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불광」과 불광법회가 40주년을 맞았다. 「불광」과 불광법회는 1974년 11월 동시에 태어난 쌍둥이나 마찬가지다. 불광법회를 이끌며 온전한 불자의 삶을 살자고 주창했던 광덕 스님은 불광 운동의 일환으로 문서포교를 계획했다. 그 결과물이 월간 「불광」이다. 지난 40년간 수많은 역경을 이겨내며 단 한 번도 쉬지 않고 달려온 「불광」과 도심포교의 전형을 만들어가며 한국불교의 지형을 바꿔놓은 불광법회. 그 발자취를 돌아보고 기념하면서 마흔 번째 생일을 자축하기 위한 자리들이 잇달아 마련됐다.
세상 밝히는 부처님의 빛이 되길
| 창립 40주년 기념법회
불광 창립 40주년을 기념하는 법회는 불광의 모든 불자들이 세상을 밝게 비출 부처님의 빛으로 거듭나기를 서원하는 자리가 됐다. 창립 40주년 기념법회가 열린 10월 12일 불광사 보광당에는 사부대중 1,500명이 운집했다. 말 그대로 입추의 여지없이 뜨거운 열기가 가득했다. 불광 마하보디 합창단은 어느 때보다도 신명나게 음성공양을 올렸고, 법회 참석자 모두가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부처님 전에 마음을 모았다.
이날 법회에는 광덕 스님과 인연이 깊었던 지구촌공생회 이사장 월주 스님을 비롯해 조계종 총무원장 자승 스님, 대각회 이사장 도업 스님, 금정총림 범어사 주지 수불 스님, 중앙승가대 총장 원행 스님, 중앙종회 부의장 법안 스님, 팔공총림 동화사 유나 지환 스님, 송석구 전 사회통합위원장(전 불광법회장) 등이 동참했다.
법회는 불광 마하보디합창단의 찬탄곡으로 시작됐다. 이후 삼귀의와 마하반야의 노래, 예불, 반야심경, 헌화, 불광 창립 40주년 동영상, 『사진으로 보는 불광 40년–빛으로 새긴 이야기』 봉정, 축사, 봉행사, 법어, 발원문 낭독, 바라밀 정근, 찬탄곡, 보현행원, 사홍서원 순으로 이어졌다. 특히 내빈들이 입장할 때에는 보광당이 떠나가도록 우레와 같은 박수가 이어졌다.
불광사 회주 지홍 스님은 이날 봉행사에서 “불광이 걸어온 40년의 성상星霜은 창조와 성장의 역사 그 자체이자 한국불교 전법사에 한 획을 긋는 과정”이라고 소개한 뒤 “지난 40년 동안 그랬던 것처럼 다가올 백년도 사바의 무명을 밝히는 진리의 빛이 되고, 바라밀국토로 인도하는 전법의 깃발이 되자.”고 새로운 각오를 다졌다.
조계종 총무원장 자승 스님은 치사에 앞서 광덕 스님의 행장과 함께 지난해 선거 당시 지홍 스님이 건강하지 못한 상황에서도 많은 도움을 주었다며 고마움을 전했다. 이후 “조계종은 직지인심, 견성성불, 전법도생을 종지로 삼고 있는데 한국근대불교사에서 전법도생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선지식이 바로 광덕 스님”이라며 “불광사에 들어오며 불광의 40년을 함께 한 오랜 신도님들을 봤는데 가슴이 뭉클했다. 이런 분들이 계시기에 광덕 스님의 정신과 얼이 이어질 수 있었고, 도심포교당 중흥을 이끌어낸 역사를 만들 수 있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자승 스님은 “앞으로 불광사와 같은 도심포교당이 늘어나야 한다.”며 “오늘의 환희와 기쁨을 바탕으로 더욱 정진해서 미래 100년의 전법사를 더욱 거룩하게 써가는 전법도량이 되기를 발원한다.”고 밝혔다.
