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참회 ! 나를 사랑하고 넘어가라 1. 보현행원품 참회분 / 광덕 스님
『화엄경』 「보현행원품」 ‘참회분’에는 “업장을 참회한다는 것은 보살이 스스로 생각하기를, 내가 과거 무시겁중에 탐진치로 인해 몸과 말과 뜻으로 지은 모든 악업이 한량없고 끝도 없으니, 만약 이런 악업이 모양이 있다면 허공도 그것을 담아내지 못할 것이다.”라며 참회의 한량없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 본래 마음이 자성청정하다는 것을 경전 곳곳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참회가 자기를 책망하는 죄책감이나 삶을 부정하는 것이 아닌, 우리의 밝고 청정한 본래의 성품을 온전히 드러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나아가 참회를 통해 나를 아끼고 사랑하며, 나조차 넘어갈 수 있도록 자비심을 높이고 중생의 이익을 위해 살게 됩니다. 원효 스님의 「대승육정참회문」은 우리 불자들에게 이러한 대승의 지혜와 자비심을 일으키게 합니다. |
업장이라는 것
업은 행위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행위라면 행위를 하는 본체의 작용이니 행위의 본체가 참 진리에 근거한 것이라면 그 행위는 마땅히 영화로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도 오늘날 업이라 하면 기피해야 하는 것이고 소멸해야 되며, 내지 업보니 업장이라 하여 우리의 생활을 가로막고 생명의 발전에 어두운 그림자로 여겨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업이라는 인간 행위가 참된 인간 본성, 즉 본원 진리에서 벗어난 착각된 자아를 본체로 하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본 자성을 잊고 자성을 어긴 행위는 그 모두가 업으로서 인간 본분과 어긋납니다.
인간 본분이 원래 무한하고 원래 일체와 더불어 조화되고 무한한 창조와 환희가 원래 거기에 있는 것인데 이러한 인간본성을 어기고 착각을 일으켜 그릇된 자아를 설정하는 데서 문제의 발단은 있는 것입니다. 본연 청정한 자성을 어긴 데서 나온 행위는 모두 업입니다. 이 업에서 나오는 것은 유한이며 변멸이며 대립이며 부조화며 불행과 불안을 우리에게 안겨 줍니다.
그러므로 업의 본질을 형성하는 행위 자체는 실로 허물될 것이 없으며 그 행위의 뿌리의 뿌리를 살펴보면 청정 자성의 반영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업을 기피하고 두려워해 행위를 멈추거나 활동을 회피하는 것은 진리에 어긋나는 것이며 업에서 벗어나는 도리가 아닙니다. 활동이나 행위에 허물이 있는 것이 아니라 착각된 자아를 본체로 삼고 있는 그릇된 지견이 허물입니다. 그러므로 지견을 바르게 가지고 왕성한 행동으로 바른 지견을 나타내는 것이 업을 정화하는 것이며 해탈을 성취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청정 자성을 미혹해 망령된 마음으로 망령된 자기를 세우고 망령된 지견을 일으키는 생각이나 행동은 이것이 업이 되어 인간을 구속하고 어리석게 만들어 고난과 불행을 가져옵니다. 먼지는 파헤칠수록 크게 일어나고 먹물은 풀수록 더욱 짙어지는 것처럼 중생들의 왕성한 행동은 어차피 왕성하게 업의 굴레를 장만하는 것으로 귀착됩니다.
『지장경』에 이르기를 “중생이 자욱자욱 죄를 짓는다.”라고 한 것도 이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업장이라는 것이 우리의 본분을 구속하고 우리의 활달하고 넉넉한 복을 제한하는 것이므로 업은 바로 죄와 상통하는 것이니 업이 소멸될 때 죄가 소멸되고 죄가 소멸될 때 복이 생기는 것입니다.
| 죄란 무엇인가
망령된 자아를 집착하면 인간이 본래 갖추고 있는 덕성이 올바로 발휘되지 못해 자비심도 지혜도 어두워지고 가리워져서 비뚤어지게 나타납니다. 자성이 병든 그릇된 상태에서 나오는 중생심이 이른바 삼독三毒이니 탐심貪心·진심瞋心·치심癡心입니다. 이 삼독심이 마음의 주인이 되어 그의 생각과 말과 행동으로 튀어 나옵니다. 이래서 삼업이 형성되는 것입니다.
