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작·역자 | 혜초,지안 스님 | 정가 | 13,800원 |
---|---|---|---|
출간일 | 2010-10-15 | 분야 | 기타 |
책정보 | 양장본 | 212쪽 | 188*128mm (B6) | 297g | ISBN(13) : 9788974793623 |
혜초 (慧超, 704~780년)
신라 성덕왕 18년(719년) 16세의 나이로 고국인 신라를 떠나 당나라에 유학을 갔다. 당나라 현종 개원 8년(720년) 중국에 들어와 낙양과 장안에서 밀교를 퍼뜨리고 있던 인도 출신의 밀교승 금강지(金剛智, 바즈라보디Vajrabodhi)를 광주(廣州)에서 만나 사사(師事)하고, 스승의 권유로 개원 11년(723년) 광주를 떠나 바닷길을 통해서 인도로 구법 여행을 떠났다. 약 4년 동안 인도와 서역의 여러 지역을 순례하고 개원 15년(727년) 11월 당시 안서도호부(安西都護府)가 있던 구자(쿠차Kucha)를 거쳐 장안으로 돌아왔다.
당에 돌아온 혜초는 스승 금강지 밑에서 밀교를 연찬하다가 740년 스승을 도와서 대교왕경의 한역과 필수를 시작하였다. 이듬해 스승 금강지가 입적하자 작업을 일시 중단하였다. 금강지의 제자인 불공(不空)으로부터 대교왕경 강의를 받다가 774년 불공도 입적하자 불공의 유언을 받들어 그의 제자가 되어 밀교수행 도량인 관정도량(灌頂道場) 개설에 힘썼다. 대종 때 오랜 가뭄이 계속되자 하옥녀담기우표(賀玉女潭祈雨表)를 지어 황제에게 올리고 흑하(黑河)의 옥녀담(玉女潭)에서 기우제를 지내기도 하였다. 당나라 덕종 건중 원년(780년)에 오대산 건원보리사에서 80여 세의 고령으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50여 년간 밀교 연구와 전승에 매진하였다.
저술로 『왕오천축국전(往五天竺國傳)』이 있고, 번역에서 필수(筆受)를 담당하고 서문을 쓴 밀교경전 『대승유가금강성해만수실리천비천발대교왕경(大乘瑜伽金剛性海曼殊室利千臂千鉢大敎王經)』과 기우제를 위한 표문(表文)인 「하옥녀담기우표(賀玉女潭祈雨表)」가 전해진다.
역자 지안(志安) 스님
경남 하동 출신으로 통도사에서 벽안 스님을 은사로, 월하 스님을 계사로 사미계와 비구계를 받았고 통도사 강원을 졸업하였다. 항일독립운동가였으며, 한문 불경을 우리말로 옮기는 역경(譯經)의 선각자였던 운허 스님의 강맥(講脈)을 잇고 있다. 통도사 불교전문강원 강주, 조계종 고시위원, 조계종교육원 역경위원장 등을 역임하면서 35년간 교학 연구와 후학 양성에 매진하고 있다. 현재 은해사 승가대학원 원장의 소임을 수행하면서 반야불교학당과 반야경전교실을 개설하여 재가불자를 위한 교육에도 앞장서고 있으며 통도사 반야암 주지로 있다.
저서로 『기신론 강의』, 『신심명 강의』, 『기초경전 해설』, 『금강경 이야기』, 『처음처럼』, 『조계종 표준 금강경 바로 읽기』 등과 역서로 『대반니원경』, 『대승기신론 강해』 등이 있다.
