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아함경』에 이런 말씀이 있다. “동산에 과일나무를 심어라. 나무에는 그늘이 많고 시원해서 여러 사람들이 쉬어갈 수 있다. 다리를 놓거나 배를 만들어서 강을 건너가게 하고, 배고픈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나누어라. 이런 것은 복을 짓는 좋은 일이다. 이렇게 하면 그 공덕은 밤낮으로 자라고 재산도 늘어날 것이다.” 이 가르침은 보시에 관한 것이다. 보시의 내용이 세세한 세목들이고, 지금의 시대에는 그리 대단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다른 사람의 이익을 위해 내가 직접 나서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다는 데에 그 의미가 있다. 내가 나선다는 것은 내 것의 일부를 내놓는다는 뜻이다. 언뜻 생각하기에 내 것의 일부를 내놓는 것이 대수롭지 않아 보이지만, 보시의 습관이 없는 사람에게는 하기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 이것은 마치 어떤 물건이 있다고 할 때, 그것을 옮기는 이가 체감하는 육체의 피로도가 각각의 사람들에게 달리 느껴지는 것과 같다. 매일매일 근육을 단련한 덕에 힘이 아주 좋은 역사力士에게는 식은 죽 먹는 것과 마찬가지로 쉬운 일일 것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는 한 장의 벽돌도 산山처럼 느껴질 것이기 때문이다.
경전에서는 보시를 행해야 한다는 당위뿐만 아니라 보시를 하는 이의 마음가짐에 대해서도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 가령 배가 주린 사람에게 먹을 것을 나누어주라고 말씀하면서도 이렇게 우리들을 설득한다. 만약 우리가 가난한 중생을 만나지 못했다면 자비의 마음이 생겨날 기회가 없었을 것이고, 자비의 마음이 생겨나지 않았다면 보시를 할 마음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이다. 먹을 것과 수레, 옷, 침구, 등불 등을 보시할 기회조차 없게 된다는 것이다. 이 말씀인즉 보시를 행하게 하는 그 인연에 감사한 마음을 앞서 가지라는 것이다. 동시에 보시를 하면서 상相에 집착함이 없도록 하라는 것이다.
경전에 등장하는 보시의 내용은 매우 다양하다. 그리고 그 보시의 내용에 따라 과보도 달라진다고 설하고 있다. 경전의 가르침을 보시하면 큰 지혜를 과보로 받게 되고, 환자를 위해 약을 보시하면 편안함을 얻어 공포를 떠나게 되고, 등불을 보시하면 눈이 맑아지고, 음악을 보시하면 음성이 아름다워지고, 침구를 보시하면 즐겁게 자게 되고, 하인을 보시하면 호위를 받게 되고, 밭을 보시하면 창고가 가득해진다고 설하고 있다. 요즘엔 연탄과 김치를 나누는 사람들이 많고, 자신의 재능을 대가나 보수 없이 나누는 사람들이 많고, 생명을 나누는 사람들이 많다. 또한 자신이 하는 생업으로부터 얻은 수확을 보시물로 내놓는 경우도 많다. 농사를 짓는 사람이 쌀과 고구마를 기탁하고, 양계업을 하는 사람이 계란을 기탁하는 경우들이다.
내 기억에 남은, 내가 목격한 최초의 보시는 나의 어머니께서 하셨던 보시였다. 시골의 가난한 집이어서 매일의 끼니를 흰 쌀밥으로 차릴 수 없는 형편이었지만 가난한 사람이 도움을 얻으러 오면 어머니는 주저하지 않으시고 집에 있던 먹을 것의 일부를 덜어내어 건네주셨다. 쌀독에서 쌀을 퍼내 주거나, 논밭에서 수확한 것의 일부를 나눠주셨다. 탁발을 하러 오신 스님들께는 각별히 특별하게 하셨다. 덜어내서 주시되 가장 깨끗한 것으로 골라서 주셨다. 심지어 구걸하러 온 사람에게 늦은 점심 밥상을 차려 주신 적도 있었다. 어머니께서 그렇게 베풀어주시면 그것을 얻은 사람은 우리 집의 대문을 나서면서 몸을 여러 번 크게 굽혀 감사의 마음을 전해왔다.
물론 우리도 다른 사람들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다.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일할 기회를 주었고, 돈을 빌려주었으며, 마늘과 밤과 호두와 콩을 나눠주었고, 큰어머니는 쌀독에 쌀을 몰래 부어놓고 가셨다. 어머니는 그 일들을 모두 기억하고 계셨고, 조금이라도 형편이 나아지면 얻은 것의 일부를 갚으려고 하셨다.
재물이 많이 모였을 때에 보시를 시작하겠다거나 혹은 재물이 많이 모였을 때 한꺼번에 보시하겠다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이것은 대개 보시를 회피하려는 핑계에 불과하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백유경』의 말씀을 들려주고 싶다. “재물을 크게 모으기도 전에 수화水火나 도둑에게 뺏긴다든가, 또는 그런 화를 면한대도 문득 죽게 되어서 보시할 겨를이 없어지든가 하고 만다. 이런 사람이란 우유를 한꺼번에 짜서 손님을 접대하려다가 오래 우유를 안 짠 탓으로 암소의 젖이 말라붙어 한 방울도 나오지 않게 되는 사람과 같다.” 나누고 베푸는 일은 나를 먼저 즐겁게 하는 일이다. 나 스스로에게 이익이 생기는 일이다.
문태준
1994년 『문예중앙』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수런거리는 뒤란』, 『맨발』, 『가재미』, 『그늘의 발달』, 『먼 곳』, 『우리들의 마지막 얼굴』 등이 있다. 미당문학상, 소월시문학상, 노작문학상, 유심작품상, 동서문학상, 서정시학작품상 등을 수상했다. 현재 불교방송 PD로 재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