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안함을 나누고 누릴 수 있는 곳 그곳이 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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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안함을 나누고 누릴 수 있는 곳 그곳이 절이다
  • 주경 스님
  • 승인 2014.02.07 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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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사찰에 대한 기억이 한 조각쯤은 있지 않을까 싶다. 산으로 이루어진 국토에서 산에 의지해 살아가며 산을 좋아하는 우리 국민들에게, 명산마다 명당 터에 자리 잡은고찰과의 만남은 필연이기 때문이다. 명산대찰名山大刹, ‘이름난 산에 있는 유명한 절’이라는 말이 있듯이 가야산 해인사, 덕숭산 수덕사, 속리산 법주사, 오대산 월정사 등 유명한 산과 절은 늘 짝을 이루어 호칭되어 왔다.
 
사찰은 편안한 곳이어야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절은 산과 같은 의미이고 산의 일부로 간주되기도 한다. 절은 산을 오르는 사람들에게 기준점이 되기도 한다. 절을 목적으로 산에 온 사람은 목적지가 되고, 산을 목적으로 온 사람들에게는 새로운 출발점이 된다. 산사의 한 모금 시원한 약수는 누구에게라도 세상의 번뇌를 씻고 새로운 기운을 채우는 감로수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산행에서 절을 만나지 못하면 고개를 갸웃거린다. ‘이상한데, 왜 산에 절이 없지?’라며 의문을 품기도 한다.
사찰은 기본적으로 두 가지 영역으로 나누어진다. 바로 예배 및 기도공간과 수행 및 생활공간이다. 큰 법당을 비롯하여 불보살님과 성현을 모신 각종 전각은 대체로 일반에 개방되는 예배 및 기도공간이다. 특별한 법회나 행사가 없으면 대부분의 경우 누구나 자유롭게 출입하며 참배할 수 있다. 그러나 선원, 율원, 강원, 승가대학원 등 스님들의 수행 및 교육공간과 절에서 소임을 보는 스님들이나 재가불자들의 생활공간은 사적영역이기 때문에 관람객의 출입을 금하고 있다. 조계종 종립선원인 봉암사를 비롯해서 몇 군데 선원 중심의 수행사찰 등은 외부인의 출입을 엄격하게 금하기도 한다. 불자들이나 방문객들이 사찰의 이런 구조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있으면 사찰방문에서 느끼는 불편함을 한결 덜 수가 있다. 일부 사찰에서는 수행과 기도에 방해가 된다고 등산객들의 사찰 출입을 달가워하지 않는 경향도 있다. 그래서 사찰을 비켜서 등산로를 내고 곳곳에 ‘출입금지’ 팻말을 내걸곤 한다. 하지만 같은 승려 입장에서도 사찰의 이런 배타적인 태도와 출입금지 팻말은 상당한 불편함을 느끼게 한다. 불자들과 방문객들에 대한 좀 더 개방적이고 자상한 태도가 필요하다. 거부와 금지의 표현보다는 서로에 대한 이해와 양해의 마음과 언어가 필요하겠다. 사찰을 방문하는 사람들의 예법이나 행동요령은 사찰과 스님, 불자들이 널이 알리고 이해시켜야 한다. 자세하고 친절하게 알려주지도 않고 방문객들의 행동과 태도를 지적하고 불만을 갖는 것은 지혜로운 자세가 아니다. 사찰은 편안한 곳이어야 한다. 불보살님이 계시기에 편안해야 하고, 수행과 기도에 매진하는 사람들이 사는 곳이어서 편안해야 한다. 멀리서 바라보아도 편안하고 가까이 다가온 사람도 편안해야 한다. 사찰이라는 말은 범어梵語 상가람마Samgharma에서 비롯되었다. 다른 표현으로는 아란야(Aranya, 한적한 수행처, 수행에 알맞은 조용한 곳) 등으로 부른다. 외면적 환경도 조용하고 한적할 뿐만 아니라 사는 사람들의 생활과 마음도 고요한 곳이라는 뜻이다. 절은 불보살님과 부처님의 가르침 그리고 스님들이 머무는 곳으로 불佛・법法・승僧삼보三寶가 두루 갖추어진 성스러운 곳이다. 이런 사찰이기에 편안한 곳이어야 하는 것이다. 사찰과 사찰에 깃들어 사는 사람들은 불자들과 방문객들의의지처이자 휴식처가 되어주어야 한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사람들에게 사찰은 편안하거나 의지가 되는 장소가 아니고, 사찰에 사는 사람들도 친절하거나 기대고 싶은 느낌을 주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편안함이란 마음대로 멈추어 서거나 기대거나 앉아 쉴 수 있는 주변 시설 및 환경과 내면의 여유가 어우러질 때 얻어지는 것이다. 5년이 넘는 시간 동안 매달 이름난 사찰들에 신도들과 성지순례를 다니고 있다. 그런데 어떤 사찰은한여름의 뜨거운 햇볕을 피할 수 있는 한 조각 그림자공간조차 찾을 수 없고, 대부분의 사찰들에서 잠시 다리를 쉴 수 있는 앉을자리조차 편하게 찾을 수 없다. 미리 연락을 하고 가지만 흔쾌하게 맞아주는 느낌을 받는 곳은 많지 않다. 사찰 안내를 부탁해도 스님이나 종무원이 해주기보다 많은 경우 문화관광해설사에게 맡겨진다. 몸도 마음도 정말 편안하지가 않다. 성지순례 불자들을 인솔해서 가는 스님이 느끼는 생각이 이러하니, 일반 불자들과 방문객의 입장에서는 얼마나 불편하고 답답하겠는가. 누구라도 사찰의 본래 존재가치인 편안함을 나누고 누릴 수 있어야 한다. 너무나 많은 사찰과 그곳의 상주거주자들이 사찰을 그들만의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 사찰은 정중동靜中動의 공간이다
