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다를 그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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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를 그리다
  • 불광출판사
  • 승인 2015.06.13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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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화가 조재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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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앞에 섰다. 꽃에 둘러싸인 부처님을 응시한다. 은은한 미소를 띤 부처님이 마주한 자를 바라본다. 꿈속에서 본 듯한 약간은 빛바랜 포근한 색채의 부처님, 그에 반해 선명한 만개한 꽃들. 꽃에 싸인 부처님이 봄바람처럼 곧 흩어져버릴 것만 같다. “삽베 상카라 아니짜(sabbe sam.khārā aniccā), 모든 것은 무상하다.” 부처님 말씀 고이 되뇌며, 부처님과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뜻한 색으로 풀어낸다. 위라담마ViraDhamma. 법웅法雄이라는 의미의 미얀마에서 받은 법명처럼, 그림 속 부처님을 마주하고 당당하게 서있다. 그의 눈빛이 형형하다. 조재익(53), 그는 붓다를 그리는 수행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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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라담마ViraDhamma, 조재익
붓다의 평화로움을 담고 싶었다. 붓다의 온화한 표정으로 보는 이들에게 평온함을 주고 싶었다. 경주 남산의 붓다, 간다라 붓다, 크메르 붓다 등 다양한 붓다의 이미지를 담았다. 은은한 미소 띤 붓다가 캔버스 속에서 고요히 선정에 잠겨있다.

서른 중반, 길을 잃었다. 그림의 방향도, 삶의 길도 보이질 않았다. 좋아하던 작가들처럼 멋진 그림을 그리고 싶어 항상 노력하는데도 언제나 헛헛했다. 그러다 불교 수행을 만났다. 답답한 마음에 큰 위안을 받았다. 열심히 수행하면 저러한 영역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날 번쩍 벼락 맞아 다른 뭐가 될 것 같다는 기대도 있었다. 그래서 2007년, 미얀마의 위빠사나 수행처 셰우민담마수카또야(ShweOoMin Dhammasukha meditation centre)로 떠났다. 위라담마ViraDhamma가 되어 비구계를 받았다.
 
“무엇이 특별히 달라지지는 않았습니다. 번쩍 내리치는 벼락도 없었어요. 당연하죠. 다만,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처럼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수행을 하면서 문득 ‘내가 노력을 해서 저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로서 바로 서는 것’임을 깨달았다. 폼 나는 그림은 폼 나는 사람이 그리는 것이고 나는 나일뿐이다. 내가 표현할 수 있는 만큼을 표현하는 것, 나를 나만큼 표현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했다. 하심下心. 2008년 한국에 돌아와 다시 붓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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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간의 꽃 피우다
붓다를 소재로 작품 활동을 한 지 10년이 넘었다. 작업실의 한 구석에 끝까지 꾹꾹 눌러 짠 물감 튜브의 무덤이 생겼다. 물감은 튜브에서 팔레트를 거쳐 캔버스 위에 부처님으로 자리를 옮겼다.

작품에 담긴 구조물들은 그가 여행을 다니며 만난 세계 각지의 부처님이나 부서진 탑과 성지, 폐사지 등의 모습이다. 구조물들은 작품 속에서 빛바랜 색으로 오랜 세월의 흔적을 드러낸다. 그에 반해 배경에는 꽃들이 선명한 색으로 만개해있다.
 
꽃이 피다. 꽃은 어떤 존재가 피어나는 순간, 깨어나는 순간을 의미한다. 활짝 핀 꽃은 서서히 지고 또 다른 꽃이 피어오른다. 시간의 흐름과 일어나고 스러짐을 보여주며 존재의 무상함을 말한다.

불상의 얼굴은 밀도감 있고 입체적이어서 마치 살아있는 것 같다. 캔버스에 얹어진 물감의 두터운 마티에르(matière, 질감)는 그의 작품과정 또한 수행의 한 부분이었을 것이라 짐작하게 한다. 나이프로 얹는 물감의 결, 내가 그리고 싶은 대상의 결, 그림을 그리는 내 마음의 결이 하나가 되어 고스란히 캔버스에 얹어진다. 산란함을 그치고 마음을 모아 하나의 결을 긋는다. 붓으로 물감을 떠 얹고, 말리고, 마음을 덧바르는 숱한 과정에서 부처님이 돋아난다. 색을 덧쌓으면, 밑 색은 얹은 색을 받쳐준다. 얹어진 색은 밑 색의 빛을 품어 깊은 빛깔을 우려낸다. 한껏 어우러진 색이 깊이를 만든다. 켜켜이 쌓인 물감이 고요하고 치열하다.

그림에 ‘잘 그리고 싶다’는 에고ego가 담기면, 분별하게 되어 그림을 망치게 된다며, 마음은 움직이고 있지만 생각은 움직이고 있지 않을 때 그림을 끄집어 낼 수 있는 것 같다고 말하는 조재익 화가. 매순간을 알아차리는 노력을 하기에 그림을 그리는 것과 수행하는 것은 둘이 아닌 것 같다고 말하는 그가 앞으로 나아갈 자신의 삶의 방향을 이야기했다.

“예전엔 내가 주목받는 화려한 꽃이 되길 꿈꿨었어요. 그런데 꽃에는 화려한 꽃만 있는 것은 아니더군요. 제비꽃, 돌 틈의 들풀들, 소박한 꽃들. 순간순간 피기만 하면 돼요. 누구나 순간마다 꽃피우고 있어요. 나는 70억 인구 중에서 이러한 모습으로 피어있는 꽃이에요. 꽃피며 살고 있는데 다른 곳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서 피는 순간을 놓치고 있는 것이죠. 앞으로 작품을 하며, 상황마다에 집중하려고 합니다. 순간순간 꽃 피울 거예요.”



조재익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 동대학원 서양학과 졸업. 1990년부터 2014년까지 단체전 70여 회, 개인전 15회를 열었다. 대학시절부터 각종 미술대전에서 수상을 한 그는, 대한민국 미술대전 특선 및 입선 5회, 동아 미술제 특선 및 입선 2회, MBC미술대전 특선 및 입선 3회 등 다수의 수상경력을 가지고 있다. 터키 한국총영사관, 헝가리 한국대사관, 체코 한국대사관에서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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