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나는 불자입니다 : 여주교도소 교도관 어윤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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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나는 불자입니다 : 여주교도소 교도관 어윤식
  • 유윤정
  • 승인 2017.02.08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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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장보살의 큰 원처럼 사는 불자

[특집] 나는 불자입니다.

불자佛子. ‘부처님의 제자’, ‘보살을 달리 이르는 말’, ‘계를 받아 출가한 사람’, ‘불교 신자’, ‘부처님의 아들ㆍ딸’. 모두 불자를 뜻하는 말입니다. 불자로서 자존감을 가지고 자등명 법등명自燈明 法燈明을 실천하는 이들을 만났습니다. 부처님 가르침을 중심축으로 삼아 자기 삶을 현명하게 이끌어가는 사람들입니다. 불자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그들은 그 누구보다 빛나고, 현실적이었습니다. “나는 불자입니다.”라고 당당히 말하는 이들의 이야기. 들어봅시다. 그리고 묻습니다. 당신은 불자입니까?

01  ‘불자’라는 상相을 내어 의료봉사를 실천하다 : 국립정신건강센터 양동선 치과과장 / 조혜영
02  춤은 수행이다 : 전북대 예술학과 이준모 교수 / 정태겸
03  향기로운 범음, 내 마음의 소리를 들으려 했소 : 명상음악가 홍관수 / 유윤정
04  지장보살의 큰 원처럼 사는 불자 : 여주교도소 어윤식 교도관 / 유윤정
05  불교가 있어 내가 있었다 : 개그맨 양상국  / 정태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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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교도소 교도관 어윤식
 
지장보살의 큰 원처럼 사는 불자
 
“아무리 오랜 겁이 될지라도 이 죄고罪苦를 받는 육도중생을 위하여 널리 방편을 베풀어서 모두 해탈시킨 후에야 제 자신이 비로소 불도를 이루겠나이다.”
 
지장보살이 세운 서원이다. 이생에서 지장보살의 서원을 따라 행할 수 있는 곳이 있다면 아마도 교도소가 제일이리라. 부처님의 가르침을 떠올리며 자慈와 비悲의 마음으로 교정교화를 이끄는 불자를 만났다. 어윤식 교도관을 만나러 여주교도소로 향했다. 
 
| 왼쪽 가슴에 품은 염주 꾸러미
어윤식(여주교도소, 교위, 50) 교도관. 그의 왼쪽 손목에 자리한 염주가 인상적이었다. “염주가 예쁘네요.” 하자 “스님께서 주신 거예요. 누가 달라고 해도 절대 안 줍니다. 하하.” 하고서는 점퍼 안쪽의 주머니에서 염주 꾸러미를 꺼냈다. 그는 불자 수용자들이 요청할 때 하나씩 주려고 늘 왼쪽 가슴에 품고 다닌다고 했다.
 
“처음 불교를 접하게 된 것은 군대였습니다. 신병교육대에서 모든 종교행사에 다 가봤는데 법당에 들어서니 마음이 편안해지더군요. 제대한 후에 화성 신흥사에서 성일 스님과 김원중 법사님께 기초교리를 배웠어요. 그리고 용주사 수원포교당 경기불교대학에서 조금 더 깊게 공부하게 됐습니다. 제가 1기예요.(웃음) 자연스럽게 계속 공부를 지속할 수 있었네요. 1999년에 포교사 고시에 합격해서 4기로 활동하게 됐습니다.”
 
부처님 법을 지키고 포교하겠다는 서원을 세우고 지키며 살아왔다. 어 교위는 대표적인 불자 교정인으로 손꼽힌다. 그는 여주교도소의 교도관이면서 동시에 조계종 전문포교사이다. 현직 교도관이면서 전문포교사인 사람은 전국에 단 한 명으로, 그는 전국교정인불자연합회 서울경기지부장으로서 활동하면서도 조계종 포교사단 교정교화전법지원단 부단장으로서 포교를 이끌고 있다. 여주교도소 불심회 회장, 전국교정인불자연합회 홍보국장, 포교사단 교정교화분과위원장 등도 역임했었다. 그 밖에도 그는 여주사랑(나눔)봉사회의 회장으로서 여주 지역의 여러 단체로 봉사를 이끈다. 한 명의 포교사로서 민간인 성직자로 활동하며 9158부대 호국보현사 등 군법당에서 한 달에 한 번 법회를 연다. 
 
“교도소와 관련된 일은 교도관이 잘 알지요. 교정인 불자로서 교정교화전법지원단으로서 활동하게 된 것은 제게는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군포교도 마찬가지예요. 제가 할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교도관으로서 포교사로서 불자답게 사는 그에게 조계종 포교원은 지난해 2016년 11월 3일, 제28회 대한불교조계종 포교대상 시상식을 통해 그에게 포교대상 원력상을 수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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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누는 삶 보시하는 삶
부처님 법을 공부한 사람으로서 그는 언제나 나누는 삶을 실천한다. 보시하는 삶이다. 하루의 일과를 마치면 어서 빨리 쉬고 싶어지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그는 봉사를 시작했다.
 
“2002년에 봉사회를 만들었습니다. 그때 제가 종교분과를 맡고 있었을 때였어요. 교정교화시설에 각 종교의 성직자분들이 오셔서 바른 말씀을 가르쳐주시잖아요. 그분들 덕에 저희도 정말 편안하게 근무를 할 수 있습니다. 받기만 해서는 안 되겠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비번인 날이나 야간근무로 휴식시간이 맞는 사람들을 모았습니다. 야근하고 여덟 시에 돌아오면 아홉 시쯤 나가서 두세 시간 정도 봉사를 했습니다. 짧은 봉사시간에 아쉬움을 많이 느꼈는데요, 그 아쉬움이 또 다음 봉사를 하게 만들더군요.”
 
