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성 스님과 함께 오이 찾아 떠난 여행길
예쁘게 늘어선 줄기에 노란 오이꽃
취재팀과 잠시 헤어져 공검면에서 나는 이 상주의 특별한 여유를 맛보았다. 글을 조금 쓰러 찻집을 찾았는데 도시에는 그토록 많은 찻집이 이 시골의 조용한 면소재지에서는 흔적이 없다. 영업을 하는지 마는지 알 수 없는 다방을 겨우 하나 찾았다. 연세 칠십은 되어 보이는 촌로(다방 사장이라고 부르기도 뭣한) 할매가 맞는다. 인스턴트 냉커피를 한 잔 내고는, “마실 나갔다 올 테니 드시고 가시던가 계시던가 알아서 하시라.”고 하신다. 가게에 뭔 훔쳐 갈 게 없나 보았다. 그야말로, 낡은 사자표 성냥통도 없다. 그이가 두어 시간 후 돌아와서 말하기를, “국수 삶아드릴까요?”였다. 점심때이긴 했다. 한심한 나의 반문은 이랬다. “국수도 파시나요?” “아이라예, 시장하신가 해서 한 그릇 대접할까….” 이게 상주에서 겪은 작은 환대였고, 감동의 마음이었다. 공검면의 이 찻집(이름도 기억나지 않는다)에서 나는 어딘가 보낼 작은 원고를 하나 썼다. 훔쳐갈 리 없는, 바스라질 것 같은 사물들에 둘러싸여. 국수 제공의 환대를 받으며. 이미 해가 높았다.
공검면 정윤수 선생의 댁으로 들어섰다. 취재팀이 모두 다섯이었다. 대부대라면 대부대. 안주인이 환영하신다. 매년 오이를 거두어 절에 시주하시는 신심 깊은 불자시다. 시원한 차를 내고, 수박을 자른다.
“부엌도 좀 쓰신다고 하는데, 안사람한테 허락을 안 받았거든요. 나중에 얘기했더니 ‘시님이 쓰신다는데 뭐 어때요.’ 합디다. 우리 안사람이 불자긴 불잡니다. 하하.”
호인 풍의 정윤수 선생이 밝게 맞는다. 한 해 오이농사를 크게 짓는데, 그것도 머리 아픈 친환경이다.
“오이 밭 가보셔야제. 오이가 참 힘듭니다. 대낮엔 진짜 힘들낀데.”
촬영을 해야 하니, 밭으로 가자는 불광 기자의 요청에 대꾸가 그랬다. 도마도는 ‘도’를 닦는 일이고, 오이는 오×이=십, 십 년 늙는 일이라는 말이 있다고 한다. 엽채류가 아니라, 꽃 피워 열매 따는 일은 다 그렇게 힘들다는 거다. 그것도 한참 일할 때 더위가 덮친다.
“농촌이 다 그렇지만, 일손이 없어요. 외국인 일꾼을 사서 쓰는데, 이 일이 참 힘들어 그런가 한 달을 채우면 고마 사라집니다(웃음).”
일행이 하우스에 들어서자 훅, 열기가 얼굴에 닿는다. 이내 땀이 쏟아진다. 잠깐의 촬영인데, 늘 붙어사시는 이 분들의 노고야 뭐라 말할 수 있겠는가. 오이는 덩굴로 줄줄이 올라가는 성질이 있기 때문에 줄을 매달아 잘 건사해야 한다. 고랑마다 일렬로 예쁘게 오이 줄기가 사열하듯 늘어서 있다. 그 줄기에 꽃을 피운 오이가 열매를 맺는데, 순서대로 열리므로 수확시기도 다 다르다. 이미 끝물이라 한 달 후에는 수확이 끝난다. 지금이 오이지 담글 막바지 철이다.
“오이가 딴딴할 때 담가야 맛이 좋지요. 때 놓치면 못씁니다.”
| 오이로만 오랜 세월을 먹고산 농부의 말
오이도 종류가 워낙 많다. 가시가 돋는 가시오이는 좀 더 늦게 수확을 하는 편이고, 가장 많이 쓰이는 백다다기는 고랭지 재배를 많이 하는 편이다. 더위를 많이 타는 품종이다. 노지 재배는 상당히 드물다. 대전 이남에서 주로 노지 재배를 많이 하는 편이다.
“오이지는 참 고마운 음식이에요. 여름에 찬으로 많이 내잖아요. 대중 스님들이 시원하고 짭짤하니 좋아들 하시고, 발우공양에 참 좋습니다. 한 쪽 남겨서 삭삭 닦아서 공양하기 아주 좋거든요(웃음).”
혜성 스님의 말씀이다.