2002년 이후 템플스테이가 정착되면서 한국불교와 전통사찰들은 새로운 변화의 흐름을 타기 시작했다. 사찰의 공간을 능동적으로 외부인에게 개방하고 산사의 삶과 문화를 나누기 시작한 것이다. 철저하게 스님들을 중심으로 한 거주자 중심의 사찰에서 방문자에 대한 고려와 배려가 늘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전문 종무원의 채용과 다양한 프로그램 진행을 위한 지역사회 및 전문가들과의 네트워크가 형성되면서 새로운 지역문화의 중심으로 활기를 띄고 있다. 이제 보편적으로 템플스테이를 운영하는 사찰은 시대와 함께하는 활동적이며 적극적인 사찰로 인식되고 있다.템플스테이는 10여 년의 짧은 시간 동안 한국에서 불교의 위상을 크게 바꾸어 놓았다. 기존의 사찰과 불교의 이미지는 다분히 은둔적이고 배타적이었다. 이를 개방적이고 누구나 접근 가능한 공간으로 바꾸어놓으면서 국내뿐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높은 지명도를 얻은 것이다. 누구도 템플스테이가 ‘한국을 대표하는 체험문화’라는 데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템플스테이는 불교 내적으로도 시대에 발맞추지 못하던 포교와 교화의 문제를 해결하는 역할을 점차 키워가고 있다. 아직도 초하루, 보름 등 음력에 기반한 신행생활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불공과 법회는 현대적 생활방식에 맞춰진 현대인들과 젊은 세대를 유입시키기 어려운 구조다. 하지만 템플스테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종교적 감성과 신행활동이 저조했던 많은 불자들이 자연스럽게 심화된 종교적 체험과 휴식을 얻어가곤 한다. 특히 가족들이 함께하는 템플스테이 체험을 통해 가족의 포교와 종교적 공감대 형성이라는 난제를 풀어가고 있는 것이다. 
사찰이 위치한 지역출신의 많은 사람들이 절에 와서는 “옛 모습의 일부라도 변하지 않은 곳은 이곳밖에 없는 것 같다.”는 말을 자주하곤 한다. 현대 한국사회에서 사찰은 이 나라에 남은 살아있는 마지막 문화의 보루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람들의 삶과 기억 속에 알알이 배어있는 산사와 관련된 다양한 인연의 고리들이 과거와 현재를 잇는 전통문화로 익어가고 있는 것이다. 사찰은 정중동靜中動의 공간이다. 조용한 가운데 어떤 움직임을 품고 있는 것이 참된 조용함이지, 조용한 가운데의 조용함은 참된 조용함이 아니라는 것이다. 현대사찰의 물리적인 공간과 사찰에서 생활하는 승속의 모든 사람들은 이런 정중동의 철학을 품고 가져야 한다. 가장 어린 시절 사찰을 방문한 기억은 7살 무렵 속리산 법주사에 갔던 일이다. 벌써 40여 년이나 지난 세월이지만 아직도 몇 가지 기억은 생생하다. 말티고개에서 버스가 힘에 부쳐 어른들이 모두 내려 버스를 밀거나 걸었던 일. 법주사에 갔을 때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큰 사각 관을 쓴 시멘트 미륵부처님. 이 부처님에게 반해서 뒤로 멀리 가서도 보고 다시 가까이 가서 보기를 몇 번을 반복했는지 모른다. 그렇게 불상 주위를 맴돌다 “아버지, 이 부처님 시멘트로 만들었어요?” 묻자, 아버님은 “아니야, 부처님은 돌로 만들어졌어. 아마 시멘트로 수리를 한 걸 거야.”라고 하셨다. 그날 이후 나는 많은 사람들과 법주사 미륵부처님을 조성한 재료가 시멘트냐 돌이냐 하는 논쟁을 벌였다. 법주사를 다녀온 사람들을 포함해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돌부처님으로 알고 있었다. 시멘트로 그렇게 크고 아름다운 부처님을 조성할 수 있었다는 게 지금도 놀랍다. 지금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법주사의 시멘트 부처님도 한 시절 정중동의 중심에 서 있었다. 사찰은 본래의 의미와 가치가 있지만 현상과 사람에 따라서 쉼없이 변하고 변한다. 그러나 사람들이 본래의 의미와 가치를 잊지 않는다면, 사찰은 계속되는 고요함과 움직임 속에서 반드시 본래의 자리를 찾아갈 것이다.
 
주경 스님
동국대학교 불교학과를 졸업하고, 예산 수덕사에서 설정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해인사승가대학을 졸업하였으며, 조계종 포교원 포교국장, 템플스테이초대사무국장, 총무원 총무국장, 기획실장, 중앙종회의원, 역삼청소년수련관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조계종 교육위원 및 어린이청소년 위원으로서, 1999년부터 서산 부석사 주지 소임을 맡아오며 산골의 작은 사찰이었던 부석사를 이 지역의 명소로 탈바꿈시켰다. 저서로는 『나도 때론 울고 싶다』,『미안하지만 다음 생에 계속됩니다』, 『마음을 천천히 쓰는 법』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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