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불광」은 통권 500호를 맞아 급변하고 있는 콘텐츠 환경 속에서 불교 잡지가 나아갈 방향을 모색해보고자 지난 5월 4일 본지 회의실에서 특별 좌담회를 열었다. 이날 자리에는 월간 「불광」 김성동 편집장의 사회로 월간 「송광사」 편집장 중현 스님, 월간 「원광」 발행인 노태형 교무, 월간 「맑은 소리 맑은 나라」 김윤희 대표, 월간 「판전」 위영란 편집장, 불광미디어 류지호 대표가 함께했다. 편집자 주
좌담
사 회 : 김성동 (월간불광 편집장)
참석자 : 중현 스님(월간 「송광사」 편집장), 노태형 교무(월간 「원광」 발행인),
김윤희( 월간 「맑은소리 맑은나라」 대표), 위영란(월간 「판전」 편집장), 류지호( 불광미디어 대표)
| 잡지, 욕심을 버리면 살 수 있다
김성동
오늘 좌담회는 월간 「불광」 통권 500호 발간을 맞아 불교계 잡지의 현재 모습과 미래의 방향을 모색해보고자 마련했습니다. 이를 위해 무엇보다 교계 잡지의 최전선에 계신 분들을 모셨습니다. 올해 교계 잡지 중 폐간된 곳이 있고, 또 불교계 밖에서도 오랜 역사를 갖고 있는 잡지가 폐간되기도 했습니다. 그만큼 교계 안팎으로 잡지 시장은 좋지 않습니다. 이런 조건 속에서 불교계 잡지가 어떻게 새로운 좌표를 찾을 수 있을지 생각해보게 됩니다. 우선 각 잡지와 사보의 상황들에 대해 들어보면서 이야기를 풀어나가겠습니다.
김윤희
확실히 예전에 비해 우리의 읽기 문화 자체가 바뀌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제는 책이 읽는 책이 아니라, 보는 책으로 바뀐 지 오래됐고, 책이나 활자에 의존하는 시대가 아닙니다. 책보다는 모바일에 의존하는 시대가 됐죠. 모바일 속 정보가 즉흥적이며 사실을 전달하지 못하고 있는 것도 많지만, 그 영향은 갈수록 늘어날 겁니다. 저는 우리 직원들이나 기자들에게 우리가 특화된 언론이라는 얘기를 합니다. 그래서 처음에 들어왔을 때나 현장에 나갈 때 특화된 언론이기 때문에 문제를 바라볼 때 더 심도 있어야 한다고 주문하고, 또 사실에 충실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사찰이든 어디에서든 스님들이나 교계 식구들을 인터뷰하는 데 있어서 어느 부분에서는 일간지나 다른 언론들보다 훨씬 뛰어난 면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불교에 대한 질문을 하나 하더라도 정확히 짚어낼 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중현 스님
제가 하는 고민하고 힘들어하는 부분은 「송광사」 사보寺報를 보는 사람이 누구냐, 라는 것입니다. 이 물음을 던졌을 때 사보를 보고 읽는 사람들이 불교적인 베이스를 갖고 있는 사람들인지 이게 확인이 잘 안 됩니다. 「송광사」는 주로 불사와 기도 동참자들에게 1년 동안 발송을 해줍니다. 때문에 그 층이 굉장히 넓고, 사보의 구독 대상을 구체적으로 설정하기에는 어렵습니다. 어떤 계층이고, 또 어떤 정도의 불교적인 수준을 갖고 있는지 감을 잡기가 힘들어요. 이게 왜 중요하냐면 사보의 내용을 어느 수준에 맞춰 가야 하는지 판단해야 하거든요. 이 부분이 어렵죠. 이게 꼭 우리 「송광사」만의 문제일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위영란
「판전」은 기본적으로 지역의 기관, 종단의 주요사찰, 필자 등 특별히 챙겨야 할 분들을 제외하고 대략 2/3 정도는 사찰 안팎으로 무료 배포됩니다. 신도들은 물론이고 일반 방문객이나 관광객, 성지순례 오신 분들이 가져갑니다. 당연히 포교와 교육이라는 목적도 있지만, 봉은사가 가지고 있는 지역적 환경적 요인 때문에 「판전」은 새 신도가 유입되는 창구이기도 합니다. 실제 올해 초에 신년호 특집으로 어떻게 봉은사 신도가 되었는지를 조사한 적이 있습니다. 다른 부분들은 다른 사찰들과 비슷하지만, 놀랐던 것이 전체 신도의 17%가 남자신도였는데, 어떻게 신도가 됐는지를 봤더니 「판전」을 보고 궁금해서 등록했다고 답한 사람들이 제일 높았습니다. 여성 신도님들은 누가 데리고 왔다는 경우가 많은데, 남성 신도들이 의외로 「판전」을 보고 오신 사례가 많았습니다.
