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동아시아를 만나다
저작·역자 | 석길암, | 정가 | 15,000원 |
---|---|---|---|
출간일 | 2010-06-16 | 분야 | 입문 |
책정보 | 272쪽 | 규외 | 245g | ISBN(13) : 9788974791322 |
책소개 위로
불교의 전파와 더불어 형성되고 확산된 동아시아의 문화와 역사를 새로운 관점에서 흥미롭게 보여주는 책. 불교사상을 연구하는 학자로서 동아시아 사회와 문화의 형성 및 발달에 지대한 영향을 끼쳐왔지만, 기존의 역사서에서는 잘 드러나지 않았던 불교의 공헌과 영향에 대해 날카롭고 신선한 시각으로 풀어낸 책이다. 이 책은 제목 그대로 불교가 동아시아에 전파되면서 일어나는 사회적, 문화적 변용을 어떤 역사서보다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저자소개 위로
석길암
한국외국어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한 후, 동국대학교 대학원 불교학과에서 원효 대사에 관한 연구로 석사와 박사과정을 졸업하고, 한국불교연구원 전임연구원을 역임하였다.
2006년 제21회 불이상을 수상하였으며, 현재 금강대학교 불교문화연구소 HK교수 및 「불교평론」의 편집위원으로 있다.
주요 논문으로 「원효의 보법화엄사상연구」(박사학위논문), 「금강삼매경의 성립과 유통에 관한 연구」, 「지눌의 돈오와 점수에 대한 화엄성기론적 해석」, 「대승기신론 지론종 찬술설에 대한 반론」 등이 있다.
한국외국어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한 후, 동국대학교 대학원 불교학과에서 원효 대사에 관한 연구로 석사와 박사과정을 졸업하고, 한국불교연구원 전임연구원을 역임하였다.
2006년 제21회 불이상을 수상하였으며, 현재 금강대학교 불교문화연구소 HK교수 및 「불교평론」의 편집위원으로 있다.
주요 논문으로 「원효의 보법화엄사상연구」(박사학위논문), 「금강삼매경의 성립과 유통에 관한 연구」, 「지눌의 돈오와 점수에 대한 화엄성기론적 해석」, 「대승기신론 지론종 찬술설에 대한 반론」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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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들어가는 말 -동아시아 불교문화 네트워크를 말한다
제1장 동아시아 불전의 형성
1. 역경(譯經)이 세상을 바꾸었다
2. 사경, 신앙과 문화의 역사
3. 동아시아 인쇄문화와 불교
4. 불전 목록 작성에서 대장경 조성까지
5. 위경(僞經)의 불교사
제2장 동아시아적 사유와 불교
6. 아미타불, 말법시대의 구원자
7. 구족계를 포기하고 노동을 택하다
8. 불보살상은 사람과 시대를 반영한다
9. 동아시아 신화의 변천과 불교
10. 부처님 되살리기 -자타카, 열전 그리고 고승전
11. 동아시아 전제군주와 아쇼카 왕
12. 우리 말길 뜻길에서 만나는 불교
제3장 불교와 동아시아문화
13. 사원, 동아시아의 종합정보문화관
14. 풍속의 전래와 불교 -연등회와 팔관회
15. 동아시아 차문화와 불교
16. 스투파에서 승탑까지
17. 붓다가야 대보리사에서 석굴암까지
제4장 동아시아의 근대와 불교
18. 근대의 갈림길에서 다시 만난 불교
19. 한국불교의 근대
20. 불교문헌학 그리고 불교학
들어가는 말 -동아시아 불교문화 네트워크를 말한다
제1장 동아시아 불전의 형성
1. 역경(譯經)이 세상을 바꾸었다
2. 사경, 신앙과 문화의 역사
