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격체로서의 창조주인 동시에 창조원리 자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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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격체로서의 창조주인 동시에 창조원리 자체
  • 불광출판사
  • 승인 2014.05.27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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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의 천지창조 신화

지난호 그리스로마신화와 중국신화의 천지창조에 이어, 이번호에는 인도신화의 천지창조에 대해 알아보자. 크게 두 가지 설이 있는 있는데 하나는 조물주인 프라자파티가 우주를 창조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추상적인 존재인 거구 푸루샤에서 우주가 생겼다는 것이다. 천 개의 머리와 눈과 발을 가진 푸루샤는 우주를 감싸고도 열 손가락의 너비가 남을 만큼 거대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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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 창조 이전에 이미
시공간이 있었다는 얘기는
다소 아이러니컬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러한
논리의 모순을 해명하기
위해 인도 신화에서는
창조의 신 브라흐마와
별도로, 유지의 신 비슈누와
파괴의 신 시바라는
인격신이 존재하는 것이다.
사진은 유지의 신 ‘비슈누’.








| 기존 세계를 모방해 새로운 세계가 생긴다
푸루샤는 중국신화 속 천지창조를 한 반고와 유사한 점이 많다. 천지를 창조한 거구라는 점에서 둘은 닮았다. 반고의 육신이 이 세상을 구성한 것처럼 푸루샤도 이 세상의 구성물들을 창조했다. 하지만 천지만 창조한 반고와 달리 푸루샤는 이 지구 너머의 세계인 우주도 창조하였다. 뿐만 아니라 1만8천 년간 하늘을 떠받치고 대지를 눌러 밟은 뒤 장엄하게 죽음을 맞는 반고와 달리, 푸루샤는 이미 있었던 시공간은 물론이고 앞으로 다가올 시공간까지도 관장하는 불사不死의 존재이다.  
일체 만물은 푸루샤의 1/4이고, 천상의 불사계不死界는 푸루샤의 3/4이라고 한다. 푸루샤의 3/4은 천상으로 올라갔으나, 1/4은 이 지상에 머물며 온갖 유정물有情物과 무정물無情物에 퍼져나갔다. 그 과정에서 여성적인 원리인 비라즈도 만들어졌다. 비라즈로부터 다시 푸루샤가 태어났다. 이 푸루샤에서 자연의 구성물과 사람의 계급이 만들어진다. 
푸루샤를 제물로 삼아 제사를 지내니 그 과정에서 사계가 만들어진다. 봄은 제사의 기름이요, 여름은 땔나무요, 가을은 제물이라는 것이다. 제사의 결과물로 날아다니는 날짐승과 뛰어다니는 들짐승과 집에서 자라는 가축들이 생겨나고, 「리그베다(찬송가)」와 「사마베다(제사음악)」와 「아주르베다(제사의 주문)」도 만들어졌다. 푸루샤가 분할돼 사람의 계급도 만들어졌다. 입은 브라흐마나, 두 팔은 크샤트리아, 두 다리는 바이샤, 그리고 발바닥은 수드라가 되었다. 바로 인도의 카스트제도의 기원인 것이다. 
앞서 강조했다시피, 거인의 신체가 해체되어 이 세상을 구성한다는 점에서 푸루샤 신화와 반고 신화는 상당히 공통분모가 있다. 하지만 반고에 비해 푸루샤가 더 스케일이 크다. 반고는 고작 이 지상의 하늘과 땅, 생물과 무생물만 창조하였다. 하지만 푸루샤는 우리가 사는 이 지상을 만들기에 앞서 우주를 창조했다. 푸루샤는 우주를 창조한 인격체인 동시에 우주 최고의 법칙 그 자체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인도신화의 가장 큰 특징은 무에서 유가 창조되지 않고 기존에 있는 세계를 모방해 새로운 세계가 생긴다는 것이다. 「리그베다」에 따르면, 태초에 우주의 근본원리인 브라흐만[梵]이 있었다. 브라흐만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먼저 물을 만들었다. 물속에 종자를 심었다. 그리하여 종자는 황금알이 되었다. 황금알 속에서 브라흐마는 오랫동안 머물렀다. 브라흐마가 황금알 속에서 한 일은 명상이었다. 브라흐마가 명상에서 깨어났을 때 두 눈에서 강렬한 빛을 방출했고, 그 휘황한 빛으로 말미암아 어둠은 사라지게 됐다. 브라흐마는 황금알을 높이 들어 둘로 쪼개었다. 그리하여 쪼개진 알의 반쪽은 위로 올라가 하늘이 되고, 다른 반쪽은 아래로 내려가 땅이 되었다. 천지가 창조되자 알의 구성물에서 바다와 산과 별이, 신과 악마와 인간이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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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실 브라흐마, 비슈누,
시바 삼신의 지위 고하를
따지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다. 왜냐하면 이
삼신은 우주의 궁극적인
원리인 브라흐만이
세분화된 인격신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삼신은 본질적으로
하나라고 볼 수 있다.
사진은 파괴의 신 ‘시바’.