서문
일러두기
해제
『왕오천축국전』
01. 나체 외도를 보다
02. 부처님의 열반지, 구시나국
03. 최초의 설법지, 피라날사국
04. 마하보리사
05. 중천축국
06. 오천축의 풍습
07. 네 개의 큰 탑
08. 달밤에 고향 길 바라보니
09. 노래를 잘 하는 서천축국 사람들
10. 북천축의 사란달라국
11. 설산 너머 작은 나라 소발나구달라국
12. 절과 스님이 많은 탁사국
13. 중현(衆賢)의 고향, 신두고라국
14. 용지(龍池)가 있는 가라국
15. 토번의 관할 아래 있는 세 나라, 대발률국․양동국․사파자국
16. 설산 계곡에 있는 토번국
17. 남자들이 모두 머리를 깎고 사는 소발률국
18. 해마다 무차대회(無遮大會)를 여는 건타라국
19. 왕이 삼보를 공경하는 오장국
20. 불교를 믿는 구위국
21. 대승불교를 믿는 람파국
22. 산에 나무가 없는 계빈국
23. 재를 잘 올리는 사율국의 왕과 수령
24. 군사력이 강한 범인국
25. 가죽 외투를 입고 사는 토화라국
26. 교역을 좋아하는 파사국
27. 살생을 좋아하며 불법을 모르는 대식국
28. 보물이 많이 나는 대불림국
29. 근친 혼인을 하는 호국(胡國)
30. 왕이 두 사람인 발하나국
31. 발하나국 동쪽에 있는 골돌국
32. 절도 스님도 없는, 돌궐족이 사는 곳
33. 객수(客愁)를 달랬던 호밀국
34. 약탈을 일삼는 식닉국
35. 중국 군사가 진을 치고 있는 총령진
36. 소륵국에도 중국 군대가 있다
37. 안서대도호부가 있는 구자국
38. 육식을 하지 않는 우전국
39. 안서에 도착하다
40. 속치마를 입는 오기국
『일체경음의』 「혜초왕오천축국전」
01. 해제
02. 『일체경음의』 「혜초왕오천축국전」
종교와 사상, 시대의 벽을 넘어 8세기의 인도와 중앙아시아로 안내하는
혜초 스님의 구법 여행기 『왕오천축국전』의 새로운 번역과 해설
1908년 어느 날 프랑스의 동양학자 펠리오는 중국 감숙성 돈황에 있는 천불동 제17 석굴을 탐사하던 중 동굴 천장 구석진 곳에서 낡고 오래된 종이 두루마리 하나를 발견했다. 무려 1,200년 동안 깊은 어둠 속에서 숨 죽이고 있던 보물이 세상 밖으로 나오던 순간이었다.
가로 42cm, 세로 28.5cm의 황마지 9장을 이어붙인 두루마리에는 총 227행 5,893자의 한문이 손으로 적혀 있었다. 두루마리를 발견한 펠리오는 두루마리의 내용이 8세기 당나라 승려 혜림이 지은 불교어휘사전 『일체경음의(一切經音義)』 제100권에 실려 있는『혜초왕오천축국전』 편에 주석된 어휘와 일부 일치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원래 혜초의 『왕오천축국전』이 상·중·하의 3권이었기 때문에 『일체경음의』『혜초왕오천축국전』도 상·중·하의 권이 표시되어 있다. 여기에 설명된 85개의 단어가 필사본에 모두 나타나지는 않고 17개 만 나타난다. 이를 통해서 원본의 앞뒤 많은 부분이 두루마리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는 것도 밝혀졌다. 이런 점에서 필사 두루마리는 3권으로 된 원본의 전체 내용을 축약한 것으로 추정된다.
『왕오천축국전』은 1,200년 전 ‘100명이 떠나도 돌아오는 이는 하나도 없다.’는 멀고도 험난한 천축으로 구법 여행을 떠났던 신라의 혜초 스님이 남긴 여행기록이다. 즉, 8세기 인도와 중앙아시아, 아랍 등 아시아 대륙의 중심부를 해로와 육로로 일주하면서 당시의 사회상, 정치, 종교, 경제, 풍습 등 문화에 관한 사실적인 기술을 담은 견문록이다.
순례지의 경험과 느낌을 그 자리에서 그대로 기술
세계 4대 여행기의 하나
최초의 인도 견문록은 중국 동진(東晉)의 승려 법현(法顯)이 쓴 『불국기(佛國記)』로 399년부터 414년까지 약 15년 동안의 여정을 기록한 것이다. 그 외에, 현장(玄?)의 『대당서역기(大唐西域記)』는 629년에서 645년까지 약 15년 동안의 순례를 현장의 제가 변기(辨機)가 편찬하였다.
또, 의정(義淨)의 『남해기귀내법전(南海奇歸內法傳)』은 671년부터 694년까지 23년 동안 보고 들은 내용을 기록한 것이다. 이 여행기들에 비하면, 혜초의 여행 기간은 723년부터 727년까지 약 4년으로 매우 짧은 편이다. 추정되는 기록의 양도 가장 적고, 견문(見聞)의 내용도 상당히 간단하게 기술하고 있다. 언어적 표현이나 문학적 완성도 그리고 정밀성 등에 있어서 법현의 『불국기』나 현장의 『대당서역기』에 미치지 못한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왕오천축국전』은 여행을 마치고 나서 충분한 시간을 두고 전후 사정을 자세히 기술한 것이 아니다. 여행을 하면서 그때그때 보고 들은 것은 간명하게 기술한 것으로 그때의 느낌과 경험을 직접 그대로 옮긴 것이다. 그런 이유로, 혜초의 『왕오천축국전』은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과 이탈리아 수도사 오도릭의 『동유기』, 아랍인 이븐 바투타의 『여행기』와 함께 세계 4대 여행기의 하나로 손꼽히는 고전의 반열에 올라 있다.