이어 법석에 오른 지구촌공생회 이사장 월주 스님은 법어에서 광덕 스님과 함께 종단을 바로 세웠던 일화들을 소개하며 “광덕 스님은 진리의 말씀을 펴고 대중들을 결집하는 운동에 헌신했다.”라며 “그렇게 세상에 나온 월간 「불광」과 불광법회가 싹을 틔우고 열매를 맺어 창립 40주년을 맞았다니 수희찬탄하지 않을 수 없다.”고 소감을 전했다. 스님은 “불광 하면 어제보다 오늘이, 오늘보다 내일이 더욱 기대된다.”며 “다가올 불광의 미래 역시 전법의 빛이 되고 희망이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라고 축원했다.
이 시대의 선지식을 만나다
| 고우 스님・혜국 스님 지환 스님・무여 스님
불광 창립 40주년을 맞아 이 시대를 대표할 만한 네 명의 선지식이 불광사를 찾았다. 9월 14일부터 10월 5일까지 한 달 동안 매주 일요일 오전에 열린 ‘불광 창립 40주년 기념 선지식 초청법회’에는 매번 1,200~1,300여 명의 불자들이 운집해 불광사 보광당을 가득 메웠다. 미처 자리를 잡지 못한 불자들은 보광당 문밖까지 빼곡하게 들어차 선지식들의 법문을 경청하고자 했다.
불광사를 찾은 스님들은 한 자리에서 만나기 힘든 대강백이자 선승들이다. 가장 먼저 초청법회를 찾은 인물은 고우 스님이다. 고우 스님은 1968년 문경 봉암사에서 선원을 재건해 조계종 특별선원의 기틀을 다진 장본인으로 봉암사 주지, 축서사 주지, 각화사 태백선원장 등을 역임했던 바 있다. 2007년 조계종 원로의원에 2008년에는 조계종 대종사에 오른 이 시대의 대강백 중 한 명이다. 스님은 “부처님이 깨달은 것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중도’였다.”라며 “‘나’라는 존재를 있다고 생각하는 습관을 버려야 한다. 우리가 단일한 존재가 아니라 서로가 연기의 법칙에 의해 연결돼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 ‘중도’의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9월 21일 불광사를 찾은 혜국 스님은 ‘서 있는 그 자리에서 주인으로 살라’는 내용의 법문을 전했다. 혜국 스님은 22세의 나이로 오른손 손가락 3개를 연비하면서 성불의 각오를 다진 인물이다. 태백산 도솔암에서 2년 7개월간 장좌불와 정진했으며 해인사, 송광사, 봉암사, 칠불사, 수도암 등 제방 선원에서 수십 안거를 성만한 대표적인 수좌다. 혜국 스님은 고우 스님의 법문과 하나의 괘를 이루는 내용으로 법석을 뜨겁게 달궜다. 스님은 이날 “우리는 모두 감정의 노예로 살고 있다.”고 꼬집으며 “나 스스로에게 주인노릇이 아닌 진짜 주인이 되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9월 28일 열린 세 번째 법석에는 광덕 스님의 제자인 지환 스님이 올랐다. 지환 스님은 광덕 스님을 은사로 득도한 뒤 해인사, 백양사, 운문암 등의 제방 선원에서 정진했으며 조계종 기본선원장을 역임하고 현재는 팔공총림 동화사의 유나維那를 맡고 있다. 지환 스님은 법문 내내 특유의 열정적인 말투와 표정으로 많은 불자들의 시선을 집중시켰다. 스님은 “나는 못났다, 부족하다 하지 말고 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사고를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며 “본래 내 마음자리를 찾고 자비심으로 살면 행복한 삶이 열리게 될 것”이라며 늘 바라밀 수행에 정진할 것을 주문했다.
마지막 초청법회의 법석에 오른 주인공은 축서사 회주 무여 스님이었다. 무여 스님은 조계종 초대 기초선원운영위원장을 역임했고 현재는 봉화 축서사에 주석하면서 눈 푸른 납자들의 갈 길을 몸소 보여주고 있는 어른이다. 무여 스님은 “종로 3가 대각사의 조그마한 방에서 시작한 불광이 참 많은 발전을 이뤄 감개가 무량하다.”고 인사한 뒤 본격적인 법문에 들어갔다. 스님은 “공부란 별 다른 게 없고 그냥 놓아버리는 것이다. 마음에 있는 것을 일시에 놓아버리는 것이 참된 공부”라며 “모든 것을 한꺼번에 다 쉬어버리면 허공계와 법계가 본래 그대로 열반임을 알게 될 것”이라고 풀어주었다.
