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음식기행] 아 달다, 이 포도 정말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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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음식기행] 아 달다, 이 포도 정말 좋다
  • 박찬일
  • 승인 2016.09.07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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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환 스님과 함께 포도 찾아 떠난 여행길

 함께 포도 찾아 떠난 여행길 

 
요새 포도가 얼마나 좋은데
 
약속한 최재용 농민의 포도밭까지는 기차역에서도 한참 간다. 지도를 보니, 남원시에서도 가장 동쪽, 함양과 붙어 있는 땅이다. 모르긴 몰라도 산맥을 넘으면 경상도 사투리를 쓸 것이다. 남원시 아영면의 지리적 입지다. 아영면은 전형적인 농촌이다. 과거 벼농사도 지었지만 이제는 과수 재배와 특용작물, 축산 등이 많다. 이 면의 명물로 등장한 포도재배도 불과 15~6년밖에 안 된 신참내기다. 벼농사의 대체로 시작했다고 한다. 관에서 소비가 줄고 수매가도 오르지 않는 벼 대신 고소득 작물을 권장했던 바다. 취재팀이 모는 승합차는 엔진 출력을 높여야 했다. 고도가 올라가고 있었다. 해발 450미터 이상 되는 준고랭지다. 귀가 조금 먹먹해진다. 고도의 감이 온다.
 
최재용 농민이 맞아준다. 너르고 잘 정돈된 포도밭이 보인다. 철골 구조로 튼튼하게 만든 포도밭에서 10년생 포도가 구획 지어 자라고 있다. 포도송이가 까맣고 윤기가 흐른다. 똘망똘망한 어린 짐승의 눈동자 같다.
 
“지금은 낮이라 덥지만 밤이 되면 요즘 같은 폭염에도 이불 덮어야 합니다. 밤낮의 기온 차가 크기 때문이지요.”
 
산에 사는 사람의 느낌이 나는 최 농민의 모습이다. 단단하고 든든하다. 우리 스님과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스님의 도량도 남원이니, 아주 제대로 만났다. 지난 얘기지만, 이달의 작물로 포도를 고른 우리는 아무개 지역을 먼저 생각했다. 포도로 유명한 곳이다. 성환 스님께서 남원에 은거하시니, 외려 남원 포도의 명성을 일러주셨다. 멀리 갈 것 뭐 있습니까, 남원에 요새 포도가 얼마나 좋은데.
 
사실 우리도 잘 모른다. 대처의 소비자들도 남원 포도를, 그 지역 출향 인사 말고는 잘 알지 못할 것이다. 놀라운 건 품질이다.
 
“밤낮의 기온 차가 크다는 건 과일의 맛에 큰 영향을 끼칩니다. 낮에 햇살을 충분히 맞고, 밤에는 낮은 기온에 그 영양을 응축합니다. 과일이 더 달아져요. 맛의 균형도 중요한데, 신맛이 밑을 받쳐주고 달콤한 맛이 올라가니까 만족감이 더 높아져요. 그게 아영 포도입니다.”
 
자부심이 대단하다. 실제로 유럽의 수십, 수백만 원짜리 와인을 만드는 포도는 이런 기후가 많다. 낮에는 덥고 밤에는 서늘하고. 이곳 아영은 4월에도 눈이 오기도 하는 등 전형적인 산악 기후다. 포도가 참 고생하며 자라겠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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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름의 대미를 장식하는 짙은 유혹의 향
 
포도를 생각하면 꼭 생각나는 장면이 하나 있다. 어린 시절이다. 그때는 포도라면 늦여름 파장에 나오는 과일이었다. 참외 수박도 다 들어가고 복숭아와 함께 여름의 대미를 장식하는 과일이었다. 늦여름 시장에 가면, 포도의 향과 복숭아가 뿜는 달콤한 향이 어우러져 정신이 어질어질했던 기억이 난다. 시장 노점의 과일전 앞은 지나가는 일이 고역이었다. 그 미칠 것 같은 유혹의 향, 한 입 베어 물고 싶은 수밀도와, 꼬리뼈가 쭈뼛거릴 정도로 방향芳香이 뛰어난 포도 무더기! 어머니가 어려운 살림에 어쩌다가 한 상자 사들여서 포도 잔치를 벌이는 바람에 나의 여름 유년 추억은 황홀한 냄새로 가득 차 있다.
 
성경에서 선악과는 대개 사과처럼 묘사된다. 중세에 그려진 수많은 그림 속에서 선명하게 사과의 모양을 띠고 있다. 그런데 성경에서 가장 즐겨 다루는 과일은 포도다. 심지어 예수는 자신을 포도나무에 비유한다. 포도주는 곧 그의 피를 상징한다는 건 널리 알려진 이야기이다. 포도는 단순한 과일을 넘어서 유럽에서 생명의 나무, 영속성과 은혜의 과일로 설명된다.
 