노태형 교무
저는 앞으로 잡지는 대중지보다 전문지가 살아남을 것이라고 봅니다. 종교 영역의 잡지는 전문지죠. 그래서 저는 종교지 같은 경우도 미래를 어둡게만 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단, 잡지 부수를 크게 확장시키겠다는 욕심만 버리면 됩니다. 저희도 실질적으로 자립 운영합니다. 원불교 본부에서 지원금은 단 1원도 없습니다. 결국 욕심을 버리고 어떻게 하면 매니아적인 잡지로 지속시킬 것인가가 핵심입니다. 이렇게 바꿔간다면 그래도 우려스러울 정도로 어렵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옛날처럼 너무 큰 꿈을 꾸면 생존, 그 자체가 힘들 것입니다.
| “사보와 잡지의 경계, 그 모호함이 문제”
류지호
불교계 잡지와 사보寺報의 경계가 모호한 것 같습니다. 특히 총림 등 본사급의 큰 사찰의 사보는 자체 신도만이 아니라 불교계 전체와 친불교인까지 향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사찰 소식을 전하거나 홍보하는 등 나름대로 긍정적인 역할을 하면서 전통도 쌓아온 듯합니다. 하지만 앞으로 사보가 제 역할을 얼마나 할 수 있는지는 냉정하게 따져보아야 합니다. 현재 사찰의 재정 규모와 인력으로는 양질의 사보를 지속적으로 발간하기는 쉽지 않을 듯합니다. 총림 몇 개 사찰 등은 모르겠지만, 나머지 사찰들의 사보는 독자를 신도와 인근 주민으로 한정하고 그들이 필요로 하는 방식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실 더 큰 문제는 잡지입니다. 사보가 늘어나고 지속되는데 비해 독립적인 불교 잡지들은 입지가 좁아지고 하나 둘 없어지는 상황입니다. 불교 잡지는 하나의 사찰을 넘어서 불교 전체를 다루고 있습니다. 사보보다는 깊고 다양한 내용으로 불교인의 신행을 바로 이끌고 심화하는 장이어야 합니다. 일반 대중 가운데 불교에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는 불교와 연결하는 매개체가 돼야 합니다. 잡지가 그 역할을 못해 왔기 때문에 대중의 외면을 받은 것은 아닌지 반성해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역할에 충실한 잡지는 불교계가 함께 밀어주어 키울 필요도 있습니다. 사보든 잡지든 지속적으로 발간할 수 있느냐가 중요한 문제입니다. 사보가 사찰의 예산으로 발간되는 것에 비해 독립 잡지는 재정 자립이 필수입니다. 일반 잡지들은 주로 광고비에 의존해서 발간되잖아요. 그런데 불교잡지 중에 광고비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잡지는 없습니다. 대부분의 불교 잡지와 사보들은 종단과 사찰(기관)의 예산으로 발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최고 책임자의 의중에 따라 존폐가 결정되는가 하면 방향성이 쉽게 바뀌기도 합니다. 불광은 독자들의 구독료와 후원에 의해서 꾸려가고 있는 잡지입니다. 물론 리뉴얼하면서 광고의 비중이 조금 높아지기는 했지만 광고비로 유지하는 잡지가 아닙니다. 앞으로도 그렇게 가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요. 광고비에 의존하면 우리의 논조나 정신을 지킬 수도 없고 실질적으로 자립할 수도 없을 거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잡지의 존속을 결정하는 것은 독자입니다.
