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관 스님과 함께 배추 찾아 떠난 여행길
도 닦는일이나
배추 기르는일이나
정관 스님과 함께 배추 찾아 떠난 여행길
송구스러운 일이다. 장성 백양사 천진암에 무려 두 해를 돌아 다시 왔다. 이 시리즈를 시작하면서 뵙고, 마지막을 정관 스님의 암자로 돌아온 것이다. 세상은 시절처럼 변하였고, 물상도 그리하였을 텐데 스님은 한결같았다. 그다지 시설이 좋다 하지 못할 천진암 부엌도 여전하였다. 넓기만 한 부엌에서 스님이 지어낸 공양으로 점심을 했다. 부지런하게 찬을 고르고, 마지막에 밥을 푸는 일도 스님의 몫이었다. 얼핏 보니 스님 손마디가 굵었다. 일하는 자의 손, 물에 손 넣는 자의 손, 부처님이 가장 사랑하는 손. 내가 평소 먹던 찬과 도무지 달라 기억이 하나도 나지 않는데, 원고를 쓰러 앉은 지금, 그저 밥 푸던 손만 생각이 나는 건 뭔가.
| 귀한 공양, 사람 살리는 공양
스님이 변한 게 없는 것도 아니다. 2년 전에 준비하던 사찰음식교육관이 본래의 기획과는 좀 달랐지만, 어쨌든 ‘금발우’라는 이름으로 문을 열었다. 모자란 준비는 어찌 된 일인지 이리저리 돌려서 그럭저럭 꾸려냈다 한다.
11월의 어느 날이었으니 백양사 단풍은 좀 장엄하고 아름다웠는가. 마침 애기단풍축제를 한다. 아기 손처럼 작고 붉은 단풍, 흔히 아기는 붉은색으로 묘사되고 핏덩어리라는 말을 쓰는데 이즈음 백양사가 그렇다. 붉고 붉어서 오히려 붉지 않은 것이 어색하다. 큰절 경내에 천막을 치고 잔치 준비가 크다. 길을 걸어도 바스락, 단풍이 밟힌다. 떨어지고 밟히는 것이 결코 슬프지 않은 건 우리가 다시 태어남을 믿기 때문이다. 만물의 섭리대로.
큰절을 지나 걸어서 천진암까지 가본다. 선기가 센 암자로 본디 유명하였다는데 동안거 전이라 선방이 비어 있다. 스님이 부엌일을 하시다가 물 묻은 손을 닦고 맞는다. 차를 먼저 한 잔 내시는데, 금발우란 이름이 예쁘다 하였다.
“그렇지. 석가모니 생전에 천상에서 발우가 내려왔어요. 귀한 발우, 사람 살리는 발우라 하여 각별한 의미지. 이거 짓고 자연음식교육관으로 쓰고 있어요. 사람들이 아프고 비어 있는 곳이 많으니 음식으로 고쳐보려고 하잖아. 사찰음식이 갈 길을 대중들이 먼저 알고 있는 거지. 많이 오세요.”
스님의 천진암 주석은 벌써 5년째다.
“나는 원래 길에서 도 닦는 체질인 거 같아. 한곳에 이렇게 오래 있으면 힘들어(웃음).”
최근에 아주 바쁘셨다 한다. 미국의 저명한 신문인 뉴욕타임즈에 소개되고 5월에는 미국의 다큐멘터리 감독이 와서 ‘셰프스 테이블’이라는 유명한 시리즈물을 찍어갔다. 아주 흥미로운 일정이었다고 한다. 에이미상을 탄 적이 있는 저명한 프로듀서가 진행을 했다.
“먼저 내 삭발식부터 하자고 했어요. 사찰음식이 그냥 영양이나 맛의 문제가 아니라 정신의 실체인 걸 보여주려고 했지. 매일 새벽 네 시 예불도 참여하라고 했고. 힘들었을 텐데 아주 재미있게 지냈어요, 촬영 팀들이. 음식은 모두 사찰에서 만들어서 공양하고. 한두 끼도 아니고 20일을 그런 식사를 했어요. 계를 준 사람도 있어요. 그저 촬영이 아니라 우리 정신문화를 보여준다는 의미가 강했고, 촬영 팀도 잘 따라왔어요.”
