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칠지만 아름다운 한 비구니의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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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칠지만 아름다운 한 비구니의 손
  • 윤구병
  • 승인 2016.12.30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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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칠지만 아름다운 

한 비구니의 손 
 
얼마 전 운문사 일진 스님이 변산공동체에 잠깐 들른 김에 『명성』이라는 책을 두고 갔다. 남지심 선생이 쓴 ‘평전소설’이다. 이분의 삶이 궁금했던 터라 하루 만에 다 읽었다. 읽으면서 어렸을 때 들었던 아버지 이야기가 떠올랐다.
 
용한 관상쟁이가 있었더란다. 길을 가다가 날이 저물어 제법 살림이 넉넉한 어느 집에 들렀는데, 그 집 주인의 관상을 보아하니, 쪽박 차기 딱 알맞은 빈상 중의 빈상이라. 요모조모로 아무리 뜯어보아야 잘 살 구석이 안 보이는 거야. 이거 참 알 수 없다. 며칠 더 눌러앉아 손금도 보고 발금도 보고, 귓불도 들여다보고, 당사주에 명리학, 주역 점까지 쳐 보는데도 역시 오갈 데 없는 비렁뱅이 상이거든. 그런데 이렇게 포실하게 잘 먹고 잘 살다니. 그런데 하루는 이 사람이 먹글씨로 도배가 된 종이를 들고 뒷산에 가는 걸 보았어. 밑을 닦으려고 그러나 보다 여겼는데, 나올 때 보니 그 손에 심지가 들려 있어. 그러니까 똥을 누면서도 쉬지 않고 손을 놀려 가지고 간 종이를 찢어 심지를 꼰 거지. 그걸 보고 나서야 관상쟁이가 그러면 그렇지 하고 무릎을 쳤다는군. 
 
책에서 얼핏 본 비구니 명성의 상도 크게 다르지 않은 듯싶다. 그런데 명성 스님은 몸도 마음도 손도 발도 온통 복덩어리다. 스스로 지은 복이다.
 
『명성』에서 본 글 한 구절. ‘벼룩 서 말을 끌고 갈 수 있어도 중 셋은 데리고 가기 어렵다.’ 그런데 명성이 서울 청룡사에서 몸을 빼쳐 먼 산골에 있는 다 쓰러져 가는 운문사로 내려갈 때 뒤따른 비구니들이 스물, 거기서 기다리고 있던 비구니들이 예순이었다 한다. ‘기댈 데 없어. 우리 살림 우리 손으로 일구어야 해.’ 보리 심고, 모내고, 김매고, 온 몸에 달라붙은 보리 가시랭이에 시달리면서 보리밥 곱삶이로 끼니 때우고, 디딜방아, 절구질…. 몸 놀리고 손발 놀리지 않으면 입에 풀칠하기도 힘든 가난한 살림을 꾸리기 스무 해 남짓. 나라 안팎에서 누구나 알아주는 살림 공동체이자 교육 공동체, 한 걸음 더 나아가 평화 공동체로 일구어 내고 탈바꿈시켰다는 이야기.
 
여남은 살 남짓에 아버지한테서 들었던 이야기 하나가 또 생각난다. 바가지 채우는 데는 마음가짐에 따라 두 길이 있어. 하나는 튀긴 강냉이를 담는 거고 또 하나는 좁쌀 알맹이를 채우는 거야. 튀긴 강냉이로 건둥건둥 채우면 곧 바가지가 가득해지지. 그렇지만 그렇게 해서는 끼니를 때울 수 없어. 더디 걸리더라도 좁쌀로 차곡차곡 채워야 배곯지 않고 오래 견딜 수 있단다.
 
명성 스님은 지독한 공부벌레이기도 했지만 더 지독한 일벌레였다.(적어도 남지심 선생 말을 따르면 그렇다.) 올해로 여든여덟 살인데도 일손을 놓지 않고 있다고 한다. 붓글씨 쓰다 버려진 종이로는 심지를 꼬아 바구니 만드는 데 쓰고, 뜨개질해서 짠 목도리와 모자는 그때그때 나누어 준다. ‘천수천안관세음보살.’ 하도 읊조리다 보니, 스스로 그렇게 되었다. 입으로만 읊조린 게 아니라 그렇게 살았다.(내가 보기에는 그렇다.)
 
조선왕조 세조 때 ‘언해’(우리 말로 옮김)한 『선종영가집』에서 본 글 가운데 이런 대목이 있다.(기억나는 대로 말을 옮기는 것이니, 틀릴 수도 있겠다.) ‘손을 그때그때 비워 두어야 한다. 마냥 효자손을 쥐고 있으면 그 손 다른 데 쓸 길이 없다. 그렇다고 주먹을 쥐고 있어서도 안 된다. 움켜 쥔 주먹은 휘두를 수는 있어도 다른 데는 쓸모가 없다.’ 
 
요즘 들어 나라가 시끄럽다. 박근혜가 최순실이라는 효자손을 오래 쥐고 있었는데 그 효자손이 등 가려운 것을 긁어 주는 데만 그치지 않고 그걸 갈퀴 삼아서 대통령만 알고 있어야 할 정보도 긁어모으고, 심지어 대기업의 목돈까지 긁어모으다가 들통이 나서 입방아로만 떠돌던 말. ‘이 나라 권력 서열 1위는 최순실이고, 박근혜는 3위다.’(쉬운 말로 하면 대통령은 ‘넘버 쓰리’ 곧 ‘시다바리’에 지나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이 말이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다.’라는 말보다 더 널리, 더 빠르게 바람 타고 번지고 있다. 마지못해 효자손을 내려놓은 박근혜는 손을 터는 대신에 이번에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는 소문이 돈다. 개중에는 이 불끈 쥔 주먹으로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른다는 걱정스러운 소리도 들린다.
 