법을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는
순례자의 정신이 깃들어 있는 다라니
4년이라는 기간은 다른 여행기에 매우 짧은 듯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혜초가 순례의 길에 올랐던 시기가 8세기였음을 고려해 보면, 4년 동안 직접 걸어서 순례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분명 고행 중의 고행이라고 하여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참다운 법(法)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는 위법망구(爲法忘軀)의 정신으로 멀고 험난한 천축으로 구도의 순례의 길을 떠난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이 쓴 가장 오래된 여행기라는 점에서 갖는 문헌적 가치 이전에 한 구법자의 오롯한 정신이 깃들어 있는 다라니(陀羅尼)로 느껴지기도 한다.
이 책은 오랫동안 교학 연구와 수행 정진을 하면서 후학 양성에 힘쓰고 계신 지안(志安) 스님의 정갈하고 담백한 우리말 번역으로 혜초의 『왕오천축국전』을 다시 번역하고 해설을 붙여서 소개하고 있다. 오랜 세월 구도(求道)의 길을 걷고 있는 출가 수행자의 눈으로 바라본 『왕오천축국전』은 우리에게 새로운 감상을 불러일으킨다. 참된 진리를 찾는 고독한 수행자의 여정(旅程)을 시대는 다르지만 같은 이 땅의 오롯한 수행자의 손으로 우리 앞에 다시 불러내었다.
이름도 없는 오래된 두루마리가 『왕오천축국전』임을 밝혀준
『일체경음의』『혜초왕오천축국전』의 원문과 우리말 번역
또한, 1,200년이나 묶은 낡은 두루마리가 바로 혜초의 『왕오천축국전』임을 밝혀준 당나라 혜림의 『일체경음의(一切經音義)』『혜초왕오천축국전』 편 전체를 원문과 함께 우리말로 번역하고, 어려운 어휘는 설명을 달아서 책의 뒷부분에 실었다. 소실되어 전하지 않는 원본 『왕오천축국전』의 내요을 추정해 볼 수 있는 단서를 우리에게 제공하며, 당나라 시대 불교어휘사전의 일면을 살펴볼 수 있게 한다. 『일체경음의』는 중국 당나라 때 혜림(慧琳, 737~820)이 지은 일종의 불교어휘사전이다. 경전 등 각종 불교 문헌에 나오는 난해한 단어의 뜻을 풀이한 책으로 모두 100권으로 편찬되었다. 807년에 편찬된 이 책은 중국에서는 소실되어 전하지 않지만, 우리나라의 고려대장경 수록되어 현재까지 전해지고 있다.
원본 소개
『왕오천축국전(往五天竺國傳)』
1908년 중국 감숙성의 돈황 천불동에서 프랑스 학자 펠리오가 서명도 저자 이름도 떨어져 나가 알 수 없는 종이 두루마리를 발견했다. 가로 42cm, 세로 28.5cm의 황마지 9장을 이어붙인 종이 두루마리에 총 227행, 5,893자의 한자가 필사되어 있었다. 당나라 승려 혜림의 『일체경음의』와 비교연구 등을 통해서 이 두루마리가 신라 출신의 혜초 스님이 지은 『왕오천축국전』을 간략하게 줄여서 필사한 절략본임이 밝혀졌다. 대략 6,000여 자로 기록된 이 여행기에는 8세기 무렵의 인도와 중앙아시아, 아랍의 정치, 경제, 역사, 종교, 풍습과 문화 등에 관한 매우 사실적인 기록이 담겨 있다. 이 기록의 존재가 우리에게 알려진 것은 고작 100년 밖에 되지 않았지만, 13세기 후반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 14세기 초반 이탈리아 수도사 오도릭의 『동유기』, 14세기 중반 아랍인 이븐 바투타의 『여행기』와 함께 세계 4대 여행기의 하나로 손꼽히는 명저가 되었다.
『일체경음의(一切經音義)』
중국에서 불경이 번역되면서 편찬된 음의서 가운데 총100권으로 이뤄진 『일체경음의(一切經音義)』는 당(唐)대에 성립된 모든 불전(佛典)을 망라한 중요한 문헌이다. 동일한 이름의 문헌들과 구분하기 위해 편찬자인 혜림(慧琳) 스님(737∼820)의 이름을 따서 『혜림음의(慧琳音義)』라고 불리기도 한다. 글자의 음과 뜻뿐만 아니라 용어의 어원을 밝혔고 혜초 스님이 저술한 『왕오천축국전』에 대한 용어 해설도 포함되어 있다. 『일체경음의』는 중국에서 문헌이 소실되었으나 고려대장경에 들어 있어 전해지고 있다.
