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기장 해동용궁사
해광사에서 해동용궁사까지는 넉넉잡고 20여 분 거리. 그런데 5분도 채 걷지 않아 해동용궁사 ‘마케팅’이 시작된다. ‘龍宮용궁참숯불 소·돼지 전문점’이 그것이다. 한우갈비살·한우양념갈비·한우생갈비·돼지갈비·생삼겹살·항정가브리·석쇠구이·모듬생구이·전골·꽃살. 소고기와 돼지고기가 듬뿍 담긴 접시 그림과 함께 건물 벽에 굵은 글씨로 쓰여 있는 메뉴판을 읽노라니 침이 꼴까닥 넘어간다. 오호- 통재라! 고기 냄새만 맡으면 목구멍으로 침부터 넘어가는 나는 아직도 꼭지가 덜 떨어진 땡추인가보다.
| 커피를 관문으로, 용궁사 ‘마케팅’
침샘을 다독이며 걷기수업을 계속하고 있노라니 문득 앞서갔던 하지권 사진작가가 커피전문점 앞 키 작은 시멘트 펜스에 걸터앉아 나를 기다리고 있다. 그러면서 커피 한 잔 마시고 가자고 한다. 커피광인 나에게 커피 마시자는 말은 언제나 달콤한 유혹이자 안온한 휴식이다. 하 작가와 나는 커피전문점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커피전문점의 건축 조형미가 예사롭지 않다. 이름도 예사롭지 않다. 출입구 앞에 세워놓은 투명 아크릴 입간판에 써놓은 소개 글을 보니 부산시가 부산 건축문화 발전을 위해 시행한 2012 ‘부산다운’ 건축상 공모전에서 ‘베스트상’을 수상한 건물이다.(근데 어떤 점이 ‘부산다운’지는 끝내 모르겠다.)
커피점 이름도 ‘끌레 22(cle TWENTY TWO) COFFEE & CAFE’이다. ‘끌레’는 프랑스말로 ‘열쇠’ 또는 ‘관문’을 말한다. 그렇다면 이 커피점에서 커피 한 잔을 마시며 내 삶의 열쇠와 관문을 찾으라는 뜻일까? 아님 커피 한 잔 마시며 다가올 22(TWENTY TWO)세기의 열쇠와 관문을 미리 준비하라는 뜻인가? 나만의 오독吾讀이고 오독誤讀일 수도 있다. 아님 둘 다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만의 오독吾讀이고 오독誤讀이면 어떠랴. ‘처처불상 사사불공處處佛像 事事佛供’이라지 않았던가. ‘곳곳이 부처님이요, 일마다 부처님 앞에 공양올림’이지 않던가.
한 잔의 커피잔에서 부처님을 보고, 한 모금의 커피에서 부처님께 올리는 공양을 보는 동안 바로 옆 탁자에서 40대 중반의 다섯 여자가 시끄럽게 수다를 떤다. 아무리 막아도 달팽이관을 후비고 들어온다. ‘부산 아지매들’ 정말 시끄럽다. 귀가 멍멍하다. 너무 시끄러워 커피 맛도 제대로 모르겠다. 그래도 높은 산등성이처럼 푹 솟구쳐 올랐다가 급격히 꺾어져 내리는 목소리가 내 ‘하트heart’를 자극한다. 나도 저런 애교 넘치는 여자랑 한번 사귀어봤으면.
커피 맛에 젖고 부산 아지매들의 수다에 젖는 동안 시간이 훌쩍 갔다. ‘끌레’를 열쇠삼아 다시 해동용궁사로 나섰다. 20분이면 뒤집어쓰고도 남을 길이 두 시간도 넘게 걸리게 생겼다. 아뿔싸, 그런데 길을 나선 지 채 5분도 되지 않아 용궁사 ‘마케팅’이 또 나타난다. 이번엔 ‘용궁해물쟁반짜장’ 집이다. 용궁사 마케팅에 따라 내 미각도 한식에서 중식으로, 육류에서 해물로 바뀐다. 구수하게 퍼지는 해물 짜장 냄새가 침샘을 더욱 자극한다. 안 돼. 이럴수록 뒤돌아보지 말고 더 열심히 걸어야 돼. 나는 지금 ‘길을 찾아 길로 나선 길 위의 사람’이지 않은가. 어이쿠, 못된 중 같으니라고.
| 물질 있는 곳에 마음 있고, 마음 있는 곳에 물질 있다
해동용궁사 마케팅은 사하촌에 들어서자 더욱 극에 달했다. 용궁각·해동수산직판장·용궁사 부산 방문 기념선물 부산 명품 손으로 만든 수제 부산어묵·용궁사 대왕소세지·용궁사 씨앗호떡·용궁사 국화빵…. 스마트폰으로 용궁사 씨앗호떡집과 부산 메밀씨앗호떡집 사진을 찍자 ‘맛있는 부산 오뎅’집 아지매가 크게 한 소리 한다.
