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머무는 공간은 언제나 여여한 수행 도량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산소호흡기 소리를 들으며, 마지막 마음가짐에 대한 이야기와 이산혜연 선사의 발원문을 염불송으로 들려주고, 함께 나무아미타불 정근을 했다.
| 한 바가지의 마중물처럼
매월 진행하는 8일 동안의 참선집중수행 ‘참사람의 향기’를 마치고 하산하는 수행자들에게 늘 하는 이야기가 있다.
“저의 바람은 지금부터 여러분이 수행자로 살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이미 출가하여 산중에 살고 있는 스님들보다 세상 속에 살고 있는 여러분에게 수행이 더 필요합니다. 제 역할은 여러분의 수행길에 마중물이 되는 것입니다. 깊은 곳의 물을 끌어올리기 위해 펌프질할 때 들이붓는 한 바가지의 마중물처럼 여러분의 수행길에 안내자가 되고 싶습니다. 최적의 수행 공간을 만들어 언제든지 찾아오면 지친 마음을 쉬게 하고, 세간 속에서 지혜롭고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또 잘못된 사고에 빠져 허우적거릴 때 바른 길을 안내하는 그런 일을 하고 싶습니다. 조금 더 욕심을 낸다면 수행에 대한 발심이 일어나도록 돕는 조력자가 되고 싶습니다.”
짧은 기간이지만 수행하겠다는 마음을 내 땅 끝까지 찾아온 것만으로도 귀한 발심이기에 온 정성을 다해 그들을 만나야 하는 게 나의 임무이다. 또한 행복한 기회이기도 하다.
참가자가 ‘수행을 하니까 이런 대접을 받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도록 하기 위해서는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한다. 음식을 자극적이지 않게 만들고, 끼니마다 새로운 반찬을 올리도록 신경을 쓴다. 방은 깨끗하게 몇 번씩 확인하고, 이부자리도 까슬까슬하게 빨아둔다. 참선방석도 빳빳하게 풀을 먹여 앉으면 금세 기분이 상쾌하도록 준비를 한다.
잊고 살다가 인생의 마지막에 ‘아! 내가 가장 진실한 모습으로 행복했던 순간이 미황사에서 참선하던 때였지.’ 하고 생각해 준다면 수행 도량을 지켜온 내 삶도 성공한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 물속에 떨어진 구슬을 찾으려면 물결을 가라앉혀야 한다
중국 송나라 때 종색 선사는 ‘선정을 닦는 수행은 누구에게나 가장 절실하고 중요한 일이다.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고 조용히 좌선하여 사유하지 않는다면, 자신의 일상생활에서 매사에 지금, 여기의 자기 자신을 상실하여 정신없이 멍청하게 살게 된다.’고 경고하고 있다.
지금 우리의 인생이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남들보다 조금 더 빨리 가려고 앞만 보고 달리는 모습이 우화 속에 나오는 동물들과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 든다.
토끼가 나무 밑에서 낮잠을 자다가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꿈을 꾸었다. 마침 도토리 하나가 토끼의 귓불을 때리며 떨어졌는데 착각을 하고 벌떡 일어나 뛰기 시작했다. 토끼의 행동에 놀란 여우가 뒤이어 뛰고, 사슴 꿩 코끼리 다람쥐 등 숲속의 동물들이 영문도 모른 채 그들을 따라 뛴다. 그들을 기다리는 끝은 위험천만한 낭떠러지. 우리의 삶 또한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아 씁쓸하다.
학교 동창들, 같은 나이 또래, 형제들, 지역 사람들과 자신을 비교하고, 핸드폰, 자동차, 가방, 옷, TV, 카메라, 집 등 가지고 있는 물건들도 신제품과 끊임없이 비교한다. 정작 자신의 삶은 진지하게 돌아보지 않으면서 비교하고 취하고 버리는 삶을 되풀이한다. 신자유주의와 무한경쟁의 사회에서 무가치한 뜀박질을 하고 있는 것이다.
