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각 스님 | 15,000원 | 2011-04-27 | 반양장본 | 360쪽 | 223*152mm
선(禪)으로 본 금강경 그대 삶이 경전이다
저작·역자 | 무각 스님, | 정가 | 15,000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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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일 | 2011-04-27 | 분야 | 경전 |
책정보 | 반양장본 | 360쪽 | 223*152mm (A5신) | 504g | ISBN(13) : 9788974796426 |
책소개 위로
수많은 금강경이 출판되는 이유는 보는 견지에 따라 다양하게 해석될 소지가 있는데다 독자의 수준에 따른 해설이 필요하고, 무엇보다 <금강경>은 불자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경전이라 반복 출판이 잦다. 하지만 대부분의 금강경이 입문자를 대상으로 해설하다 보니 한 책에 금강경이 견지하고 있는 반야공의 이해나 선의 견지를 모두 드러내기는 쉽지 않았다.
저자인 무각 스님은 여러 선지식들로부터 수행력을 인가 받고, 지난 십여 년 동안 조계사, 불광사, 공생선원 등에서 참선과 <금강경> 강의를 지도하였다. 무각 스님은 “새 꽃은 옛 가지를 의지하여 나온다.”는 뜻을 가지고 <금강경오가해金剛經五家解> 중에서 송나라 시대의 선승이었던 야부 스님의 송頌을 중심으로 하나하나의 철학적인 명제를 따라 읽어나간다. 특히 이 책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견지하고 있는 집필 원칙은 선(禪)이다. 스님은 선이야말로 우리 존재의 뿌리가 부처 성품임을 절실하게 가르쳐주고, 바로 지금 이 자리, 일상 속의 수행을 통해 삶의 기쁨과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길임을 역설하고 있다.
저자인 무각 스님은 여러 선지식들로부터 수행력을 인가 받고, 지난 십여 년 동안 조계사, 불광사, 공생선원 등에서 참선과 <금강경> 강의를 지도하였다. 무각 스님은 “새 꽃은 옛 가지를 의지하여 나온다.”는 뜻을 가지고 <금강경오가해金剛經五家解> 중에서 송나라 시대의 선승이었던 야부 스님의 송頌을 중심으로 하나하나의 철학적인 명제를 따라 읽어나간다. 특히 이 책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견지하고 있는 집필 원칙은 선(禪)이다. 스님은 선이야말로 우리 존재의 뿌리가 부처 성품임을 절실하게 가르쳐주고, 바로 지금 이 자리, 일상 속의 수행을 통해 삶의 기쁨과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길임을 역설하고 있다.
저자소개 위로
무각(無覺) 스님
동국대학교 불교학과를 졸업하였으며, 미국에서 다년간 해외 포교를 하였다. 도심 속에서 선(禪) 수행을 지도하는 대표적인 참선 지도 선사로 대한불교 조계종 총본사인 조계사에서 참선을 지도하였다. 현재 도심포교의 선구도량인 잠실 불광사 불광선원 선원장, 창동 공생선원 선원장으로 선을 통해 우리 존재의 뿌리가 부처성품(佛性)임을 일깨워 진정한 삶의 자유와 기쁨을 누리도록 이끌어주고 있다. 불교신문에 <선으로 뜻을 푼 신금강경>을 연재, 조계종의 소의경전인 금강경의 진면목을 명쾌하게 드러내어 수많은 독자의 마음 문을 열어주었다.
동국대학교 불교학과를 졸업하였으며, 미국에서 다년간 해외 포교를 하였다. 도심 속에서 선(禪) 수행을 지도하는 대표적인 참선 지도 선사로 대한불교 조계종 총본사인 조계사에서 참선을 지도하였다. 현재 도심포교의 선구도량인 잠실 불광사 불광선원 선원장, 창동 공생선원 선원장으로 선을 통해 우리 존재의 뿌리가 부처성품(佛性)임을 일깨워 진정한 삶의 자유와 기쁨을 누리도록 이끌어주고 있다. 불교신문에 <선으로 뜻을 푼 신금강경>을 연재, 조계종의 소의경전인 금강경의 진면목을 명쾌하게 드러내어 수많은 독자의 마음 문을 열어주었다.
