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구니스님들의 라오스 여행기 ②
라오스 성지순례를 떠나기 전, 우리는 고산족 마을 아이들을 위해 학용품과 먹거리를 준비했다. 총 100세트를 만들어 이정도면 충분하리라 생각했다. 방비엥의 호텔방에 모두 모여 미리 준비해간 물품을 정리하고 뿌듯한 마음으로 차를 마셨다. 좋은 일을 한다는 것은 언제나 우리 어깨를 펴게 만들고 자존감을 세워준다.
| 아쉬웠던 고산마을의 보시행
이번엔 방비엥에서 루앙프라방으로 이동한다. 7시간 걸리는 꼬불꼬불 난코스다. 여기저기서 멀미의 기색이 역력하다. 염불을 시작했다. 내 약한 목 상태는 멀미에도 치명적인가보다. 참다못해 염불 잘하는 도반스님에게 마이크를 넘겼다. 불보살님 덕분인지, 염불 잘하는 도반스님 덕분인지, 아무튼 모두의 덕분으로 감사히 몽족이 산다는 고산마을에 도착했다. 그런데 아니 이게 웬일인가. 어른아이 할 것 없이 온 동네 사람들이 몰려나와 먼지를 풀풀 날리며 버스를 향해 달려들었다. 준비해간 학용품 100세트로는 어림없는 일이었다. ‘아, 이런…. 못 받는 아이들이 있다니.’ 노트와 연필을 많이씩 담는 게 아니었는데, 후회막급이었다. 엄마들을 위해서도 가방을 20개 정도 준비해갔는데, 눈을 반짝이며 손 내미는 그녀들을 빈손으로 돌려보내야만 했다. 좋은 일을 하고도 마음이 이렇게 아프다니. 그래도 할 수 없다. 이미 때는 늦었으니 다음엔 더 철저히 준비해야겠다고 다짐할 뿐이다.
다시 버스에 올라탔다. 여기저기서 아쉬움과 미안함, 안쓰럽다는 탄성이 터져 나왔다. 다음에는 더 잘 준비해오자 약속하며, 이번에는 지혜로운 보시에 대해 이야기했다.
“마하트마 간디가 어느 날 막 출발하기 시작한 기차에 뛰어오르게 되었대요. 그런데 뛰어오르다가 그만 신발 한 짝이 벗겨지고 말았답니다. 그때 만일 여러분이라면 어떻게 할 것 같으세요? 간디는 속력을 내어 달리는 기차에서 나머지 신발 한 짝을 얼른 벗어 올라타면서 떨어뜨린 신발이 있는 쪽으로 힘껏 던졌답니다. 그때 옆에서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사람이 왜 그렇게 하는지 물었어요. 그러자 간디 曰, ‘누군가 저 신발을 줍는다면 두 짝이 다 있어야 신을 수 있지 않겠소.’ 그랬답니다. 저는 이것이야말로 지혜로운 보시가 아닐까 싶어요. 꼭 돈이 있어야만 남을 도울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 자리에도 경제적으로 넉넉한 분도 계시고, 어려운 분도 계실 거예요. 그럼 생각해보세요. 부자건 가난한 사람이건 제아무리 잘 먹어도 하루 세끼면 충분해요. 그렇지 않나요? 그리고 누구도 두 켤레의 신발을 한꺼번에 신을 수는 없습니다. 나쁜 마음과 인색함은 쇠에서 생긴 녹이 쇠를 먹어가듯 우리 삶을 멍들게 할 뿐이란 걸, 우리 모두 잊지 말고 살아가야 합니다. 아시겠죠? 네, 그래요.” 우리는 서로 마음의 손을 잡았다.
라오스의 마지막 아침이다. 오늘은 이른 아침부터 분주하다. 탁발하는 스님들께 공양을 올리기로 되어있기 때문이다. 아직도 어둠이 짙게 남아있는 거리로 나왔다. 한 줄로 나란히 자리 잡고 앉았다. 스님들은 나오지도 않았는데, 공양물을 준비하는 우리를 향해 여기저기서 카메라 불빛이 터진다. 그런데 내 옆쪽으로 아까부터 계속 거슬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교회 다니는 사람들인가 보다. 한 사람이 “우리도 한번 해보면 안 될까? 그냥 체험이니까.” 했더니, 옆에 사람이 정색을 하며 “우리는 하나님의 종이기 때문에 저런 짓 하면 안 돼요.” 한다. 그 말을 듣자마자 나도 모르게 혀를 찼다. ‘출가한 사람들을 보고 공양을 올리고 싶은 마음은 종교를 넘어 누구에게나 있을 터인데, 그것을 가로막다니 저 또한 딱한 일일세.’ 순간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리고 한 줄로 차분하게 앉아 기다리는 우리 일행 앞에 섰다.