자성을 잃은 삼독심의 파동으로 나타나는 행동은 그 모두가 죄행입니다. 몸으로 범하고 말로 범하고 생각으로 범합니다. 무한한 지혜와 자비가 가득하고 일체 법·일체 중생·일체 진리가 자기와 더불어 동일한 진리임을 어기는 행들이 나오는 것이니 그 모두는 바로 죄입니다. 몸으로 범하는 죄로는 대표적인 것이 살생殺生·투도偸盜·사음邪婬이고, 입으로 범하는 죄의 대표적인 것은 기어綺語·망어妄語·양설兩舌·악구惡口이며, 뜻으로 범하는 죄의 대표적인 것은 탐심·진심·치심이니 이래서 신·구·의 삼업에서 십악을 짓게 됩니다.
도대체 죄란 무엇일까요? 그것은 자성 진리를 어긴 상태입니다. 원만 청정한 자성을 외면한 상태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밝음을 등지고 어둠을 붙잡고 있는 상태이며, 참으로 큰 자기 본신本身을 잊고 허망한 그림자의 한 부분을 집착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이와 같이 죄는 자성을 외면하고 진리를 등진 상태이므로 그 죄를 소멸시키는 방법은 바로 자성으로 돌아오고 진리 앞에 돌아서는 것입니다. 죄는 어둠이요, 자성 진리는 태양 같은 밝음입니다. 태양 앞에 어둠을 드러내고 어두운 곳에 밝은 빛을 비추는 것이 어둠을 없애는 방법이듯 역시 죄도 자성 진리 앞에 순순히 그 모두를 드러내는 데서 소멸됩니다. 만약 자기의 허물을 스스로 붙들고 어두운 상태를 고집하며 진리 앞에 돌아서 뉘우칠 줄 모른다면 죄는 피할 수 없고 죄의 대가도 피할 수 없습니다.
| 참회는 무엇인가
어둠에 밝은 빛을 비추면 어둠이 사라지듯이 아무리 무거운 죄도 참회하면 소멸됩니다. 만약 죄업을 소멸시키지 아니하면 언제나 가슴속에 어둠을 안고 있는 사람처럼 그의 마음은 어리석고 불안하고 고통스러우며, 그의 몸과 그의 생활환경에는 부조화와 불행과 액난을 몰아옵니다.
죄의 대가는 무지며 불행이며 죽음입니다. 그러므로 중생은 모름지기 참회하여 죄를 소멸시키고 가슴속 가득 진리 광명과 은혜로운 복덕을 담아야 합니다.
죄는 자기가 아는 것도 있고 모르는 것도 있습니다. 또 죄인 줄 모르고 범한 것도 있으며 알고 범한 것도 있습니다. 기억에 있는 것, 기억에 없는 것, 금생의 죄, 머나먼 과거생에 지은 죄 등등 가지가지입니다. 만약 자기 생각에서 기억에 있는 것만을 헤아려 허물로 인정하고 그 밖에 많은 죄가 있는 것을 참회할 줄 모른다면 그 역시 눈을 가리고 밝음이 오기를 기다리는 자입니다.
참회하는 방법에는 고래로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사참事懺과 이참理懺입니다.
사참이란 자기가 지은 허물 하나하나를 드러내어 자기의 잘못을 뉘우치고 다시는 범하지 않을 것을 다짐하는 것이고, 이참은 죄를 지은 자와 죄의 근본을 비추어 보아 죄의 죄상이 끊겼고, 죄를 진 업이 공한 것을 알아서 자성이 청정한 것을 요달해 한 점의 허물도 보지 않는 것입니다.
보현행원의 참회는 어떠한가? 경에서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무량한 과거세부터 오늘날에 이르는 동안에 한량없는 죄를 지은 것을 진정으로 깨끗이 인정합니다. 터럭끝만큼이라도 덮어 두거나 회피하거나 변명하거나 숨기지 않습니다. 끝없는 허공으로도 용납할 수 없는 죄를 지었다고 가슴 깊이 지은 죄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둘째, 일체 불보살님 전에 지성으로 참회합니다. 불보살님은 처처에 계십니다. 미진수 세계에 항상 계십니다. 법당에서만 참회하면 스님이나 스승님 앞에서 참회한 것에 그치는 것입니다. 어느 곳에서나 부처님 앞에 있는 것을 생각하고 경건하고 지성을 기울여 참회합니다. 그리고 그 참회는 청정해야 합니다. 허물을 지으면서 행하는 참회란 있을 수 없습니다. 그것은 참회가 아닙니다. 청정한 삼업三業으로 일체 허물을 멀리 여의고 일체 망견에서 벗어나 진실한 청정 자성 그대로를 신·구·의 삼업에 확충시키고 이 청정한 행과 말과 마음을 가지고 지성 참회하는 것입니다. 이 참회에서 과거세에 지은 모든 죄가 즉시에 소멸되는 것입니다.
