기하는 쪽이 완고해지면 들어주는 쪽도 이야기를 듣는 동안 ‘마음은 알겠지만 알고 싶지 않다’는 식으로 고집이 생긴다. 가족 관계라면 ‘빨리 있는 그대로 털어놓으라’고 재촉하는 말을 듣는다. 그런 사태가 벌어지면 당장 대갚음이 돌아온다. ‘차라리 말하지 말걸…’ 하는 후회가. - 87쪽
데리다가 엠마누엘 레비나스(Emmanuel Levinas, 1906~1995)의 뒤를 잇듯 말한 바를 인용하면, “타자를 부르는 일은 응답에서 출발해야 비로소 부르는 일이 된다. 응답은 부름보다 앞서며 부름보다 먼저 (불러준 것을 받아들이려고) 찾아온다.”고 할 수 있다. 타자를 부르는 일보다 선행하는 응답으로서의 기다림을 우리는 지금 문제 삼고 있다. ‘타자가 대답하는 예[oui]’에 선행하는 ‘타자를 향한 예[oui]’를 말이다. - 167쪽
럭키에게 지시를 내려주는 포조와 같은 자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그리고 거기에 전면적으로 종속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은 ‘고도’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부재하는 고도에게 언제까지나 ‘부재’라는 최후의 통고를 내릴 수 없다. 종속이라는 형식을 쫓아내지 못하고, 그렇다고 방기할 수도 없는 이상 거울 같은 2인조와 만나더라도 가능한 것은 변함없이 시간을 죽이는 일뿐이다. -197쪽
지긋이 기다리는 열림이 의식을 연다. 무언가 나에게 작용을 걸어주는 장을 연다. 기다리고 맞이해준다는 이 열림이 ‘내’ 존재의 시원을 열어주는 작용이라는 것을 깨달을 때, 사람은 이미 고도를 기다릴 필요가 없다. 기다리는 고도는 기다릴 것도 없이 이미 여기에 있기 때문이다. 아까 인용한 『떠들썩한 천지』에는 이런 말도 있다. “때를 기른다. 깊은 상처도 원숙한 주름으로 바꾸는 때라는 것 을….” 여기에서 나는 ‘기른다’는 타동사가 아니라 ‘자란다’는 자동사로 같은 일을 표기하고 싶어진다. 때가 미끄러지는 일도, 때를 쫓아가는 일도 없이 때가 자란다. ‘기른다’고 하기보다는 ‘아아, 자랐구나’ 하는 감각이다. 자녀 양육이나 교육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이야기할 수 있다. 물론 이런 일은 그것을 뒷받침하는 무수한 보이지 않는 행위의 쌓임 속에서 일어난다는 것을 되풀이할 것까지도 없다. - 2013~2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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