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광사 마하반야바라밀 철야정진법회
화려한 금요일이다. 토요일은 오롯하게 쉴 수 있는 날이기에, 금요일 저녁은 지난 일주일간 속으로 쌓아놓았던 온갖 스트레스를 마음껏 풀어내는 날이다. 그래서 금요일 밤은 화려하다. 항간에는 금요일 밤을 일컬어 ‘불금(불타는 금요일)’이라고도 부른다. 여기, 금요일 밤을 화려하게 불태우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음주가무로 해방구를 찾는 것이 아닌, 수행으로 금요일 밤을 하얗게 불태운다. 밤이 깊도록 그들은 “반야바라밀”을 되뇌며, 그렇게 깨달음의 장을 실천에 옮긴다.
| 38년이 넘도록 이어지는 철야정진 전통
해가 저물면서 바깥 세상은 이미 휘황찬란한 네온사인으로 물들었다. 반면 불광사 지하 4층 보광당은 바깥세상과 상당히 대조적이다. 고요함 가운데 모두가 하나가 되어 입을 맞춰 천수경을 읽는다. 정중동의 세계. 이 공간 밖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적당히 무거운, 그리고 진지한 그 기운에 좌복 한 가운데로 머리를 조아려 삼배를 올리게 된다.
이날은 불광사에서 한 달에 한 번 철야정진을 하는 날이다. 제463차 철야정진. 한 달에 한 번 진행하는 철야정진이니, 1년 12달로 계산하면 38년이 넘도록 이어오는 수행 전통이다. 이토록 오랫동안 주기적으로 이어지고 있는 수행의 전통은 매우 드물다. 불광법회가 신행생활의 모범으로 손꼽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오후 9시부터 보광당 한 가운데를 가득 메운 100여 명의 사람들은 삼귀의, 예불, 반야심경을 차례로 진행했다. 집전은 스님이 하지 않는다. 모두 불광법회 회원인 재가불자들이 2인 1조를 이뤄서 진행한다. 목탁을 치고, 염불을 끌어가는 힘이 모두 재가불자들에게서 나온다. 정진현장에 함께하고 있는 스님들은 증명법사일 뿐이다. 이런 모습은 다른 절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목탁집전에 맞춰 소리가 소리의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이어 천수경을 읽고 신묘장구대다라니 독송이 시작됐다. 100여 명의 입이 하나의 소리를 내어 신심을 불러일으키는 장관이다.
경전 독송을 듣고 있자니 또 한 가지 독특한 점을 발견하게 된다. 반야심경부터 천수경, 금강경 등이 모두 한글로 풀어져 있다. 불광사가 자랑하는 또 다른 전통이다. 철야정진에 참여한 불자들은 자연스레 독송을 하며 경전이 말하고자 하는 핵심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철야정진이 시작된 지 채 두 시간이 지나기도 전에 불광법회가 40년 이상을 이어올 수 있었던 비결을 깨닫게 된다.
일련의 경전 독송이 끝나면, 청법가가 울린다. 스승에게 법문을 청하는 노래. 오늘 법상에 오를 법사는 없다. 대신 불광사를 이끌었던 광덕 스님의 육성법문이 대중들에게로 흐른다.
| 우리는 그대로 눈부시게 타오르는 빛이니
“내 생명은 부처님 무량공덕 생명입니다. 무한한 힘이 있고, 태양보다 더 밝은 빛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반야바라밀은 원초적인 부처님의 세계입니다. 모두가 자성의 본분활동이며, 반야대행입니다. 반야바라밀은 행하는 것입니다. 만약 반야바라밀을 지송함에 있어 한 생각이라도 있다면, 이는 반야가 아닙니다. 반야바라밀의 공성空性을 통달하고 반야바라밀 염송을 일심으로 해야 합니다. 미움과 원망과 세상에 대한 저주스러운 생각을 모두 비우고, 부처님의 무한공덕과 위신력과 은혜가 내 생명과 내 가족과 내 환경에 지금 와 있다는 것을 긍정하고 일심 기도하면서 감사드리는 것입니다.”
20여 분 남짓한 짧은 법문이지만, 광덕 스님은 육성법문을 통해 반야바라밀에 대한 개념과 정진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설명하고 있었다. 스님의 육신은 이미 이 세계를 떠났지만, 스님의 육성은 남아 불광사의 수행자들이 가행정진을 이어갈 수 있는 이정표가 되고 있다. 스님의 법문이 끝나자 이번에는 금강경 독송이 시작된다. 한 시간 동안 이어지는 독송의 시간, 목탁소리가 조금은 어설퍼도 터져나오는 독송의 소리는 여전히 우렁차다.
