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 약이 되는 식재료
마는 여러해살이 뿌리채소로, 상강(霜降, 10월 23일 경) 이후부터 동지(冬至, 12월 22일) 이전에 거둔다. 마를 쪄서 말린 것을 산약山藥이라 한다. 춘추전국시대에 산으로 쫓겨 간 약소국 군사들이 산속에서 1년을 버티고 역습하여 영토를 회복했다. 이때 산에서 캐어먹은 것이 마였다. 산에서 우연히 만났다 하여 ‘산우山芋’라고 부르기도 했다.
중국이 원산지인 마는 오래전부터 우리나라에도 자생해 왔다. 『삼국유사』에 마 이야기가 등장하는데, ‘서동요薯童謠’의 서동이 바로 ‘마 파는 아이’다. 서동요를 지어 퍼뜨린 기지로 신라 선화공주와 결혼하여 후에 백제 무왕이 된다. 서동이 아이들에게 나눠주어 먹게 한 것으로 보아, 당시에 마가 식재료로 널리 쓰였음을 알 수 있다.
마의 약리작용이 워낙 탁월하다 보니 약재로 취급되는 일이 많아 오늘날에는 일상의 식재료에서 다소 멀어졌다. 흔하게는 수분 함유량이 높은 장마를 날것으로 먹거나 갈아서 마시고, 단마나 둥근마를 굽거나 쪄서 고구마처럼 먹기도 한다. 최근에는 주산지인 안동을 중심으로 마국수, 마보리빵 등 다채로운 응용식품이 선보이고 있다.
마의 주요영양성분은 독특한 점액질에 있다. 끈적끈적한 ‘뮤신’ 성분이 위와 장의 점막을 보호하고 폐와 기관지가 건조해지는 것을 막아, 몸이 마르고 찬 사람의 기력을 회복시킨다. 오래된 마는 산삼에 비견할 만큼 그 효능이 뛰어나다.
선가에서는 종종 점심 대신 마를 쪄서 먹었다. 속이 든든하고 소화흡수가 잘돼 오래 앉기 좋아서다. 임진왜란 당시 사명대사가 식량을 뺏기고 고전하다 대동강 모래밭에서 마를 발견한 뒤, 승병들이 이를 먹고 전세를 회복해 승리를 거두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 맛과 모양, 영양이 조화로운 마전병말이
마 요리는 사실 낯설다. 밥상에서 잊혔던 오래된 식재료이기에 그렇다. 음식이기보다 약으로 여겨졌던 마와 친해지는 법은 간단하다. 고구마와 당근을 함께 떠올리면 쉽다. 고구마처럼 생으로 깎아서 먹는 요리법, 껍질 채 굽거나 찌는 법, 얇게 썰어 팬에 구워 내거나 튀김옷을 입혀 튀겨내는 법, 모두 마 요리에 그대로 적용이 가능하다. 고구마전분과 마찬가지로 마 가루를 밀가루와 섞어 반죽하면 요리는 더욱 다양해진다. 또 당근처럼 갈아서 음료로 마시거나 밀가루반죽에 갈아 넣을 수도 있다.
마전병말이에는 고구마처럼 생으로 먹는 요리법, 그리고 당근처럼 밀가루반죽에 갈아 넣는 방법이 함께 쓰인다. 마 요리법에 친해질 기회다. 마를 곁들여 밀전병에 영양을 더하고, 채 썰어 볶아낸 채소와 생마를 전병에 말아 모양을 살린다. 마전병말이의 담담함에 들깨소스의 고소한 풍미를 더하면 맛과 모양, 영양의 조화가 비로소 완성된다.
맛과 모양의 즐거움, 영양의 이로움이 갖춰진 때에야 바야흐로 음식은 존재감을 확보한다. 어느 하나 놓칠 수 없기에 요리란 처음부터 끝까지 만드는 이의 정성을 담보해야만 한다. 먹는 이의 정성 또한 예외는 아니다. 그렇다면 요리의 처음과 끝이란 어디에서 시작하고 맺는 것일까?
| 지미知味교육과 요리가무를 소개합니다
깊어가는 가을 오후에 만난 국제슬로푸드 한국협회(이하 슬로푸드코리아) 남윤미(40세) 교육팀장과 장시내(24세) 청춘네트워크 이사가 그 답을 건넸다.
“음식을 통한 소통이죠. 신선하고 풍미 있는 지역의 제철 먹을거리, 환경과 인류건강에 해를 끼치지 않고 동물복지를 지키며 생산된 먹을거리, 공정한 거래조건과 정당한 대가에 대한 철학을 모두 끌어안는 것이 바로 슬로푸드입니다.” 남윤미 팀장의 말에 장시내 이사가 덧붙였다. “슬로푸드란 이 음식이 어디서 왔는가, 하는 질문이에요. 어디서 어떻게 생산되고 어떤 과정을 거쳐 내 앞에 왔는지, 과연 그 과정은 선하고 공정한지 살피자는 거죠.” 요리의 처음과 끝에 대한 답은 ‘이 음식이 어디서 왔는가?’라는 물음 속에 있었다. 그것은 생명이고 관계였다.
남윤미 팀장은 책문화운동과 생태공부를 하며 양평에서 3년 간 시골생활을 했다. 직접 농사를 지어보면서 건강한 밥상을 화두로 ‘슬로푸드 매니저 교육과정’을 수강하게 된 것이 인연이 되어 다양한 ‘지미知味교육’ 프로그램을 꾸리고 있다.
