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음식기행] 불어오는 해풍 춤을 추는 밀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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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음식기행] 불어오는 해풍 춤을 추는 밀밭
  • 박찬일
  • 승인 2016.06.08 1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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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재 스님과 함께 우리밀 찾아 떠난 여행길
 
 
 
우리의 허기를 메운 고마운 공양
 
“이건 부처님 머리를 닮았다 해서 불두화, 잘 피었네요. 저건 수국, 나리꽃이 피려면 좀 있어야 하고 저건 제피예요. 방앗잎도 제법이네 … 구절초에, 머위는 키가 벌써 훌쩍 커버렸어. 저걸 옛날 절집서 다듬으면 손이 새까매졌는데(웃음).”
 
저마다 다 사연 있고, 곡절 있는 생명이다. 손바닥만 한 스님의 마당이 그럴진대, 세상은 또 오죽한가. 차는 그 다른 세상으로 짧은 여행을 떠났다. 스님과 취재진, 스님을 돕는 두 분의 보살님까지 실었다. 군산을 지나 더 남쪽, 만경강이 저 너른 바다로 가는 옥구평야로 갈 참이었다. 
 
“스님, 오늘 요리가 무엇입니까.”
 
“승소는 아니고, 수제빌세.”
 
승소라. 스님 승, 웃을 소, 僧笑. 입안에 굴리니 맛이 도는 이름이다. 슬쩍 비켜선 작명, 센스와 위트가 넘친다. 이런 소박한 비틀기는 본디 딱딱할 것만 같은 수도생활에 작은 여유 공간을 만든다. 세 끼 곡식으로 공양하되, 어쩌다 만나는 국수가 반가워서 승소였을 것이다. 
 
“그렇지만도 않아요. 쌀밥이 좋지, 밀가루가 별로일 때가 오래였어.”
 
절집의 살림이란 본디 대중 살림과 어깨를 겯고 가는 법. 어려운 시절에 쌀밥 먹기가 쉬웠겠는가. 수도자의 혀도 단 것은 넘기고 쓴 것은 괴로운 법. 허기 가득하던 60, 70년대에는 밀가루 보는 일이 절집에도 너무 흔했고, 그것을 보고 웃을 일이 얼마나 있었을까 싶기도 하다.
 
국수와 수제비. 우리의 허기를 메운 고마운 공양이었으되 한때 서러움도 있었던 셈이다. 스님의 수제비는 그런 지난 시간을 불러오는 선택이었는지도 모른다. 
 
“승소란 건 어떻게 보면 단백질과도 관련이 있지 않나 싶어. 스님네들 공양에 늘 단백질이 부족하지. 된장이나 콩으로 다 채우지 못했고. 밀가루에는 글루텐이 있잖어. 그게 단백질이에요. 쌀보다 밀에 많거든.”
 
공학적인 설명까지 이어진다. 밀가루를 치대서 그 단백질이 활성화되고 글루텐이 잘 ‘잡히는’ 것이다. 메밀이 수굿수굿하고 쫄깃함이 없는 건 글루텐이 드물기 때문이다.
 
차는 옥구에 도달한다. 과연, 밭이 가없다. 오랜 곡창지대였고, 게다가 옥구 쪽은 간척지도 많아 더 너르고 공활하다. 쌀과 보리, 밀 같은 주곡을 심고 가꾸기에 적격이다. 왜 아니겠는가. 일제 때는 이곳서 수탈한 곡식이 당시 작은 어촌이던 군산을 통해서 일본으로 반출되었다. 옥구에 속한 작은 항구인 군산이 성장한 계기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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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밀이 눈앞에 넘실거리고
 
“아휴, 이게 보리야 밀이야. 비슷하게 생겼어. 겉보리, 쌀보리도 사실 구별하기 어렵고.”
 
그냥 보면 도통 알 수 없다. 키가 좀 큰 건 밀이고, 작은 건 보리라고 보면 얼추 맞다. 도시서 자란 나는 그래도 구별이 어렵다. 
 
“보리가 조금 수확이 빠르기도 해요. 색깔이 더 누렇죠? 밀은 6월 20일께나 되어야 벨 거구.”
 
안내해주시는 심상준 선생(우리농촌살리기공동네트워크 대표이사)이 말씀하신다. 마침 밭주인은 출타중이고, 이 지역 농업 사업과 운동의 터줏대감 격이신 심 선생이 설명을 잇는다.
 
“보리나 밀이나 이 지역까지가 얼추 이모작 북방한계선이에요. 더 넘으면 추워서 이모작이 좀 힘들고요.”
 
우리밀살리기운동본부가 1991년 출범하고, 우리밀이 다시 들판에 뿌려질 때 기대가 컸다. 한때 밀 소비량의 2퍼센트를 넘어섰다. 그러다가 다시 1퍼센트대로 떨어진 것이 요즘이다.
 