불광의 전법행을 다시 돌아보다
| 학술세미나
한국불교는 불광의 등장 전후로 구분할 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불광이 몰고 온 파도는 거세게 한국불교의 지형을 바꿔놓았다. 불광운동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불광을 이끈 광덕 스님의 사상과 행적을 알아야만 한다. 그래서 마련된 자리가 불광 창립 40주년 기념 학술연찬회 ‘광덕 스님의 사상적 지형과 불광운동 40년’이다.
9월 27일 불광사 교육원 3층 문수당에서 열린 이날 세미나에는 100여 명의 청중들이 모였다. 지홍 스님은 이날 세미나의 시작에 앞서 “불광 40년의 역사는 광덕 스님께서 ‘마음의 땅(心地)’에 심어주신 씨앗을 가꾸고 경작하는 역사였다.”며 “이번 세미나를 통해 광덕 스님의 전법사상이 잉태되는 과정을 종합적으로 살피고 불광운동의 사상적 원칙을 다시 점검해 미래의 비전을 다시 만들고자 했다.”고 강조했다.
주제 발표는 총 5가지로 1부와 2부로 나눠 진행됐다. 이중 1부에 해당하는 1, 2, 3주제는 광덕 스님의 사상적 배경과 함께 스님에게 영향을 미쳤던 용성 스님의 대각교 운동과 소천 스님의 금강경독송구국운동을 다뤘다. 이를 통해 광덕 스님의 불광운동의 내용을 깊이 있게 풀어보자는 취지였다.
이날 세미나의 기조발제는 성신여대 윤리교육과 방영준 명예교수가 맡았다. 방 교수는 어린 시절부터 광덕 스님과 맺었던 인연들을 떠올린 후 광덕 스님의 인간적 면모를 살펴볼 수 있는 에피소드들을 소개했다. 뒤이어 발제자로 나선 서울대 김정희 선생은 ‘불광사상의 성립과 대각사상의 영향’을 주제로 용성 스님이 주창한 대각사상과 광덕 스님의 관계를 풀어냈다. 김정희 선생은 절대적 긍정의 인간관, 법성法性의 의미 등 두 운동의 사상적인 맥락을 비교하면서 대각교 운동이 불광운동의 성립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를 밝히고자 했다.
제3주제는 ‘소천 스님의 금강경독송구국운동과 광덕 스님의 반야바라밀운동’이었다. 동국대 김광식 교수는 소천 스님의 사상과 금강경독송구국운동의 의미를 돌아보고 이 운동이 광덕 스님을 통해 어떻게 계승됐는지를 설명했다. 김 교수에 의하면 소천 스님의 ‘금강경독송구국운동’은 『금강경』 독송을 통한 개인의 자각과 이것이 사회적, 국가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실천 운동이었다. 광덕 스님은 소천 스님의 이런 관점을 이어받았을 뿐 아니라 새로운 불교의 대중화를 꿈꿨다는 것이 김 교수의 설명이다. 승려 중심의 법사진에 재가 지식인들이 동참한 것은 그런 대중화 작업의 일환이었다.
1부에서 광덕 스님과 불광운동의 사상적 분석에 방점이 찍혔다면 2부는 불광운동에 대한 평가와 지난 40년간 불광이 걸어온 길을 되짚어보는 시간으로 꾸며졌다. 불광연구원의 책임연구원 서재영 박사는 제4주제를 맡아 ‘전법지상, 불광운동의 사상적 좌표’를 발표했다. 이 발표를 통해 서 박사는 광덕 스님이 전법으로 개인과 사회를 구제하고자 했던 이유를 밝히고자 했다. 서 박사는 주제 발표에서 “왜곡된 가치관과 잘못된 세계관을 반야의 지혜로 정화하는 것이 전법”이라며 “(광덕 스님이 강조했던) 전법지상이란 교세확장을 지상과제로 삼겠다는 것이 아니라 오직 진리를 통해 무명을 밝히고 중생을 행복하게 하겠다는 서원”이었다고 힘주어 말했다.
