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지금, 다시 선정바라밀 | 선정의 본래 정신
선禪, 드야나Dhyana란 사유수 즉 ‘고요히 생각하여 닦는다.’라는 의미로 무언가 대상을 정하여 마음이 흔들리지 않게 집중하고 마침내 그 본질을 꿰뚫어 내어 통찰의 지혜를 얻고자 하는 불교의 여러 가지 수행법 가운데 하나입니다. 주로 좌선을 하는 스님들을 가리켜 수좌 혹은 선승 선객이라고 표현하는 것도 일정 기간을 정하고 한정된 주거 공간이나 선원 등에 머무르며 집중하여 선 수행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불교에서 선을 수행한다는 것은 지계와 선정과 지혜라고 하는 세 가지 배움의 하나입니다. 흔히 계율은 그릇에 비유를 하고, 선정은 그릇에 담긴 물에 비유를 하며, 지혜는 물이 맑아지면서 비쳐지는 것마다 있는 그대로의 본질이 투영됨을 말합니다. 그래서 선정 수행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한다 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옛 선사들은 새의 양 날개에 비유하여 선정과 지혜를 이야기 하고, 수레의 두 바퀴에 비유하여 깊은 선정을 통하여 지혜의 증득을 말하는 것입니다.
| 두 스님의 선정 이야기
어느 스님이 수상관을 하시면서 깊은 선정에 들었다 나오시기를 반복합니다. 한번 선정에 드시면 며칠 동안을 방에서 나오시지 않고 정진을 하시니 시봉하던 어린 상좌가 스님이 무엇을 하시는지 궁금하여 안을 들여다봅니다. 그러자 방에는 스님은 안 보이고 푸른 물만 가득하게 차 있습니다. 상좌는 아직까지 수행의 깊이를 가늠하지 못할 만큼 어린 사람이었기에 깜짝 놀라서 다시 한 번 살펴봐도 여전히 방안에는 스님이 안 계시고 만경창파 같은 물만 보입니다.
스님이 걱정되기도 하였지만 방안에 물만 보이는 것이 신기했던 상좌는 정말로 물이 맞는지 손을 담가 보는데도 손에 물기가 묻습니다. 이번에는 작은 돌멩이를 주워서 물속에 퐁당 하고 빠뜨려 보니 돌멩이는 정말로 물 속 깊이 가라앉습니다. 다시 꺼내볼까 하다가 상좌는 두려운 생각이 들어서 그냥 문을 닫았습니다.
다음날 스님은 선정삼매에서 나오십니다. 선정삼매에서 나오시면 언제나 자상하게 어린 상좌를 챙겨주시던 스님은 웬일인지 상좌를 찾지도 않고 방에만 계시면서 괴로운 모습이 역력합니다. 상좌는 스님이 걱정이 되어서 “스님 어디 몸이 안 좋으신가요?”하고 여쭈니 스님은 그제야 “그래, 내가 정진을 마치고 나온 이후로는 전에 없이 몸 한구석이 몹시 아픈 것이 감당하기 힘들만큼 아프구나.” 하십니다.
상좌는 자신이 했던 일이 떠올라 “스님 어디가 어떻게 아프신지요? 혹시라도 제가 무언가 잘못을 하여서 그런 것은 아닌지요?” 하고는 스님이 선정에 드셔 계시던 때 자기가 한 일을 말씀드리니 스님은 고개를 끄덕이시며 “아하, 아마도 그런 일이 있어서 그런가 보다. 내가 다시 수상관을 시작하여 선정삼매에 들게 되면 그때 너는 물속에 있는 돌멩이를 꺼내 보려무나.” 하고는 꾸중을 하기보다 문제의 원인을 찾았다는 즐거움으로 얼굴이 밝아집니다. 어린 상좌는 스님이 시키신 대로 물속에서 돌멩이를 꺼내고 나서야 스님의 통증은 씻은 듯이 사라졌다고 합니다. 이처럼 선정에 들게 되면, 일심이 되고, 선정삼매가 깊어지면 상대와 내가 둘이 아닌 하나가 되어서 물아일체의 경지를 이루게 되니 그때는 생각 생각이 바로 바라밀의 현현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또 이런 이야기도 전해옵니다. 어느 스님은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 화두를 가지고 정진하는데 한밤중에 그 스님의 방에서 빛이 발하고 있었습니다. 이를 이상히 여겨 대중들이 방안을 들여다보니 스님은 간 곳 없고, 둘레와 높이를 잴 수 없는 커다란 잣나무 한 그루가 하늘을 향해 치솟아 있더라는 겁니다. 그처럼 불자가 부처님을 생각하면 부처님이 그대로 구현되는 것이고, 법을 생각하면 법이 그대로 응하여 나투게 되는 것이 선정삼매의 묘리일진대 그것이 되고 안 되고의 차이는 일심을 이루느냐 이루지 못하느냐에 있을 따름입니다. 마음이 산란하여 경계를 따라 분별하는 마음이 일어나면 마치 물결치는 바다위에서는 물길 속을 있는 그대로 들여다보지 못하다가, 물결이 자고 잔잔해진 후에 바다 속 정경이 유리알 들여다보듯 투명하고 맑아지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들 마음이 그 어떤 경우에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고 일념이 되어 한결같음을 유지하고 살아가며, 여여부동如如不動한 마음이 이루어지고, 그 마음이 곧 깨달음 즉 반야바라밀로 이어집니다.
| 이기지도 지지도 않는 방법
비슷한 이야기로 중국에 기성자紀渻子라는 싸움닭을 훈련하는 사람이 있었답니다.