혹시 고기를 먹고 싶으냐고 물었더니 ‘전혀’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낯선 음식에 고기조차 없는 이 절간의 세계에 그들이 깊게 매료된 것이었을 터.
| 진짜 배추김치 맛은 푸른 줄기에서 나와
불광의 사찰음식 탐방 시리즈는 우연하게도 김치로 끝난다. 미리 의도는 전혀 없었다. 제철 재료로 하는 것이 기본인데, 한겨울 제철 채소가 별것이 있는가. 속간이라면 어물이 많은 텐데, 가리고 꺼리는 것을 빼면 참 ‘거리’가 없었다. 그리하여 흔해서 오히려 별것 아닌 취급을 받던 배추가 우리 눈에 들었다.
“배추는 싸고 흔하다 보니 대접을 못 받았어요. 김치도 그저 옆에 늘 있는 음식으로만 봤지, 뭐 아껴준 적이 있나 우리가.”
스님의 탄식처럼 들리는 말씀. 여담인데, 스님은 경상북도 내륙에서부터 서해안과 전라도의 여러 절을 돌며 수행한 까닭인데 사투리가 혼재되어 있다. 스스로 ‘표준어부터 전라도, 충청도 사투리를 다 섞어 쓴다.’고 농을 하실 정도다. 하여튼 배추, 그것도 김치가 마지막 아이템이 된 건 의미심장하다. 기본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 이 시리즈의 마감으로 더할 나위 없었다.
후보는 원래 두 개였다. 배추전과 김치. 배추전은 출가 전 스님이 흔하게 드셨던 음식이다. 경상북도 내륙에서 많이 먹는 음식이다. 고민하다가 그래도 우리 음식의 기본인 김치로 가자고 결정됐다. 근처 장성군 북하면의 배추밭으로 이동했다. 스님이 잘 아시는 보살의 밭이다. 올해 김장도 이곳에서 자란 배추가 소재다. 벌레 먹어 구멍이 숭숭 뚫린 배추가 커다랗게 자랐다. 서리 내리기 전에 막 수확을 할 참이라, 듬직한 배추가 널렸다. 헌데 배추를 묶어주지 않아서 포기가 벌어져 있고 결구가 거의 드러났다.
“일부러 그런 거예요. 묶어주면 상품성이 좋고 파랗고 억센 부분이 적어서 좋아하는데, 진짜 배추김치 맛은 푸른 줄기에서 나와. 씹으면 씹을수록 고소하고 영양가도 높고.”
우리나라 배추는 원래 얼갈이처럼 생긴 배추였다. 중국인들이 지금과 같은 완전결구 배추를 이 땅에 전파했다. 결구가 단단하니 무게가 많이 나가고 즙이 많았다. 그것이 이 배추의 장점인데, 스님은 오히려 반대로 가고 있는 것이다.
“속에 노랗고 아삭한 것도 맛이 있지. 그런데 푸르고 억센 잎이 진해요. 배추의 맛답다고. 그걸 많이 쓰고 싶어서.”
아, 그렇구나. 상식을 거스르는 일, 그것이 바로 한 경지인가. 누군가 콩나물을 발명했다. 콩나물은 푸르게 광합성을 하면 오히려 맛이 없다. 식물은 모두 햇빛을 봐야 좋다는 상식을 거슬러서 우리가 가장 많이 먹는 반찬인 콩나물이 탄생했다.
| “사람이나 배추나 같아.”
장성군 북하면 일대는 해발 6백에 걸쳐 있다. 산세가 드높되 온화하다. 멀리 비안개가 몰려온다. 아니나 다를까 후드득 비가 뿌린다. 산간지방 특유의 비다. 스님과 함께 비를 맞으며 촬영한다. 이 시리즈의 마지막 촬영이라니. 살짝 내 마음에 맺히는 것이 있다.
“사람이나 배추나 같아. 이 배추는 90일짜리예요. 보통 60일짜리, 45일짜리가 많아요. 빨리 길러서 내면 좋지. 비용이 싸게 먹히고 망칠 위험도 적고. 그런데 90일이나 길고 길게 기르는 마음이 있어. 그 마음을 생각해봅시다. 도 닦는 일이나 배추 기르는 일이나.”