야근자들끼리 모여 만든 소규모의 봉사회는 2006년 더 확대되어 여주교도소사랑(나눔)봉사회가 되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여주와 인근 지역사회의 소외된 이웃을 대상으로 적극적으로 봉사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그의 보시는 봉사만으로 그치지 않았다. 교도소에 있는 수용자들을 볼 때마다 그들의 마음이 부처님 가르침으로 편안해지기를 바랐다.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고 했던가. 불자 수용자들을 위해 교정 운동장에 불상을 모시고 점안식을 봉행할 수 있었다.
 
“여러 우여곡절 끝에 2001년에 남사 교정 운동장에 관세음보살 입상을, 여사 교정 운동장에 지장보살 입상을, 그리고 법당에 석가모니불을 모시고 점안식을 거행했습니다. 스님들이 십시일반 도와주셔서 가능했던 일이었습니다.”
여법하게 모신 부처님으로 교도소 법당은 불자 수용자들에게 참회의 도량이 되었다. 법당에서는 수용자들을 대상으로 일 년에 두 번 수계식을 열었고, ‘붓다아카데미’라는 교육프로그램을 만들어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참회할 수 있도록 도왔다. 발우공양, 참선, 요가, 기초교리 수업, 임사체험, 연꽃컵등 제작, 사경 등, 지난 삶을 돌아보고 성찰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만들어 진행했다. 수용자들은 특히 임사체험을 하면서 참회의 눈물을 많이 흘렸다고 했다.
 
“유언장을 쓰고 수의를 입고 관에 들어가면 밖에서 지장보살 염불을 합니다. 그리고 관에서 나오면 보살님들이 탄생발원문을 읽어주고 발을 씻겨줍니다. 한 번 죽고 다시 태어나는 것이죠. 나오면서 참회하는 마음이 든다고 하더군요. 저도 임사체험을 해보았는데요, ‘내가 원력으로 태어났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수용자들과 면담할 때 사경을 해보라고 제안을 하면 저도 같이 사경을 합니다. 책을 추천할 때는 저도 같이 읽습니다. 함께 하면서 서로 탁마하는 것이죠. 함께하면 많은 것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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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와 내가 둘이 아니다
그는 수용자와 면담을 하기 전 항상 『금강경』을 읽고 들어간다. 염주가 들어 있던 주머니에서 꺼낸 손때 묻은 포켓용 『금강경』에는 밑줄이 그어져 있었다. 그는 수용자들을 만날 때 중도中道를 떠올린다. 스스로도 삿된 견해를 지우고 그들과 바른 인연을 맺고자 하기 때문이다. 그들도 팔정도八正道를 통해 인연을 행하고 바르게 중도의 길로 향했으면 하고 바란다.
 
“『금강경』은 지혜의 경전이죠. 부처님 지혜를 빌려오는 거예요. 마음의 평정심을 찾고 들어가서 바른 지혜로 잘 이끌 수 있도록 하는 마음으로 경전을 읽습니다. 『금강경』을 한 번 읽고 들어가면 대화할 때 막힘이 없어요. 면담을 하면서 불교를 드러내지는 않지만, 그들에게 항상 자비로운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어 교위는 이제 기도도 남을 위해 하게 된다고 했다. 너와 내가 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남을 위해 기도하다 보면 바로 그게 덕을 쌓는 길이고 덕을 쌓으면 결국 내게 다시 돌아오니 그런 것들이 바로 나 자신을 행복하게 하는 길이라고 말한다. 
 
“부처님 자비가 온 누리에 나눠지길 바랍니다. 그리고 불자로서 내가 그 자비를 행하는 사람이 되길 바랍니다. 이곳에서도 자비를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이 많습니다. 쉽게는 「불광」도 마찬가지예요. 책보시도 큰 보시입니다. 그런 의미로 수용자분들도 책을 사서 봤으면 좋겠습니다. 간식 등을 아껴서 직접 신청해, 아까워서 세 번, 네 번 돌려 본 다음에 주변 분들에게 나누는 법보시를 하면 좋겠습니다. 그만큼 고생해서 체험해야 내 것이 돼요. 남을 위한 것이 내 행복으로 돌아옵니다. 부처님 법을 스스로 찾아야지 빚으로 갖고 오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면서 어 교위는 불자들도 이곳에 조금 더 관심을 가져줬으면 한다고 전했다. 
 
“교도소에서 나가면 불교와의 인연이 끊어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안에서는 저희들과 함께 인연을 맺지만 나가서는 외로운 사람들이 많아요. 불교와의 인연이 끊어지지 않도록 그들에게 부처님 말씀을 전할 수 있는 문자 서비스 같은 것이 지원됐으면 좋겠습니다.”
 
그는 퇴직 후에는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 건너가 한국불교를 알리고도 싶고, 혜민 스님처럼 힐링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다. 미얀마에서 수행도 배우고 불교로 음악 힐링을 만들 수 있는 기회도 만들려 한다. 많은 것을 경험해보고 포교사로 활동하면서 더 많이 전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다.
 
그는 자비를 생각하고 베푸는 삶을 살면서 에너지를 찾는 불자였다. 그와 시설 내 불교 법당으로 향했다. 어윤식 교위의 시선이 한곳에 오래 머물렀다. 그 시선 끝에는 부처님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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