목차 위로
발원문
머리말
시작하는 말
해제
제1 법회인유분 法會因由分
제2 선현기청분 善現起請分
제3 대승정종분 大乘正宗分
제4 묘행무주분 妙行無住分
제5 여리실견분 如理實見分
제6 정신희유분 正信希有分
제7 무득무설분 無得無說分
제8 의법출생분 依法出生分
제9 일상무상분 一相無相分
제10 장엄정토분 莊嚴淨土分
제11 무위복승분 無爲福勝分
제12 존중정교분 尊重正敎分
제13 여법수지분 如法受持分
제14 이상적멸분 離相寂滅分
제15 지경공덕분 持經功德分
제16 능정업장분 能淨業障分
제17 구경무아분 究竟無我分
제18 일체동관분 一切同觀分
제19 법계통화분 法界通化分
제20 이색이상분 離色離相分
제21 비설소설분 非說所說分
제22 무법가득분 無法可得分
제23 정심행선분 淨心行善分
제24 복지무비분 福智無比分
제25 화무소화분 化無所化分
제26 법신비상분 法身非相分
제27 무단무멸분 無斷無滅分
제28 불수불탐분 不受不貪分
제29 위의적정분 威儀寂靜分
제30 일합이상분 一合理相分
제31 지견불생분 知見不生分
제32 응화비진분 應化非眞分
머리말
시작하는 말
해제
제1 법회인유분 法會因由分
제2 선현기청분 善現起請分
제3 대승정종분 大乘正宗分
제4 묘행무주분 妙行無住分
제5 여리실견분 如理實見分
제6 정신희유분 正信希有分
제7 무득무설분 無得無說分
제8 의법출생분 依法出生分
제9 일상무상분 一相無相分
제10 장엄정토분 莊嚴淨土分
제11 무위복승분 無爲福勝分
제12 존중정교분 尊重正敎分
제13 여법수지분 如法受持分
제14 이상적멸분 離相寂滅分
제15 지경공덕분 持經功德分
제16 능정업장분 能淨業障分
제17 구경무아분 究竟無我分
제18 일체동관분 一切同觀分
제19 법계통화분 法界通化分
제20 이색이상분 離色離相分
제21 비설소설분 非說所說分
제22 무법가득분 無法可得分
제23 정심행선분 淨心行善分
제24 복지무비분 福智無比分
제25 화무소화분 化無所化分
제26 법신비상분 法身非相分
제27 무단무멸분 無斷無滅分
제28 불수불탐분 不受不貪分
제29 위의적정분 威儀寂靜分
제30 일합이상분 一合理相分
제31 지견불생분 知見不生分
제32 응화비진분 應化非眞分
상세소개 위로
선(禪)의 견지를 철저히 견지하는 중급자용 『금강경』
현재 시중에 유통되고 있는 『금강경』은 번역서만 30~40여 종, 해설서까지 합치면 100여 권을 훌쩍 넘어선다. 광덕 스님, 무비 스님 등 이 시대의 대선사, 대강백이라고 알려진 스님들의 번역과 해설본은 물론 틱낫한 등 외국 승려들의 해설 및 번역본, 티베트어 번역본, 산스크리트 번역본도 다량 출간되어 있다. 여기에 고전을 연구하는 김용옥, 한형조 교수 등의 해설서가 더해지고, 급기야 이현주 목사 등 불교를 공부하는 이웃종교인들의 『금강경』 해설서에다 각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분들의 금강경까지 보태면 『금강경』이라는 이름의 책들이 불교서적 판매대의 한쪽 자리를 점령하고 있다.