셋째는, 다시는 악업을 짓지 아니하고 영원토록 청정 공덕을 행할 것을 맹세하며 실천하는 것입니다. 이 청정 공덕의 실천이 죄의 뿌리를 근본적으로 소탕하고, 과거·현재·미래로 무궁한 여래 공덕을 충만시키는 결정적인 관건이 됩니다. 만약 아무리 자기의 허물을 참회하며 뼈를 깎고 피눈물 흘리며 참회하였더라도 스스로 청정한 삼업이 아니면 참회와 함께 새로운 죄를 짓는 것이 되어, 설사 지성으로 불보살전에 참회하였다 하더라도 청정 공덕으로 생활하지 아니하면 참회가 이루어질 수 없는 것입니다. 육조 혜능 조사는 “과거에 지은 죄를 참회하고 미래의 죄도 참회해야 한다.”고 하셨으니 깊이 명념할 일입니다.
| 참회한 자의 마음
앞서 말한 바와 같이 햇빛 앞에 사라지지 않는 어둠이 없듯이 참회해서 없어지지 않는 죄업은 없습니다. 참회하면 즉시에 청정이 회복됩니다. 만약 어떤 경건한 보살이 있어 스스로 생각하기를, ‘이 정도의 참회로써 내가 지은 중죄가 다 소멸될 수는 없다.’ 하고 스스로 아직도 마음속에 죄가 남아 있다고 생각한다면 이것은 미혹이요, 그 미혹과 함께 죄는 뿌리를 내리게 됩니다.
진실한 참회 앞에 허물어지지 않는 죄는 결코 없습니다. 참회하였으면 마땅히 일체 죄업이 소멸된 것을 깊이 믿고 스스로 청정 광명심을 가득히 지켜가야 할 것입니다. 청정 광명행을 끊임없이 행해야 할 것입니다.
원래 불행을 몰고 오는 원형은 삼독심을 근간으로 하는 죄업에 있지만 또한 자기 처벌의식이 그 중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경건하고 성실한 신앙인 가운데서 볼 수 있는 일이지만 ‘나는 죄가 많다. 고통을 받아도 당연하다.’ 하며 스스로 죄와 죄의 대가를 마음속에 붙들고 있다면 그런 미혹된 생각 밑에 반드시 불행과 고난은 졸졸 따라붙는 것입니다.
반야안般若眼으로 볼 때 실로 있는 것은 광명과 청정과 원만한 공덕뿐입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참회하여 자신의 마음을 맑히고 행을 바르게 하며 우리의 생명에는 불보살의 공덕이 태양처럼 빛나고 있는 것을 믿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자성 공덕의 원만함을 깊이 긍정하고 감사와 환희로 용감히 광명행을 전개해야 할 것입니다.
| 최상의 자기 정화법
한번 지어먹은 마음이 흔들릴 때도 있고, 마음 깊이 맹세한 다짐을 잊을 때도 있는 것이 범부입니다. 우리가 스스로 자성 공덕을 어겨 마음속이 어둡고 거칠어지는 이런 때는 끊임없이 불보살님 앞에 참회하여 끊임없는 청정 자성의 공덕수가 우리 생명, 우리 가슴에 넘쳐나도록 힘써야 합니다. 그러므로 실제에 있어서 참회는 한 번에 끝날 수가 없습니다. 끊임없이 반성하며 자기 마음에 움직이고 있는 허물을 살피고 행과 말로 범하고 있는 진리에 어긋난 모든 행을 철저히 뉘우쳐서 참회해야 합니다.
앞서 인간 불행은 죄업에서 온다고 말했습니다. 우리 생활 주변에 불행이 오고 고난이 닥쳐오면 스스로 마음을 돌이켜 그 원인이 자기 자신에 있는 것을 착안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끊임없는 수행으로 얻어진 밝은 지혜로 자신을 비추어서 자신의 마음속 깊숙이 도사리고 있는 나쁜 생각이나 무의식중에 행하고 있는 나쁜 행이나 소극적·부정적·비판적 요소들을 모조리 드러내어 진리 광명이신 불보살님 앞에 폭로시켜야 합니다.
이와 같이 지혜롭고 경건하고 용감하게 참회하는 데서 자신의 생명에는 일체 죄업이 소탕되고 여래의 청정 공덕이 넘쳐나는 것입니다. 만약 성실하고 지혜롭고 절실하게 참회를 행하지 않는다면 마음에 도사린 죄업은 무너지지 않습니다. 모름지기 참회는 진실해야 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본성이 여래와 더불어 하나인 진여법성임을 깨달아 항상 청정 광명이 넘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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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법문은 광덕 스님 『보현행원품』(불광출판사)에서 옮겨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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