나라 안팎의 ‘전쟁광’들이 들썩이고 있다. ‘한일 군사정보 공유’, ‘한반도에 사드 배치’가 물밑 작업 단계를 넘어 숨 가쁘게 진행되고 있다. 이 짓을 막으려는 평화 세력은 언제 종북몰이로 치도곤을 당할지 모른다. 우리에게는 촛불 들 손은 있어도 총칼 들 손은 없다. 이 일을 어찌할 것인가.
 
아무래도 관세음보살을 찾아야 할 것 같다. 돌조각에, 쇠붙이에 새긴 관세음보살이 아니라 ‘즈믄 손’(천수-千手), ‘즈믄 눈’(천안-天眼)을 지닌 살아 있는 관세음보살을 앞세워야 할 듯하다. 내 머리에 떠오르는 모습은 ‘구름 속의 큰 별’ 명성 스님이다. 군대를 앞세워서는 안 된다. 다 알다시피 군대는 어느 나라 군대 가릴 것 없이 국가가 길러내는 ‘합법적인 연쇄살인 도구’다. 이들은 ‘애국’이라는 이름 아래 남의 나라에 짓쳐 들어가, 애, 어른, 애 가진 여자 가리지 않고 죽여 없애는 짓을 서슴지 않는다. 우리라고 예외는 아니다. 나이 일흔을 반나마 넘긴 우리 세대는 그 꼴을 직접 눈으로 보고 귀로 들었다. 이 땅에 다시는 전쟁이 벌어져서는 안 된다. 휘두르는 주먹이 아니라 합장한 손이 있어야 한다. 한데 모은 두 손바닥에는 총칼을 들 틈새가 없다.
 
불교가 이 땅에 들어온 지 1,500년 남짓한 긴 세월에 불교는 줄곧 평화의 종교였다. 그리고 인류 역사에서 여자는 때와 곳을 가리지 않고 평화세력이었다. 어느 때보다 이 힘이 아쉬운 때다.
 
명성 스님이 청와대로 들어가 ‘그동안 마음고생 많았지요. 이제 다 내려놓으세요. 마음도 놓으세요. 이 길로 나랑 운문사에 들어가서 같이 삽시다.’라고 손잡고 나오면 얼마나 좋을까. 이 길만이 너나없이 몸도 마음도 다치지 않고 평화롭게 살 길인 듯한데.
 
여기에 남지심의 평전소설 한 대목을 소개한다. 그이의 손놀림이 어떠한지 보이고 싶어서다.
 
“명성 스님의 외모는 늘 단정하고 반듯하다. 그리고 아무도 범접할 수 없는 위엄을 갖추고 있다. 스님은 항상 염주를 들고 다니며 문수기도, 관음기도, 약사기도를 하루에 천 념씩 한다. 그 일은 오랜 세월 지켜 온 생활 속의 일부다. 그리고 동국대학교 재학 시절 한국 최고의 서예가 일중 선생과 여초 선생으로부터 배우기 시작한 붓글씨를 시간 나는 대로 써 오고 있다. 또한 학인들의 교양을 높이기 위해 특활 시간을 만들어 붓글씨를 지도하고 있다. 그리고 글씨 연습을 한 종이가 아까워서 그 종이들을 하나도 버리지 않고 틈만 나면 꼬아서 둔다. 지승 공예를 하기 위해서다. 그래서 스님 방에 가면 대화를 하면서도 종이를 꼬고 있는 스님을 쉽게 볼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스님은 뜨개질도 아주 잘한다. 손수 목도리도 뜨고 모자도 뜬다. 그렇게 뜬 목도리와 모자는 그때그때 주위 스님들에게 나누어 준다. 늘 아름다운 것을 추구하기 때문에 스님 자신이 지니고 다니는 소지품이나 제자들에게 나누어 주는 선물도 가능한 예쁘고 맵시 있는 것으로 고른다. 가장 섬세하고 가장 부드럽고 가장 아름다운 여성적인 면이 명성 스님 속에 분명히 자리하고 있다.”
 
“남을 가르치려면 우선 자신부터 가르쳐야 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자리가 곧 수행처다.”
 
“즉사이진卽事而眞, 매사에 진실하게 살라.”
 
뒤에 덧붙인 세 마디는 비구니 명성이 스스로 다짐하는 말이자 학인들에게 늘 일러주던 말일 게다. 사진으로 보는 명성 스님의 손은 얼핏 떠올리기 쉬운 곱고 가녀린 여자의 손이 아니다. 마디가 굵고 큰 손이다. 손은 정직하다. 말을 꾸미고 얼굴을 바꿀 수는 있다. 그러나 호미질, 낫질, 절구질에 익은 손은 거짓말할 줄 모른다. 비구니 명성의 손은 거칠다. 그러나 중생을 향해 내미는 그 손길은 따뜻하다. 내게는 그 손이 아름다워 보인다.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있을 것이 있을 때 있을 데에 있고, 없을 것이 없을 때 없을 데에 없는 것이다.
 
나는 명성 스님이 거칠지만 아름다운 손을 내밀어 박근혜의 이미 쓸모를 잃은 손을 꼭 쥐고 하루빨리 부처님께 귀의시키기를 바라고 또 바란다. 
 
 
윤구병
서울대학교 철학과와 대학원을 나오고 월간 「뿌리깊은나무」 편집장을 거쳐 충북대학교에서 철학과 교수를 지냈다. 1995년 대학 교수직을 그만두고 전북 부안으로 낙향, 농사를 지으면서 대안교육을 하는 ‘변산교육공동체’를 설립해 20여 가구가 함께 생활하고 있으며, 어린이 전문 출판사인 보리출판사를 설립해 많은 어린이 책을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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