선이라는 황제가 자기가 가진 닭을 최고의 싸움닭으로 만들고자 기성자에게 닭을 맡깁니다. 열흘이 지나자 선왕은 “닭싸움에 내보낼 수 있겠느냐?”며 기성자에게 물으니 기성자는 “닭이 강하긴 하나 교만하여 자신이 최고인 줄 안다며 아직 멀었다.”고 합니다. 열흘이 또 지나자 왕은 “이제, 그 닭을 싸움판에 내보낼 수 있겠느냐?”며 묻자, 기성자는 “교만함은 버렸으나 상대방의 소리와 행동에 너무 쉽게 반응하기 때문에 인내심과 평정심을 길러야 할 것 같다.”고 답합니다. 다시 열흘이 지난 뒤 왕은 “이제, 싸움에 내보낼 수 있느냐?”고 물으니 기성자는 “조급함은 버렸으나 눈초리가 너무 공격적으로 매서워서 눈을 보면 닭의 감정 상태가 다 보인다.”며 “아직은 힘들다.”고 말합니다. 싸움닭 조련을 맡은 지 40일이 지나자 기성자는 왕을 찾아와서 “이제 다 된 것 같다.”며 “상대방이 아무리 소리를 지르고 위협해도 일체 반응하지 않고 완전히 편안함과 평정심을 유지하고 있다.”고 보고합니다. 그는 이어 마치 나무로 만든 닭(木鷄)과도 같아져서 어떤 닭이라도 바라보기만 하면 도망칠 것이라 말했다고 합니다.
이처럼 호승심好勝心을 갖고 있게 되면 반드시 지고 마는 결과를 얻게 되지만, 이미 싸워서 이기거나 상대를 제압하겠다는 생각 등을 없애 버린 이에게는 마치 태산을 앞에 둔 것과도 같고 망망한 대양을 보는 것과 같아 어찌해 보려는 생각도 내기 어려운 것입니다. 이것이 싸우지 않고 이기지도 지지도 않는 방법이니, 그런 마음을 지니게 되면 선정심이 깊어져서 부동심에 이르렀다 할 것입니다.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의 삶은 마치 떠있는 부유물들과 같은 상태로 이리 흔들리고 저리 흔들리며 갈피를 못 잡고 있는 부평초 같다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 보니 무엇이 옳고 그른 것인지 분간하는 지혜마저 없어져서, 부딪히는 것마다 장애를 일으키고, 생각하는 것마다 망상에 그치니, 진정한 행복과 삶의 목적을 잃어버리고 사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세상에는 마음의 안정을 도모하고 행복에 이르는 길을 제시하는 종교나 가르침들이 넘쳐나지만, 지금의 우리들로서는 어떤 것이 최선의 방법인지조차 가려낼 수 있는 능력이나 지혜가 부족한 때입니다. 그러한 때 불자라면 삼천여 년을 두고 이어져 내려온 부처님과 역대전등 스님들의 가르침을 근본으로 삼아서 한결 같은 정진과 선정을 익히는 공부를 계속해야 할 것입니다.
세월호 참사 1주기가 지나갑니다. 희생자 유가족들은 물론 온 국민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지금까지도 치유되지 못한 채 현재진행형으로 참사 1주기를 맞이합니다. 그와 같은 사고를 만났을 때 승무원 가운데 단 한 사람이라도 제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그 상황에서 무엇을 먼저 할 것인가에 대한 메뉴얼만 올바로 숙지하여 당황하지 않고 안내하고 인도하였다면, 이 같은 대형 참사는 없었을 것인데 하는 안타까움이 두고두고 우리들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불교는 신수봉행信受奉行하는 것이 최상의 길인 까닭에 받들어 실천하는 삶이 소중한 것입니다. 내 마음을 열어서 남을 먼저 배려하는 보시바라밀이나 개인이나 단체가 지켜야 할 규율을 이르는 지계바라밀 내지는 인욕과 정진, 선정바라밀 등 이 모두가 하나의 사이클을 이루고 상호 유기적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우리 불자들은 이를 일상생활 속에서 지행합일로 실천 수행할 때 반야바라밀이 완성된다는 것을 잘 알아야 할 것입니다. 마하반야바라밀.
해월 스님
공주 원효사 주지. 원광대 한의학과를 졸업하고, 불광한의원을 운영하며 많은 이들에게 의료 혜택을 주었다. 대천 스님 문하로 입산, 송광사 천자암 활안 스님을 은사로 득도하였다. 어린이법회, 학생회, 대불련, 청년회, 거사림회, 공주불자연합회, 국립공주병원 법회 지도법사로서 포교 일선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원효사(http://cafe.daum.net/rhdwndnjsgytk)’를 운영하며 인터넷을 통해 불음을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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