3. 동아시아 인쇄문화와 불교
4. 불전 목록 작성에서 대장경 조성까지
5. 위경(僞經)의 불교사
제2장 동아시아적 사유와 불교
6. 아미타불, 말법시대의 구원자
7. 구족계를 포기하고 노동을 택하다
8. 불보살상은 사람과 시대를 반영한다
9. 동아시아 신화의 변천과 불교
10. 부처님 되살리기 -자타카, 열전 그리고 고승전
11. 동아시아 전제군주와 아쇼카 왕
12. 우리 말길 뜻길에서 만나는 불교
제3장 불교와 동아시아문화
13. 사원, 동아시아의 종합정보문화관
14. 풍속의 전래와 불교 -연등회와 팔관회
15. 동아시아 차문화와 불교
16. 스투파에서 승탑까지
17. 붓다가야 대보리사에서 석굴암까지
제4장 동아시아의 근대와 불교
18. 근대의 갈림길에서 다시 만난 불교
19. 한국불교의 근대
20. 불교문헌학 그리고 불교학
상세소개 위로
‘동아시아’란 무엇인가?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은 동아시아에 속한다. 어떤 이는 극동아시아에 속한다고도 하지만, 통상적으로 우리는 아시아 중에서도 동아시아에 속한다. 그런데, 굳이 아시아의 다른 곳과 구별해서 반드시 동아시아 사람이라고 불러야 하는 이유가 있는가? 그렇다. 분명한 이유가 있다. 이 책 <불교, 동아시아를 만나다>가 왜 그래야만 하는지를 쉽고 자세하게 풀이하고 있다.
동아시아는 지리적으로는 아시아의 동쪽 지역으로 아시아 대륙의 약 15%를 차지하고, 한반도와 중국, 일본, 몽골, 베트남 등이 여기에 속한다. 북조선과 몽골을 제외하고 한국과 중국, 일본은 세계적인 공업국이자 G20의 회원국이기도 하다. 그리고 서울, 도쿄, 베이징, 상하이, 충칭, 광저우 등 인구 1,000만 명이 넘는 도시들이 가장 많이 위치해 있고, 세계 최대 인구 국가인 중국이 있다. 문화적으로는 한자, 대승불교와 선불교, 유교와 성리학, 도교, 율령제도 등을 공통요소로 하고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동아시아는 지역적인 개념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문화적인 개념이다. 복잡해 보이지만 아주 간단하게 구별하는 방법이 있다. ‘人’이라는 글자를 보여주었을 때, 우리나라와 중국, 일본, 베트남, 몽고 사람들은 이 글자의 의미를 안다. 나라마다 읽는 방법은 다르지만 뜻은 한 가지로 인식한다.
또 다른 구별방법이 있는데, 그것은 대승불교를 받아들였다는 점이다. 베트남의 경우 지리적으로는 동남아시아에 속하지만 문화적으로는 동아시아에 속하는 것으로 분류한다. 베트남은 한자문화권에 속하기도 하지만, 임제종 계열의 대승불교권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중국 당나라 시대에 번창한 국력을 바탕으로 하여 그 문화를 주변 지역에 전파하면서 동아시아 문화권이 형성되었고, 그때 전파된 문화가 오늘날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동아시아에서 불교란 무엇인가?’ - 동아시아 불교문화 네트워크의 탄생
중국에서 시작된 한자와 중국에 전해진 불교가 약간의 시차를 두고 동아시아 전역으로 전파되면서 ‘동아시아’라는 사회, ‘동아시아’라는 문화, ‘동아시아’라는 사상이 형성되고, 점차 하나로 묶여지기 시작했다. 한자와 불교는 ‘동아시아’를 하나로 묶어내는 접착제 같은 것이었다. 이미 존재하고 있던 동아시아에 불교가 전해진 것이 아니다. 불교가 전해지면서 불교에 의해 동아시아라는 문화적 네트워크가 만들어진 것이다. 한자와 유교 등의 공통요소가 본격적으로 확산된 것은 다름 아닌 불교의 전파에 의한 것이기 때문이다.