이렇게 수많은 금강경이 출판되는 이유는 보는 견지에 따라 다양하게 해석될 소지가 있는데다 독자의 수준에 따른 해설이 필요하고, 무엇보다 『금강경』은 불자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경전이라 반복 출판이 잦다. 하지만 대부분의 금강경이 입문자를 대상으로 해설하다 보니 한 책에 금강경이 견지하고 있는 반야공의 이해나 선의 견지를 모두 드러내기는 쉽지 않았다.
이 책의 저자인 무각 스님은 여러 선지식들로부터 수행력을 인가 받고, 지난 십여 년 동안 조계사, 불광사, 공생선원 등에서 참선과 『금강경』 강의를 지도하였다. 저자는 도심 한복판에서 선을 지도하고『금강경』을 강의하면서 시간의 리듬이 빠르고 복잡다단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더더욱 선이 필요하고 금강경이 필요함을 절감하여 이 책을 집필했다고 밝히고 있다.
특히 무각 스님은 “새 꽃은 옛 가지를 의지하여 나온다.”는 뜻을 가지고 『금강경오가해金剛經五家解』 중에서 송나라 시대의 선승이었던 야부 스님의 송頌을 중심으로 하나하나의 철학적인 명제를 따라 『금강경』을 읽어나간다. 무각 스님이 이 책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견지하고 있는 집필 원칙은 선(禪)이다. 무각 스님은 선이야말로 우리 존재의 뿌리가 부처 성품임을 절실하게 가르쳐주고, 바로 지금 이 자리, 일상 속의 수행을 통해 삶의 기쁨과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길임을 역설하고 있다. 이 책의 제목을 <그대 삶이 경전이다>, 부제를 <선으로 본 금강경>이라 한 까닭이기도 하다.
이 책을 한 구절 한 구절 읽는 동안 그리고 그 내용을 자기의 안목으로 만들어 가며 독자들은 스스로 선의 견지를 깨달아 가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두 권이 한 권 안에
금강경의 원문과 해설, 야부 스님의 게송을 명쾌하게 해설해 주고 있다
『금강경』 자체가 반야공 사상을 설파하고 있는데 또 다시 무슨 선이냐고 말할지 모르지만 단순한 입문자용 해설서들이 넘지 않았던 선을 이 책은 훌쩍 뛰어넘고 있다. 입문자용 『금강경』을 읽었던 이들이 뭔가 부족함을 느끼고 두 번째, 세 번째 금강경을 선택해야 한다면 이 책이 안성맞춤이다. 수많은 대승경전 중 하나인 『금강경』은 왜 선서(禪書) 그 이상으로 취급 되고 있는지, 왜 한국의 대표적인 종단인 조계종은 굳이 『금강경』을 소의경전(교의적으로 의존하는 근본경전)으로 삼고 있는지도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다.
『금강경』 해설서를 내면서 필자가 선택한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송나라 시대의 선승인 야부 스님이 『금강경』에 붙인 게송을 『금강경』의 원문과 해설 뒤에 붙여 놓고 해설하는 방식이다.
야부 스님의 게송은 『금강경오가해』를 통해 소개되어 우리들에게 익숙하다. 야부 스님의 게송은 단락단락 한 편의 선시를 읽는 것처럼 담박하다. 하지만 일반인들에게는 선문답 이상으로 어렵게 다가오는 것이 사실이다. 필자는 이 게송의 의미를 모두가 이해할 수 있도록 짚어주며 『금강경』의 참맛을, 그리고 선의 견지를 우리에게 일깨워 주고 있다.
