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을 남긴 바다와 외로움을 채워준 산
다산초당,백련사
남도 유배길
그리움을 남긴 바다와
외로움을 채워준 산
전라남도 강진의 다산초당은 다산茶山 정약용(1762~1836)의 유배지이다. 1801년 신유사옥에 연루되어 귀양길에 올라 1808년 다산초당으로 처소를 옮겼다. 1818년 귀양이 풀릴 때까지 10여 년간 생활하며, 『목민심서』 등을 저술하고 실학을 집대성했다.
다산초당 주차장에서 10여 분 오르면 다산초당이 나온다. 나무뿌리가 훤히 드러나고 숲이 우거진 비탈진 길을 걸으면 정약용이 살던 당시의 모습과는 다른 다산초당이 나온다. 1958년 다산유적보존회가 무너진 초당을 복건하며 원래 모습인 초가지붕이 아닌 기와지붕으로 확장 복건 했기 때문이다. 추사 김정희(1786~1856)의 글씨를 새긴 현판과 초당 옆 연못, 동암과 서암, 다산이 마시던 집 뒤 샘, 직접 바위에 새긴 정석丁石이라는 글자에서 어렴풋이 다산의 그림자가 서린다. 그뿐 아니라 흑산도로 귀양 간 형을 생각하며 먼 바다를 내다보던 정약용의 아련함이 초당에서 스무 발자국 정도 떨어진 천일각에 남아 있는 듯하다.
천일각 옆을 지나 만덕산을 넘어 백련사로 이어지는 오솔길은 상쾌하기 그지없다. 다산이 혜장 선사(1772~1811)를 만나러 다녔을 길. 3, 40분이면 도착하는, 멀지 않은 길이 사색하며 걷기에 조금은 아쉽지만, 마음이 통하는 친구를 만날 설렘을 품기에는 충분하다. 초록이 무성한 대숲과 동백이 잔잔히 이어지고 소나무, 상수리, 단풍나무 사이로 백련사가 모습을 드러낸다.
백련사는 만덕사로 불렸으며 839년 구산선문九山禪門 중 하나인 성주산문을 개창한 무염 선사(801~888)가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고려 요세(1163~1245)가 중창하며 지눌(1158~1210)의 수선사와 함께 고려 후기 불교 수행 결사의 양 갈래를 이뤘다. 크지 않은 사찰이지만 만덕산 품 안에 꼭 맞았다. 경내 당우들은 바다를 향하고 배롱들은 하늘을 향했다. <다산초당 주차장 → 다산초당 → 천일각 → 백련사>까지 길은 1.4km 정도로 한 시간이 채 안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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