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하고 찬란한 눈으로 보는 경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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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하고 찬란한 눈으로 보는 경전
  • 불광출판사
  • 승인 2014.02.10 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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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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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미타삼존도. 고려, 비단에 채색, 110.1cm,삼성미술관 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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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룡사 감로도. 1682년, 삼베에 채색, 204236.5cm, 경기도 안성 청룡사.
 
단풍이 유난히 아름다웠던 올 가을, 많은 사람들이 사찰을 찾았다. 절에 가면 들어서는 순간부터 다양한 불교미술품을 접하게 된다. 일주문에서 대웅전으로 이어지는 웅장한 목조건물을 비롯하여 전각 안에 봉안된 불상과 불화, 전각 앞에 위치한 석탑과 석등, 종각이나 누각 안에 봉안된 범종·법고· 목어·운판 등 사물四物, 이 모든 것이 불국토인 사찰을 장엄하고 불법을 상징하는 미술품들이다. 이 중에서도 화려하고 찬란한 색채로 부처님의 세계를 장엄하는 불화는 단연 불교미술의 백미라 할 수 있다.
 
| 성스러운 불법의 세계를 장엄하다
심오한 불교의 세계를 아름다운 채색으로 그려낸 불화는 불교의 교리와 부처의 가르침을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다. 불교를 깊이 알지 못하는 일반인들에게 심오하고 난해한 불교 교리를 쉽게 전달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일까. 그것은 직접 눈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부처의 모습과 극락정토極樂淨土, 다양한 불교 설화를 그림으로 직접 보여준다면 누구나 어려운 불교 교리를 쉽게 이해하고 성스러운 종교의 세계로 빠져들 수 있다. 다시 말해 불화는 불교 교리를 쉽게 전달하는 ‘시각적 경전’, 즉 ‘눈으로 보는 경전’이라 할 수 있다.
기원전 2세기경에 조성된 아잔타석굴 제9굴과 10굴에 현존 최고最古의 불화가 전해온다. 여기에는 본생도와 행렬도, 장식화가 그려졌을 뿐 부처의 모습을 그린 존상화는 보이지 않는다. 인도에서 기원한 불화는 점차 불교의 전파에 따라 북쪽으로는 서역, 중국을 거쳐 한국·일본으로, 남쪽으로는 실론을 거쳐 동남아시아 여러 나라로 전래되면서 지역과 시대에 따라 특색 있게 발전하였다.
불화 중에는 많은 신도들이 운집한 법회에 봉안하는 괘불도掛佛圖 같은 의식용 불화가 있는가 하면, 불전 안에 걸어놓고 아침저녁으로 예배하는 불화도 있으며, 어려운 경전의 내용을 간단하게 요약하여 그린 불화도 있다. 전각 안에 들어가면 중앙에 놓인 불상의 뒤 또는 좌우 측면 벽에 여러 점의 불화가 걸려 있는데, 그 가운데 중앙의 불상 뒤에 걸린 불화를 후불화後佛畵라고 한다. 후불화는 불상 뒤에서 불상의 성격을 좀 더 확실하게 하고 장엄하는 역할을 한다.
법당 안팎에 그려진 단청은 부처 세계를 장엄하는 장엄용 불화라 할 수 있다. 법당 안에는 주악천인奏樂天人을 비롯하여 불법의 세계를 찬탄하는 다양한 그림을 그리고, 법당 밖에는 여러 가지 기하학적 문양들로 아름답게 장식하여 신도들이 종교적인 장엄의 세계에 흠뻑 빠져들게끔 한다.
그러면, 불화는 어떤 목적으로 만들어졌을까? 첫째, 불화는 불전에 봉안하여 예배하기 위하여 제작된다. 우리나라에서는 불화가 조성되기 시작한 삼국시대 이래 불전 안에 불화가 봉안되어 예배화의 역할을 하였다. 통일신라시대와 고려시대, 불전에 불화를 걸고 예배했던 기록이 단편적으로 전하는 것을 보면 불화가 일찍부터 예배용으로 사용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둘째, 불화는 법회용으로 제작된다. 법회용· 의식용 불화로 가장 대표적인 것은 역시 괘불도이다. 요즘도 영산재와 같은 대규모 재를 지내거나 법회를 할 때 사찰 앞마당에 괘불도를 걸고 의식을 행한다. 10미터가 넘는 거대한 괘불도를 걸어놓고 태평성대를 기원하거나 기우제, 영산재를 지내는 모습은 법회용 불화의 용도를 잘 보여준다.
셋째, 불화는 죽은 사람의 명복을 빌고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영가천도용으로 제작된다. 죽은 자가 아미타불의 내영을 받아 반야용선般若龍船을 타고 극락왕생하는 모습을 그린 아미타내영도라든가, 고혼孤魂에게 감로미를 맛보여 극락왕생하게 하는 과정이 상세하게 그려진 감로도甘露圖는 대표적인 영가천도용 불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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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월관음도. 1310년, 비단에 채색, 419.5254.2cm, 일본 카가미진자(鏡神社).
 