북방으로 전파된 대승불교가 실크로드를 거쳐 중국에 도착하였을 무렵은 동아시아라는 지역적, 문화적 개념이 걸음마를 떼기 시작한 때였다. 중국의 통일왕조를 만나면서 왕조의 수도인 낙양(洛陽)과 장안(長安)을 기점으로 하여 불교는 각지로 전파되기 시작했다. 불교는 단순한 사상이 아니라, 문화적 종합체의 성격을 지닌 종교였고, 중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각 지역은 불교를 수용하면서 왕성한 생명력으로 변화를 거듭했고, 그 변화는 다시 불교의 변형을 촉진시켰다. 기원 전후에 시작하여 11세기 무렵이 되어서야 일단 마무리되는 불교의 전파는 동아시아를 전반적으로 변모시켰고, 그 결과 동아시아 불교문화 네트워크가 탄생한 것이다.
불교의 전파는 인도와 중국이라는 이질적인 두 문화의 만남이자 융화의 과정이었고, 새로운 문화창조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동아시아 문화만이 가진 독창적인 문화현상들은 대부분 불교와 동아시아와의 만남에서 기인한다. 선종이나 성리학 같은 사상이 그러하고, 인쇄술의 발전이나 다양한 보살신앙의 양상 또한 그러하다. 의례나 예술의 경우는 더 말할 것도 없다. 그러한 다양한 문화현상의 원인을 불교와 동아시아의 만남, 또는 불교와의 만남을 계기로 형성된 동아시아에서 발견할 수 있다. 이 책은 불교의 전파와 더불어 형성되고 확산된 동아시아의 문화와 역사를 새로운 관점에서 흥미롭게 보여주고 있다.
역사책에서도 가르쳐주지 않는 동아시아의 재미있는 역사와 문화 이야기
저자 석길암 박사는 한국불교연구원에서 진행했던 ‘한국 구법승들의 중국 내 활동에 관한 연구’ 프로젝트의 현지조사 과정에서 쌓은 경험과 금강대학교 불교문화연구소의 HK사업에 참여하면서 불교사상의 동아시아적 변용이라는 주제를 집중적으로 연구하고, 강의를 하면서 자료를 축적하며 글을 진전시켜왔다.
<불교, 동아시아를 만나다>는 불교사상을 연구하는 학자로서 동아시아 사회와 문화의 형성 및 발달에 지대한 영향을 끼쳐왔지만, 기존의 역사서에서는 잘 드러나지 않았던 불교의 공헌과 영향에 대해 날카롭고 신선한 시각으로 풀어낸 책이다.
이 책은 제목 그대로 불교가 동아시아에 전파되면서 일어나는 사회적, 문화적 변용을 어떤 역사서보다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책을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기원 전후하여 전래된 불교경전이 중국어로 번역되는 과정 즉 역경이 중국의 정치 및 사회 문화전반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를 알 수 있다. 또한 역경승과 구법승들은 단순한 종교적 구도자가 아니라 인도와 중국 두 문화를 통합하는 문화사절이었으며, 최신 정보의 전달자인 동시에 생산자였고, 정보판단의 주체였음을 쉽게 설명하고 있다.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를 사용한 구텐베르크의 ‘42행 성서’보다 무려 78년이나 앞서 금속활자를 발명하여 [직지심체요절]을 인쇄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왜 서양과 같은 인쇄혁명이 우리나라 아니 동아시아에서는 일어나지 않았는지 그 이유를 제시하고 있다. 아미타부처님에 대한 믿음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시작되어서 동아시아에 널리 전파될 수 있었는지, 출가수행자가 탁발해서 얻은 음식만으로 생활하도록 되어있는 구족계를 포기하고 노동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된 것은 무엇 때문이었는지, 그 결정적 계기가 된 삼계교와 신행 선사에 대한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들을 읽을 수 있다.