| 탁발공양 올리는 날의 풍경
“옛날에 어떤 사람이 부처님을 찾아와 ‘죽은 사람을 위해 제사를 지내고 공양물을 올리면 죽은 사람이 천상에 태어날 수 있습니까?’라고 물었어요. 그때 부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해주셨지요. 연못 속에 무거운 돌덩이를 던져놓고 ‘돌아 떠올라라. 떠올라라.’ 한다고 해서 그 돌이 물 위로 떠오르겠느냐고요. 우리가 절에 가고 교회에 가서 백날 기도하고 좋은 곳에 가기를 원한다 해도, 그것은 좋은 일을 한 번 하는 것만 못합니다. 물론 그 공덕 또한 있겠지요. 살아가는데 많은 영향을 끼칠 겁니다. 하지만 좋은 행위를 하고 남을 돕는 일을 하는 것에는 미치지 못합니다. 오늘 우리는 올곧게 정진하고 수행하는 스님들을 위해 공양을 올릴 거예요. 이 스님들이 받은 공양물은 또 다시 어려운 이들의 밥그릇 속에 담기게 될 겁니다. 그리고 우리는 오늘의 이 보시 공덕으로 좋은 인연을 많이 맺게 될 것이고, 밝은 미래를 위한 좋은 씨앗을 뿌리게 될 겁니다. 그러니 진심 어린 마음으로 간절하고 정성스럽게 공양에 임하시기 바랍니다.”
사실 우리 일행들만 들으라고 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옆쪽에 우르르 몰려있는 한국인들을 위해서 한 법문이었다. 법문이 끝나자 멀리서 주황색 가사를 수한 스님들의 행렬이 다가오고 있었다. 주황색이 주는 특별함 때문일까? 스님들의 옷자락만 보아도 감동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조그만 꼬마 아이들이 스님들 뒤를 졸졸 따라다닌다. 스님들이 공양물을 나눠주기 때문이란다. 문득 저 꼬마들처럼 탁발하는 스님들 뒤를 쫄쫄쫄 따라가고픈 생각이 들어 혼자 피식 웃었다. 나는 아직도 철부지인가보다.
루앙프라방에서는 이틀을 묵었다. 햇볕 뜨거운 한낮에 메콩강을 건너 불상이 많이 모셔져 있는 동굴에도 다녀왔고, 옥색 물빛을 자랑하는 아름다운 폭포에도 다녀왔다. 정말 물빛이 순수 옥색이어서 깜짝 놀랐다. 방비엥에서 물놀이를 너무 즐겁게 한 탓인지 폭포를 보니 또 뛰어들고 싶었다. 유럽인들은 이곳에서도 비키니를 입고 유유히 꽃잎처럼 떠다녔다. ‘요런 예쁜 것들…시원하겠구먼. 칫!’ 부러움에 혼잣말을 좀 했더니, 어느새 옆에서 듣고는 키득키득 웃는다. “히히히, 스~ 님~”
루앙프라방은 아름다운 카페가 많았다. 메콩강을 끼고 유럽풍의 상점가가 형성되어 있다. 그곳에서 우리는 저녁을 먹기로 했다. 메콩강의 석양을 바라보면서. 점점 하늘이 불그스름해지더니 강까지 발갛게 달아올랐다. 어둠 때문에 나뭇가지가 검게 보였다. 그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석양이 정말 넋을 잃게 만들 정도로 아름다웠다. 사실 난 그 광경이 이번 여행에서 가장 좋았다.
집이 없는 자는 집을 그리워하고
집이 있는 자는 빈 들녘의 바람을 그리워한다.
나 집을 떠나 길 위에 서서 생각하니
삶에서 잃은 것도 없고 얻은 것도 없다.
모든 것들이 빈 들녘의 바람처럼
세월을 몰고 다만 멀어져갔다.
어떤 자는 울면서 웃을 날을 그리워하고
웃는 자는 또 웃음 끝에 다가올
울음을 두려워한다.
나 길 위에 피어난 풀에게 묻는다.
나는 무엇을 위해서 살았으며
무엇을 위해 살지 않았는가를
살아 있는 자는 죽을 것을 염려하고
죽어가는 자는 더 살지 못했음을 아쉬워한다.
자유가 없는 자는 자유를 그리워하고
어떤 나그네는 자유에 지쳐 길에서 쓰러진다.