노태형
교무 잡지협회에 참석하면 발행인들이 말하기를, 지금 잡지는 판매되는 잡지가 별로 없다는 겁니다. 구독료가 전체 수입의 20% 정도 들어오면 성공이랍니다. 그러니까 관련된 분야에 가서 광고 따오려고 기를 쓰는 거죠. 저희는 종교지이기 때문에 구독료 가지고 유지되는 게 가능한 것이죠. 사실은 종교지들이 다른 데보다 인건비나 이런 것들이 약하잖아요. 이런 것들이 유지하는 데 나름대로 이유가 아닌가, 이런 생각도 좀 해보게 됩니다.
위영란 저희는 인터넷 홈페이지에 대한 비중이 큽니다. 인터넷 홈페이지와 월간으로 나오는 종이매체의 잡지를 얼마나 잘 안배를 하느냐가 고민입니다. 물론 매체의 특성은 다르기 때문에 인터넷 홈페이지에서 오프라인으로 발행되는 잡지의 느낌을 살릴 수 있는 방법은 아직 못 찾고 있어요. 적절하게 두 중간선을 타고 가는 편이죠. 계속해서 연구돼야 할 문제이기는 합니다. 저는 매체 시장이 웹과 모바일 시장으로 변했다는 걸 그렇게 두려워해야 할 문제는 아니라고 봅니다. 다만 정말 생각해봐야 할 것은, ‘이 잡지가 왜 나오지? 정말 필요할까?’ 이 부분을 생각해봐야 한다고 봅니다. 이제는 감각적으로 재밌는 잡지여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는 결국 잡지를 읽히도록 만드는 것은 ‘재미’라고 봅니다.
| 이 잡지는 왜 만들어지는가?
김성동
가장 중요한 건 이 잡지가 왜 발간돼야 하는가, 왜 만드는가, 이런 것이라고 봅니다. 그래야 독자들도 참여하고 공감할 수 있을 겁니다.
중현 스님
「송광사」지의 발간 목적이 공식화된 것이나 명문화된 게 있는 것은 없습니다. 만약에 이전에 발행했던 「불일회보」의 정체성이 이어져 있다면 얘기가 다른데, 중간에 상당한 기간 동안 단절이 있었어요. 발간 목적이 분명하게 정리될 필요는 있습니다. 사보의 내용을 채우고 필자 요청을 하면서 “이건 안 되겠는데….” 하고 어느 선에서 딱 걸리는 게 있어요. 그때 이 발간 목적이 가드라인 역할을 하면 됩니다. 제가 봤을 때 우리 종단의 각 사찰에서는 사보가 잘 흥행이 안 되고 있습니다. 그것은 발행 목적과 사보를 읽는 대상이 명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발간 목적이 불분명하면 독자들 입장에서는 그냥 때가 되면 「송광사」를 받는다는 그 이상은 넘어서기가 힘들 것 같습니다.
김윤희
아까 잠깐 얘기했지만, 발행하는 사람 그리고 이 일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어떤 의식을 가지고 참여하는지가 가장 크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지금도 발행인으로서 처음 세웠던 원이 변하지 않고 있는데, 문서포교사로서의 소명의식, 사명감, 이런 게 분명해야 한다는 생각이에요. 내용적인 측면에서는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 디자인 등 비주얼적인 면, 이런 게 사실 굉장히 큽니다. 대중이 혹은 독자가 택할 때는 사실 비주얼이 중요합니다. 그걸 무시해서는 안 되거든요. 또 교계 잡지들은 활자 중심이든, 디자인 중심이든, 잡지를 만드는 사람들이 공부하고 노력하지 않으면 버텨낼 수가 없습니다. 흔히들 남만큼 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지만, 저는 그 말의 배 이상으로 노력해야 된다고 봅니다. 그래야 (독자가) 읽어주는 거죠. 그때 독자와 후원자들의 마음을 살 수 있습니다. 지금 잡지가 위기라고 하지만, 그런 노력이 있다면 충분히 버텨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위영란
저는 「판전」을 우리 신도가 살고 있는 지역에서 읽어줬으면 하는 게 컸어요. 저는 사보도 전체 잡지 안에서는 전문지와 같다고 봅니다. 그래서 우리 절의 특성, 지역과 어우러질 수 있는 정보, 절에서 배운 것을 생활 속에서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에 관심을 많이 뒀어요. 예를 들면 강남하면 교육의 1번지니까, 자녀 교육은 각자 가정에서 어떻게 시키고 있는지를 탐방을 했어요. 대체로 내용을 구성할 때 신도들의 관심사에 대해서 많이 집중했습니다.
| “암호문을 쓰지 마라.”