주제 발표의 마지막은 중앙승가대 김응철 교수가 맡았다. 김 교수는 ‘불광 40년, 새로 쓴 전법의 역사’를 주제로 불광의 지난 발자취를 통해 불광법회의 특징과 그 의미를 새롭게 조명하고자 했다.
보현행원으로 보리 이루리
| ‘보현행원송’ 대공연
장엄한 2시간이었다. 무대에 뺏겨버린 관객들의 시선은 다시 돌아올 줄 몰랐고, 마지막 “마하반야바라밀”의 합창이 극에 달할 때는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10월 19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불광 창립 40주년 기념행사의 대미를 장식한 ‘보현행원송 대공연’은 다시 만나기 어려운 대작이었다. 공연이 예고되고 티켓이 발매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거의 모든 자리에 주인이 정해졌다. 1,500석의 해오름극장은 국내에서도 손에 꼽히는 대극장임에도 자리를 구하지 못해 아쉬움을 토로하는 사람들이 속출했다.
‘보현행원송’은 광덕 스님이 「보현행원품」을 토대로 가사를 쓰고, 박범훈 교수가 곡을 붙여서 완성한 작품이다. 1992년 4월 2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처음 연주됐던 바 있는 국악 교성곡으로, 당시 세간에서 화제가 됐었다. 지홍 스님은 ‘보현행원송’에 대해 “모든 중생을 부처님처럼 섬기며 열반으로 인도하겠다는 대승불교의 원대한 이상이 담겨 있으며, 불광운동을 일으킨 광덕 스님의 실천이념이 스며있다.”고 밝힌 뒤 “이 자리는 가슴 벅찬 보살의 서원을 되새기는 한편 제2의 불광운동을 위해 발심하는 자리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보현행원송’은 1992년 초연 이후 몇 차례 상연됐던 바 있지만 이날 공연은 역대 최대 규모로 기획, 연출됐다. 합창단 수만 220명에 달했으며 그 외 출연진, 무용단, 난타공연단까지 총 260여 명이 동시에 무대 위에 올랐다. 더구나 이 공연이 처음부터 끝까지 국악 교성곡으로만 구성됐다는 점을 떠올리면 가히 국내 최대 규모의 국악 대작인 셈이다. 이 공연에는 불광사 마하보디합창단과 함께 마하보디 합창단 상임지휘자이자 충주시립우륵국악단 상임지휘자인 조원행 씨, 국립창극단 단원이자 일반에도 널리 알려진 국악계의 스타 박애리, KBS ‘국악한마당’ 진행자이기도 한 국악인 남상일, 최수정, 오페라 가수 김성민, 가야금산조 및 병창 이수자 천주미 등이 함께 했다. 또 관무용단, 리틀엔젤스예술단, 충주시립우륵국악단 등도 장엄한 무대를 위해 힘을 합쳤다.
리틀엔젤스예술단의 축하공연으로 1부의 막을 연 이날 공연은 초연헌정곡인 바라밀송, 국악인 박애리가 부르는 ‘공항의 이별’, ‘아리랑’ 등으로 이어졌으며 마지막은 마하보디합창단의 ‘Scarborough fair’, ‘아름다운 강산’, 트로트 메들리가 장식했다. 이날 공연의 하이라이트는 2부인 ‘보현행원송’이었다. 국악관현악단의 화려한 반주 위에 시작된 공연은 5명의 독창이 돌아가며 선창을 하고 합창단이 그 뒤를 받쳐주는 식으로 진행됐다. 공연은 가사의 내용에 따라 독백, 듀엣, 합창이 적절히 배치돼 단 한순간도 지루할 틈을 주지 않았다.
공연은 기승전결의 구조 속에 점점 고조되며 마지막 보현보살의 서원에서 정점을 찍었다. 공연의 사이사이에는 관무용단의 수려한 무용과 관객들의 귀를 압도하는 난타가 배치돼 기존의 악곡 구성과 묘한 조화를 이뤘다. 이로 인해 공연 전체가 훨씬 화려해졌음은 물론이다. 명불허전. 보는 이에게 감동을 주는 공연이자 이보다 더는 장엄할 수 없는 한 편의 의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