또한 성리학이 성행하기 이전 동아시아에서 이상적인 군주는 유교적 이상군주인 요순(堯舜)이나 주 문왕이 아니라 불교적 이상군주인 아쇼카 왕이었으며, 여러 황제와 왕들이 아쇼카 왕의 전범(典範)을 따랐던 사실을 살펴볼 수 있다.
세종대왕이 새로운 문자 한글을 창제하면서 처음으로 적용하여 편찬한 것이 왜 조선의 국시에도 맞지 않는 불교문헌일수밖에 없었는지, 고려시대까지 발전을 거듭하던 인쇄문화와 차(茶)문화가 조선에 이르러 쇠퇴하게 된 이유 등 기존의 역사책에서는 알 수 없었던 내용을 쉽고 흥미롭게 풀어내었다.
‘동아시아’란 무엇인가?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은 동아시아에 속한다. 어떤 이는 극동아시아에 속한다고도 하지만, 통상적으로 우리는 아시아 중에서도 동아시아에 속한다. 그런데, 굳이 아시아의 다른 곳과 구별해서 반드시 동아시아 사람이라고 불러야 하는 이유가 있는가? 그렇다. 분명한 이유가 있다. 이 책 <불교, 동아시아를 만나다>가 왜 그래야만 하는지를 쉽고 자세하게 풀이하고 있다.
동아시아는 지리적으로는 아시아의 동쪽 지역으로 아시아 대륙의 약 15%를 차지하고, 한반도와 중국, 일본, 몽골, 베트남 등이 여기에 속한다. 북조선과 몽골을 제외하고 한국과 중국, 일본은 세계적인 공업국이자 G20의 회원국이기도 하다. 그리고 서울, 도쿄, 베이징, 상하이, 충칭, 광저우 등 인구 1,000만 명이 넘는 도시들이 가장 많이 위치해 있고, 세계 최대 인구 국가인 중국이 있다. 문화적으로는 한자, 대승불교와 선불교, 유교와 성리학, 도교, 율령제도 등을 공통요소로 하고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동아시아는 지역적인 개념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문화적인 개념이다. 복잡해 보이지만 아주 간단하게 구별하는 방법이 있다. ‘人’이라는 글자를 보여주었을 때, 우리나라와 중국, 일본, 베트남, 몽고 사람들은 이 글자의 의미를 안다. 나라마다 읽는 방법은 다르지만 뜻은 한 가지로 인식한다.
또 다른 구별방법이 있는데, 그것은 대승불교를 받아들였다는 점이다. 베트남의 경우 지리적으로는 동남아시아에 속하지만 문화적으로는 동아시아에 속하는 것으로 분류한다. 베트남은 한자문화권에 속하기도 하지만, 임제종 계열의 대승불교권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중국 당나라 시대에 번창한 국력을 바탕으로 하여 그 문화를 주변 지역에 전파하면서 동아시아 문화권이 형성되었고, 그때 전파된 문화가 오늘날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동아시아에서 불교란 무엇인가?’ - 동아시아 불교문화 네트워크의 탄생
중국에서 시작된 한자와 중국에 전해진 불교가 약간의 시차를 두고 동아시아 전역으로 전파되면서 ‘동아시아’라는 사회, ‘동아시아’라는 문화, ‘동아시아’라는 사상이 형성되고, 점차 하나로 묶여지기 시작했다. 한자와 불교는 ‘동아시아’를 하나로 묶어내는 접착제 같은 것이었다. 이미 존재하고 있던 동아시아에 불교가 전해진 것이 아니다. 불교가 전해지면서 불교에 의해 동아시아라는 문화적 네트워크가 만들어진 것이다. 한자와 유교 등의 공통요소가 본격적으로 확산된 것은 다름 아닌 불교의 전파에 의한 것이기 때문이다.