그래서 이 책에는 마치 두 권의 책을 한 번에 읽는 것 같은 효과를 준다. 『금강경』의 원문과 해설, 야부 스님의 게송과 이에 대한 명쾌한 해설까지 만날 수 있다. 금강경 맨 첫머리, “첫 구절 속에 마지막 구절이 있고, 시작함과 동시에 완성이 됐다.”는 무각 스님의 해설에서 엿볼 수 있듯 단순한 경전 해설을 넘어 깊은 생각, 아니 생각의 차원을 넘어서는 무각 스님의 한 말씀 한 말씀이 감동적이다. 이 책을 통해 마음의 사유방식, 삶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금강경』에 대한 이해를 한 차원 높이고 싶은 분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현재 시중에 유통되고 있는 『금강경』은 번역서만 30~40여 종, 해설서까지 합치면 100여 권을 훌쩍 넘어선다. 광덕 스님, 무비 스님 등 이 시대의 대선사, 대강백이라고 알려진 스님들의 번역과 해설본은 물론 틱낫한 등 외국 승려들의 해설 및 번역본, 티베트어 번역본, 산스크리트 번역본도 다량 출간되어 있다. 여기에 고전을 연구하는 김용옥, 한형조 교수 등의 해설서가 더해지고, 급기야 이현주 목사 등 불교를 공부하는 이웃종교인들의 『금강경』 해설서에다 각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분들의 금강경까지 보태면 『금강경』이라는 이름의 책들이 불교서적 판매대의 한쪽 자리를 점령하고 있다.
이렇게 수많은 금강경이 출판되는 이유는 보는 견지에 따라 다양하게 해석될 소지가 있는데다 독자의 수준에 따른 해설이 필요하고, 무엇보다 『금강경』은 불자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경전이라 반복 출판이 잦다. 하지만 대부분의 금강경이 입문자를 대상으로 해설하다 보니 한 책에 금강경이 견지하고 있는 반야공의 이해나 선의 견지를 모두 드러내기는 쉽지 않았다.
이 책의 저자인 무각 스님은 여러 선지식들로부터 수행력을 인가 받고, 지난 십여 년 동안 조계사, 불광사, 공생선원 등에서 참선과 『금강경』 강의를 지도하였다. 저자는 도심 한복판에서 선을 지도하고『금강경』을 강의하면서 시간의 리듬이 빠르고 복잡다단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더더욱 선이 필요하고 금강경이 필요함을 절감하여 이 책을 집필했다고 밝히고 있다.
특히 무각 스님은 “새 꽃은 옛 가지를 의지하여 나온다.”는 뜻을 가지고 『금강경오가해金剛經五家解』 중에서 송나라 시대의 선승이었던 야부 스님의 송頌을 중심으로 하나하나의 철학적인 명제를 따라 『금강경』을 읽어나간다. 무각 스님이 이 책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견지하고 있는 집필 원칙은 선(禪)이다. 무각 스님은 선이야말로 우리 존재의 뿌리가 부처 성품임을 절실하게 가르쳐주고, 바로 지금 이 자리, 일상 속의 수행을 통해 삶의 기쁨과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길임을 역설하고 있다. 이 책의 제목을 <그대 삶이 경전이다>, 부제를 <선으로 본 금강경>이라 한 까닭이기도 하다.
이 책을 한 구절 한 구절 읽는 동안 그리고 그 내용을 자기의 안목으로 만들어 가며 독자들은 스스로 선의 견지를 깨달아 가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두 권이 한 권 안에
금강경의 원문과 해설, 야부 스님의 게송을 명쾌하게 해설해 주고 있다
『금강경』 자체가 반야공 사상을 설파하고 있는데 또 다시 무슨 선이냐고 말할지 모르지만 단순한 입문자용 해설서들이 넘지 않았던 선을 이 책은 훌쩍 뛰어넘고 있다. 입문자용 『금강경』을 읽었던 이들이 뭔가 부족함을 느끼고 두 번째, 세 번째 금강경을 선택해야 한다면 이 책이 안성맞춤이다. 수많은 대승경전 중 하나인 『금강경』은 왜 선서(禪書) 그 이상으로 취급 되고 있는지, 왜 한국의 대표적인 종단인 조계종은 굳이 『금강경』을 소의경전(교의적으로 의존하는 근본경전)으로 삼고 있는지도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다.
『금강경』 해설서를 내면서 필자가 선택한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송나라 시대의 선승인 야부 스님이 『금강경』에 붙인 게송을 『금강경』의 원문과 해설 뒤에 붙여 놓고 해설하는 방식이다.