간단한 죽공양과 함께 40분 남짓 휴식을 취했다. 다시 정진이 이어진다. 새벽을 여는 첫 순서는 ‘법등일송’이다.
생명은 밝은 데서 성장한다.
인간은 밝은 사상에서 발전이 있다.
우리의 본면목이 원래로 밝은 생명이기에.
어둠을 찢고 솟아오르는
찬란한 아침 해를 보라.
거침없는 시원스러움이,
넘쳐나는 활기가, 모두를 밝히고,
키우고, 따뜻이 감싸주는
너그러움이 거기 있다.
이 한 해를 결코 성내지 않고,
우울하지 않고, 머뭇대지 않고,
밝게 웃으며, 희망을 향하여
억척스럽게 내어딛는
슬기로운 삶으로 만들자.
빛을 향하는 곳에 행운이 있다.
성공이 온다.
‘법등일송’은 어떤 마음으로 내 삶을 만들어가야 하는지를 깨닫게 해주는 문구들이다. 기본적으로 내 생명이 곧 부처님 생명이요, 우리는 이미 스스로 태양보다 밝게 타오르는 빛과 같다는 존재론에 근거하고 있다. 광덕 스님이 불광법회에 전한 바라밀 사상에서 비롯된 생활수칙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광덕 스님의 가르침을 따라가다 보면 영화 매트릭스를 떠올리게 된다. 주인공 네오가 세상의 본질을 꿰뚫어 보고 깨달음을 얻어 생사를 뛰어넘는 순간, 모든 것이 0과 1로 구성된 매트릭스의 세상에서 그만은 오로지 찬란한 빛으로서 존재한다.
영화가 극적인 절정에 달한 그 장면은 영화사에 길이 남을 명장면으로 손꼽힌다. 더불어 종교계과 철학계를 가리지 않고 큰 파문을 일으킨 기념비적인 장면이 됐다. 광덕 스님이 전한 가르침에 따르면 우리의 본래 모습은 깨달음을 얻은 네오의 본질, 빛, 바로 그것이다. 스님은 빛으로 충만한 우리의 본래 모습을 알아가기 위한 방편으로 수행을 말했고, 매달 한 번씩 진행되는 철야정진은 우리가 곧 깨달은 자, 네오임을, 우리 스스로가 이미 부처임을 몸과 마음으로 체험하기 위한 자리다.
| 내 자신이 부처임을 자각하는 시간
철야정진의 절정은 바라밀 정근으로 맞이한다. 밤 9시부터 이어져온 경전 독송들은 우리가 본래 부처임을 가르쳐주셨던 부처님의 설법을 되새기는 과정이다. 자정을 넘겨 새벽으로 치달아 가는 그때부터는 내 스스로가 부처임을 자각하는 수행의 시간이다.
“마하반야바라밀, 마하반야바라밀, 마하반야바라밀….”
끊임없이 마하반야바라밀을 염송하는 정근이 주된 수행방식이다. 염송하는 소리 속에 나를 지우고 나의 생각을 지우고 오로지 염송하는 자성만이 남는 시간. 그러나 그 행위는 결코 쉽지 않다. 새벽시간에 찾아오는 수마는 끊임없이 괴로움을 안긴다.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수차례 마음을 흔들 때쯤 잠깐의 참선으로 심신을 쉬게 한다.
밤새 수행을 이어간다는 것은 결코 녹록치 않은 일이다. 특히나 초심자들은 수없이 많은 극기의 순간을 맞이해야 한다. 그러나 수마의 유혹을 이겨내고 오롯이 정근에만 집중할 때 또렷하게 정신이 맑아지는 체험은 또 다시 철야정진에 도전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된다. 광덕 스님은 반야바라밀을 설명하며 반드시 실천이 뒤따라야 함을 강조했다. 내 자신이 반야바라밀의 요체임을 깨닫고 수행을 통해 그 마음을 밝히며, 수행의 공덕을 사회로 회향하는 삶. 그것이 불광법회 수행자들의 삶이다. 진정한 불자를 되기를 꿈꾼다면, 반야바라밀 철야정진에 도전해보는 것은 어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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