“지미교육은 이탈리아에서 처음 시작됐어요. 시약으로 맛을 구별하는 미각교육이었는데 한국식 교육이 필요하다 싶었죠. ‘맛을 안다’는 건 내가 먹는 음식에 연결된 자연과 사람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것 아닐까요? 오감을 깨워 온전히 먹는 맛워크숍, 음식명상, 음식시민학교 등을 통해서 우리 밥상이 따뜻해지면 좋겠습니다.”
장시내 이사는 5년 전 인턴으로 인연을 맺고 자원활동가로 주요행사를 도왔다. 지난해부터는 청년네트워크 코디네이터를 맡아 활동한다. ‘버려지는 농산물 구출작전, 요리가무’는 대형마트, 농부, 유통인에게서 버려지는 농산물을 공수해 50~100여 명이 모여 요리하고 시민과 나누는 행사다. 규격미달, 과잉생산, 가격폭락, 대량유통 및 진열기한 등을 이유로 아깝게 버려지는 농산물이 전세계 식품 생산량의 3분의 1에 달한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서다. 요리가무가 열리는 날, 홍대 앞, 청계천광장, 가락시장은 춤추고 노래하며 요리하는 청춘들로 들썩인다.
“정토회 ‘빈그릇운동’에 감명 받아서 친구들에게 서명을 받기도 했어요. 버려진 음식을 먹는 아귀는 목구멍이 작아서 고춧가루를 넘기지 못한다잖아요. 보이지 않는 생명을 챙기는 것이 불교의 정신과 슬로푸드가 만나는 접점인 것 같아요.”
템플스테이에서 사찰음식을 접하고 따로 요리법을 배우기도 했다는 장시내 이사. 반면 남윤미 팀장은 어린 시절에 사찰음식을 접했다. 할머니와 어머니를 따라 절에 가는 날이면 햇살 따뜻한 곳에 앉아 절밥을 먹던 날의 나무그릇마저도 오롯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특별할 것 없는 음식이었으나 식재료 본연의 맛이 살아있어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도 그 맛은 선명하다.
“천천히 집중해서 먹으면 자연스레 탐식이 줄고 채소가 맛있다는 걸 깨달을 수 있어요. 마음챙김 식사만으로도 식단이 저절로 조절되죠. 본연의 맛을 알고 먹으니 먹는 즐거움은 더 커집니다. 그대로 3소식(소蔬・소小・소笑)이죠. 슬로푸드와 사찰음식, 공통점이 참 많네요.”
전통의 종자와 농법을 지키는 데 수십 년을 바친 생산자들이 자기를 알아주는 젊은이들을 만나 기뻐할 때, 남윤미 팀장과 장시내 이사는 함께 울고 웃는다. 두 사람은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개최되는 세계슬로푸드대회 참가를 앞두고 전 세계의 슬로푸드 생산자들을 만날 생각에 한껏 설레어했다. 슬로푸드에서 배운, 요리의 처음과 끝이란 음식과 사람과 자연의 만남으로 순환하는 하나의 원이었다. 그 원이 점점 커져 ‘어머니 지구(세계슬로푸드대회의 명칭이기도 함)’를 행복한 공동체로 만들어 가기를 기원한다. 달팽이가 느려도 늦지 않듯.
마전병말이
재료
마 100g, 생표고 100g, 애호박(돌려깎기한 분량) 80g, 당근 80g, 들기름 1T, 간장 1/2t, 포도씨유 약간, 미나리 한 줌(소금 약간), 밀전병(마 100g, 밀가루 1컵, 감자전분 1T, 물 1/3컵, 소금 1/3t)
소스(들깨가루 1T, 매실청 1T, 잣가루 1t, 물 1t, 식초 1/2t, 들기름 1/2t, 소금 약간)
만드는 법
1. 마는 굵게 6~7cm 길이로 채 썰고 표고는 모양대로 저민다.
2. 애호박은 돌려깎기 하여 채 썰고 당근도 채 썰어 놓는다.
3. 저민 표고는 들기름과 간장으로 양념하여 팬에 볶는다.
4. 팬에 포도씨유를 두르고 애호박 채와 당근 채에 소금을 넣고 각각 볶는다.
5. 미나리는 잎을 정리하고 끓는 물에 소금을 넣고 데쳐 둔다.
6. 분량의 재료를 섞어 소스를 만들어 놓는다.
7. 마는 껍질을 벗기고 강판에 갈아 밀가루, 물을 넣고 반죽이 주르륵 흐를 정도가 되면 체에 받쳐 곱게 반죽한다.
8. 팬에 기름을 조금 둘러 키친타올로 닦아내고 7의 반죽을 약 8cm 크기로 둥글게 부쳐낸다.
9. 전병에 준비한 재료를 골고루 넣고 돌돌 말아 미나리로 묶어 준다.
10. 접시에 담아 소스를 곁들여 낸다.
Tip_
마는 굴곡이 적은 것이 상품이며 점성이 많을수록 영양이 풍부하다. 봄, 여름에는 서늘한 곳에서 잠깐 말렸다가 밀봉하여 냉장보관한다. 가을, 겨울에는 햇볕에 말린 다음 서늘한 곳에 둔다. 마의 점액질은 피부에 닿으면 간지럼증이 생길 수 있으므로 껍질을 벗길 때 비닐장갑을 끼는 것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