야부 스님의 게송은 『금강경오가해』를 통해 소개되어 우리들에게 익숙하다. 야부 스님의 게송은 단락단락 한 편의 선시를 읽는 것처럼 담박하다. 하지만 일반인들에게는 선문답 이상으로 어렵게 다가오는 것이 사실이다. 필자는 이 게송의 의미를 모두가 이해할 수 있도록 짚어주며 『금강경』의 참맛을, 그리고 선의 견지를 우리에게 일깨워 주고 있다.
그래서 이 책에는 마치 두 권의 책을 한 번에 읽는 것 같은 효과를 준다. 『금강경』의 원문과 해설, 야부 스님의 게송과 이에 대한 명쾌한 해설까지 만날 수 있다. 금강경 맨 첫머리, “첫 구절 속에 마지막 구절이 있고, 시작함과 동시에 완성이 됐다.”는 무각 스님의 해설에서 엿볼 수 있듯 단순한 경전 해설을 넘어 깊은 생각, 아니 생각의 차원을 넘어서는 무각 스님의 한 말씀 한 말씀이 감동적이다. 이 책을 통해 마음의 사유방식, 삶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금강경』에 대한 이해를 한 차원 높이고 싶은 분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책속으로 위로
금강은 가장 단단하고 견고해서 번뇌, 망상, 고통, 업 등 모든 경계를 깨뜨릴 수 있지만, 스스로는 부서지지 않는 영원함 그 자체를 형용합니다. 그런데 사실 아무리 단단한 것도 시간과 공간 속에 놓이면 사라지기 마련입니다. 그러므로 진정으로 가장 단단하고 견고하며 영원불멸인 것은 공空입니다. 금강이 공이요, 공이 금강입니다. 이 위대한 금강은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들의 마음 안에 있습니다. 금강은 마음 나기 이전의 고요한 그 자리, 허공같이 텅 비어 고요한 자기 마음의 본체입니다.
반야는 무엇입니까? 마음을 고요히 하는 가운데 모든 것이 있는 그대로 밝게 비추어지는 자기 마음의 당체입니다. 출렁이는 물결이 잔잔해지면 만상이 다 드러나고 비추어지는 것과 같습니다. 비 갠 호수와 같이 맑은 마음이 일체에 물들지 않고 구름이 흘러가면 흐르는 구름이 비추어지고, 달이 뜨면 달이 비추어지고, 푸른 하늘은 푸른 하늘대로 먹구름은 먹구름대로 여실하게 비추어지는 것이 반야입니다.
바라밀은 이 생사의 언덕에서 저 절대의 언덕으로 건넌다는 것입니다. 바라밀은 반야의 광명이 비추어지는 대로 모든 존재가 밝게 작용하여 세상의 주인이 되니 자기 아님이 없게 됩니다. 그런 까닭에 자재한 마음의 작용입니다.
본문 15~16쪽(「해제」) 중
시간은 수평으로 존재하는 게 아니고 수직으로 존재한다. 찰나의 한 생각에 과거·미래·현재가 다 있기 때문에 수직으로 존재한다. 그러므로 이 찰나에 결정할 권한이 다 있다. 만 가지 결정권이 다 자기에게 있다. 이것이 시간이다. 그래서 전생의 업보도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지금 이 순간 이 찰나의 닥치는 경계 속에 과거가 있고 전생이 있다. ‘지금 이 순간 이 찰나’ 이것 말고는 아무것도 없다. 지금 순간순간 드러나는 모든 경계가 자기의 전생이다. 이 전생을 어떻게 전개할 것인가 그것도 자기의 한 생각이다. 자기가 점을 찍은 한 생각, 그것 말고는 아무것도 없다. 이것이 진정한 시간의 실체이다.