“안타깝지요. 밀은 겨울 작물이니 농가소득에도 좋고, 놀리는 밭 없이 곡식을 얻는 것이고, 게다가 겨울 작물이라 농약 같은 것도 안 치고도 재배하기가 쉬운 면이 있으니까요. 무엇보다 수입밀에 대한 불신의 대안이기도 하구요.”
 
10월에 직파로 파종해서 6월에 수확하니 꽤 오래 시간을 밭에서 자라는 게 밀이다. 요즘은 파종부터 수확까지 자동화되어 면적당 이익도 높아졌다. 그런데도 우리밀의 점유율은 별로 움직이지 않고 있다. 업계 얘기로는 우리밀의 가격도 아무래도 비싼데다가 소비자 의식 부족도 원인으로 보고 있다. 또 다양하게 제품을 만드는 데 적합하지 않은 면도 있다고 한다. 글루텐 함량이 낮은 것도 빵을 많이 먹는 요즘 입맛에 딱 맞지 않는 구석이 있다.
 
“예, 그런 점이 있어요. 빵이란 게 원래 서양 것이고 그쪽 밀이 더 맞겠지요. 수입밀은 품종별로 다양하게 섞어서 제품에 맞는 품목을 잘 블렌딩해서 공급하거든요. 우리밀은 그런 다양성에서 떨어지고요. 우리도 품종 개발이나 개량 같은 데 더 신경을 써야합니다.”
 
원래 우리나라도 밀을 수매했다. 1984년에 중단하면서 급격하게 밀 자급률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한때 우리도 70년대 초에는 자급률 15퍼센트를 기록한 적도 있다. 50년대에 미국의 잉여농산물해외지원 법률(미 공법 480항)이 통과하면서 국내에 엄청난 양의 밀가루가 유·무상 공급되었다. 우리밀은 당연히 고사될 수밖에 없었다. 당시 완전 기계화되고 토지 비용도 훨씬 싼 미국 밀을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그렇게 우리밀은 사라져갔다. 정부는 아예 수입밀을 기본 주곡으로 정하고 양곡정책을 폈다. 통일벼와 수입밀, 이 두 가지가 국민의 주곡이었다. 매일 혼분식 장려 정책이 나왔고 학교에서는 도시락 검사를 했다. 빵과 국수가 쌀보다 영양가가 더 높다고 학자들을 시켜 거짓말을 하기도 했다. 우리밀이고 뭐고 종자를 지키자는 말을 꺼내기도 무서운 세상이었다.  
 
그 밀이 지금 우리 눈앞에 넘실거리고 있으니, 참 세상 모를 일이다. 
 
“이 이삭을 좀 봐요. 까슬까슬한 게 다 세상 이치예요. 보리도 그렇지만, 다 자기 보호하려고 그런 거잖아요.”
 
스님이 한참 밀을 보더니 이은 말씀이다. 다 저 살자고 하는 눈물겨운 진화의 결과일 테다. 
 
“지금 우리밀도 완전 토종밀은 적어요. 앉은뱅이밀이라고, 진주에 가면 제법 기릅니다. 그게 우리 토종이에요. 수율이 낮으니 종을 특별히 보호하지 않으면 토종은 사라질 겁니다.”
 
지금 이 밭에 자라는 밀은 백중밀이라는 품종이다. 국수를 만들기에 적당하다고 한다. 구수한 우리밀 국수의 맛이 기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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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옥구평야에 바람이 분다
 
밀은 일제강점기에 일본으로 종자가 유출되었다. 일본은 남쪽이고 역시 쌀이 강했고, 밀은 대륙성이 있는 품종이라 일본에서 낯설었다. 그렇게 우리밀이 갔는데, 이제 역수입되었다. 우리는 종자를 지키지 못하고 있었던 거다. 왜형 1호 같은 품종 이름도 있다. 
‘쌀은 지키고 보리와 콩은 더 먹고 밀은 살리자’. 이것이 우리밀을 지키는 이들의 슬로건이다. 아주 적절한 표현이다. 지금, 우리밀은 살려야 할 처지다. 스님의 손이 거기에 보탬이 될 것이다. 
 
“밀 훑어서 볶아 먹고 그랬지요. 춘궁기였으니까. 또 씹으면 단물이 나오고 껌처럼 쫄깃쫄깃했어요. 껌도 귀했으니까.”
 
밀은 구워서 까 먹으면 톡톡 튀는 맛이 있다. 생밀을 씹으면 글루텐이 있어서 쫄깃하다. 밀을 분쇄하지 않고 껍질만 벗겨서 밥을 지을 수도 있다. 밀쌀이다. 좁쌀, 보리쌀, 밀쌀. 뭐든 쌀에 빗대어 이른 건 그만큼 쌀이 귀했기 때문이다. 
 