“스님, 스님도 호떡집 할라꼬예!”.
ㅋㅋ. 즉석 힐링이다. 나도 곧바로 화답한다.
“네, 저도 호떡집 한번 해보려고요. 스님은 호떡집 하면 안 됩니까?”
“아니라예. 한번 해보입시더.”
모두 폭소가 터진다. 장단지에 바위처럼 붙어있던 노독도 봄눈처럼 녹아내린다. 이것이 바로 걷기수업(만행)만의 재미요, 별미요, 걷기수업만이 주는 몸 힐링 마음 힐링이다.
사하천 노점상 터널을 지나자 비로소 본本 해동용궁사가 펼쳐진다. 본 해동용궁사답게 가는 곳마다 닿는 곳마다 용 그림자요 용 천지다.
내가 세운 나만의 답사 원칙대로 나는 먼저 빠르게 해동용궁사를 한 바퀴 일별한다. 그런 뒤 다시 한 곳 한 곳 꼼꼼히 되짚어 나가본다. 그런데 아무리 씻어내려 해도 티끌처럼 망막에 자꾸만 걸리는 풍경이 있다. 복전함이다. 용궁에 용보다도 복전함이 더 많이 살고 있다. 마음에서 아무리 밀어내려 해도 밀쳐지지 않는다. 이럴 땐 직접 부딪히고 나가는 것이 최고의 용병술이다.
나는 해동용궁사 맨 위쪽 해수관음대불부터 시작해 출입구 쪽으로 거꾸로 나아가며 복전함을 헤아려보기로 했다. 해수관음대불 앞에 1개, 용왕단에 1개, 대웅보전 오른쪽 황금포대화상 앞에 1개, 대웅보전 안에 3개, 지하 신비한 약수터 앞에 1개, 용품점 복돼지 앞에 1개, 밤 기도 하는 곳 대리석 약사부처 앞에 1개, 제용단 지장보살 앞에 1개, 학업성취불 앞에 1개, 득남불 앞에 1개, 십이지신상 앞에 각각 1개씩…. 내 눈에 얼른 띈 복전함만 해도 31개나 되었다. 이쯤 되면 해동용궁사는 용의 집이 아니라 복전함의 집이었다.
문득 해동용궁사 도량 맨 위쪽 산비탈에 우람히 서서 수평선을 굽어보고 있는 해수관음대불의 모습이 퍽 처연했다. 내 마음도 따라 처연해졌다. 그런데 이게 웬 떡. 그 처연함을 아는지 모르는지 눈부신 싱글 젊은 서양미녀가 살살 녹는 미소로 해수관음대불 앞에서 나에게 용감하게(?) 사진 한방을 부탁한다. 옳거니, 원, 투, 쓰리- 찰칵. 한 번 더 원, 투, 쓰리- 찰칵. 카메라 앵글에 붙잡힌 긴 금발과 늘씬한 허리와 시원한 눈망울과 백옥 미소를 내 마음 카메라에도 함께 담는다. 그래도 걸림은 가시지 않는다.
그래. ‘해가 제일 먼저 뜨는 절’도 좋고 ‘한 가지 소원을 꼭 이루는 해동용궁사’도 좋고 ‘천하대명지 일도만복래(天下大明地 一到萬福來, 천하에 제일가는 명당의 터로, 한 번만 기도해도 만복을 받는 절)’도 다 좋다. ‘물질 있는 곳에 마음 있고 마음 있는 곳에 물질 있다’는 말도 틀림없는 진실이다. 하지만 도량 곳곳을 복전함으로 온통 설치미술을 해놓은 건 좀 과하지 않았을까? 이웃 종교에 비해 상대적으로 빈한한 절집 살림 탓이라고 백보 양보해보지만 내국인은 물론 ‘부산 관광 필수코스’로 들리는 외국인들에게 너무 상업적이고 불온한 ‘한류’로 비춰지진 않을까 걱정이 먼저 앞섰다.
| ‘다 비우고’ 가기, ‘다茶 비우고’ 가기
궁하면 오히려 더 통하는 법. 대웅보전 아래마당으로 내려가자 다행히도 꼬인 내 마음을 풀어주는 것이 있었다. 아래마당 한 귀퉁이에 자리 잡고 있는 재래식 해우소에서 은근히 풍겨 나오는 똥냄새와 해우소 입구 쪽 양쪽 담벼락을 따라 마당가장자리에 전시되어 있는 오래된 돌그릇(돌확·맷돌·돌 함지·다듬잇돌)들이었다. 어느 멋쟁이 스님이 이 기발한 배치를 상상해냈을까? 해동용궁사를 비로소 절집답게 해주는 그 재래식 해우소 냄새와 (외국인들에게) 우리 국적을 정말 우리 국적답게 해주는 그 오래된 돌그릇들마저 없었다면 나의 해동용궁사행은 정말 처연하고 서글펐으리라. “무명 스님, 고맙습니다.” 재래식 해우소와 오래된 돌그릇들의 기묘한 조합으로 해동용궁사의 심장을 살려낸 어느 무명 스님에게 나는 꾸벅, 감사인사를 드렸다.