북방으로 전파된 대승불교가 실크로드를 거쳐 중국에 도착하였을 무렵은 동아시아라는 지역적, 문화적 개념이 걸음마를 떼기 시작한 때였다. 중국의 통일왕조를 만나면서 왕조의 수도인 낙양(洛陽)과 장안(長安)을 기점으로 하여 불교는 각지로 전파되기 시작했다. 불교는 단순한 사상이 아니라, 문화적 종합체의 성격을 지닌 종교였고, 중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각 지역은 불교를 수용하면서 왕성한 생명력으로 변화를 거듭했고, 그 변화는 다시 불교의 변형을 촉진시켰다. 기원 전후에 시작하여 11세기 무렵이 되어서야 일단 마무리되는 불교의 전파는 동아시아를 전반적으로 변모시켰고, 그 결과 동아시아 불교문화 네트워크가 탄생한 것이다.
불교의 전파는 인도와 중국이라는 이질적인 두 문화의 만남이자 융화의 과정이었고, 새로운 문화창조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동아시아 문화만이 가진 독창적인 문화현상들은 대부분 불교와 동아시아와의 만남에서 기인한다. 선종이나 성리학 같은 사상이 그러하고, 인쇄술의 발전이나 다양한 보살신앙의 양상 또한 그러하다. 의례나 예술의 경우는 더 말할 것도 없다. 그러한 다양한 문화현상의 원인을 불교와 동아시아의 만남, 또는 불교와의 만남을 계기로 형성된 동아시아에서 발견할 수 있다. 이 책은 불교의 전파와 더불어 형성되고 확산된 동아시아의 문화와 역사를 새로운 관점에서 흥미롭게 보여주고 있다.
역사책에서도 가르쳐주지 않는 동아시아의 재미있는 역사와 문화 이야기
저자 석길암 박사는 한국불교연구원에서 진행했던 ‘한국 구법승들의 중국 내 활동에 관한 연구’ 프로젝트의 현지조사 과정에서 쌓은 경험과 금강대학교 불교문화연구소의 HK사업에 참여하면서 불교사상의 동아시아적 변용이라는 주제를 집중적으로 연구하고, 강의를 하면서 자료를 축적하며 글을 진전시켜왔다.
<불교, 동아시아를 만나다>는 불교사상을 연구하는 학자로서 동아시아 사회와 문화의 형성 및 발달에 지대한 영향을 끼쳐왔지만, 기존의 역사서에서는 잘 드러나지 않았던 불교의 공헌과 영향에 대해 날카롭고 신선한 시각으로 풀어낸 책이다.
이 책은 제목 그대로 불교가 동아시아에 전파되면서 일어나는 사회적, 문화적 변용을 어떤 역사서보다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책을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기원 전후하여 전래된 불교경전이 중국어로 번역되는 과정 즉 역경이 중국의 정치 및 사회 문화전반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를 알 수 있다. 또한 역경승과 구법승들은 단순한 종교적 구도자가 아니라 인도와 중국 두 문화를 통합하는 문화사절이었으며, 최신 정보의 전달자인 동시에 생산자였고, 정보판단의 주체였음을 쉽게 설명하고 있다.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를 사용한 구텐베르크의 ‘42행 성서’보다 무려 78년이나 앞서 금속활자를 발명하여 [직지심체요절]을 인쇄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왜 서양과 같은 인쇄혁명이 우리나라 아니 동아시아에서는 일어나지 않았는지 그 이유를 제시하고 있다. 아미타부처님에 대한 믿음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시작되어서 동아시아에 널리 전파될 수 있었는지, 출가수행자가 탁발해서 얻은 음식만으로 생활하도록 되어있는 구족계를 포기하고 노동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된 것은 무엇 때문이었는지, 그 결정적 계기가 된 삼계교와 신행 선사에 대한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들을 읽을 수 있다.
또한 성리학이 성행하기 이전 동아시아에서 이상적인 군주는 유교적 이상군주인 요순(堯舜)이나 주 문왕이 아니라 불교적 이상군주인 아쇼카 왕이었으며, 여러 황제와 왕들이 아쇼카 왕의 전범(典範)을 따랐던 사실을 살펴볼 수 있다.
