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은사 주지 진화 스님
한국불교의 희망을 쏘아올리다
봉은사 주지 진화 스님
서울 강남의 고층빌딩 숲 사이에 위치한 천년고찰 봉은사, 그곳에서 한국불교의 희망을 본다. 오며가며 또는 취재차 봉은사를 종종 찾게 된다. 그때마다 아련한 감동이 전해진다. 일단 여느 사찰보다 사람이 많다. 무엇보다 불교를 배우려는 열기가 뜨겁다. 기초학당, 불교대학, 경전학교, 불교아카데미 등 교육프로그램에 아침저녁을 가리지 않고 수강생들로 넘쳐난다. 법당엔 목탁・염불 소리가 끊이지 않고 기도하는 불자들로 가득하다. 경내는 외국인을 비롯해, 불교전통문화를 체험하고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정신적 휴식을 취하는 이들의 느릿한 발걸음이 쉼없이 이어진다. 사찰에서 이루어지는 사람들의 활력과 생동감 속에서 살아있는 불교의 심장소리를 듣게 된다. 한국불교의 비전을 선도하며 봉은사를 이끌고 있는 주지 진화(61) 스님으로부터 모범적인 사찰 운영의 노하우를 들어본다.
| “진화 스님 가는 길에 일이 기다리고 있다”
: 2006년 봉은사 총무국장 소임을 시작으로 부주지를 거쳐, 2010년부터 주지 소임을 맡고 계십니다. 처음 오셨을 때와 비교하면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요?
새신도가 늘어나는 것이 가장 큰 변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해마다 평균적으로 3,500명의 새신도가 들어오고 있으며, 재적 신도 수는 15만 명에 이릅니다. 예산도 7년 만에 두 배로 늘어나 올해는 140억 정도입니다. 사찰 운영의 주체를 스님과 종무원, 신도회라고 할 수 있어요. 이들에게 우리가 서로 마음을 합해서, 봉은사를 한국의 대표적인 사찰로 한번 만들어보자고 했어요. 그동안 시대의 흐름에 맞는 비전을 만들기 위해 많은 논의를 했고, 세 그룹이 솔선수범해서 적극성을 가지고 사찰운영에 동참한 것이 변화의 시초가 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 1989년 진해 대광사 주지대행 시절부터 불교계 최초로 전산시스템을 도입했으며, 대장경연구소에서 대장경 전산화 작업을 주도적으로 이끌어오셨습니다. 그리고 최근 조계종 총무원 전산특보에 임명될 만큼, 종무행정 전산화의 선구자로 통하십니다.
사찰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신도와 재정에 대한 정확한 현황 파악이 가장 중요해요. 부산 관음사, 광주 증심사 등에서 소임을 살며 가장 우선시한 것이 종무행정프로그램의 전산화입니다. 봉은사에 와서 보니 기존의 프로그램이 너무 오래되어 느리고 효율성이 떨어져, 결단을 내려 신도관리와 회계를 병행할 수 있는 지금의 ‘가람지기2’ 프로그램을 다시 만들었어요. 새로운 신도가 가입하면 신도 정보가 입력되고 교육 안내가 나갑니다. 교육을 받으면서 신도회에 연결되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법회나 기도 동참률까지 높아지게 됩니다. 이 모든 것이 자동적으로 시스템화 되어, 봉은사가 지금의 단계까지 올라온 데는 가람지기2의 역할이 지대합니다. 그리고 수입과 지출 현황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되니 재정 투명화에도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사찰 운영의 모범 사례가 되어, 현재 종단에서 가람지기2를 전국 사찰에 무료로 보급하고 있어요.
: 스님의 법명 ‘진화眞和’는 ‘진정한 화합’이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사부대중의 화합은 어떻게 이끌고 계신지요?
봉은사에 상주하는 대중스님이 23분입니다. 스님들께 요구하고 합의했던 얘기가 있는데, 바로 ‘기본에 충실하자’입니다. 예불, 발우공양 등 출가자의 본분에 충실하고 위의를 지키면서 기본을 어기지 말고 살자는 것이죠. 종무원들에게는 교육의 중요성을 많이 강조합니다. 조직의 변화를 끌어낼 수 있는 교육들을 집단적으로 해왔고, 종무행정에 필요한 교육들은 사중에서 지원을 해주며 받게끔 하고 있습니다. 신도들에게는 최상의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기 위해 강의 평가제도를 실시하고 있어요. 교육, 기도, 법회 등에 있어 여러모로 신도들이 만족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신도들도 이에 화답해 선교율禪敎律 법회에는 1,000여 명, 다라니 기도에는 2,000여 명이 꾸준히 참석해 정진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러한 힘을 모아 ‘사회복지법인 봉은’을 통해 소외된 이웃들을 위해 대사회적인 활동에 정성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 회자되는 말에, “진화 스님 가는 길에 일이 기다리고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아이돌 스케줄보다 바쁜 것으로 알고 있는데, 하루 일과는 어떻게 되시나요?