| 소아小我를 버림으로써 대아大我를 얻는다
푸루샤와 마찬가지로 브라흐마도 인격체로서의 창조주인 동시에 창조원리 자체를 뜻한다. 이는 브라흐마가 브라흐만에서 나왔다는 것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그런 까닭에 인도신화의 우주 창조는 무에서 유로, 혼돈에서 질서로 이행한다는 공식에서 조금은 동떨어져 있다. 우주 창조 이전에 이미 시공간이 있었다는 얘기는 다소 아이러니컬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러한 논리의 모순을 해명하기 위해 인도 신화에서는 창조의 신 브라흐마와 별도로, 유지의 신 비슈누와 파괴의 신 시바라는 인격신이 존재하는 것이다. 
차창룡의 『인도신화기행』에 따르면, 비슈누를 신봉하는 사람들은 브라흐마가 비슈누의 배꼽에서 생겨난 연꽃에서 탄생했다고 말하고, 시바를 믿는 사람들은 시바가 브라흐마를 창조했을 뿐만 아니라 브라흐마에게 창조의 임무를 맡겼다고 주장한다. 세상을 창조하기에 적당한 장소를 찾는 브라흐마에게 시바가 “연꽃을 던져서 떨어진 장소가 좋겠다”고 제언했다는 이야기는 브라흐마의 천지창조 이전에 이미 시바가 존재했다는 것을 방증한다.
브라흐마가 비슈누나 시바보다 우월한 존재라고는 볼 수는 없다. 기실 브라흐마, 비슈누, 시바 삼신의 지위 고하를 따지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다. 왜냐하면 이 삼신은 우주의 궁극적인 원리인 브라흐만이 세분화된 인격신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삼신은 본질적으로 하나라고 볼 수 있다.
창조, 유지, 파괴라는 그 시작도 끝도 없는 순차적인 연쇄반응에서 무엇이 먼저이고 무엇이 나중이라고 나누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이 어디 있겠는가? 그래서인지 인도의 일부 사원에서는 이 삼신을 함께 모시고 있다고 한다. 또 일부 사원에서는 삼신이 하나로 형상화되어 있다고 한다. 이 삼위일체신을 일컬어 트리무르티Trimurti라고 한다. 
눈치 빠른 독자는 이미 트리무르티, 즉 브라흐마, 비슈누, 시바라는 삼신이 성부, 성자, 성령을 상징하는 성 삼위일체와 유사하다는 것을 느꼈을 것이다. 일본 와세다대학교 사회과학부 교수 하세가와 요조는 『기독교와 불교의 동질성』을 통해 기독교의 삼위일체와 불교의 법신法身·보신報身·화신化身의 삼신이 유사성이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는 신약의 하느님과 불교의 대일여래가 닮았고, 하느님과 예수의 관계는 본불과 적불의 관계와 같다고 역설했다. 그렇다면, 힌두교의 트리무르티와 기독교의 삼위일체와 불교의 삼신이 지닌 유사성에서 우리가 얻어야 하는 교훈은 무엇일까? 소아小我를 버림으로써 대아大我를 얻으라는 것이 아닐까? 

| 빅뱅 이전의 시공간은 있는 것인가?
2회에 걸쳐 인류 신화의 천지창조에 대해 살펴보았다. 천지창조는 크게 두 개로 나뉠 수 있다. 하나는 무의 세계에서 유의 세계로, 혼돈의 세계에서 질서의 세계로 이행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우주의 궁극적인 원리가 구체적으로 형상화됨으로써 세계가 이뤄졌다는 것이다. 
어느 것이 옳을까? 현대물리학에서는 빅뱅이론이 대세인 게 사실이다. 빅뱅이라는 거대한 폭발과 함께 우주가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빅뱅 이전의 시공간은 있는 것인가, 하는 궁금증이 들 것이다. 물론 물리학적으로 보면 없다. 그렇다면, 빅뱅이론은 무에서 유로의 이행에 해당하는 천지창조 신화를 뒷받침하는 이론인 것일까? 
의상 대사의 「법성게」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일미진중함시방一微塵中含十方 일체진중역여시一切塵中亦如是, 한 티끌 속에 시방세계가 포함되고 모든 티끌 속에도 또한 그러하다.” 공간적인 차원에서 볼 때 작은 티끌이 시방을 머금는다는 것은 공간의 크고 작은 한정이 없다는 뜻이다. 자성自性이 없는 까닭에 그 어느 것도 머무름이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또한 「법성게」에는 이런 구절도 있다. “무량원겁즉일념無量遠怯卽一念 일념즉시무량겁一念卽是無量怯, 한량없는 먼 겁이 곧 한 생각이요 한 생각이 곧 한량없는 겁이니.” 우주의 시간에 비교한다면 한 사람의 생애는 하루살이와도 같다. 존재의 유한함을 극복하는 길은 관계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굳이 창조주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힌두교에서 트리무르티를, 기독교에서 삼위일체를, 불교에서 법신·보신·화신의 개념을 만든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유응오
1972년 충남 부여 출생. 대전대학교 정치외교학과와 동국대학교 문예대학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다.
「불교신문」과 「한국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 부문에 당선됐으며, 「주간불교」와 「불교투데이」 편집장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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