- 길 위에서의 생각, 詩 류시화
| 붉은 석양에 짙어지는 감성의 농도
유학 시절, 나는 류시화의 ‘길 위에서의 생각’ 이라는 시를 즐겨 읽었다. 특히 쓸쓸함이 내 안에 가득할 때면 ‘빈 들녘의 바람처럼 살기를 원해서 네가 지금 여기 있는 거잖아.’ 라며 스스로를 위로하며 따지고 합리화했다. 집근처 가츠라가와(교토의 강 이름) 강가에서 석양을 바라보며 지는 해를 품에 안고 있으면 가슴 속이 뜨거워지곤 했다. 그리움은 더해지고 쓸쓸함은 짙어졌다. 메콩강의 석양은 가츠라가와보다 열 배는 더 아름다웠던 것 같다. 그만큼 감성의 농도도 더 진했다. 계속해서 바라보고 있었다면 강물에 몸을 던져 흘러흘러 먼 바다까지 떠내려가고 싶었을지 모른다. 어려서부터 강가에서 자란 나에게, 강이란 내 모든 것을 허락해주는 곳, 위로해주는 곳, 또 모든 아픔을 낫게 해주는 곳이다.
강물에 몸을 던져 먼 바다로 떠내려가고픈 욕망조차 삼켜버린 저 붉은 노을, 우리는 그 노을을 가슴에 안고 귀국길에 올랐다. 지칠 법도 한데 잠이 오질 않았다. 마음만큼은 평안하기 그지없다. “여러분, 여행 잘 하셨어요?” “네~ 너무 좋았어요. 우리 또 여행가요.” “허걱, 그건 좀 생각해 보고요.” 키득키득 여기저기서 웃음이 끊이질 않는다.
“여러분, 백 명이 여행을 가도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이 있고 오십 명이 여행을 가도 맘에 안 드는 사람이 있어요. 그럼 열 명은 괜찮을까요? 열 명이 가건 다섯 명이 가건 내 맘에 안 드는 사람은 늘 있기 마련이에요. 그래서 저 사람만 안 왔으면 하고 생각하지만, 사실 여행을 가보면 또 다른 사람이 거슬리곤 하지요. 남편을 생각해 보세요. 단 둘이서 여행을 떠나도 내 파트너가 마음에 안 들 때도 있잖아요.(이 말을 하자 여기저기서 ‘맞아, 맞아’ 고개를 끄덕이며 웃는다.) 그런데 그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이 바로 나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마음에 드네, 안 드네 하며 불평할 것이 아니라, 잘 봐주고 서로 배려해 주세요. 여행은 이제 끝났지만, 우리에겐 또 다른 삶의 여행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부디 좋은 추억만 가득 안고 돌아가셔서 주위 분들과 따뜻한 마음 많이 나누시고, 서로 아끼면서 살아가세요. 부처님 가르침 잘 받들고, 좋은 사람 좋은 불자 되시고요. 그간 애쓰셨습니다. 고맙습니다.” 짝짝짝~ 마지막 박수에 마음이 포근했다.
인천공항에 도착하니 이곳은 추운 겨울 아침이다. 허파에 바람이 잔뜩 든 나는 공항에 도착하니 다시 떠날 준비를 하는 비행기에만 자꾸 눈길이 갔다. 내리자마자 다시 떠나고픈 마음이라니. 역마살이 도진 게 확실하다.
여행이란 이런저런 삶의 흔적들을 뒤돌아보게 만드는 것 같다. 차곡차곡 쌓아온 노력의 과정을 돌이켜보며 대견해하기도 하고, 어느 순간 그 모든 노력들이 소리 없이 허물어지는 것을 태연히 받아들이게 만들기도 하니 말이다. 이번 여행이 꼭 그랬다. 나이에 맞게 얼굴에 주름이 지는 것처럼, 삶을 되돌아보며 내 나이에 어울리는 감성이 자신을 풍요롭게 하는 것 같았다. 이제 또 다시 생의 여행을 떠나리라. 이번엔 모두 함께 가자.
원영 스님
대한불교조계종 교육아사리(계율과 불교윤리 분야). 운문사승가대학을 졸업하고 선원 안거 후, 일본으로 유학하여 2008년 「대승계와 남산율종」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서로 『부처님과 제자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대승계의 세계』, 『계율, 꽃과 가시』, 『인생아, 웃어라』 등이 있다. 현재 BBS불교방송 ‘아침풍경’을 진행하고 있으며, 중앙승가대학교 외래교수로서 강의와 다양한 저술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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