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과 맛을 음미하며 행복으로 가는 길 남산 대원정사 초의차명상원
요즘 자주 듣는 말이 있다.
‘명상은 행복해지는 길’이라는 요지의 이야기들이다.
이런 말이 자꾸 들리는 건 분명 사람들도
자신이 행복하지 않다는 걸 알고 있다는 반증이리라.
요즘 ‘힐링’이라는 말이 유행하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가 아닐까.
아니, 이미 ‘웰빙’이라는 말이 처음 등장했던 10여 년 전부터
사람들은 행복해지는 길을 갈구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명상은 정말 행복해질 수 있는 길일까.
그 질문을 안고 이번에는 남산 대원정사에 있는
초의차명상원(대표 지장 스님)을 찾았다.
| 당신은 행복하십니까?
겨울과 봄 사이의 남산 곳곳에는 아직도 잔설이 남았다. 이따금씩 차가운 바람이 불어와 몸을 움츠리게 했다. 겨울에 찾아온 남산은 늘 그렇게 날카로운 입김으로 손발을 아프게 했다. 얼어붙은 손을 비비며 초의차명상원의 문을 열었다. 문틈 사이로 훈풍이 느껴졌다. 쌉싸름한 차의 향기가 빨리 자리를 찾아 앉으라며 등을 떠민다.
지장 스님은 이미 다구를 들고 차를 우려내고 있었다. 하나둘 사람들이 찾아와 인사를 나누고는 자리를 찾아 앉는다. 그 앞으로 맑은 차 한 잔이 놓이고, 말이 섞였다. 모든 과정이 자연스럽다. 말이 섞이면서 웃음이 피어나고, 몸짓이 커진다. 이미 이곳은 봄이다. 이날은 올해 처음 열리는 차명상 수업이다. 첫 시간이라서 그런 것일까. 차를 마시는 시간과 수업의 시작이 따로 없었다. 그저 모여 앉은 자리에서 일상의 이야기를 주고받다보니 자연스럽게 명상에 대한 이야기로 옮겨갔다.
“지금까지 우리는 진정 행복한가에 대해서 별로 신경 쓰지 않고 살았어요. 그저 다들 나처럼 행복하게 살 것이라고 생각해왔죠. 그런데 주변을 보면 그리 행복하게 사는 사람들이 많지 않아요. 사실 많은 사람들이 행복해지고 싶어 합니다. 우리가 명상을 하는 이유는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입니다.”
사람들이 이곳을 찾는 이유에 대한 지장 스님의 말이다. 모두 행복을 찾아 명상을 하러 온다는 것. 과연 행복이란 무엇일까? 지장 스님은 만족의 상태,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는 상태, 부족함이 없는 상태를 행복이라고 부를 수 있지 않겠느냐고 했다.
미국 일리노이 주립대학의 에드 디너 교수가 쓴 『모나리자 미소의 법칙』이라는 책이 있다. 이 책에는 ‘행복의 공식’이 나온다. ‘원하는 것’ 대비 ‘가진 것’의 비율이 1에 가까울수록 행복감을 느낀다는 개념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원하는 것보다 가진 것이 더 적다. 당연히 그 둘의 비율이 ‘1’에 미치지 못한다. ‘1’에 가까워지기 위한 방법은 두 가지다. 원하는 것을 줄이거나, 혹은 가진 것을 늘리거나. 우리는 흔히 가진 것을 늘리는 쪽을 선택한다. 사람들은 많이 가지기 위해 노력하고, 가지면 가질수록 행복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착각이다. 이미 수많은 현자들이 말해왔고, 서로 다른 실험들이 증명해냈듯이.
| 명상은 원하는 것을 줄이는 현명한 방법
그렇다면 원하는 것을 줄이면 행복해질까? 그 방법은 보다 쉬운 길일까? 스님은 단언했다.
“그 길도 어려워요. 결국 두 가지 다 힘든 길이예요. 담배 피는 것을 예로 들어보죠. 담배를 피우고 싶을 때는 피워서 욕구를 충족시키는 방법이 있고, 피우고 싶은 생각을 끊어서 욕구를 없애는 방법이 있어요. 담배를 피우는 것은 증상을 없애는 방법이고, 생각을 끊는 것은 원인을 없애는 방법이에요. 그런데 담배 생각을 끊는 게 과연 쉬울까요? 누구나 담배를 피는 것보단 끊는 것이 낫기 때문에 어려워도 그 길로 가라고 할 거예요. 불교도 마찬가지죠. 불교에서 말하는 수행은 원인을 없애는 방법인 겁니다.”
명상에 대한 차담은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았다. 적당한 긴장과 자유로움이 공존하는 상태. 스님은 주로 마음에 대한 이야기, 마음을 다스려야 하는 당위성에 대한 이야기들을 참가자들과 주고받았다. 그러기 위한 방법으로 제시된 것이 명상이었다. 스님에게 물었다. 명상이란 과연 무엇인가?