- 7~8쪽. 『서문』 중에서
절 안에 한 구의 금동상(金銅像: 금으로 도금한 불상)이 있다. 여기 마갈타국(摩?+?+國, 마가다Magadha)에는 옛적에 왕이 한 명 있었는데, 이름이 시라율저(尸羅栗底, 실라디탸?l?itya)였다. 그가 이 금동상과 함께 금동 법륜도 만들었다고 한다. 바퀴가 둥글고 반듯하며 둘레가 30여 보(步)나 된다.
이 성은 갠지스 강을 굽어볼 수 있는 북쪽 언덕[北岸]에 있다. 녹야원(鹿野苑, 므리가다바Mgad?a)과 구시나(拘尸那, 쿠시나가라Ku?nagara), 사성(舍城, 라자그리하R?agha), 마하보리(摩訶菩提, 마하보디Mah?odhi) 등 4대 영탑(靈塔)이 마갈타국 왕의 영토 안에 있다. 이 나라에는 대승과 소승이 함께 행해지고 있다. 마하보리사(摩訶菩提寺)에 도착하고 나니 내가 본래 원하던 소원이 이루어진 것 같아 너무나 기뻤다. 간략히 나의 뜻을 서술하는 오언시를 지었다.
보리대탑 멀다지만 걱정 않고 왔으니
녹야원의 길인들 어찌 멀다 하리오.
길이 가파르고 험한 것은 근심 되지만
개의치 않고 업풍에 날리리라.
여덟 탑을 보기란 실로 어려운 일
세월에 타서 본래 그대로는 아니지만
어찌 이리 사람 소원 이루어졌는가.
오늘 아침 내 눈으로 보고 말았네.
- 40~41쪽. 『4. 마하보리사』 중에서
토화라국(토카리스탄)에서 동쪽으로 7일을 가서 호밀(胡蜜, 와칸Wakhan) 왕이 사는 성에 이르렀다. 오다가 마침 토화라에서 번(蕃: 서쪽 이역 변방)으로 들어가는 중국 사신을 만났다. 이에 간략하게 넉 자의 운을 맞춘[四韻] 오언시(預言詩)를 지었다.
그대는 서쪽 이역이 멀다고 한탄하지만
나는 동쪽 길이 멀다고 탄식한다네.
길은 험하고 산마루엔 눈이 잔뜩 쌓였는데
험한 골짜기 길엔 도적떼가 들끓고
새도 날다가 솟아 있는 산봉우리에 놀라며
사람은 가다가 조심조심 외나무다리도 건너야 한다네.
평생 눈물을 훔쳐본 적 없었는데
오늘따라 하염없는 눈물이 걷잡을 수 없구나.
겨울 어느 날 토화라(토카리스탄)에서 눈을 만난 소회를 오언시로 읊었다.
차디찬 눈이 얼음 위에 쌓이고
차가운 바람이 땅이 갈라질 듯 매섭게 부는구나.
바다마저 얼어붙어 발라놓은 단(壇)인 듯하고
강물은 벼랑을 갉아먹고 있네.
용문(龍門)엔 폭포수마저 얼어 끊기고
우물 가장 자리도 도사린 뱀처럼 얼어붙었는데
불을 벗하여 층층대를 오르며 노래하지만
어떻게 파밀(播密, 파미르 고원)을 넘을 수 있을까?
호밀 왕은 군사가 적고 약해 스스로를 지켜낼 수가 없어서 대식의 관할 하에 있다. 해마다 비단 3,000필을 세금으로 보낸다. 주거지가 산골짜기여서 처소가 협소하고 가난한 백성이 많다. 옷은 가죽 외투와 모직 적삼이며, 왕은 비단과 모직 옷을 입는다. 빵과 보릿가루만을 먹는다. 이곳은 매우 추워 다른 나라들보다 추위가 훨씬 더 심하다. 언어도 다른 나라들과 같지 않다. 양과 소가 나는데, 아주 작고 크지 않다. 말과 노새도 있다. 스님들도 있고 절도 있으며, 소승법이 행해진다. 왕과 수령, 백성들 모두가 불교를 섬기며 외도(外道)에 귀의하지 않는다. 때문에 이 나라에는 외도가 없다. 남자는 모두 수염과 머리를 깎으나, 여자는 머리를 기른다. 주거지가 산 속이기는 하나, 그곳 산에는 나무와 물 그리고 풀조차 없다.
- 152~154쪽. 『33. 객수(客愁)를 달랬던 호밀국』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