“까시(가시)오이는 물이 많고, 다다기 종류는 조직이 치밀해서 아삭하고 그렇지요, 오이도 품종별로 나눠 쓰고 해야 좋습니다. 날로 먹자면 뭐든 괜찮지요. 쓴 오이만 아니면.”
오이는 원래 쓴맛이 조금 있는 게 정상이다. 꽃 피운 반대쪽이 원래 쓰다. 옛날에는 구내염의 약으로 썼다. 약은 원래 ‘쓰다’는 말이 그래서 있는 것일까.
고랑 사이에 작은 오이가 많이 ‘던져져’ 있다. 쓰임새를 잃은 것이다. 아까운 마음이 든다. 이걸 모아서 한 단지의 오이지를 만들 것 같다. 굽어지고 휘어진, 못난이 오이다. 속도의 시대에 못난 것들은 천대받는 것일까. 아쉬운 마음이다. 스님의 얼굴도 어둡다.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자상한 연민이신 것 같다.
“아쉽죠. 별 수 없어요. 상품으로 받아주는 데가 없습니다. 가용으로 쓰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저걸 거둬서 쓸 방법이 없습니다. 이것이 지금 우리 농사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곧고 예쁜 것만 사고 팔리는 시대니까요.”
오이로만 오랜 세월을 먹고산 농부의 말이니, 더욱 사무치다.
“솎아낸 것들도 다 옛날에 쓰임새가 있었어요. 이제는 그 자리에서 썩어서 땅에 힘이나 보태면 다행입니다. 허허.”
오이는 이제 겨울과 초봄 재배 작물이 되었다. 하우스 시설 재배하는 것이 여러모로 유리하다. 병충해도 적고, 바깥의 날씨에 덜 영향을 받으니 변수 없이 작업할 수 있다. ‘인건비’가 농사의 중요한 내용이 되었으니, 사람을 써서 밀도 있게 일해야 농민이 몇 푼의 돈을 만질 수 있다.
“한겨울 작업은 좀 적습니다. 출하량도 적고요. 봄이 되면 늘기 시작해서 값이 눅어지고 그렇습니다. 노지가 줄어드니 이제 오이 제철은 늦봄에서 초여름입니다. 좀 빨라졌지요. 그렇다고 계절의 반대는 아닙니다. 한겨울에도 나오긴 하지만 비싸고 사람들도 덜 찾으니 아직은 철을 잃어버렸다 할 건 아니지요.”
특이하게도 겨울 오이가 맛은 더 좋단다. 시설 재배를 하는 경우가 늘면서 그렇게 되었다. 여름에 오이가 수분을 많이 먹으면 맛이 흐려지는데, 겨울은 더 촘촘한 맛이 있기 때문이다. 참, 상식이 무너진다. 이제 우리가 농사에 대해 가진 상식은 달라져버린 것이다.
“오이 이파리가 오래 시들어 있으면 쓴맛이 많이 나요. 그러니 물을 많이 주게 되는데, 그러면 또 맛이 흐려지는 겁니다. 참 어렵지요.”
| 울력 뒤 시원한 오이지 물말이 밥 한 그릇
농부 정윤수 씨는 친환경 재배를 한다. 고단한 일이다. 집 앞에 거대한 짚더미가 있는데, 그것은 모두 오이 밭에 깔아줄 것들이다. 원래 농사란 휴경을 해서 땅심을 돋우고 쉬게 해주는 것이 좋다고 한다. 우리 실정에 휴경은 쉬운 일이 아니고, 대개 연작을 하게 된다. 유기물을 충분히 보강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오이가 땅의 영양을 많이 빨아갑니다. 달리 보면 오이에 영양이 많다는 뜻이겠지요. 오이가 쉬운 작물 같은데, 이게 보통 고되지 않아요.”
올해 오이는 이십 퍼센트쯤 값이 떨어졌다. 농사가 잘되면 값이 눅고, 안되면 값이 오르는데 그것이 어떤 식으로든 농민의 이익으로 가지는 않는다. 참 신기한 일이다. 하우스 재배 오이는 10월에 심어서 가꾼다. 올해는 가을이 덥고 비가 많이 왔다. 그러니 날도 흐렸다. 11월에 활착이 잘 안되어 수확이 줄었다. 물량이 줄었는데 값은 오르지 않았다. 참 이상하다.
“요즘은 육묘한 걸 사다가 옮겨 심습니다. 씨를 뿌려서 모종을 관리하는 게 손이 너무 가서 농업도 분업이 되고 있어요.”