노태형 교무 제가 「원광」에 올 때 고민이 됐던 게, 「원광」이라는 이름이 너무 무겁지 않으냐 하는 거였어요. 잡지 이름부터 바꿔버리자고 했죠. 이런 논조로 토론을 시작했어요. 하지만 역사가 이미 60년이 됐는데 이름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 그렇다면 다른 부분으로 어떻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느냐, 이런 식으로 고민이 흘러갔습니다. 지금 「원광」에 보면 ‘은혜로운 세상, 행복한 마음’이라는 슬로건이 있습니다. 이 슬로건을 부각시키는 쪽으로 가자고 결론을 냈습니다. 슬로건이 바뀌니까 내용도 바뀔 수밖에 없는 거예요. 결론은 ‘읽는 잡지로 가자.’는 거였죠. 그리고 “우리들만 아는 비밀어는 쓰지 마라. 우리들만 쓰는 말은 쓰지 마라. 암호문 같은 단어는 쓰지 마라.”는 말을 많이 했어요. 제가 어떤 논설위원에게 글 좀 써달라고 찾아가서 책을 보여드렸어요. 그런데 “저 글 못 쓰겠습니다.”라고 하셨어요. 왜냐고 물었더니 내용이 너무 어렵다는 겁니다. 아니, 신문의 논설위원도 이해 못 하는 글을 왜 쓰느냐, 앞으로는 비밀어를 쓰면 혼난다, 모든 언어를 모두가 아는 언어로 바꿔라, 그렇게 했지요. 내용도 마찬가지입니다. 원불교 이야기로 떡칠을 해 놔봐야 우리 교무님들도 안 읽는 이야기를 만들면 뭐하느냐는 겁니다. 그래서 눈으로 보이고, 읽어서 재밌고, 그래도 마음이 좀 찡할 수 있는, 말 그대로 ‘은혜로운 세상, 행복한 마음’을 느낄 수 있는 그런 내용으로 채우자. 그렇게 만들어왔습니다. 그 당시만 해도 「원광」지 안 읽는다고 했었어요. 교무님들한테 「원광」지 좀 봐주세요, 하면 “볼 거 없던데?” 이런 반응이었어요. 지금은 많이 부족하기는 하지만 어쨌거나 “「원광」지는 우리 자부심이잖아.” 이 정도까지는 인식이 많이 좋아졌죠. 한 10년여 만에 전환이 많이 된 것 같아요. 「원광」은 어떻게 하면 재미난, 아름다운 이야기들을 세상 사람들에게 전할 것인지를 고민하고, 한편으로는 어떻게 교단을 변화시킬 것인지를 고민하고 있는 거죠.
김성동
말씀해주신 대로 내용이나 방향, 그리고 콘텐츠가 매우 중요하지만, 그걸 만들어내는 건 편집진들입니다. 우리 내부의 기자와 에디터 역량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그게 결국은 사람의 문제잖아요?
김윤희
저는 그게 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교계 잡지가 발전을 못하고 있는 이유는 바로 그런 부분입니다. 무엇보다 이 일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우리의 다음 세대를 위해서 그런 역할을 얼마나 하느냐가 중요하다는 게 제 생각이에요. 잡지를 만드는 사람들에게 얼마나 질적인 교육을 제공하고 변화의 기회를 제공하는가, 그래서 이 안에서 뜻을 펼치면서 일할 수 있도록 해주고 있는가, 이런 걸 생각해봐야죠. 그들에게 불교에 대한 전문적인 부분들도 채워주면서 대중이 어떤 걸 원하는지, 이를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늘 생각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불교 매체들은 퇴보할 수밖에 없습니다.
류지호 교무님께서 종교잡지들이 인건비를 낮게 잡아서 그나마 돌아간다고 하셨습니다. 말하자면 인건비가 싸다는 얘기거든요. 불교계 출판 잡지뿐 아니라 불교계 전체적으로 경쟁력 있는 인력이 어떻게 유입되어 오는가, 이것을 봐야 합니다. 전에는 그래도 불교계 같은 경우 한국대학생불교연합회(이하 대불련)의 활동이 굉장히 왕성했어요. 대불련이 일종의 인력을 창출하는 역할을 많이 했는데 지금은 대불련 자체가 많이 취약합니다. 물론 그것은 대불련 자체만의 문제는 아니고 대학 사회 전반의 분위기가 바뀌면서 나타난 문제이기도 합니다. 우수인력들이 종이매체로 와서 뜻을 펼치는 것을 선호하지 않는 이유 중 인건비 문제와 업무의 안정성도 상당합니다. 또 전반적으로 소득이 높아지면서 종교에 대한 관심이 적어지고 있는 문제가 함께 연동되고 있습니다.
| 모바일, 이걸 대체 어찌할꼬?