“밀쌀로 밥 지으면 구수하고 달아요. 요새도 구해서 먹을 수 있어.”
 
스님의 말씀이다. 그새 스님은 밀밭 사이로 다니면서 온갖 생명들을 보신다. 돈나물, 민들레, 질경이…. 농약을 안 치니 밀밭 둔덕에 여러 생명이 싹을 틔우고 있다. 스님 눈에는 역시 ‘나물거리’로 보이는 것들이다. 
 
밀 제분은 상당히 어려운 과정이다. 쌀 도정에 비하면 훨씬 대형화되어야 하고, 시설비가 많이 든다. 그래서 우리밀 내는 분들도 위탁이 많다. 자체 공장은 구례 한 곳뿐이다. 밀은 물에 불려서 껍질을 까야 하고, 몇 번씩 롤러에 넣어 으깨야 한다. 체로 쳐서 떨어지는 가루를 몇 번이고 다시 걸러야 사람이 쓰기 좋은 밀가루가 된다. 먹기에 적당하지 않은 외피 안쪽의 가루는 밀기울인데, 사료로 쓰거나 누룩 등으로 가공한다. 우리밀로 만들기 좋은 음식을 여쭈었다. 
 
“토장으로 맛내는 수제비도 좋고 칼국수도 맛있어. 야생버섯 절군(절인) 거에다가 호박 넣고. 호박을 넣으면 부드러운 국수가 서로 뭉치는 걸 막아줘요. 밀기울은 누룩 내면 좋지요. 술 빚어서 식초를 만들면 훌륭해요.”
 
밀은 이 지역에서 이모작이 되지만, 연속으로 지을 수는 없다. 밀은 워낙 지력을 많이 소모하기 때문이다. 한 해씩 걸러서 지어야 한다. 밀을 많이 생산하는 유럽에서 윤작법이 나온 것도 이런 까닭이다. 
 
“밀이 수월한 면은 있어요. 그래도 파종기나 수확기에 비가 오면 소출이 줄어요. 밭작물이니까 물기가 많으면 안 좋지요.”
 
익어가는 밀밭을 지켜보던 심상준 선생의 말씀이다. 다시 옥구평야에 바람이 분다. 멀리 바다에서 오는 해풍인 듯, 묵직하게 피부에 붙는다. 여름이 곧 오려는 것일까. 옥구평야에 푸른 건 대부분 보리 아니면 밀이다. ‘쌀은 지키고 보리는 더 먹고 밀은 살리자’는 말이 적어도 이 들판에서는 가능한 일로 보였다. 갑자기 허기가 몰려왔다. 스님의 수제비 한 그릇을 얼른 먹고 싶어졌다.                                                          
 
 
촬영협조. 우리농촌살리기공동네트워크 
www.woorinong.co.kr
 
 
박찬일
‘문학과지성사’가 운영하는 ‘로칸다 몽로夢路’의 헤드셰프이자 작가. 어머니 치맛자락 앞에서 콩나물과 마늘을 다듬으며 요리를 시작했다. 서울에서 몇몇 히트식당을 열었으며, 한국 식재료를 이용한 이탈리아 요리는 그가 최초이다. ‘글쓰는 요리사’로 『뜨거운 한 입』, 『백년식당』, 『추억의 절반은 맛이다』, 『지중해 태양의 요리사』, 『보통날의 파스타』 등 그만의 따뜻한 시선과 감성어린 문장이 돋보이는 책들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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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재 스님의 쫄깃쫄깃 속이 개운한 우리밀 단호박 수제비
 
재료
우리밀가루 4컵, 단호박 1/2통, 취나물100g, 표고버섯 3개, 다시마 2장, 말린 참죽나물 한 줌, 고추장 2큰 술, 된장 2큰 술, 물 10컵
 
만드는 법
1. 씨를 털어낸 단호박을 찜통에 푹 찐다.
2. 밀가루에 물 대신 단호박을 넣어 수제비 반죽을 한다.
3. 다시마, 표고버섯, 참죽나물을 넣어 국물을 낸다.
4. 건더기를 건진 채수에 된장, 고추장을 1대 1로 섞어 심심하게 간을 맞춘다.
5. 수제비를 얇게 떼어 넣고, 끓어오르면 취나물을 썰어 넣어 한소끔 끓인다.
 
Tip_
우리밀은 추운 겨울에 파종해 생장하므로 병충해가 없어 농약을 쓰지 않는다. 또한 수입밀에 비해 유통기간이 짧기 때문에 신선하다. 우리밀은 곡물 자체가 가진 건강성이 뛰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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