세종대왕이 새로운 문자 한글을 창제하면서 처음으로 적용하여 편찬한 것이 왜 조선의 국시에도 맞지 않는 불교문헌일수밖에 없었는지, 고려시대까지 발전을 거듭하던 인쇄문화와 차(茶)문화가 조선에 이르러 쇠퇴하게 된 이유 등 기존의 역사책에서는 알 수 없었던 내용을 쉽고 흥미롭게 풀어내었다.
책속으로 위로
P.27-28 : 동아시아 세계는 한자, 불교, 유교 등을 공통 키워드로 하지만, 그것들의 본격적인 확산은 불교에 의한 것이었다. 589년, 진나라를 멸망시키고 300여 년 만에 중국을 통일한 수나라 문제는 중국 전역의 유력한 승려들을 장안(長安, 오늘날의 西安)으로 초빙한다. 불교를 신봉했던 문제의 입장에서는 문물제도를 통일하는 한편, 당시의 유력한 종교사상 중의 하나였던 불교의 이상적 전제군주인 전륜성왕으로서의 입지를 강조하여 치세를 안정시키려는 목적에서였을 것이다. 이 조치를 계기로 장안은 중국은 물론 동아시아 불교의 중심지로 급부상하게 되며, 이후 당나라 고종의 황후였던 측천무후가 세운 대주(大周) 시대가 끝나는 705년까지 세계 최대의 도시이자 동아시아 불교문화의 중심지로서 기능하게 된다. ……
실크로드를 따라 전파된 인도 및 서역의 불교가 중국에 들어오는 관문도시였던 장안이 수나라의 도읍이 되면서 문제의 조칙에 따라 전국의 유력한 승려들까지 모여들면서 중국불교의 중심도시로도 부상하게 되는 것이다. 장안에서 인도와 서역, 중국 각지와 신라와 백제의 승려들이 만났고, 그들에 의해서 인도와 서역의 불교는 동아시아 불교로 탈바꿈을 시도했다. 곧 장안은 수나라로부터 당나라의 멸망에 이르는 300여 년 동안 동서문화의 용광로이면서, 인도 및 서역의 불교와 중국의 불교가 함께 용해되는 불교사상의 용광로로 기능했던 불교도시였던 것이다.
P.94-95 : 이처럼 대승불교 초기의 ‘타방에 계신 부처님’에 대한 개념은 불교 내부로부터의 요구 그리고 사회적 혼란으로 인한 외부로부터의 요구가 결합되어 발생한 것이다. 다양한 이민족, 다양한 관습, 다양한 종교와 신앙들이 뒤섞이고 충돌하고 융합되었을 때, 그것이 불교 내부의 요구와 결합되면서 이러한 갈증들을 해소할 수 있는 신앙적 해결책을 강구하게 된다. 석가모니 붓다는 현재하지 않았고, 미래불은 아직 오지 않은 상태에서, 그 극단적인 삶의 피로를 뛰어넘을 수 있는 구원의 신앙이 이 지역의 불교도들에게는 필요했던 것이다. 시방 각처에 설정되었던 부처와 보살들은 그러한 구원의 대상으로 기획된 것이었다.
