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聖地. 땅에 그려진 종교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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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聖地. 땅에 그려진 종교에 대해
  • 불광출판사
  • 승인 2015.05.04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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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 성지화 사업을 바라본 종교학자의 시선
종교는 저마다 ‘성스러운 지도’를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종교의 지도는 현실 세계가 아닌 상상 세계를 묘사한 지도이며, 보이지 않는 세계를 볼 수 있게 하는 지도입니다. 종교의 지도를 길잡이 삼아, 우리는 모래 그림처럼 손가락으로 그렸다가 휘저으면 금세 사라지는 ‘상상의 풍경’을 봅니다. 또한 종교는 들리지 않는 소리를 포착하여 잠시 들려주는 ‘상상의 음향학’이기도 합니다. 답답한 현실 세계의 틈새에 걸린 저 너머의 그림처럼, 의미로 짓눌린 세계의 적막을 잠시 걷어내는 무의미의 가락처럼, 종교는 그렇게 자신의 세계를 드러냅니다.


| 공간의 마법, 종교 지형학의 탄생
언제라도 저 너머의 세계로 휙 날아가려면 종교는 무척 가벼워야할 것 같습니다. 종교는 마치 무협영화의 무림고수처럼 경공술을 구사하는 가벼운 것, 무게 없는 것, 땅이 아니라 항상 하늘로 튀어 오르는 것이어야 할 것 같습니다. 종교는 무거운 다리를 질질 끌며 땅 위를 힘겹게 걷기보다, 축지법으로 땅을 줄이며 걸어야할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종교가 걷는 것은 상상의 거리, 보이지 않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현실 속에 존재하는 우리의 종교는 너무 무겁고 비대합니다. 종교는 현실의 거리에 집착할 뿐 보이지 않는 길을 더 이상 걷지 않습니다. 너무 무거워 날 수 없는 종교만이 도처에 가득합니다. ‘가벼운 종교’는 전설 속에나 있을 뿐, 현실 세계에서는 ‘무거운 종교’만이 생존게임의 승자인 것 같습니다. 

물론 쉽게 사라지고 금방 다시 나타나는 그런 종교는 이미 종교가 아닐지도 모릅니다. 사실 종교는 자신의 가벼움이 낳을 운명을 너무 잘 알기에, 보이지 않는 세계를 굳이 ‘가시화’하여 템플을 짓고, 들리지 않는 세계를 굳이 ‘문자화’하여 경전을 만듭니다. 항상 종교는 집을 짓고, 자신의 언어를 만듭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종교가 지은 집들이 늘어 가면 종교는 마을이 되고, 도시가 되고, 제국이 됩니다. 종교의 책이 점점 쌓이게 되면서, 종교는 자기만의 도서관을 짓고, 자기만의 역사를 씁니다. 이렇게 해서 종교가 안고 가야하는 기억의 무게는 점점 늘어납니다.

왜 가벼워야 날 수 있는 종교가 자신의 날개를 무겁게 하는 것일까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종교의 중요한 특성을 알게 됩니다. 종교는 모든 다른 것들은 다 변해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고 주장합니다. 나아가 종교는 변하지 않는 것의 존재를 주장하려면 자신도 변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여기에서 종교는 강력한 물리적 공간 안에 자신의 존재를 새기려 합니다. 책은 사라집니다. 경전도 그렇습니다. 다른 경전을 써서 기존 경전의 입지를 약화시키기도 합니다. 게다가 시간이 흐르면 경전은 서로 다른 해석을 불러일으킵니다. 그러므로 경전은 생각만큼 견고하게 종교를 유지시켜 주지 못합니다. ‘문자화’만으로는 종교의 안정성과 지속성을 확보하기 힘듭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일정한 장소, 사원, 사물에 종교를 담고 새기는 ‘종교 지리학’ 또는 ‘종교 지형학’이 탄생합니다. 마치 그릇에 물을 붓는 것처럼 종교를 공간이나 사물 안에 담아 둡니다. 이것을 ‘공간의 마법’이라고 불러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가벼워서 사라지기 쉬운 생각과 감정과 기억을 사물과 공간에 담아 두면, 기묘한 종류의 ‘생각 기계’, ’감정 기계’, ‘기억 기계’가 만들어집니다. 우리가 흔히 성소, 성지 등으로 부르는 종교적 공간이 그러합니다. 이 공간에는 건물이 있고, 일정한 기념물, 기념비가 있고, 무덤이 있고, 조각상이 있습니다. 성소나 성지에 들어서는 순간, 사람들은 같은 생각, 같은 감정, 같은 기억에 빠져듭니다. 그래서 종교는 자신의 역사를 자꾸 땅에 새기려 합니다. 그렇게 하면 성지, 성소라고 하는 너무나 간편한 ‘종교 기계’가 만들어지기 때문입니다. 같은 건물에 들어가서 같은 종교적 기억에 휘말리는 사람들을 우리는 ‘같은 종교인’이라고 부릅니다.


| 순교성지인가, 역사적 공간인가?
2014년 8월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을 전후하여 서울 중구청의 ‘서소문 밖 역사 유적지 관광 자원화 사업’이 종교계의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서소문 밖은 1984년 시성된 천주교 성인 103위 가운데 44위와 2014년 8월 시복된 복자 124위 가운데 27위가 순교한 곳이기에, 천주교의 입장에서는 가장 중요한 순교지일 것입니다. 그러나 2014년 말에 천도교와 시민단체가 주축이 된 ‘서소문역사공원 바로 세우기 범국민대책위원회’가 결성되면서 천주교의 서소문 성지 사업에 제동이 걸렸습니다. 서소문 밖은 허균, 홍경래의 난과 임오군란의 가담자, 동학 지도자인 김개남, 최재호, 안교선, 성재식 등의 머리가 효시된 곳이기도 하며, 서소문 감옥이 있던 곳이기도 합니다. 천도교에서는 이곳이 역사적 공간이며 동학의 성지이기 때문에, 천주교만의 성지로 조성되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합니다.