김치에 쓸 배추를 고른다. 너무 큰 건 싱겁고 너무 작은 건 떫고. 배추야 다 거기서 거기 같아 보인다. 맞춤한 크기가 잘 안 보인다. 스님은 그러거나 말거나 쑥쑥 배추를 뽑아낸다. 까맣고 윤기 있는 흙이 뿌리에 딸려 나온다. 좋은 토양이 좋은 작물을 낸다. 좋은 말씀과 기도에서 사람이 만들어지는 것처럼.
스님의 김치는 역시 예상을 깬다. 방울토마토가 들어간다. 사철작물이 된 토마토는 김치에도 어울린다. 방울토마토를 넣으면 영양은 물론이고 시원한 맛을 낸다. 김치가 쉬이 무르지 않는 효과도 있다. 토마토는 감칠맛이 많은 작물이니 마치 젓갈을 넣은 것 같은 효과를 일부 볼 수 있다. 상큼한 맛도 더한다.
특이하게도 콩을 넣으신다. 이건 ‘된장김치’ 인가. 발효를 하는 유명한 우리 음식이 두 가지 합친 것 같다.
“단백질을 보충하고 콩에 발효를 돕는 효소가 있어요.”
만든 김치에서 고소한 맛도 난다. 방울토마토와 콩이 김치에 들어가는 건 참 보기 어려운 배합이 아닐까 싶다.
연잎 달인 물도 넣으시는데 방부제 노릇을 한다고 한다. 김치의 발효는 어떻게 보면 부패의 전 단계다. 무르면 곧 쉬는데, 그건 상한다는 뜻이다. 물론 김치의 유통기한은 엄마가 정하는 일이기는 하지만.
매실청도 살짝 넣으시는데, 많이 넣으면 달아서 과발효가 일어나므로 주의해야 한다. 여기서 아주 중요한 대목이 등장한다. 먼저 간장을 쓰는 것이다. 간장을 넣는 건 우리 중세의 김치와 같다. 고춧가루가 도입되기 전에는 보통 간장에 절인 짠지가 김치의 대종을 이루었다. 이 재료를 쓰면 김치의 향이 깊어지고 감칠맛도 난다. 다음으로 고춧가루다. 이것을 발효시킨다. 발효시킨 고춧가루는 향이 깊어진다. 풋내가 적고 구수하고 감칠맛이 도는 김치가 된다.
“고춧가루는 일반적인 거랑 청양이랑 섞어요. 맵기가 적당해집니다.”
경상도와 전라도 사찰을 두루 주유하신 터라 다른 개성도 일러주신다.
“경상도가 좀 더 춥고 하니까 물이 많은 편이고, 전라도는 배추를 절여서 물을 뺀 후 꼬들하게 담급니다. 날씨가 다르니까.”
배추 준비가 끝나니, 김치소를 만든다. 무를 크게 섞박지처럼 썬다. 김치가 아주 시원하고 섬세한 듯하면서 맛의 깊이가 너르다. 아주 특별한 김치다.
겨울에 김치가 익으면 맛을 보러 오겠다는 말씀으로 이별이다. 겨울, 장성에 눈이 펄펄 나릴 때 다시 오리라. 스님이 그윽한 눈으로 배웅한다. 다시 내 눈시울이 묵직해졌다.
이번 호를 끝으로 ‘이 음식이 어디에서 왔는가’ 연재를 마칩니다. 사찰음식과 그 정신을 감칠맛 나는 말로 이야기해주신 박찬일 요리사께 감사드립니다.
박찬일
‘문학과지성사’가 운영하는 ‘로칸다 몽로夢路’의 헤드셰프이자 작가. 어머니 치맛자락 앞에서 콩나물과 마늘을 다듬으며 요리를 시작했다. 서울에서 몇몇 히트식당을 열었으며, 한국 식재료를 이용한 이탈리아 요리는 그가 최초이다. ‘글쓰는 요리사’로 『뜨거운 한 입』, 『백년식당』, 『추억의 절반은 맛이다』, 『지중해 태양의 요리사』, 『보통날의 파스타』 등 그만의 따뜻한 시선과 감성어린 문장이 돋보이는 책들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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