포도가 놀랍다는 것은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는 과일이라는 점이다. 너무 비옥하고 날씨가 좋은 곳보다는 뭔가 불균형한 기후가 좋은 포도를 만들어낸다. 결핍의 땅에서 잘 자란다. 최고급 포도는 포도나무가 치열한 생존 의지를 가진 거친 땅에서 만들어진다. 지리산 백두대간 밑 거친 산악 지형에서 자라는 이 포도의 힘을 알겠다.
 
스님과 팔을 걷어붙이고 포도를 딴다. 잘 생긴 놈은 대중에게 양보하고 못생기고 덜 열린 것들이 스님의 공략(?) 대상이다.
 
“저런 게 원래 더 맛있어요. 스님이 잘 아시네요. 그러나 상품성은 떨어져요. 도시 사람들은 송이가 우람하게 크고 잘 생긴 것에 돈을 내니까요. 보세요, 이건 포도 알맹이가 스무 개도 열리지 않았네요. 원래는 상품가치가 떨어지니까 솎아내는데 상당수는 놓아두었어요. 이런 포도는 영양을 적은 수의 알맹이가 나누니까 더 달고 맛있어요.”
 
스님이 못난 포도만을 담는 이유였다. 스님 도량에 오는 신도들에게 나누고 공양할 것들이다. 하나씩 따다 보니 두 상자가 훌쩍 넘는다. 최 농민은 상자 당 5킬로그램이라는 기준보다 훨씬 더 푸짐하게 담긴 상자에도 빙그레 웃을 뿐이다. 저 포도가 어떻게 쓰일지 아시는 것일 테다.
 
스님의 오늘 요리는 포도 송편이다. 송편은 온갖 고명을 다 넣는 별난 민족 음식이다. 만두에 들어가는 재료는 대개 뻔하지만, 송편은 더 열려 있다. 깨, 콩도 모자라 과일도 넣을 수 있는 게 송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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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서 맛이 좋을 수밖에
 
최 농민은 올해 귀농 10년 차다. 노부모님이 농사짓고 있었는데 도시 생활을 청산하고 귀향했다. 그는 소도 많이 치고 마을 이장도 맡고 있다. 드물게 40대 이장이 있는 동네다. 활기 있는 동네라고 보면 틀림없다.
 
“걱정이 왜 없겠어요. 웃고 사는 거지요. 올해 포도 작황이 20퍼센트는 늘 겁니다. 큰물이 없었고, 마른 장마에 태풍만 피하면 대풍이에요. 그러니 당연히 값이 떨어집니다. 올해 당도가 17 이상 20브릭스까지 나올 것 같아요. 놀라운 당도예요.”
 
몇 알 입에 넣어본다. 꿀을 머금은 것 같다. 엄청나다. 보통 이런 고당도 포도는 서양에서 고급 와인을 양조할 때나 쓰는 종류다. 생식용 포도로는 말도 안 되게 달고 진하다. 아직 포도가 다 농익기 전의 8월 중순(취재 당시)인데도 그렇다.
 
스님이 신도에게 공양하신다고 포도를 직접 딴다.
 
“송이가 넓게 퍼져 있는 포도가 달고 맛있어요.”
 
과연 그렇다. 송이 사이에 공간이 있어야 볕이 잘 드는 까닭인 듯하다. 한 알씩 드시면서 연신 “아 달다, 이 포도 정말 좋다.”고 하신다.
 
“지금부터 수확을 해서 추석 전에 끝나지요. 아무래도 추석이 큰 시장이니까 그때 물량이 많이 나올 거예요. 저희 포도는 이미 농익은 것이 생겼고, 순차적으로 수확을 할 겁니다.”
 
최 농민의 포도 재배법은 특이하다. 보통 송이당 알맹이가 100여 개 생기는데, 일일이 손으로 솎아내기를 한다. 남원시 농업담당에서 권장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그러니, 서른 개의 영양분만큼이 나머지 일흔 개의 알맹이로 골고루 더 들어간다. 포도 맛이 좋을 수밖에.
 
이 지역의 포도 이름은 아영 흥부골포도다. 남원은 흥부가 실재했던 고장으로 알려져 있다. 최 농민의 포도밭은 딱 한 그루당 가로세로 2미터 70센티미터짜리 공간을 갖는다. 여유 있게 양분을 빨아들인다. 4, 5, 6년차 어린 포도가 생산량이 많으니까 15년 정도 나이 들면 도태시키는 경우가 많다. 늙은 포도나무는 포도를 적게 매단다. 그러나 원숙한 맛을 낼 것이다. 포도와 과일 재배의 패러다임이 바뀌면 늙은 포도나무에서 딴 과일이 더 각광받을 수도 있다. 부드럽고 여유 있는 맛을 낼 테니까.
 