| 진리의 세계를 표현하는 민중의 회화
우리나라에는 4세기 말 불교가 전래된 후 불화가 조성되었다. 통일신라시대 당나라의 문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며 불교회화가 활발히 제작되었다. ‘대방광불화엄경변상도大方光佛華嚴經變相圖’(754~755)는 『화엄경華嚴經』(80권본)의 내용을 서사書寫하고 그린 것으로, 호화로우면서도 정교한 묘선과 풍만하면서도 균형 잡힌 인물의 모습은 8세기 중엽경의 불화가 당 불화와 밀접한 연관성을 띄고 높은 수준으로 발달했었음을 보여준다.
불교가 국교의 위치에 있던 고려시대는 불화의 전성기였다. 왕실을 비롯한 귀족, 승려 등의 시주 발원에 의해 호화로우면서도 정교한 필치의 불화가 다수 조성되었다. 현존하는 160여 점의 불화를 볼 때, 구도는 상단의 주존과 하단의 권속을 철저하게 이등분한 2단 구도가 유행하였으며, 서방극락정토의 아미타불과 관음보살, 사후세계의 구세주인 지장보살을 그린 정토계 불화가 다수 제작되었다. 1310년 숙빈 김씨가 발원한 ‘수월관음도水月觀音圖’는 오른쪽을 향해 바위 위에 앉은 수월관음과 합장하고 관음보살을 우러러보는 선재동자, 보타락가산의 해변가 동굴, 기화요초 등이 화려하면서도 정교한 필치로 묘사되어 있어 고려불화 최고의 작품으로 손꼽힌다.
조선시대에는 국초부터 숭유억불정책을 시행하면서 불화는 크게 위축되었다, 그러나 초기에는 궁중의 왕비 및 비, 빈, 왕자들을 중심으로 숭불의 기운이 강하였으며 왕실의 호불정책護佛政策으로 인하여 국가나 왕실의 화원들이 불화를 그림으로써 수준 높은 불화가 제작되었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은 후 조선후기에는 민중적인 불화가 주류를 이루었다. 불화의 제작은 지방사찰의 화승畵僧들이 담당하였으며, 발원자와 시주자 또한 민간인들로 구성되면서 지역적 특색이 강한 불화가 그려졌다.
또한 벽화 대신 벽에 거는 탱화幀畵가 널리 유행하였고, 야외의식 때 사용하는 거대한 괘불도가 조성되었다. 구도에서는 권속들이 본존을 둥글게 에워싸는 군도형식群圖形式이 완전히 정착되면서 화면의 가장자리에는 본존의 설법을 옹위하는 사천왕을 배치하고 본존의 주위에는 보살중과 청문중, 팔부중 등을 좌우대칭으로 배치하였다.
불교회화는 불교의 교리를 알기 쉽게 대중들에게 전해주는 신앙생활의 한 방편일 뿐만 아니라, 사원의 장엄을 위한 수단으로 우리나라의 불교미술사상 큰 역할을 하였다. 화려한 색채와 구성으로 불교의 오묘한 진리의 세계를 시각적으로 표현해주는 불화는 불상과 더불어 가장 중요한 불교미술이다. 또 예배대상으로서 오늘날까지도 우리의 생활 속에 뚜렷하게 자리 잡고 있는 민중의 회화라고 할 수 있으며, 그 엄청난 양으로 볼 때도 우리나라의 회화를 대표하는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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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희
원광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 교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한국학대학원에서 한국미술사전공으로 석·박사를 받은 후 미국 메트로폴리탄박물관 선임연구원으로 재직했다. 현재 사단법인 한국미술사학회 회장과 사단법인 한국미술사연구소 부소장을 맡고 있으며 국사편찬위원와 문화재청 문화재전문위원 등으로도 활동 중이다. 저서로 『불화, 찬란한 불교미술의 세계』, 『극락을 꿈꾸다』, 『한국회화사용어집』(공저), 『조선시대 지장시왕도연구』, 『신장상』 등이 있으며 고려 및 조선시대 불교회화에 대한 논문을 다수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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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의 불교미술 - 불교회화
신장식 作 삼매 Series, 117x91cm, 캔버스에 아크릴릭,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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