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여름 더위가 찾아온 날이다. 청량한 숲그늘을 따라 오르막에 올라서니 곧바로 2층 건물이 나타난다. 법당으로 올라가는 계단 옆 모퉁이에 흥부네 책놀이터 간판이 걸렸다. 대각사에 온 손님을 가장 먼저 맞이하는 공간이 책놀이터인 셈이다. 들어서는 길목에 유쾌한 안내문이 붙어있다.
왜? 흥부네 책놀이터일까요?
- 책놀이터가 시흥시에 있어서 ‘흥’
- 앞으로 오래오래 흥(興-흥할 흥)하라는 뜻에서 ‘흥’
- 전래동화 속 친근한 주인공인 흥부 놀부의 ‘흥’
이렇게 ‘흥’이 셋이나 되니 흥부네 책놀이터입니다.
책놀이터 한켠, 볕이 드는 찻자리에 마주앉아 원돈 스님이 차를 권했다.
- 놀이터라 그런가요? 책보다도 넓은 공간이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스물다섯 평쯤 될까요. 전에는 신도님들이 초파일 연등을 만들 때나 쓰던 공간이었죠. 여기에 책놀이터를 꾸밀 생각을 하게 된 건 세월호 때문이에요. 세월호 아이들 부모 세대가 제 연배거든요. 주변의 아이들을 위해서 할 수 있는 게 뭘까, 생각하기 시작했죠. 저기, 절 아래 송암보육원에 아이들이 살아요. 절은 좀 외진 곳에 있어도 좋지만, 50명이 넘는 아이들이 세상과 동떨어져 사는 게 안타깝잖아요. 아이들에게 절이 이웃이 됐으면 했어요.”
문밖으로 시선을 향하니 밤나무 숲이다. 지난 가을, 밤 줍는다는 핑계로 보육원을 나온 아이들은 절에 찾아왔다. 밤을 줍다 손에 가시가 박혔다고 했다. 보육원에도 도움 받을 어른들이 있을 텐데 절로 와준 아이들이 너무 고맙더라는 원돈 스님의 눈시울은 어느새 붉어진다. 아이들이 자주 왔으면, 와서 마음 편히 머물 수 있는 공간이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생겼다.
둘러보니 1,500여 권의 책이 꽂힌 책장은 벽면을 채운 게 아니라 방 가운데, 열십자를 그리며 낮게 등을 대고 서 있다. 아이들이 시선에 방해받지 않고 책 읽기 좋은 ‘구석’이 많은 구조다.
- 아이들을 생각하고 고민하신 흔적이 곳곳에 묻어납니다.
“아이들이 건강하면 그 아이들이 건강한 사회를 만들어요. 여긴 온전히 아이들을 위한 공간으로 만들고 싶었죠. 그래서 도서관이 아니라 책놀이터예요. 도서관에서 보통 책을 빌리려면 대출증을 만들어야 하고 책마다 대출기호가 붙어 있죠. 우린 그런 게 없어요. 자유롭게 그냥 빌려갔다 생각날 때 가져오면 돼요. 불교 앞세우지 않아도 좋은 책을 자연스럽게 접하고, 이런 심성으로 자라면 그게 다 부처님 마음 아닐까요?”
- 그러네요. 이곳 말고도 시흥 시내 주택가에 책놀이터를 하나 더 내셨죠.
“정왕동 다세대주택단지에는 작은 평수 집들이 많아요. 원룸이나 투룸 정도. 당연히 아이들은 어리고,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있는 가정이죠. 부모가 가난하면 아이들도 대접받지 못하는 시대잖아요. 이 곳 아이들은 책에서 소외돼 있어요. 사실 어디, 책뿐이겠어요? 그래서 다니던 대학원을 휴학했어요. 대학원 학비를 책놀이터에 투자하려고 해요.”
정왕동 책놀이터는 임대보증금을 절에서 대고, 월세는 정왕동 신도들이 십시일반으로 낸다. 책놀이터 두 곳을 운영하는 비용은 후원조직을 꾸려 충당할 계획이다. ‘흥부네 책놀이터를 움직이는 100명의 사람들’이라고 이름 했다. 월 1만원씩 후원하는 100명의 후원자가 모이면 시흥시의 지원을 받지 않고도 운영이 가능하다.
| “불교는 전체를 끌어안아야 해요.”
책놀이터를 열기 전, 원돈 스님의 고민은 깊었다. 이게 옳은 일인지, 될 일인지 물을 곳이 없었다. 백일기도를 시작했다. 대각사에서 200배, 정왕동에 가서 108배, 매일 300배가 넘게 절을 했다. 해야 될 일이면 기도 속에 드러나겠지, 그 마음이었다. 책을 기증하는 출판사, 선뜻 월세를 함께 내겠다는 신도, 정기후원자가 되겠다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교회에선 이미 많은 일을 하고 있지 않느냐며, 우리도 역할을 해야 한다는 불자들이었다.
- 국공립도서관에서 ‘책놀이터’ 식으로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경우는 더러 있지만, 사찰에서 공간을 통째로 책놀이터로 운영하는 건 처음 있는 일입니다.
“책놀이터라는 용어를 내가 만들었는데, 이미 있더라구요.(웃음) 몇 백만 원 모아서 장학금 전달하는 건 쉬운 일이에요. 힘들고 시간이 걸리지만 꼭 해야 하는 일이 뭘까요. 사찰이 절에서 마을로 내려오는 건 좋은 일이죠. 그런데 이제는 포교당만으론 안 됩니다. 불교는 그보다 더 틀이 커야 해요. 전체를 끌어안아야 해요. 신도관리나 사찰 유지를 위해 마을로 오는 게 아니라,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주기 위해 품을 여는 공간이어야 합니다.”
원돈 스님은 아이들이 많이 오길 바라기보다 책놀이터가 거기 있다는 걸 아이들이 알 때까지, 천천히 기다린다. 지치지 않기 위해서다. “노스님 되면 이 동화책들이 내 수준에 딱일 거예요. 이게 다 나를 위한 보험이지요. 내게도 인법당에서 과일 먹고 뒹굴며 책을 읽었던 기억이 있듯이, 이렇게 눈 감고 떠올려 볼 때, 좋잖아요, 그런 공간이면 좋겠어요.” 옥탑방으로 출발하지만 1년 뒤엔 아이들 가까이, 1층으로 내려올 계획이다. 옥탑방 아래 동네 사람들 산책 나와 앉아있는 마을공원에도 책수레를 밀고 가려고 한다. 어른들에게도 동화책은 보약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안산이 가까워 세월호 희생자 가운데 아홉 명의 49재를 손수 치렀던 원돈 스님이다. “이 그림책 알아요? 옛날에 시계가 귀했잖아요. 점방에 시간 물으러 간 아이가 이 구경 저 구경 다 하고는 깜깜해져서 들어와요. 그러고는 엄마한테 ‘넉 점 반(네 시 반)이래.’ 하죠. 그 점방이 어딘 줄 아세요? 바로 옆집이었어요. 이 그림책 제목이 『넉 점 반』이에요. 참 좋죠?” 스님이 직접 가꾼 108계단 꽃길을 걸으며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 그림책 알아요?” 하고 아이들에게, 마을사람들에게 넌지시 말을 건네는 원돈 스님. 낮은 곳으로, 낮은 곳으로 몸을 기울이는 스님의 발걸음이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