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의 단상] 잠재된 감성을 깨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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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의 단상] 잠재된 감성을 깨워라 
  • 문태준
  • 승인 2015.10.08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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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은 오관五官을 통해 세계를 감각하는 능력이다. 오관은 눈, 코, 귀, 혀, 피부를 말한다. 그러므로 감각 기관을 바깥을 향해 활짝 열 때 감성은 활발하게 작동하고, 감성을 통해 얻게 되는 내용물도 많아지게 된다. 이리저리 감성과 관련된 책을 찾아보니 그 수를 헤아리기도 어려울 지경으로 많다. 감성을 주목하는 시대라는 의미일 것이다. 특히 많은 기업들이 고객들을 잡기 위해 감성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는 사실에 공감이 되었다. 감성 마케팅의 내용을 살펴보니 이런 것들이 포함되어 있다. 감성 마케팅의 중심은 사람이고, 그 가운데 젊은 여성 고객을 공략해야 하고, 아침 시간대를 중요하게 보아야 하고, 매장의 경우에는 음악이 흐르게 하고, 그 매장을 만남의 공간이 되게 하고, 매장에는 늘 좋은 향이 나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하석 시인의 시집 「연애 間」에 실린 ‘시인의 말’을 읽었을 때 이것이야말로 감성을 얻는 방법을 이르고 있구나, 라고 생각했다. “서서 흐르는 시간을 냇물 밑에 웅크린 까만 돌처럼 느끼면서.”라고 시인은 썼다. 냇물이 흐르고 그 냇물 속에 물돌이 하나 있다. 냇물이 흐르는데 그 냇물은 물돌의 입장에서 보면 서서 흐르는 것만 같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 흐름은 시간의 경과를 뜻하는 것이었겠다. 시간이 흘러감을 온몸으로 느끼는 “냇물 밑에 웅크린 까만 돌처럼” 우리도 이 우주의 냇물 아래 웅크린 하나의 까만 돌이다. 냇물의 흐름은 우주 생명 세계의 모든 변화, 우주 생명 세계의 생겨남과 자라남과 사라짐을 말하는 것이겠다. 우리의 처지가 이러함을 알 때 감성은 움직이지 않으려고 해도 움직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감성도 상상력과 마찬가지로 ‘보통의 조건’에서 벗어날 때 풍성해진다고 생각한다. ‘보통의 조건’이라 함은 분별하고, 등수를 정하고, 지금의 때에 여지가 없고, 다가올 시간에 대해 극히 확률적으로 예측하고, 과정보다는 결과를 중시하고, 디지털시계처럼 감정을 사용하고, 극도로 각박한 것 등을 의미한다. 이런 상태에서는 잠재된 감성이 깨어나지 않는다. 잠이 든, 거대한 거인 같은 감성을 깨울 수 없다.

고은 시인은 시 ‘낯선 곳’에서 이렇게 노래한다.

“떠나라
 낯선 곳으로

 아메리카가 아니라
 인도네시아가 아니라
 그대 하루하루의 반복으로부터

 단 한 번도 용서할 수 없는 습관으로부터
 그대 떠나라”

이 시에서 말하는 ‘반복’의 의미는 무엇일까. 반복적인 것은 그 동기와 의미가 뚜렷하게 두드러지지 않는다. 성의 없이 대충 겉으로 하는 것이다. 사정을 예단하는 것이다. 그 속을 열어보지 않는 것이다. 열어보더라도 눈길을 오래 주지 않고 바로 덮어버리는 것이다. 혹은 엑스레이처럼 보는 것이다. 윤곽과 구조만을 살펴 비정상적인 것만을 분간하는 것이다. 실로 반복적인 것은 고집스럽고 게으르고 매정한 것이다.

그렇다면 감성은 어떻게 살려낼 수 있을까. 우선은 우리의 내면이 ‘무언가 자라나는 곳’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자라난다는 것은 움직인다는 의미이다. 구름떼처럼 눈보라처럼 복잡하게 불규칙하게 생겨나고 사방으로 밀리면서 옮겨간다는 것이다. 이러고 보면 우리의 내면은 하나의 화분이라고 말해도 좋겠고, 하나의 어장漁場이라고 말해도 좋겠고, 언제 분화할 줄 모르는 하나의 화산이라고 말해도 좋겠다.

다만 이러한 우리의 내면이 바깥의 세상을 만날 때에는, 접촉할 때에는 보다 유심한 상태여야 한다. 바깥의 세상과 만날 때에 생겨나는 우리 내면의 속뜻을 주의 깊게 읽어내야 한다. 속뜻을 읽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일단은 내 생각을 낮춰야 한다. 그리고 바깥의 세상과의 만남과 접촉을 내가 일방적으로 결정해 종료하지 않고 그 끝을 가만히 기다려야 한다. 이러할 때 우리의 내면은 우리 내면 그 스스로의 여린 떨림을 느끼게 되고 이내 감격하게 된다.

박희진 시인은 시 ‘시의 행간에는’에서 이렇게 썼다. “시의 행과 행 사이에는 침묵이 있어요// 몽골의 초원보다 더 광활한 공간이 있어요// 당신과 나 사이에는 침묵이 있어요// 그래서 들려요 별보다 더 빛나는 말들이”라고 썼다. 비록 우리가 침묵하고 있더라도 우리의 내면에는 광활한 감성의 초원이, 별처럼 빛나는 감성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을 오관을 통해 느껴보자.

 

 

문태준

1994년 『문예중앙』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수런거리는 뒤란』, 『맨발』, 『가재미』, 『그늘의 발달』, 『먼 곳』, 『우리들의 마지막 얼굴』 등이 있다. 미당문학상, 소월시문학상, 노작문학상, 유심작품상, 동서문학상, 서정시학작품상 등을 수상했다. 현재 불교방송 PD로 재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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