김성동
확실히 불교계에서 에디터 인력 배출이 이제는 끊어진 것 같습니다. 교육 시스템을 새롭게 만들어야 할 상황에 접어든 게 아닌가 싶습니다. 또 살펴봐야 할 것은 콘텐츠 소비 패턴이 달라진 것입니다. 신도들이나 불자들이 일방적으로 잡지를 읽었는데, 이제는 특히 모바일을 이용해서 불교 정보를 공유하는 것으로 정보 습득의 패턴이 바뀐 게 아닌가 싶습니다.
김윤희
사실 잡지에 있는 내용을 웹이나 모바일로 올리는 것도 그 기반이 결국은 잡지거든요. 잡지를 어떻게 만들었느냐에 따라 내용이 달라지는 거죠. 그래서 잡지가 첫 번째 기반이 돼야 하고, 이걸 웹이나 모바일로 옮겼을 때 그것을 본 사람들은 좋은 게 있으면 갖고 싶기 마련입니다. 때문에 콘텐츠의 소장가치, 보존가치, 이런 것들을 느끼게끔 콘텐츠를 고급스럽게 만들어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질이 높은 잡지를 만들면 독자들은 찾게 되거든요. 그런 역할을 충분히 해줘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중현 스님 이전에는 모바일보다 웹 중심이었죠. 그런데 지금은 대부분 정보 소통이 모바일에서 이루어지면서 홈페이지도 이제는 뒤쳐진다는 인상을 받습니다. 「송광사」지 같은 경우는 페이스북을 나름대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또 그 내용도 사보에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것이 모바일 콘텐츠의 특징이기도 합니다. 독자와 연결하는 것이 오프라인 잡지 내용뿐 아니라, 그때그때 쉽게 사진 찍고 몇 줄 넣어서 페이스북 등 SNS가 나타난 겁니다. 아주 간단한 작업으로 빨리 소식과 정보를 올리고 사람들과 쉽게 공유할 수 있거든요.
노태형 교무 「원광」지는 유가지이기 때문에 콘텐츠 내용은 웹에 일부만 공개합니다. 모바일은 아직 없는 상태입니다. 웹도 하나의 홍보수단으로만 사용합니다. 그런데 또 웹이나 모바일에서 전체 콘텐츠를 볼 수 있도록 요구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어요. 하지만 아직까지는 비용 대비 효과가 얼마나 있을까 하는 데에 고민이 있습니다. 모바일을 일컬어서 손 안의 여의보주라고도 하잖아요. 없는 게 없잖아요. 그렇지만 과연 이게 여의보주일까 그런 생각을 해요. 결국은 이런 부분들이 독서의 분위기를 진작시키는 게 아니라, 오히려 가볍게 만들지 않을까 우려스러운 면도 있습니다.
중현 스님
타깃 층이 다르지 않을까요? 모바일 매체의 타깃 층하고 종이매체의 타깃 층은 성격이 다르지 않나 그렇게 생각합니다. 같은 타깃 대상으로 놓고 생각하면 답이 안 나올 것 같아요. 모바일 같은 경우는 상당히 느슨하고 일회적입니다. 정보를 깊이 읽는 수준을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고 봅니다.
| 변화의 시대, 잡지의 지향점은?
김성동
잡지를 만드는 사람들은 이게 계속되는 고민일 수밖에 없습니다. 한국출판문화진흥원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정보 취득에 대한 경로가 신문과 잡지 등 종이 매체는 하위권에 있습니다. 5.7퍼센트밖에 안 돼요. 그럼 잡지가 퇴보할 것인가. 퇴보의 방향이 종이의 물성을 버리는 쪽으로 갈 것이냐. 그럴 것 같지는 않습니다. 다만 다양한 방식으로 보완 관계를 설정하는 방법은 없을까 고민하고 있는 거죠.