그러한 발상은 부처님의 전생담으로부터 파생되어 나온 것이었고, 그것이 이민족의 신앙과 융합되었을 때 새로운 이름을 가진 부처들이 그리고 보살들이 출현하게 되었다. 대광명의 부처인 비로자나불이나 무량광(無量光)?무량수(無量壽)의 부처인 아미타불이 그러하다. 서구학자들에 의하면, 아미타-바(Amit??bha, 무한한 광명으로서의 ‘無量光’)라는 호칭은 조로아스터교의 태양신인 미트라(Mitra, 무한한 광명을 의미하는 태양신)에서, 아미타-유스(Amit??yus, 무한한 수명으로서의 ‘無量壽’)는 조로아스터교의 주르반(Zurvan, 무한의 시간을 의미하는 신)의 영향으로 생겨난 이름이라고 한다. 조로아스터교는 한자로는 배화교(拜火敎)라고도 하는데, 기원전 3세기 무렵에 오늘날의 이란과 아프가니스탄 지역에서 크게 번성했던 종교이다. 그 조로아스터교의 신에 대한 관념들이 아미타불의 명칭의 기원이 되었다고 서구학자들은 보는 것이다.
P.112 : 구족계를 포기하고 십선계를 지향하며, 노동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하나의 경향으로 대두된 것은 저 유명한 삼계교(三階敎)의 신행(信行, 540-594)에서부터이다.
실크로드를 따라 전파된 인도 및 서역의 불교가 중국에 들어오는 관문도시였던 장안이 수나라의 도읍이 되면서 문제의 조칙에 따라 전국의 유력한 승려들까지 모여들면서 중국불교의 중심도시로도 부상하게 되는 것이다. 장안에서 인도와 서역, 중국 각지와 신라와 백제의 승려들이 만났고, 그들에 의해서 인도와 서역의 불교는 동아시아 불교로 탈바꿈을 시도했다. 곧 장안은 수나라로부터 당나라의 멸망에 이르는 300여 년 동안 동서문화의 용광로이면서, 인도 및 서역의 불교와 중국의 불교가 함께 용해되는 불교사상의 용광로로 기능했던 불교도시였던 것이다.
P.94-95 : 이처럼 대승불교 초기의 ‘타방에 계신 부처님’에 대한 개념은 불교 내부로부터의 요구 그리고 사회적 혼란으로 인한 외부로부터의 요구가 결합되어 발생한 것이다. 다양한 이민족, 다양한 관습, 다양한 종교와 신앙들이 뒤섞이고 충돌하고 융합되었을 때, 그것이 불교 내부의 요구와 결합되면서 이러한 갈증들을 해소할 수 있는 신앙적 해결책을 강구하게 된다. 석가모니 붓다는 현재하지 않았고, 미래불은 아직 오지 않은 상태에서, 그 극단적인 삶의 피로를 뛰어넘을 수 있는 구원의 신앙이 이 지역의 불교도들에게는 필요했던 것이다. 시방 각처에 설정되었던 부처와 보살들은 그러한 구원의 대상으로 기획된 것이었다.
그러한 발상은 부처님의 전생담으로부터 파생되어 나온 것이었고, 그것이 이민족의 신앙과 융합되었을 때 새로운 이름을 가진 부처들이 그리고 보살들이 출현하게 되었다. 대광명의 부처인 비로자나불이나 무량광(無量光)?무량수(無量壽)의 부처인 아미타불이 그러하다. 서구학자들에 의하면, 아미타-바(Amit??bha, 무한한 광명으로서의 ‘無量光’)라는 호칭은 조로아스터교의 태양신인 미트라(Mitra, 무한한 광명을 의미하는 태양신)에서, 아미타-유스(Amit??yus, 무한한 수명으로서의 ‘無量壽’)는 조로아스터교의 주르반(Zurvan, 무한의 시간을 의미하는 신)의 영향으로 생겨난 이름이라고 한다. 조로아스터교는 한자로는 배화교(拜火敎)라고도 하는데, 기원전 3세기 무렵에 오늘날의 이란과 아프가니스탄 지역에서 크게 번성했던 종교이다. 그 조로아스터교의 신에 대한 관념들이 아미타불의 명칭의 기원이 되었다고 서구학자들은 보는 것이다.
P.112 : 구족계를 포기하고 십선계를 지향하며, 노동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하나의 경향으로 대두된 것은 저 유명한 삼계교(三階敎)의 신행(信行, 540-594)에서부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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