본문 35쪽(「법회가 열린 인연」 중)
상대적인 대상이 있고 구하는 마음이 있고 바라는 마음이 있으면 망념이라 하고, 없다는 소견에 떨어져 있으면 이것 또한 망념이 된다. 양 변을 벗어난 중도의 바른 안목은 당당하고 틈이 없이 항상 눈앞에 분명하게 나투는 것이다. 마치 하나의 달이 모든 물에 널리 비추어 온갖 그릇에 나투는 것과 같다.
모양이 있고 구하는 것이 있으면 모두 허망한 것이라 하고, 모양이 없고 견해가 없으면 치우친 소견에 떨어진다고 하니 그럼 어떻게 하라는 소리인가? 상이 있어도 틀렸다고 하고 상이 없어도 틀렸다고 하여 어느 곳에 서 있을 곳이 없게 해 놓고는 ‘당당하고 밀밀하다’라고 한다.
수행자는 서 있을 곳이 없는 그 곳이 참으로 바르게 서 있을 곳이라는 것을 알면 어느 곳이든지 다 옳아 자유자재하게 된다.
본문 87쪽 중(「부처는 찾는 그 마음속에 있다」)
반야는 무엇입니까? 마음을 고요히 하는 가운데 모든 것이 있는 그대로 밝게 비추어지는 자기 마음의 당체입니다. 출렁이는 물결이 잔잔해지면 만상이 다 드러나고 비추어지는 것과 같습니다. 비 갠 호수와 같이 맑은 마음이 일체에 물들지 않고 구름이 흘러가면 흐르는 구름이 비추어지고, 달이 뜨면 달이 비추어지고, 푸른 하늘은 푸른 하늘대로 먹구름은 먹구름대로 여실하게 비추어지는 것이 반야입니다.
바라밀은 이 생사의 언덕에서 저 절대의 언덕으로 건넌다는 것입니다. 바라밀은 반야의 광명이 비추어지는 대로 모든 존재가 밝게 작용하여 세상의 주인이 되니 자기 아님이 없게 됩니다. 그런 까닭에 자재한 마음의 작용입니다.
본문 15~16쪽(「해제」) 중
시간은 수평으로 존재하는 게 아니고 수직으로 존재한다. 찰나의 한 생각에 과거·미래·현재가 다 있기 때문에 수직으로 존재한다. 그러므로 이 찰나에 결정할 권한이 다 있다. 만 가지 결정권이 다 자기에게 있다. 이것이 시간이다. 그래서 전생의 업보도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지금 이 순간 이 찰나의 닥치는 경계 속에 과거가 있고 전생이 있다. ‘지금 이 순간 이 찰나’ 이것 말고는 아무것도 없다. 지금 순간순간 드러나는 모든 경계가 자기의 전생이다. 이 전생을 어떻게 전개할 것인가 그것도 자기의 한 생각이다. 자기가 점을 찍은 한 생각, 그것 말고는 아무것도 없다. 이것이 진정한 시간의 실체이다.
본문 35쪽(「법회가 열린 인연」 중)
상대적인 대상이 있고 구하는 마음이 있고 바라는 마음이 있으면 망념이라 하고, 없다는 소견에 떨어져 있으면 이것 또한 망념이 된다. 양 변을 벗어난 중도의 바른 안목은 당당하고 틈이 없이 항상 눈앞에 분명하게 나투는 것이다. 마치 하나의 달이 모든 물에 널리 비추어 온갖 그릇에 나투는 것과 같다.
모양이 있고 구하는 것이 있으면 모두 허망한 것이라 하고, 모양이 없고 견해가 없으면 치우친 소견에 떨어진다고 하니 그럼 어떻게 하라는 소리인가? 상이 있어도 틀렸다고 하고 상이 없어도 틀렸다고 하여 어느 곳에 서 있을 곳이 없게 해 놓고는 ‘당당하고 밀밀하다’라고 한다.
수행자는 서 있을 곳이 없는 그 곳이 참으로 바르게 서 있을 곳이라는 것을 알면 어느 곳이든지 다 옳아 자유자재하게 된다.
본문 87쪽 중(「부처는 찾는 그 마음속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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