이곳은 비가림만 하고 가온加溫재배는 하지 않는다. 가능한 자연적인 조건에서 길러낸 포도다. 나무 한 그루에 서른에서 쉰 송이의 포도가 열린다. 같은 어미에서 포도의 생김새가 다 다르다. 그래도 어미가 길러낸 것, 어느 하나 허투루 쓰는 법이 없다. 그게 농민이고 그걸 먹는 우리의 태도다. 팔고 남은 포도는 즙으로 가공되어 누군가의 건강에 보태는 음료가 된다. 그리고 다시 포도농사를 준비한다. 겨울에 이미 준비하는 것이 바로 포도농사이니까.
 
 | 빨갛고 예쁜 순, 포도가 잘 익었다
 
최 농민은 다른 농민처럼 포도송이를 종이로 싼다. 상품가치를 유지하기 위해서다. 그대로 노출하면 햇빛을 받아 얼룩이 생기고, 소비자는 외면한다. 이런 건 널리 알려서 종이 싸기 같은 걸 하지 않아도 소비자들이 알아주었으면 한다. 오직 모양으로만 보고 과일을 고르는 것, 그것은 사람을 마음으로 봐야 한다는 불가의 뜻에도 거스르는 일이다.
 
포도송이의 알맹이를 하나 뽑았다. 빨갛고 예쁜 순 같은 것이 나온다. 포도가 잘 익었다는 증거다. 하늘은 가을처럼 높고 푸르렀다. 폭염 따위, 견뎌내는 일이 우리의 몫.
 
스님과 차를 몰고 나왔다. 순하디순한 콩국수를 한 그릇씩 말아 공양했다. 스님의 도량으로 향한다. 시원한 것을 내시는데, 포도주스다. 매번 직접 끓여서 식혀 보관하고 있다가 이렇게 주스로 내신다.
 
“은사스님께도 많이 해드렸어요. 늦여름이면. 좀 못나고 그런 포도를 사다가 쓸모를 만드는 거지요.”
 
그렇게 만들던 습관이 이어져 지금도 저장해 놓는다고 하신다.
 
“물은 절대 섞지 않고 뭉근한 불에 올려놓으면 즙이 나와요. 푹 끓여서 체에 올려놓으면 일부러 거르거나 하지 않아도 즙이 다 빠져나옵니다. 자연스럽게 주스가 되는 겁니다.”
 
서양식 조리기술도 응용하신다. 유리병에 담아 열탕 소독을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1년도 보관이 가능하다. 그리고는 다음 해 포도를, 우주의 섭리대로 다시 만나면 될 일이라고. 스님의 포도주스는 신맛이 없는데 이유가 있다. 주스 밑에 가라앉는 앙금이 바로 신맛을 내는 주요인이라신다. 그걸 제거하면 담백하고 부드러우면서 단 주스가 된다.
 
스님께서 일행을 위해 미리 만든 포도 양갱도 내어주신다. 만복滿腹이다. 그건 마음으로 먼저 불러온 것이기도 하다. 아쉬운 작별, 여름이 끝이구나, 산자락에서 시작된 바람이 슬며시 우리 얼굴을 스치고 지나갔다. 스님과 쌓은 인연의 시간이 정수리에 지긋했다.                              
 
촬영협조. 흥부골 포도 010-6693-2949                        
 
 
박찬일
‘문학과지성사’가 운영하는 ‘로칸다 몽로夢路’의 헤드셰프이자 작가. 어머니 치맛자락 앞에서 콩나물과 마늘을 다듬으며 요리를 시작했다. 서울에서 몇몇 히트식당을 열었으며, 한국 식재료를 이용한 이탈리아 요리는 그가 최초이다. ‘글쓰는 요리사’로 『뜨거운 한 입』, 『백년식당』, 『추억의 절반은 맛이다』, 『지중해 태양의 요리사』, 『보통날의 파스타』 등 그만의 따뜻한 시선과 감성어린 문장이 돋보이는 책들을 냈다.
 
 
 
성환 스님의 풍성한 추석맞이
포도 송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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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료
멥쌀가루 300g, 포도 140g, 볶은 참깨 50g, 설탕 25g, 소금, 참기름, 솔잎 약간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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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드는 법
1. 쌀은 씻어서 6시간 정도 불린 후 소금을 넣어 빻는다. 포도는 알알이 깨끗이 씻어 물기를 빼고 냄비에 넣어 약한 불에서 푹 끓인 후 체에 걸러준다.
 
 
2. 쌀가루에 50~60°C의 포도즙을 조금씩 넣으며 반죽한다. 송편소는 참깨에 설탕과 소금을 넣어 믹서에 갈아 만든다.
 
 
3. 쌀가루 반죽을 한입 크기로 떼어서 송편을 빚는다.
 
 
4. 빚은 송편을 솔잎을 깔고 20~25분 정도 쪄낸 후 참기름을 바른다.
 
 
 
Tip_
송편 반죽은 질수록 만들기는 어렵지만 맛은 더 좋다. 반죽은 50~60°C 정도의 물로 익반죽해야 익혔을 때 터지지 않고 식감도 쫄깃하다. 쌀을 불릴 때 포도즙을 넣어 불리면 색이 더 고운 송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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