그러고 보면 삶은 선택지다. 무엇을 선택하고 무엇을 선택하지 않아야 할지는 오로지 자신에게 달려있다. 오늘 나는 해동용궁사에서 용과 복전함을 선택하지 않고 구린내 나는 재래식 화장실과 돌확과 맷돌과 돌 함지와 다듬잇돌을 선택했다. 이 선택들이 앞으로 나의 삶의 여정에 어떤 영향을 줄진 모른다. 선택은 자유지만, 그 선택의 결과는 늘 무거운 짐이기에. 그러나 나는 오늘 나의 선택을 후회하진 않으리라. 내가 스스로 선택한 선택지이고, 결과이고, 짐이기에.일출 제일이라. 다음날 이른 새벽 나는 해동용궁사의 가장 큰 자랑인 일출 제일을 보기 위해 다시 해동용궁사로 갔다. 이른 새벽이라서 그런지 관광객으로 붐비던 어제의 해동용궁사는 간 곳 없고 그 자리에 처연해서 더욱 아름다운 새벽 해동용궁사가 엄정하게 서 있다. 나는 절집의 그런 고랑 깊은 처연함을 더 사랑한다. 애지면서도 황홀한 절집의 그 고랑 깊은 처연함은 언제 어느 때고 마음 밖으로 인화되어 나의 들뜸을 잡아준다. 긴 세월 걷기수업을 내 수행의 문턱으로 삼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 문턱도 잠시. 찰칵찰칵. 이내 스마트폰과 카메라로 사진 찍는 소리가 들린다. 아직 아침 여섯 시도 안 됐는데 벌써부터 관광객들이 모여들기 시작한 것이다. 찰칵거리는 카메라 셔터소리를 따라 내 마음의 용문으로 들어왔던 해동용궁사도 다시 내 마음의 용문 밖으로 빠져나간다.
삿된 생각, 불손한 생각, 망령된 생각일랑 다 비우고 가란 뜻인가? 사하촌 노점 틈에 ‘다비움’이라는 커피점도 보인다. ‘다 비움’이다. ‘다茶 비움’이다. 그래. 차(茶)도 다 비우고, 나도 다 비우고, 해동용궁사도 다 비우고 가야지. 그리고 어느 날 새벽, 내 마음의 용궁을 찾기 위해 불현듯, 다시 해동용궁사에 와야지. 새벽 여섯 시 이전에 와서 내 마음속 고랑 깊으면서도 처연한 해수관음대불을 다시 알현해야지. 해조음을 들으며 창백하면서도 황홀한 해동용궁사의 새벽 적묵 속에서 내 ‘인생’의 엄정함을 다시 되새겨보아야지.
사노라면 언젠가는 좋은 날도 있겠지 흐린 날도 날이 개면 해가 뜨지 않더냐 새파랗게 젊다는 게 한밑천인데 쩨쩨하게 굴지 말고 가슴을 쫙 펴라내일은 해가 뜬다 내일은 해가 뜬다
그래, 까짓것. 중으로 산다는 게 별거 있겠어. 아직도 ‘(승랍으로) 새파랗게 젊다는 게 한밑천인데’ 쩨쩨하게 굴지 말고 가슴 쫙 펴고 한번 걸어보자고.
1999년 1월 1일 아침, 해동용궁사의 또 다른 어느 멋쟁이 스님이 제용단(祭龍壇, 방생터) 가는 길 바위벽 대리석에 음각으로 새겨놓은 ‘인생’을 목구멍소리로 계속 ‘리피트repeat’하며 ‘내일은 해가 뜨는’ 인생 교과서를 찾아 나는 다시 새 걷기수업 노정에 올랐다.
승한 스님
중앙대 대학원 철학과 박사과정에서 동양철학과 불교철학을 공부하고 있다. 서울신문 신춘문예와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각각 시와 동시가 당선되었다. 지은 책으로 『나를 치유하는 산사기행』과 『스님의 자녀수업』 등 몇 권의 산문집과 시집이 있으며, 현재 서울 은평구 ‘빠리사선원’에서 행복나눔 대중견성공동체를 이끌고 있다.
ⓒ월간 불광 -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 불광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