노태형 교무
저희 「원광」 같은 경우는 역사가 오래됐다고 반드시 유지시켜야 할 의무는 없다, 사라져야 할 때는 사라져야 한다, 그런 이야기를 많이 해요. 제가 생각하는 「원광」지는 결국 은혜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한 도구지 그 이상은 아닙니다. 도구는 도구로서 역할을 하고, 시대의 변화에 따라서 그 도구를 어떻게 써야할지 고민해야 하지 않느냐, 그렇게 생각합니다.
위영란
「판전」은 50~60대 층이 타깃입니다. 봉은사가 처한 환경이 정말 많은 관광객, 방문객, 비불자, 인근의 회사원이나 지역 주민들 같이 다양한 계층이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그분들이 매월 「판전」을 읽게 하는가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또 중요한 우리의 숙제는 어떻게 하면 쉽고 재미있는 콘텐츠를 찾아내느냐, 하는 것입니다. 재미있고 쉬운 신행지, 수행지를 목표로 하는데, 동시에 이것을 해나가면서 보이지 않게 봉은사가 가지고 있는 역사와 위상을 접목시키려는 것, 그게 숙제인 동시에 우리 「판전」이 지향하는 방향입니다.
김윤희
저는 월간지를 발행한 지가 18년이고, 「불광」처럼 단행본 발행도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불광미디어의 축소판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업무 성격과 영역이 불광미디어의 1/3 수준이라고 보시면 될 겁니다. 특히 부산 경남 지역이 불교세가 강하기 때문에 여기에서부터 문서포교를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 분명한 것은 문서포교사로서의 역할, 그것을 이행하려고 한다는 것은 변함없습니다.
중현 스님
제가 경험해본 것은 「송광사」 지밖에 없으니까, 「송광사」에 대한 이야기밖에 드릴 수 없는데요. 형식이 먼저 존재하고 내용을 그때그때 채워서 형식을 유지하려고 하다 보니까 만드는 사람에 따라서 달라집니다. 형식이라는 것도 막연한 신도들과의 연결고리를 이어가야 한다는 역할을 이 사보가 하고 있는 것이죠. 그렇다보니까 자연스럽게 사보가 지향하는 것도 불교 포교의 역할보다는 송광사라는 브랜드를 사람들에게 각인시키는 역할을 사보가 담당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고민은 이게 과연 올바른 거냐 하는 거예요. 이게 제 개인의 문제라기보다 전국의 본사급 사찰 중에 그나마 사보가 나오는 곳은 비슷한 고민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오늘 이야기를 나누면서 기존의 맹목적인 신행생활, 예를 들면 체계적인 교육을 받지 않고 대상화된 신행생활을 하는 계층을 어떻게 하면 구체적인 신행생활로 이끌 것인가 하는 고민을 하게 됐습니다. 교리적으로나 수행의 측면에서 나도 스님들과 다를 바 없는 수행자다, 이런 생각으로 신행생활을 할 수 있게끔 만들어 갈 수 있느냐 하는 문제인데요. 사보가 그런 역할을 어느 수준까지 할 수 있는지는 여전히 숙제입니다.
류지호
사실 오늘 나온 많은 이야기들이 지금 잡지를 만드는 사람들이 안고 있는 가장 현실적인 고민들입니다. 디지털 환경의 급속한 변화, 콘텐츠 소비의 변화, 콘텐츠 생산까지도 많은 것들이 바뀌고 있고, 비주얼뿐 아니라 온갖 영상 콘텐츠들이 각광받고 있습니다. 또 거대한 플랫폼들이 수많은 콘텐츠를 무료로 제공하는 현재의 상황에서 불교계 잡지가 어떻게 지속가능한 자생력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입니다. 그런 고민들을 해결하기 위해 이후에도 지혜를 모으고, 공유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합니다.
김성동 예. 오늘 좌담회를 통해서 불교계 잡지와 사보가 세상의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면서 본연의 가치인 전법의 정신을 이어나가길 바랍니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앞서 말씀하셨듯이 에디터의 역할, 콘텐츠 변화의 흐름 등을 지속적으로 모색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 좌담회를 통해 불교계 잡지가 어떤 좌표를 갖고 가야 하는지 함께 공감되길 기대합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