“원하는 것을 얻거나 줄여가기 위해 필요한 몸과 마음의 힘을 키우는 것, 그래서 행복한 삶을 영위해 가고자 하는 노력과 과정이 곧 명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스님의 이 말은 설명이 필요했다. 우리는 현실과 이상이 조화를 이룰 때 행복하다고 하는데, 그렇지 못하면 이내 회의감을 느끼게 된다. 현실의 삶을 살다보면 탐・진・치(貪瞋癡, 탐욕, 분노, 어리석음)에 휘둘리게 된다. 흔히 탐・진・치를 버려야 한다고 말하고, 그러기 위해서 수행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스님은 욕심과 집착이라는 것이 버릴 수 있는 게 아니라고 했다.
“욕심과 집착은 버릴 수 있는 대상이 아닙니다. 탐・진・치는 대상을 보고 일어난 반응이에요. 그래서 실체가 없어요. 실체가 없기 때문에 버릴 수 없어요. 욕심과 집착은 대상을 잘못 보고 알기 때문에 일어나는 반응이에요. 그래서 버리는 것이 아니라 일어나지 않도록 하면서 줄여가는 거죠.”
탐・진・치가 일어나는지, 얼마나 일어났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마음을 바로 봐야 한다. 그래야 내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깨달을 수 있다. 바로 볼 수 있다면, 현실과 이상의 균형을 맞출 수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사람들이 일상에서도 명상하는 습관을 가질 수 있느냐 하는 문제다. 지금까지 지켜봤던 많은 수행들은 바로 이 문제를 두고 고민하고 있었다. 여기에 대해 지장 스님은 ‘차茶’를 해법으로 제시했다.
차에는 테아닌(Theanine)과 카페인(caffeine)이라는 성분이 있다. 테아닌은 섭취하는 순간 알파파가 나오도록 유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알파파는 심신이 안정됐을 때 발산되는 뇌파다. 그런데 녹차에 들어 있는 성분 중에 가장 많은 것이 테아닌이다. 카페인은 사람을 각성시키는 효과가 있다.
차에 들어있는 성분들은
심신의 안정과 정신적인 각성의 효과가 있다.
차의 이런 효과들은
명상에 큰 도움을 주기 때문에
차는 일상에서 쉽게
명상을 하도록 돕는 도구가 된다.
| 차는 명상에 입문하기 위한 좋은 도구
심신의 안정과 정신적인 각성은 명상에 큰 도움을 준다. 그래서 차는 명상에 탁월한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게 스님의 설명이다. 스님은 차를 통해 대상에 집중하고 객관적인 시점으로 관찰하는 명상에 익숙해지고 나면, 밥을 먹을 때나 걸어 다닐 때 순간순간 명상을 할 수 있게 된다고 했다.
실제 차명상을 처음 배우는 초급반의 경우, 차 자체에 집중하는 훈련을 받는다. 먼저 찻잔을 들어 차의 온도를 느낀다. 그리고 코 가까이에 대고 그 냄새를 충분히 음미한 후 입에 한 모금 머금는다. 향과 맛의 차이를 구별하고 각각의 특징을 관찰하는 훈련이다. 그리고 차가 내 몸에 들어가 어떻게 퍼져나가는지 관찰하는 과정을 반복한다. 모두가 순간의 변화를 알아차리는 명상의 과정이다.
이날 만난 참가자들은 이미 2년 동안 차명상을 해온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이날은 2시간 가까이 차담만 나누는 것 같았지만 사실 참가자들은 그 사이사이에서 명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상대방이 하는 말, 그 말에 내가 보이는 반응, 질문에 대한 나의 대답 등 모든 것이 명상의 대상이 되어 있었다. 심지어 차담을 나누는 순간 흘러나오는 음악까지도. 그 음악은 단순히 분위기를 돋우기 위한 것만이 아니었다. 몸에 밴 명상의 습관은 참가자들의 삶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제 스스로가 정말 많이 변했어요. 그전에는 화를 잘 내는 사람이었죠. 그런데 지금은 화를 내는 빈도수가 확 줄었어요. 화를 내면서도 화를 내는 내 자신이 보이니까 자제하게 되죠. 내가 바뀌니까 남편과의 관계도 좋아졌어요.”(구순의, 54)
“이전에는 다른 수행을 해보기도 했는데, 오래 앉아 있는 게 너무 힘들었어요. 그런데 차명상은 훨씬 쉽게 접근할 수 있어서 너무 좋았죠. 그래서 2년이 넘도록 차명상을 하고 있어요. 수행에 관심을 둔 초심자들에게 딱 맞는 수행이라고 생각해요.”(신옥희, 55)
명상은 행복해질 수 있는 길이 맞았다.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을 바로 관찰하면서 현실과 이상의 균형을 맞춰간다면 분명 행복은 멀지 않은 곳에서 만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부디 많은 사람들이 행복해지기를, 그 길을 만날 수 있기를.
초의차명상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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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 서울 용산구 후암동 358-17 대원정사 3층
문의 | 02)733-7209, http://teanmind.com
대구, 부산은 매주 목요일과 금요일에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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