물속에 떨어진 구슬을 찾으려면 먼저 물결을 가라앉혀야 한다. 물결이 일렁이면 구슬을 찾기가 어렵다는 『좌선의坐禪儀』의 가르침처럼 좌선수행을 통해서 물이 깨끗하고 맑아지면 마음이라는 구슬은 저절로 나타나게 된다. 『원각경』에도 “걸림 없는 지혜는 모두 선정으로부터 생기는 것”이라고 했다.
| 방은 평화롭고 안락한 법당과 선방
새벽예불 때면 항상 암송하는 스님들의 발원문을 행선축원行禪祝願이라 한다. 내용 가운데 암송할 때마다 힘주어 생각하는 대목이 있다.
나의 이름을 듣는 이는
삼악도(지옥, 아귀, 축생으로 태어나는 것)를 면하고
나의 모습을 보는 이는 해탈을 얻게 하소서.
이와 같이 중생을 교화하기를
오랜 세월이 지나도록 하여
결국 부처도 중생도 없는 세계가
이루어지게 하소서.
문아명자면삼도聞我名者免三途
견아형자득해탈見我形者得解脫
여시교화항사겁如是敎化恒沙劫
필경무불급중생畢竟無佛及衆生
나는 이 구절을 내가 살고 있는 절에 대입시킨다. 바쁘고 힘들고 지쳤을 때 TV나 라디오, 신문, 인터넷에서 미황사라는 이름을 듣거나 보기만 해도 힘과 용기와 위안을 얻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누군가의 든든한 마음의 고향이 되려면 이름값에 걸 맞는 활동을 해야 한다. 한 번의 이벤트가 아닌 긴 호흡을 필요로 하는 활동 말이다.
언젠가 주지 임명장을 받고서 밤새 그 무게감 때문에 고민한 적이 있다. 천이백 년의 역사를 가진 사찰의 주지 소임이었기에 고민이 깊었다. 자칫 작은 실수로 긴 장강의 역사를 써온 미황사의 궤적에 누를 범하지 않을까 노심초사했던 것이다.
좋아하는 절은 들어설 때부터 평화롭고 행복한 느낌이 들고, 극락세계에 들어 온 것처럼 근심 걱정이 사라지는 곳이다. 내가 꿈꾸는 이상적인 절은 모든 이에게 그런 느낌으로 다가가는 곳이다. 그러니 돌 하나, 나무 한 그루 허투루 놓거나 심을 수 없다.
천년이 넘는 호흡으로 오늘을 살고 있는 미황사. 이곳에 사는 대중들의 신실한 말과 행동과 마음이 얹어졌을 때 미황사는 비로소 그 가치가 살아 움직인다. 그러함을 알기에 이 가람을 외호하며 사는 일이 늘 조심스럽다. 농담 삼아 외국 어디에 미황사 같은 절이 있다면 나도 한 달 쯤 머물다 오고 싶다고 말한다.
내가 절을 가꾸듯 사람들도 자신의 공간을 좋은 수행처로 가꾸었으면 좋겠다. 집이 수행처라면 수행대중은 물론 그의 식구들일 터. 회사에 가면 그곳이 수행 도량이 되고 직장 동료들이 수행대중이 됨은 물론이다.
자신의 공간을 수행의 처소로 만들기 위해서는 날마다 노력이 필요하다. 울력 시간을 만들어 집 안팎을 청소하고, 물건들은 항상 단정하고 단순하게 정리한다. 번뇌를 버리듯, 쓸모없는 물건은 쓸모 있는 사람에게 과감하게 나누어 준다.
방은 평화롭고 안락한 법당과 선방이 된다. 집안에서도 옷은 단정히 하고 말은 정중하고 부드럽게 한다. 혼자 있어도 많은 대중과 함께하듯 절도가 있어야 한다. 안으로는 지혜롭고 밖으로는 자비롭게 마음을 쓴다.
이와 같이 자신만의 수행 처소를 정갈하게 만들어 간다면 내 이름은 타인에게 떨리는 기쁨의 이름이 되고, 내가 머무는 공간은 언제나 여여한 수행 도량이 되지 않겠는가.
금강 스님
미황사 주지. 조계종 교육아사리. 서옹 스님을 모시고 ‘참사람 결사운동’, 무차선회를 진행하였고, 고우 스님을 모시고 한국문화연수원의 간화선 입문과 심화과정을 진행하였다. 홍천 무문관 프로그램을 개발하였고, 참선집중수행 ‘참사람의 향기’를 80회 넘게 진행하며 일반인들과 학인스님들의 참선수행을 지도하고 있다. 저서로 『땅끝마을 아름다운 절』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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