혜성 스님이 오이꽃에서 벌레를 발견한다. 정윤수 씨의 얼굴이 어두워진다. 농약을 안 치고 계피 같은 향이 강한 한약재를 풀어 방제하고, 소주 만드는 순도 높은 식용 알코올을 사서 한약재를 우린 후 살포한다. 그것도 모자라 일일이 벌레를 잡고 애를 써서 기르는 오이다. 그래도 다 막을 수는 없는 일, 벌레는 힘이 세다.
“친환경이라고 돈을 더 받는 것도 아닙니다. 그게 문제지요. 애를 써도 노동의 값이 그대로 돌아오는 게 아니니.”
정윤수 씨도 농약을 치는 관행농업을 했었다. 오이 시설 안에는 아주 건조한데, 농약이 말라붙었다가 바스락, 먼지가 터지면서 작업자의 호흡기와 입으로 들어온다. 그때는 몰라도 나중에 입이 헌다. 정량대로 써도 농약은 독하긴 독한 거다. 그런 경험을 하면서 정윤수 씨는 친환경 농법으로 깊게 들어선다.
“오이는 물을 좋아하지도 싫어하지 않아요. 흔히 오이가 물이 많으니까 물을 좋아할 것 같은데 그렇지도 않은 겁니다. 까다로운 작물이지요.”
그렇게 힘겹게 기른 오이가 여름이면 김천 절의 공양물로 올라간다. 정윤수 씨 부부의 신심이다. 혜성 스님이 오이지를 준비한다. 오이지란 시간이 필요한 음식이니, 곧바로 만들 수는 없는 일이다. 하여 절에서 이미 준비를 해오셨다. 오늘은 무치는 일을 하게 된다. 오이지는 시간과 어울림의 음식이다. 소금과 물이 오이에 닿고, 속으로 들어가는 데 시간이 걸린다. 오이가 그 소금을 받을 수 있는 건 시간의 힘이다. 삼투압이라는 과학성 이전의 우주의 집에서 일어나는 일상이다. 그렇게 오이는 수분을 내어주고 ‘쫄깃하고도 아삭’해진다. 이 기묘한 결론. 그것이 요리라는 행위이고, 공양의 여러 갈래 중의 하나다.
“그 맛을 내는 게 음식이고 공양의 기본이지요.”
울력 뒤의 시원한 오이지 물말이 밥 한 그릇을 비우셨을 스님들의 마음은 얼마나 흔쾌했을까. 음식이 가진 덕성을 느끼는 일이 섭생이라면, 여름 오이지는 그 완벽한 재료다.
바삭, 생오이 같은 기분 좋은 초여름 저녁이다. 스님의 오이지 요리는 끝났고, 헤어질 시간이 왔다. 우리는 합장하였다.
촬영협조. 유진원예 010-3805-1770
박찬일
‘문학과지성사’가 운영하는 ‘로칸다 몽로夢路’의 헤드셰프이자 작가. 어머니 치맛자락 앞에서 콩나물과 마늘을 다듬으며 요리를 시작했다. 서울에서 몇몇 히트식당을 열었으며, 한국 식재료를 이용한 이탈리아 요리는 그가 최초이다. ‘글쓰는 요리사’로 『뜨거운 한 입』, 『백년식당』, 『추억의 절반은 맛이다』, 『지중해 태양의 요리사』, 『보통날의 파스타』 등 그만의 따뜻한 시선과 감성어린 문장이 돋보이는 책들을 냈다.
혜성 스님의 찌는 더위 입맛 살리는 오이지 냉국과 오이지 무침
재료
오이 15개, 물 5컵, 굵은소금 1½컵
● 무침 재료 : 매실액 1T, 고춧가루 1t, 통깨, 홍고추, 청고추 약간
만드는 법
1. 오이를 상처 나지 않게 흐르는 물에 씻어 항아리에 차곡차곡 담는다.
2. 물에 소금을 넣고 끓인 후, 물이 뜨거울 때 오이가 든 항아리에 부은 후 상온에 둔다.
3. 2~3일 지난 후 소금물을 따라내고, 따라낸 소금물을 끓여서 식혀 다시 오이가 든 항아리에 붓는다.(2회 반복)
4. 오이지 냉국 - 오이에 소금간이 배면 꺼내서 씻은 후 0.2cm 정도 두께로 썰어 찬물을 부어 간을 맞춰 낸다.
5. 오이지 무침 - 오이지를 썰어 물기를 꼭 짠 후, 매실액, 고춧가루 등을 첨가해 무쳐서 낸다.
Tip_
오이는 이뇨 효과가 있고, 장과 위를 이롭게 하며, 소갈을 멎게 하는 효능을 지녔다. 몸이 부었을 때는 오이 즙을 매일 1잔씩(작은 잔) 마시면 붓기를 가라앉히는 데 도움이 된다. 녹즙 재료로는 곧은 것보다 꼬부라진 오이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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