성지 조성 사업으로 천주교는 불교와도 충돌하고 있습니다. 최근 주어사走魚寺와 천진암天眞庵을 두고 벌어진 불교와 천주교의 갈등은 같은 공간에 얽혀 있는 두 종교의 역사를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가의 문제를 제기합니다. 샤를르 달레의 『한국천주교회사』를 보면 1777년에 권철신의 주도로 정약전, 이벽 등이 절에 모여 서양 선교사들의 책을 연구하여 자발적으로 천주교 신앙을 실천하기 시작했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리고 정약용이 쓴 권철신과 정약전의 묘지명을 보면, 1779년 겨울에 천진암 주어사에서 강학이 있었다는 구절이 있습니다. 그런데 1962년 즈음 남상철이란 분이 정약용이 쓴 권철신의 묘지명에 근거해 주어사와 천진암을 찾다가, 일제시대에 『조선 사찰 조람』을 편찬하기 위해 준비한 원고에서 천진암이 경기도 광주의 앵자산에 있었다는 기록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그는 주어사와 천진암 옛터를 조사한 후에 1962년 11월부터 1963년 1월까지 총 3회에 걸쳐 「경향잡지」에 ‘한국 천주교의 요람지인 주어사 발견됨’이라는 글을 게재합니다. 특히 그는 최초의 강학 장소로 주어사를 지목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벽이 처음 강학한 곳이 주어사인지 천진암인지에 대한 논란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한국천주교에서는 1975년에 천진암터의 매입을 시작했고, 1979~1987년까지 창립선조 5위, 즉 이벽, 정약종, 권철신, 권일신, 이승훈의 묘와 그 직계가족의 묘를 천진암 성지로 이장하였습니다. 그리고 1986년에는 한국천주교회창립사연구원을, 1994년에는 광암성당을 완공하고, 성모경당과 박물관을 짓고 있으며, 1986년부터는 100년 계획을 세워 천진암대성당 건립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2014년 8월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광화문 시복식에서 시복된 정약종을 제외한 나머지 창립 선조 4위에 대한 시복 역시 준비되고 있습니다. 한국천주교에서 천진암 성지 사업은 종교의 명운을 건 대사업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천진암 강학에 참여한 순교자들을 중심으로 하여 한국 각지의 순교지를 성역화함으로써 한국천주교의 ‘성지 지형도’를 완성하겠다는 것입니다.


| 종교의 공간 소유방식에 대한 제언
천진암 성지 사업에 대해서는 천주교 내부에서도 비판이 제기된 바 있습니다. 기원과 성지에 집착할 때, 한국천주교는 과거의 기억을 공간적으로 형상화하는 데 매진하는 ‘무거운 종교’가 되고 말 것이기 때문입니다. 천주교의 성지화 사업은 순교지와 성지를 건립하여 한국의 지도 곳곳에 천주교적 감수성을 뿜어내는 ‘종교 기계’를 설치하겠다는 의도를 담고 있습니다. 어쩌면 이것은 한국천주교의 소위 ‘외래 종교’ 콤플렉스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여기에는 ‘전통 종교/외래 종교’라는 매우 정치적인 종교 구분법이 작동하고 있습니다. 사실 불교나 유교는 종교가 아니라 문화의 이름으로, 즉 문화재, 전통사찰, 서원, 향교 등의 이름으로 국가에서 엄청난 지원을 받고 있습니다. 종교이면서도 사실은 비종교적으로 생존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천주교의 입장에서 본다면 이것은 매우 부러운 일입니다. 

천주교도 불교처럼, 유교처럼 되고 싶을 것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사태의 이면에는 사찰을 통해 불교가 누리고 있는 ‘종교적 이익’의 문제가 놓여 있습니다. 사실 천진암과 주어사는 이미 폐사를 겪은 절, 불교사에서 잊힌 절이었고, 천주교에 의해 다시 기억되기 시작한 절입니다. 천진암과 주어사는 한국불교사에서는 별 의미가 없는, 그러나 한국천주교에서는 엄청난 역사적 의미를 부여하는 사찰입니다. 불교와 천주교의 깊은 대화가 필요한 지점입니다. 최근 불교계가 제기한 주어사 복원 사업이 그저 천주교를 견제하기 위한 일이 되어서도 안 될 것입니다. 그리고 천주교도 주어사를 제2의 천진암으로 만들어, 타종교의 기억을 아무렇게나 훼손해서도 안 될 것입니다.

기억과 경전은 각자의 것으로 존재할 수 있지만 공간은 다릅니다. 모든 종교는 자신의 기억을 공간 속에 지리적, 물질적으로 가시화하고자 하는 욕망을 지닙니다. 그러나 어떤 공간도 특정 종교의 소유물은 아닙니다. 공간은 무수한 종교를 썼다가 지울 수 있는 그런 곳입니다. 그러나 ‘공간 쓰기’와 ‘공간 지우기’가 인위적, 정치적으로 무겁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참으로 종교적으로 가볍게 이루어질 수는 없는지 모르겠습니다.



이창익
한림대 생사학연구소 HK연구교수이자 한국종교문화연구소 연구원. 서울대 종교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서로는 『종교와 스포츠』, 『조선시대 달력의 변천과 세시의례』 등이 있고, 최근 논문으로는 「신종교는 언제 종교가 되는가: 통일교회에서 메시아의 죽음이 갖는 의미에 대해」, 「예술이라는 종교의 미디어: 반 데르 레이우의 예술신학」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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