새벽 4시에 일어나 새벽예불 올리고 전각 참배 후, 6시에 발우공양을 합니다. 그 다음 사중 청소 운력을 하고나서 8시 반에 직원 조회를 해요. 9시부터는 그날그날의 일정에 따라 움직이고 있어요. 산재해 있는 일들을 처리하고, 사람들 만나고, 종단 회의에 참석하는 등 거의 한 시간 단위로 일정들이 정해져 있습니다. 잠은 밤 11시 정도에 잡니다. 하루하루 있는 그 자리에서 열심히 살고 노력하면 그것이 최고 선이 아니겠나, 그런 생각으로 살았고 지금도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 전통문화의 재창조 작업
: 머무시는 곳마다 포교 행정에 두각을 나타내시면서 큰 발전을 이뤄 오셨습니다. 수행과 포교의 갈림길에서 포교를 선택하시게 된 계기는 무엇입니까?
고등학교 때부터 포교사찰에서 불교학생회 다니며 포교활동을 했기 때문인지, 출가하고 나서도 마음 한 구석에는 포교에 대한 관심이 있었나 봅니다. 혼자 생각에 이런저런 방법으로 하면 훨씬 잘될 것 같았거든요. 우연찮게 소임을 맡게 되어 생각했던 대로 해보니 효과가 있어서, 자연스럽게 제가 가는 길이 포교 행정 쪽으로 이어지지 않았나 싶어요.
: 사찰 운영이라는 관점에서, 일반 기업의 CEO 역할과 비교되기도 합니다. 어려운 점은 없으신지요?
주지가 되면 정례화 된 조직 운영, 신도관리, 회계 등에 대한 교육을 받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이 현실입니다. 봉은사가 큰 조직이다보니 주먹구구식으로는 도저히 운영할 수 없어요. 그래서 경영자 과정, 모금 전문가 과정 등을 이수하고 한국의 동향이나 현상에 대한 조찬 강의를 들으며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사찰 운영을 시스템화 시키는 데는 유용했지만, 다른 측면에서는 너무 성과 위주로 가고 있지 않나 해서 부담감도 느낍니다. 종교를 갖는 이유는 행복해지기 위해서입니다. 부처님 가르침대로 살며 부처님 가르침을 제대로 가르치는 데 더욱 집중할 생각입니다.
: 불교계의 불미스런 사건들과 시대의 흐름에 뒤처진 권위의식이나 제도 등을 보며, 불교의 미래에 우려를 나타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스님은 불교의 미래를 어떻게 보십니까?
신도들에게 종종 ‘불교가 발전하는가, 퇴보하는가’ 생각을 물어볼 때가 있어요. 아직까지는 발전하고 있다고 대답하는 분들이 우세합니다. 아마 봉은사의 발전 모습을 보면서 그렇게 생각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봉은사에 오기 전 증심사에서 주지를 살며 한국불교의 희망을 보았습니다. 소임자가 열심히 살면, 그만큼의 효과가 바로 나타나는 걸 경험적으로 실감했습니다. 이곳 봉은사도 마찬가지입니다. 20대가 불교대학 교육을 들으러 오며, 30대도 많아졌어요. 예전 같으면 상상도 못할 일입니다. 불교를 배우겠다고 오는 사람들의 연령층이 젊어지는 모습을 보며, 불교의 미래를 희망적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 지난 3월 28일 ‘도시공원’ 관련 법률이 개정되면서, 봉은사 중창불사의 길이 열렸습니다. 앞으로의 가람정비 계획은 어떻습니까?
1971년 도시공원법에 묶여 봉은사 내에 일체의 시설을 설치할 수 없었는데, 이번 법 개정으로 건축행위를 할 수 있는 법적인 근거가 마련되었습니다. 이미 2007년 TF팀을 구성해 중장기발전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안을 보고서로 만들어 준비해놓았습니다. 곧 불사추진위원회를 구성해 여러 문제를 세밀하게 살펴 중창불사를 진행할 예정입니다. 봉은사 가람정비는 도심의 전통사찰로서 위상을 잘 보존하며 현대 사찰의 기능들을 수용할 수 있는 전통문화의 재창조 작업이 될 것입니다.
: 물질만능시대에 치열한 경쟁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힘겨워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그들에게 힘과 용기를 줄 수 있는 말씀 부탁드립니다.
경제적으로 잘 사는 나라가 됐는데도 오히려 행복감은 이전만 못합니다. 물질적으로 아무리 풍부하게 가졌다고 하더라도 결국 궁극적인 행복은 아니라는 것이죠. 그런 차원에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통해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돌아봐야 합니다. 부처님께서는 훌륭한 가문에서 왕자로 태어났는데 그것을 버리고 왜 출가를 했느냐, 거기에 답이 있습니다. 우리는 계속 밖으로만 향해 좇고 있는데, 누구와 경쟁하며 무엇을 추구하고 있습니까. 이것을 안으로 한번 돌려서 찾아보지 않으면 항상 불안하고 불만족스런 상태에 머물게 됩니다. 스스로 고민하고 찾으려는 노력이 있어야 행복도 찾을 수 있어요. 밖으로 치닫는 마음을 안으로 돌려 자기 자신을 돌아봐야 합니다. 그곳에 그토록 찾아 헤매던 행복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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